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용신을 사용한다는 것은 개선해야 할 방향성을 가진 기운이 연운이나 대운 등 시절의 운으로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절이 찾아온 뒤에도 자기가 해야 할 실천은 없다. 다만 시절이 저절로 그렇게 해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했듯이 그것은 수동적인 용법이다. 용신을 능동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은 그 기운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이 사주의 경우 조후와 억부 모두 금과 수가 용신이므로 금수 용신을 일상에서 어떻게 구현하는가가 관건이다. 금은 원리원칙적이고 구조화에 능하며 논리적이고 절제력이 있으며 마무리에 강하다. 수는 무겁고 자폐적인 단점이 있지만 유연하고 융통성이 있으며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과 배려심을 강점으로 가지고 있다. 금과 수의 기운이 부족하다는 것은 이런 능력들이 부족하다는 것이고, 금과 수가 용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이러한 능력 379 들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러면 시절운으로 금과 수가 들어오지 않는다 해도 자신에게 부족한 금수 기운의 측면들을 평소에 극복하는 것으로 용신을 사용하면 된다. 이것이 능동적인 용신 사용법이다. 위 사주의 주인공도 평소에 맺고 끊는 것이 약하고, 우유부단하며, 사람을 깊게 이해하지 못하는 점이 있다. 주인공을 위한 처방 혹은 개운법은 위와 같은 금과 수의 측면들을 실천하는 것이다. 육친과 연결하자면, 금 식상은 명료하고 논리적인 말, 현실적인 도전과 계산된 기획, 기발하고 변칙적인 변화 등이 미덕에 해당하고, 수 재성의 미덕은 유연한 일 처리, 회사 동료에 대한 깊이 있는 배려와 원만한 대인관계 등이다. 그녀의 경우 현재 임자(壬子)대운(현 40세)으로 수 재성이 많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금 용신을 더 주목해야 하겠지만 수 재성의 미덕을 갖추지 못했다면 언제든 그것을 용신의 실천법으로 주시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 P378
소세키는 34살에 유학길에 올랐다. 그런데 그는 32세에 무술(戊戌) 대운이 온다. 무토와 술토는 그 자체로 큰 역마의 기운이 서려 있기 때문에 그가 유학을 갔을 것이라고 해석해도 된다.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무토는 임수와 충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임수와 정화의 합이 깨진다. 그렇게 되면 지지의 인목과 묘목은 지휘관을 잃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처지가 된다. 특히 인목은 일지의 신금과 충을 한다. 그 도발적 변화의 역량이 역마살이라는 기운과 만나서 런던이라는 생각지도 못했던 외지를 향해 나가게 했다. 그러나 이건 해석일 뿐이다. 그런 사주라 해서 반드시 그런 기회가 생기는 것도 아니 405 고 또 그 기회를 꼭 승낙한다고 말할 수도 없다. 만일 이때 우리가 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면 어떨까? 유학의 권유가 있었고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는 그때 우리는 자신의 사주를 들여다보았을 것이다. 만약 갈 마음이 없다면 굳이 사주를 들여다보지 않을 것이다. 변화 없는 상황에 머물러 있으려 할 때는 그런 운명론을 잘 보지 않는다. 선택을 앞두고 적극적으로 사주를 본다는 것은 가고 싶은 마음과 두려운 마음이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때는 새로운 선택을 지지하는 쪽으로 사주를 해석하면 된다. 예를 들어, "무술이 들어왔으니 거친 대지를 향해 나아가라는 뜻이군." "통근이 되지 않은 인목이 예기치 못한 지형을 향해 떠날 운명이라는 것을 지시하고 있군." 이런 식의 해석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운명에 스스로 개입할 수 있다. - P404
글쓰기 얘기가 나왔으니 이런 질문을 던져 보자. 글쓰기는 사주에서 어떤 세력으로 봐야 할까? 수업시간에 가끔 받는 질문이다. 그런데 글쓰기를 단일한 요소에 한정시킬 순 없다. 하나의 행위는 여러 세 408 력과 기운들의 인과가 섞여 있기 때문이다. 쉽게 생각하면 글을 쓴다는 것이 표현에 해당하므로 식상의 기운이라고 볼 수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글쓰기는 표현의 의지와 실천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조의 사주에서도 천간의 경금과 지지의 신금이 통근을 하고 있어서 식상의 기운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을 글쓰기의 욕망, 재능과 연결시켜도 괜찮을 듯하다. 하지만 글쓰기 작업은 이 밖의 여러 육친적 역할들이 필요하다. 글쓰기에 담긴 사유의 깊이는 인성과 관련이 있고, 글쓰기의 욕망이 출발하는 곳은 자기애의 자리인 비겁이며, 그것을 표현하고 현장에 펼쳐 놓는 것이 식상, 그리고 글을 마무리하고 책으로 출간하는 일 등은 재성이며, 그 글이 이름 모를 독자들과 만나고 세상에 회자되는 장은 관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글쓰기를 비롯한 여러 행위들은 어느 한 요소에 환원될 수 없는 힘의 네트워크 속에 혼융되어 있다. 다만 식상을 먼저 언급한 이유는 식상이 자기 안의 욕망을 표출하는 첫 현장이기 때문이다. - P407
이런 정서는 오행에서 목화토의 기운에 속한다. 금수의 기운은 냉정하고 차갑다. 수가 유연하고 부드럽긴 하나 이렇게 다정다감한 정서는 아니다. - P410
목화는 따뜻하고 순진하며 다정다감한 기운이지만 속도가 빠르고 직설적이고 화를 참지 못하고 열정적이며 바쁘고 부산하게 움직인다. - P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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