이것이 바로 어느 누구도 속일 수 없는 보편적인 법칙이며 철도에 관해서도 결국은 마찬가지 말을 할 수 있다. 모든 인류가 이용할 수 있도록 세계 곳곳에 철도를 까는 일은 곧 지구 표면을 평평하게 만드는 일과 같은 것이다. 사람들은 주식으로 자금을 모아 삽질을 계속하기만 하면 마침내 모두가 어디든 순식간에 무료로 갈 수 있는 날이 온다는 식으로 애매하게 생각하지만, 군중이 역에 몰려들고 차장이 "발차!"를 외치고 기관차의 김이 물방울로 가라앉고 나면 기차에 탄 사람은 몇 명 되지 않고 나머지는 모두 기차에 치이는 사건이 생길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그 일은 ‘하나의 슬픈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다. 요행히 그때까지 살아 있고 차비도 벌어놓은 사람이라면 기차를 탈 수 있을 테지만, 그때쯤에는 이미 신체적 탄력을 잃고 여행 의욕도 사라져 있을 것이다. 인생의 가치가 어느 때보다도 줄어들었을 노년기에 불확실한 자유를 누리기 위해 돈을 버느라 인생의 황금기를 탕진한다는 것은, 훗날 고국으로 돌아가 시인으로 살겠다는 생각에서 먼저 돈을 벌기 위해 인도로 가는 영국인을 연상시킨다. 그 영국인은 인도에 갈 것이 아니라 당장 다락방으로 올라가야 했다. 이 땅의 판잣집에 사는 수많은 아일랜드 인들은 놀라 외칠지 모른다. "뭐라고? 우리가 건설한 철도가 좋은 게 아니란 말인가?" 하고 말이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리라. "아니, 철도는 좋은 것이다. 비교적 좋단 말이다. 다시 말해서 당신들은 이보다 더 무가치한 일에 종사할 수도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동포인 여러분에게 바라건대, 지금 이렇게 땅을 파는 것보다는 좀더 나은 일에 인생을 보낼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거라는 것이다." - P63

나는 사람이 가축의 주인이 아니라 오히려 가축이 사람의 주인이며, 가축 쪽이 사람보다 훨씬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사람과 소는 서로 일을 교환하는 것이지만, 필요한 일만 생각해 볼 때는 소가 훨씬 더 유리한 입장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농장이 더 넓은 것이다. 사람은 교환한 일의 일부로 6주 동안 건초 작업을 하는데 그건 결코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모든 면에서 소박한 삶을 영위하는 나라, 즉 철학자의 국가라면 가축의 노동력을 이용하는 것 같은 엄청난 실수는 범하지 않으리라. 물론 철학자의 국가는 과거에도 없었고, 조만간 생겨날 가망도 없으며, 또 그런 국가가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고도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내게 해 줄 노동의 대가로 말이나 소를 길들여 내 집에 하숙시키는 따위의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자칫하면 내가 마부나 목동으로 전락하고 말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설혹 그 일에서 사회가 이득을 보는 듯이 보인다면 이렇게 자문해 보자. 한쪽의 이득이 다른 쪽에게는 손실이 되지 않는다고, 마부소년이 주인과 똑같이 만족할 이유가 있다고 단언할 수 있겠는가? 어떤 공공사업을 가축의 도움 없이는 이룩할 수 없었다고, 그래서 그 사업의 영광을 소와 말과 더불어 누리게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 경우 인간이 자신의 힘만으로 좀더 가치 있는 사업을 이룩할 수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람이 가축의 도움을 받아 불필요하고 기교적인 일뿐 아니라 사치스럽고 무익한 일까지 하기 시작한다면, 그 중 몇몇은 소와 맞바꾼 노동을 전담할 수밖에 없게 된다. 다시 말해서 가장 강한 자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인간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동물을 위해 일할 뿐 아니라 그 상징물인 외부에 있는 동물을 위해서도 일을 한다. - P66

간단히 말해서 나는 신념과 경험 두 가지 모두에 의해, 소박하고 현명하게만 산다면 이승에서 한 사람이 먹고사는 일은 힘겨운 일이 아니라 유희나 다름없는 일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것은 보다 소박한 민족이 영위하는 직업이라는 것이 아직도 인위적인 민족의 경우에는 스포츠인 것과 마찬가지다. 나보다 더 쉽게 땀을 흘리는 사람이 아닌 한 꼭 이마에 땀을 흘려 가며 생계비를 벌 필요는 없다.
내가 아는 한 젊은이가 유산으로 몇 에이커의 땅을 물려받았는데, 자기는 그럴 방도만 있다면 나처럼 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결코 누구도 내 생활방식을 받아들이기를 원치 않는다. 그것은 그 사람이 내 생활방식을 제대로 익히기도 전에 나는 또 다른 생활방식을 찾아낼지도 모른다는 이유말고도 세상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제각기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 하나하나가 자신의 부모나 이웃의 생활방식이 아니라 자기만의 생활방식을 신중하게 찾아서 추구하기를 바란다. 젊은이는 건축가도 농부도 선원도 될 수 있다. 다만 그가 하고 싶다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일만은 없도록 하자. 선원이나 도망중인 노예가 북극성을 지표로 삼듯이 우리는 정확한 한 점을 지표로 삼을 때만 현명해질 수 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평생의 길잡이로 삼기에 충분하다. 그것만 있다면 예정된 시일 안에 목표로 삼은 항구에 도착하지 못할지는 몰라도 올바른 항로를 유지할 수는 있을 것이다. - P83

그러나 그런 삶은 너무 이기적이라고 말하는 마을 사람들도 있다. 사실이지 나는 지금껏 자선사업에 그다지 관여한 적이 없음을 이 자리를 빌려 고백하는 바이다. 나는 일종의 의무로 몇 가지를 희생시켰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자선의 즐거움을 희생시켰다. 마을의 몇몇 가난한 가정을 돕도록 만들려고 온갖 방법으로 나를 설득하려 한 사람들이 있다. 내가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었다면 어쩌면 심심풀이 삼아서라도 그 일에 손을 댔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가한 자에게는 악마가 일거리를 주니까 말이다. 그러나 내가 이 일에 관여하여 모든 면에서 내가 자립한 것만큼 부족함 없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그들의 삶에 의무를 지워볼 생각을 하고 또 그렇게 제안해 보기까지 했지만, 모두들 주저없이 가난한 채로 그대로 살겠노라고 했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그처럼 많은 방법으로 다른 이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으니 한 사람쯤 인도적인 일과는 거리가 먼 다른 일을 해도 좋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른 모든 일이 그렇듯이 자선에도 재능이 있어야 한다. 선행이라는 일자리는 이미 만원이다. 게다가 나도 그 일이라면 꽤 해본 편인데,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그 일이 내 체질과 맞지 않는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사회가 내게 요구하는 선행을 하기 위해, 또는 세상을 파멸로부터 건지기 위해 나만의 소명을 의식적으로, 또 고의로 저버려서는 안 된다. 그리고 나는 어딘가 이 세상과 비슷하면서도 거의 무한대로 더 큰 어떤 불변성이 있어 현재의 세상을 지켜줄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누구라도 그 일에 소질이 있다면 막을 생각이 없다. 뿐만 아니라 내가 사양하는 이 일에 성심껏 평생을 바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렇게 될 가능성이 많지만 훗날 세상이 그 일을 나쁘다고 하더라도 결코 굴하지 마시오, 라고.
난 결코 내 경우가 특별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독자들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변명을 늘어놓을 것으로 의심치 않는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는(이웃들이 그 일을 선한 일이라고 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나는 내가 그 일에 적임자라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지만, 그 일이 어떤 것인지는 내 고용주가 찾아내야 할 것이다. 평범한 의미에서 내가 어떤 좋은 일을 하느냐는 내게는 논외의 일이며, 설혹 그것이 좋은 일이 된다 해도 그 대부분은 전적으로 내가 의도한 바가 아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좀더 가치 있는 존재가 된다든가 친절한 마음으로 선행을 하려 들지 말고 현재 있는 그 위치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대로 시작하라고들 말한다. 만약 내가 그런 엄숙한 어조로 설교를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보다는 먼저 착해지라고 말하고 싶다. 흡사 따뜻하고 자애롭던 그 빛이 점점 강해져 결국 너무 눈부시게 된 나머지 어떤 인간도 그것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는 그런 존재가 되는 게 아니라, 그와 동시에 한편으로는 궤도를 따라 세상을 돌며 선행을 하는 게 아니라(또는 새로 밝혀진 원리에 의하건대 세상이 선행을 하는 그 주위를 도는 게 아니라), 달이나 6등성에 자신의 불을 옮겨붙이고, 요정 로빈처럼 이집 저집 기웃거리면서 광인들을 미치게 만들고, 고기를 썩히고, 어둠을 어둡지 않게 만드는 태양은 없애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선행을 베풀어 자신이 신의 아들임을 입증하려 했던 파이톤이 하루 동안 태양의 전차를 타고 엉뚱한 길로 모는 바람에 하늘 아래에 있던 동네를 불태우고 지상을 그을렸으며 샘물이란 샘물은 모조리 말라붙게 만들고 거대한 사하라 사막을 만들어 결국 주피터가 벼락으로 그를 땅에 동댕이쳤고 태양은 그의 죽음을 슬퍼하여 1년 동안 빛나지 않는 일까지 일어났던 것이다.
변질된 선(善)에서 솟는 것만큼 지독한 악취도 없다. 그것은 인간에게도 신의 경우에도 한낱 썩은 고기일 뿐이다. 만약 의식적으로 내게 선을 베풀려는 계획을 품고 내 집으로 누군가 오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될 경우 나는 그의 선행이 내게 베푸는 결과, 즉 그 선이라는 것이 내 핏속에 섞일까 두려워 입과 코와 귀와 눈을 흙먼지로 가득 채워 질식하게 만드는 저 아라비아 사막의 건조하고 뜨거운 모래폭풍을 피하듯 죽을 힘을 다해 달아날 것이다. 그건 안 될 일이다. 그보다는 차라리 자연스러운 악행을 당하는 것이 낫다. 내가 굶주릴 때 먹을 것을 주고 추위에 떨 때 따뜻하게 해주고, 또는 수렁에 빠졌을 때 (정말 내가 수렁에 빠지는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끌어내 준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내게 선을 베푼 사람이 아니다. 그 정도의 일은 뉴펀들랜드 종의 개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넓은 의미에서 볼 때 자선은 인간애가 아니다. 하워드는 분명 나름대로 더할 나위 없이 친절하고 훌륭한 사람이었고 나름대로 그 보답도 받았다. 그러나 비교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가장 유복하게 살고 있을 때야말로 바로 우리에게 가장 도움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그리고 그 경우 우리를 돕지 못한다면 그런 하워드 같은 사람이 백 명이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나 또는 나와 비슷한 인간에게 진심으로 선을 베풀려고 한 자선 모임에 대해선 들어 본 적도 없다. - P85

가난한 이들에게는 설혹 그들에게는 요원한 본보기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도움을 주도록 하라. 돈을 주려면 그들에게 직접 건네지 말고 당신이 그들을 위해 그 돈을 쓰도록 하라. 우리는 종종 엉뚱한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 가난한 사람이 더럽고 남루하고 추해 보이더라도 그렇게 춥고 배고픈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은 아닌 경우가 많다. 그건 어느 정도는 그 사람의 취향이며 단순히 불운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그럴 때 그에게 돈을 준다면 그는 그 돈으로 누더기를 더 사 입을지도 모른다.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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