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설득을 잘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만은 아니다. 쉽게 설득당하면 시간이 지난 후 왠지 어디에 홀린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면 자신을 설득했던 사람에게 배신감까지 느낄 수 있다. 그것이 상관이 강한 사람은 늘 고독한 까닭 중 하나일 것이다. - P283

그 외에도 식상이 너무 강하면 행동보다 말이 앞서고, 과대포장을 하거나 자기주장을 고집하는 등 말로 인해 구설수에 오를 수 있고 명예가 손상될 수도 있다. 또한 말을 잘하고 싶은 욕망이 크고, 논쟁이나 말다툼에서 지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그렇다고 꼭 앞에 나서서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인 대화를 훨씬 더 선호하는데 그것은 식상이 조직과 공적인 영역인 관성을 치기 때문이다. 대중 앞에서 말하는 능력과 욕망은 관성이나 재성에 더 가깝다. - P285

욕망이 일어나기 시작할 때는 현실적인 계산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건 일종의 꿈이다. 계산은 그 다음부터 시작된다. 현실적인 조건들이 어디로 솟을지 모르는 욕망의 무질서함을 제한하게 되는 것이다. 거기가 식상의 자리다. 식상은 비겁의 욕망을 현장 안에 국한시키며 욕망의 질서를 만든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재성의 영역에 이르면 처음 가졌던 욕망의 모습은 사라지고 매우 현실적이고 유용한 결과물과 연결되어 있는 욕구만 남는다.
식상은 욕망이 욕구가 되는 전 단계에 있다. 욕망이 현장을 만나면서 조금 억압되긴 했지만 아직 욕구로 넘어가기 전이다. 이런 욕망 287 과 현장이 섞이면 독특한 식상의 창의력이 된다. 이 창의력은 현실적으로 쓸모가 많다. 비겁의 창의력은 현장이 없으므로 현실화되기 어려운 점이 있고, 재성의 창의력은 너무 속물적이고 뻔하다. 식상의 창의력은 기묘하다. 결과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현장을 벗어나지 않는다. - P286

식상은 행운의 별이다. (…) 식복 외에도, 식상이 있으면 적시에 필요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조건이 주어진다. 주로 소소한 일에 그런 행운이 찾아온다. 그것은 현장에 끝까지 집중할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 매우 꼼꼼하게 확인하고 자기의 의도가 활성화되도록 노력한다. 행운은 그냥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과정을 잘 지켜 나가고 현장에 충실하면 소소한 실수나 시행착오를 막고 자기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능력은 동시에 시야를 좁게 할 수 있다는 한계를 지닌다. 그래서 작은 일에 얽매이다가 큰 것을 놓치는 수가 있다. 행운 또한 양날의 검이다. - P287

정관은 예로부터 일간을 적절하게 제어하여 관직에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존귀한 자리로 여겼다. 왜냐면 정관은 일간과 음양이 다르다. 일간을 극하는 자리지만 음양이 다르기 때문에 간접적 자극이다. 이런 자극은 자기를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긴장감을 부여한다. 그런 자기 조절의 능력이 관직에 나갈 수 있는 힘을 기른다고 보았기 때문에 정관을 귀하게 여긴 것이다. 그래서 정관을 바로 상하게 하는 기운인 상관을 흉하게 보았다. 상대적으로 식신은 편관을 극하니 길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편관은 일간과 음양이 같으므로 일간을 직접적으로 극한다. 극한 시련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편관을 칠살(七殺)이라고 칭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런 흉한 기운을 극해 주니까 식신은 길한 것이 된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길흉의 관점을 조금만 달리하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편관 같은 강한 자극은 존재의 전투력을 상승시킨다. 이 전 289 투력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용기와 힘이기도 하다. 그래서 편관을 그렇게 흉하게 볼 필요가 없다. 따라서 상관을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 물론 상관은 정관을 극하기 때문에 방만하고 반항적인 기질의 경향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길흉의 관점을 넘어서 해석해야 한다. (…) 그렇다면 식신 또한 길한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도 없다. 행운이 잘 따르는 식신의 무탈하고 원만한 운명은 작은 억압적 요소와 시련에도 큰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있다. 그러니 식신도 길한 것만은 아니다. -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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