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컨대 일간이 화인데 나머지 자리에도 화가 많다는 건 일단 자신의 ‘명주’에 해당하는 기운이 강하다는 뜻이 되지만 일간이 수인데 화가 많다면 이 사람은 자신의 명주인 수기운이 화기운에 의해 잠식당한다는 뜻이 된다. 이렇듯, 화가 많다는 사실은 동일하지만 그것이 내 운에서 작용하는 방식은 정반대인 셈이다. - P85

강밀도를 파악할 때 유념해야 할 것은 일곱 개 카드 사이의 파워와 진동수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다. 가장 막강한 힘을 가진 것은 월지와 시지다. 월지는 내가 태어난 계절을 보는 것이다. 봄·여름·가을·겨울 가운데 언제 태어났는가, 더 구체적으로는 24절기 가운데 어떤 절기에 태어났는가가 가장 중요하다. 이미 언급했듯이, 태양이 황도 몇 도를 지나고 있는가, 그때 지구에 보내는 빛과 열의 강도가 얼마인가가 관건이다. 그것이 일간이 놓인 시공간적 조건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예로 봄의 을목과 겨울의 을목, 다시 말해 봄에 피어나는 들풀과 겨울의 나목은 분위기가 완전히 딴판이다. 거기에 덧붙여지는 게 시지다. 하루 중 언제인가. 겨울 밤인가 아침인가 여름 한낮인가 새벽인가. 또 다른 예로 일간이 병화와 정화인데, 한여름 대낮에 태어났다면? 생각만 해도 후끈거린다. 당연히 온몸이 불구덩이다. 외모에서 풍기는 포스도 강렬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자연의 잔칫상에는 거저가 없다고, 이런 사주의 경우 물이 현저하게 모자랄 테니, 뼈나 치아가 부실할 수밖에 없다. 뼈를 만드는 건 신장이고, 신장은 오행상 수기운이 주관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병화와 정화라고 해도 겨울 새벽에 태어났다면 사정이 전혀 다르다. 물기운을 충분히 받기 때문에 대체로 단단하고 야무진 편이다. 또 이 시절의 불은 어둠을 밝히고 추위를 덥히는 역할을 톡톡히 할 터이니 존재 자체가 영롱하다(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자신의 팔자를 제대로 살고 있지 못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월지와 시지만 가지고도 수많은 유추가 가능하다. - P88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팔자의 지도, 그 의미를 읽어 내는 첫 번째 91 코드는 오장육부다. 목은 간담, 화는 심소장, 토는 비위, 금은 폐대장, 수는 신방광 등으로 연동되어 있다. 따라서 팔자의 배치는 곧바로 내 안의 오장육부의 흐름을 반영한다. 따라서 사주명리학이 주는 첫 번째 메시지는 나를 움직이는 생리기전이다.
초보자들도 이 정도의 사항은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잘 모르면 지금 바로 외우시라! 얼마나 쉬운가?) 운명은 어디까지나 몸을 통해 자신의 비의를 드러낸다. 그래서 운명을 바꾸려면 몸의 습속을 바꾸어야 한다. 주기적으로, 습관적으로 앓는 질병들, 얼굴의 형태, 몸의 구조, 생리적 기전을 알면 이제 기질이나 개성도 드러난다. 기질의 핵심은 사건을 대하는 태도와 심리적 회로에 있다. 심리기전 또한 생리적 오행과 연동되어 있다. 예컨대, 목(간담)은 분노, 화(심/소장)는 기쁨, 토(비위)는 생각, 금(폐/대장)은 슬픔, 수(신장/방광)는 두려움의 정서를 담당한다. 그래서 해당 장기에 문제가 있으면 감정의 균형이 깨어지게 마련이다. 예를 들면, 간담의 목기운이 태과불급이면 분노의 감정에 쉽게 휘둘리게 되고, 심소장의 화기운에 문제가 있으면 기쁨의 정서가 조절이 안 된다. 그래서 기뻐했다 슬퍼했다를 반복하게 된다. 비위의 토기운에 불균형이 생기면 쓸데없는 망상이 멈추질 않는다. 신경성 위장병이 많은 건 이 때문이다. 폐대장의 금기운에 균 92 열이 있으면 슬픔에 쉽게 노출된다. 작은 일에도 우울증에 걸리기 십상이다. 또 폐는 호흡과 피부를 주관하기 때문에 아토피나 비염 등도 폐기와 깊은 관련이 있다. 신장·방광의 수기운에 문제가 있으면 늘상 불안에 시달리게 된다. 모든 사건을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습관에 빠질 수도 있다. 감정은 곧 물질적 대사로 연결된다. 감정의 흐름이 깨져도 장부에 병이 생기고, 거꾸로 장부에 문제가 있어도 감정의 자연스러운 리듬이 깨지게 된다. 두려움이나 슬픔 같은 정서만이 아니라, 기쁨과 즐거움 역시 마찬가지다. ‘좋아 죽는다’는 말은 결코 허언이 아니다. 특히 요즘처럼 과도한 볼거리와 이벤트 만능 시대에는 빠른 비트의 춤과 노래에 노출되는 청소년들이 아주 많다. 당연히 심장기능에 항진이 올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갑상선 항진증, 공황장애, ADHD 등의 질병은 지난 10여 년간 과도하게 화기를 부추긴 결과라는 점에서 일종의 시대적 돌림병에 해당한다. 요약해 보면, "자꾸 화를 내면 간장과 쓸개가 병들고, 지나친 쾌락에 빠지면 심장과 소장에 병이 생긴다. 또한 지나친 걱정은 비장과 위장을 병들게 하고, 커다란 슬픔은 폐와 대장에, 섬뜩한 공포는 신장과 방광의 병을 만든다."(허훈, 『마음은 몸으로 말한다』, 63~64쪽) - P90

덧붙이면, 네 개의 기둥을 따로따로 파악하는 방법도 있다. (오른쪽부터) 순서대로 초년·청년·중년·노년 순서로 읽기도 하고, 초년은 조상의 운, 청년은 부모의 운, 중년은 배우자의 운, 노년은 자식의 운, 이런 식으로 생로병사를 읽어 내기도 한다. 한편, 천간 따로 지지 따로 분리해서 전자는 존재가 지향하는 가치와 욕망의 흐름으로, 후자는 존재가 부닥치는 구체적인 삶의 현장이라고 보기도 한다. 예를 94 들어 천간에 재성이 있는 것과 지지에 재성이 있는 것은 전혀 다르게 작동한다. 전자는 재물을 향한 지향이 있다는 의미이고(물론 그래서 재물과의 인연이 깊을 수 있다), 후자는 나의 지향과는 무관하게 삶의 구체적 현장이 재물운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수많은 방식의 독법이 가능하다. 팔자의 동그라미에는 작용과 반작용의 파노라마가 무궁무진한 까닭이다. - P93

첫 번째 근거. 누구든 여덟 개의 카드뿐이라는 사실. 왕후장상이건 농민이건 브라만이건 수드라건 혹은 그 누구건 여덟 개 이상의 카드를 가질 수는 없다. 현실을 보면 슈퍼맨이나 영웅 혹은 대자본가가 있지만 운명의 차원에선 그들 역시 ‘팔자’ 그 이상을 누릴 수 없다. 만약 그들의 부와 권력이 타고난 것이라면 대신 다른 것들을 포기해야만 한다. 세상을 온통 애플로 만들어 버린 스티브 잡스, 그의 재산은 8조 달러쯤 된다고 한다. 우리 시대에 부와 명예에 있어 그를 따라갈 자는 없다. 세계 최고의 부자이면서 동시에 정신적 구루 역할을 했던 존재. 하지만 그도 결국 2011년 가을 췌장암으로 길지 않은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의 재산도, 그의 명예도, 그의 탁월한 상상력도 이 병과 죽음 앞에선 그저 무력할 따름이다. 또 전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마이클 잭슨. 마이클 잭슨만큼 성공한 가수가 세상에 또 있을까. 하지만 그는 성형중독으로 평생 자신의 몸을 학대했고,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 결국 약물중독으로 죽음에 이르렀다. 그래서 결국 모든 인생이 다 허무하다……는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스티브 잡스와 마이클 잭슨, 그들이 지닌 능력과 질병은 분리될 수 없음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능력만 얻고 질병은 버리면 될 것 같지만 운명의 세계에서 그런 편법은 통하지 않는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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