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왕들이 화병(火病)으로 죽었다. 숙종도 그랬고 경종, 그리고 영조의 손자인 정조도 화병에 시달렸다. 그래서 원기를 돋우는 인삼을 먹지 못했다. 인삼은 명약이나 열이 뜬 사람에게는 화(火)를 더 조장할 수 있다. 영조는 인삼을 달고 살았다고 한다. 이상곤 한의사는 영조의 체질이 소음인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그럴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후천적인 노력이 있었다. "그는 소식은 기본이고 기름진 음식과 술을 피하는 절제된 식습관을 평생 고수했다. 소화 기능이 약한 소음인 체질 때문에 자기한테 맞춤한 식습관을 실천한 것이다."이상곤, <<이상곤 낮은 한의학>>, 사이언스북스, 2011, 110쪽 - P415
정치 분쟁에서 논리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리고 공론의 정치를 이끌어가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조는 공부벌레였고 독서광이었다. 그의 실력은 경연(經筵)에서 자신이 직접 신하들을 가르칠 정도였다. 그는 자신의 앎을 최선을 다해서 정사를 펼치는 데 이용했다. 그러다 보니 관여할 것도 할 일도 너무 많았다. "정조는 일중독에 걸렸다고 할 만큼 늘 정무에 바빴다."안대회, 앞의 책, 93쪽 스스로 "나는 바빠서 눈코 뜰 새 없으니 괴롭고 괴로운 일"같은 책, 94쪽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영조가 83세까지 살았던 반면, 정조는 47세에 죽었다. 정조는 몸에 열이 많았다. - P416
화병은 울화(鬱火)병이라고도 한다. 화병이 성립되려면 울증, 즉 감정의 울체가 있어야 한다. 억울함 등의 감정이 몸속에 오래 머물면 울증이 생긴다. 그것이 열을 내면서 몸에 여러 증상들이 나타나는 것이 화병이다. 병증은 일반적으로 분노가 심해지고, 갑자기 울컥한 마음이 생기며, 얼굴에 열감이 오르고, 두통이 생기며, 목에 무언가 걸린 것 같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등의 증상으로 나타난다. 정조의 화병은 자신의 생부인 사도세자의 끔찍한 비극을 겪은 충격이 일차적인 원인이었으리라. 정조는 죽음을 앞두고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몬 자들 418이 자수를 하지 않고 있다. 내가 한 번 행동을 하면 저들이 결단 날 텐데"이상곤, 앞의 책, 116쪽라며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에 정조는 번 아웃이 되도록 열심히 일했다. 말 그대로 에너지를 다 태워 버리고 나가떨어지는 지경이 되도록 정기를 끌어올린 것이다. 이런 행동은 화기를 조장한다. 그는 스스로도 "심혈(心血)이 메말라 눈이 어두워졌다"안대회, 앞의 책, 97쪽고 판단했다. 화기는 심혈을 말린다. 심혈이 마르면 진액이 마르고 간으로 피가 저장되지 않아 눈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진액이 마르면 열은 더 심해지고 결국 기존의 울화병에 화력을 보태는 꼴이 된다. - P417
물론 이런 상황을 여러 가지 사주 이론으로 대입하여 설명할 수 있다. 신(辛)이 나란히 붙어 있다거나, 을과 신의 충이 두 개 있다거나, 421 또 묘유충을 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고, 관성의 부재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 사주가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산다고 하는 말은 우리가 가장 피해야 할 초월적 결정론이다. 연예인이 자살을 하는 사건이 벌어지면, 임상가들은 앞다투어 사주가 그래서 자살을 한 것이라고 해설을 한다. 그러나 그런 사주라고 다 자살을 선택하진 않는다. 끼워 맞출 순 있지만 원래 그렇게 정해져 있는 것처럼 말해선 안 된다. - P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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