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5-6 자연은 유기체 기능의 90% 정도까지가 자동적 순환운동원리에 따라 최소의 에너지 소비로 가동될 수 있게 하였다. 그 덕택에 절약된 에너지의 최대량을 자연 스스로가 새로이 전진하는 길을 모색하는 데 쓸 수 있는 인간의 기능 중 나머지 10%의 기능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사실 자연의 유기체도 인간 사회와 마찬가지로 창조적인 소수 ‘성원‘과 비창조적인 다수 ‘성원‘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 P345

346-7 그런데 자연과 인간이 만든 기계의 승리를 신이 나서 찬미하면서도, 그 밖에 ‘기계 제품‘이라든지 ‘기계적 행동‘이라는 냉소적인 표현이 나돌고 있는 것은, 각각의 표현에 있어서 기계라는 말의 의미는, 위의 경우와 정반대로서 생명의 물질에 대한 승리가 아니고 정반대로 물질의 생명에 대한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 불안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기계는 인간의 노예가 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인간이 자기가 만든 기계의 노예가 되는 수도 있다. 90% 기계화되어 있는 산 유기체는 50%밖에 기계화되어 있지 않은 산 유기체보다도 창조성을 발휘하는 기회나 능력이 크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식사를 자신이 조리할 필요가 없으면 그 만큼 우주의 비밀을 발견하기 위한 시간과 기회가 많아지는 것과 같다. 그러나 100% 기계화한 유기체는 벌써 로봇이다.
이처럼 인간의 사회적 관계에서 기계화 수단인 모방 능력을 이용하는 가운데 파국의 위험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정적인 사회에서 환기되는 것보다 다이내믹한 운동을 하고 있는 사회에서 환기된 경우에 파국의 위험이 더 큰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모방의 약점은 그것이 밖으로부터의 시사에 대한 기계적인 반응이기 때문에, 행위자의 자발적 의사에 의해서는 결코 행해지지 않는 행위라는 점에 있다. 즉 모방에 의한 행위는 자기 결정에 의한 것은 아니다. 모방의 능력이 어떠한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을 현재 음지 상태에 있는 미개 사회의 습성 또는 관습의 형태이다. 그러나 ‘관습의 껍질‘이 깨어지면 그때까지 뒤를 향해 불변의 사회적 전통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 장로나 조상에게로 향해졌던 모방 능력이 방향을 바꿔 동아리를 저 앞의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려 하고 있는 창조적 인격에게로 향해진다. 그와 동시에 성장하는 사회는 위험한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위험은 항상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상태에 있다. 왜냐하면 성장 유지에 필요한 조건은 끊임없는 유연성과 자발성이지만, 이에 반해 성장의 전제 조건인 효과적인 모방에 필요한 조건은 상당 부분에 있어 기계적 자동성이기 때문이다. 월터 배저트가 그 나름의 경귀를 써서 영국인 독자를 향해 영국이 위대한 국가로 성공한 것은 그들이 ‘바보‘였던 덕분이라고 말했을 때, 이것은 그의 염두에 있었던 생각이었다. 영국인이 성공한 것은 지도자가 훌륭했기 때문인가? 그렇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이 온갖 사물을 자기 혼자 생각하고 결심을 했다고 가정하면 좋은 지도자는 좋은 추종자를 얻을 수가 없었을 것이리라. 그러나 전부가 ‘바보‘라면 도대체 누가 지도자가 된단 말인가? 사실 문명의 선두에 서서 모방의 기구를 이용하는 창조적 인격은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양면에 걸쳐 실패의 위험을 안고 있다. - P346

347 그러나 보통 이 소극적인 실패로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지도자가 지도할 능력을 잃으면 그들이 가진 권력은 남용된다. 병졸은 반항하고 사관은 힘으로써 질서를 회복하려 든다. 하프를 잃어버렸거나 아니면 하프의 주법을 잊어버린 오르페우스는 이제 크세르크세스의 매를 휘두르며 주위 사방을 후려친다. 결과는 눈으로 볼 수 없는 대혼란으로 부대의 형태는 완전히 무너지고 수습할 수 없는 지리멸렬 상태에 빠진다. 이것은 적극적인 실패이다. 우리는 이때까지 재삼 그것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 왔다.
즉 쇠퇴한 문명의 ‘해체‘가 바로 그것이며, 문명의 해체는 ‘지배적 소수자‘로 타락한 일단의 지도자로부터 ‘프롤레타리아의 이탈‘ 형태를 취해서 나타난다.
지도자로부터 추종자들이 떠나는 현상을 사회를 구성하는 상호간의 부분적 조화 상실로 보아도 좋다. 어떠한 전체에 있어서나 부분적으로나 상호간의 조화가 흔들리면, 그 대상 전체가 자기결정의 능력을 잃는다. 이 자기결정 능력의 상실이야말로 쇠퇴의 궁극적 판별 기준이다. 그리고 이 결론은 앞서 이 연구에서 도달한 자기결정 능력의 증대가 성장의 기준이라는 결론의 번복임을 알면 의외라 할 것도 없다. - P347

348-50 적응·혁명·사회악 / 서유럽 민주주의 -> 유교 사상 종언이 신속히 이루어져야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제도 사이의 부조화 중 한 가지 원천은 기존의 제도가 기존의 사회를 짊어질 수 없도록 새로운 사회적 세력ㅡ새로운 능력과 감정과 사상ㅡ이 도입되는 것이다. 이 새로운 것과 낡은 것과의 조화되지 않는 병치가 가져오는 파괴적인 결과는 예수의 가장 유명한 말 속에 지적되어 있다.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며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마태> 9:16-17)

이 비유의 근본적 본보기인 가정 경제에서는 물론 그 가르침을 문자대로 실행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는 포도주를 넣는 가죽 부대나 옷처럼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많은 인간이 활동하는 장소인 공통의 기반이기 때문에 인간이 합리적 계획에 의거하여 마음대로 생활을 정리하는 능려이 매우 제한된다.
물론 이상적으로는 새로운 역동적인 힘의 도입과 함께 현존하는 제도 전체가 개조되어야 함이 마땅하겠지만, 현재 성장하는 사회에서는 언제나 심히 시대착오적인 것이 재조정된다. 그러나 어느 시대에든 사람의 타성 작용 때문에 사회악이 날로 커가고 한편으로 사회 구조를 구성하는 대부분은 늘 부딪치는 새로운 세력과의 부조화가 더욱 더 커짐에도 불구하고 현상대로 머물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 때 새로운 세력은 동시에 두 개의 전혀 상반되는 방법으로 작용한다.
한편으로 새로운 힘은 스스로 설립한 새로운 제도나 자기 목적에 맞도록 개조한 낡은 제도를 통해 창조적인 일을 행한다. 그리고 그런 낡은 제도와 조화된 노선으로 흘러들어감으로써 사회의 복지를 증진시킨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들은 자기 길 위에 놓인 것이면 어떤 제도든 무차별하게 비집고 들어간다. 마치 기관실 안에 침입한 강력한 증기압이 거기 장치되어 있는 어떤 낡은 기관의 엔진을 움직여 돌아가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 때 2개의 재액 중 어느 한 쪽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새로운 증기압이 낡은 기관을 산산조각으로 박살을 내거나, 아니면 기관이 이러저럭 견뎌 내면서 불안 상태로부터 파괴적인 새 방법으로 움직이기 시작하거나 둘 중 어느 하나다.
이상의 증기기관의 비유를 사회 생활에 적용시키면 새로운 압력에 견딜 수 없는 낡은 엔진의 폭발ㅡ또는 새 포도주의 발효에 견디지 못한 낡은 가죽 부대의 파열ㅡ에 해당하는 것은 가끔 시대착으의 제도를 습격하는 혁명이다. 한편 본래의 목적과 전혀 다른 움직임을 하는 동안의 긴장을 견딘 낡은 기관의 유해한 작용에 해당하는 것은 ‘끝까지 저항을 계속하는‘ 제도상의 아나크로니즘(시대착오)이 흔히 만들어 내는 범죄적 사회악이다.
혁명이란, 지연되었기 때문에 그만큼 격렬한 모방 행위로 정의할 수가 있다. 모방은 혁명의 본질적 요소이다. 모든 혁명이 이미 어딘가 다른 곳에서 일어난 사건과 관계를 가지고 있다. 혁명을 그 역사적 배경 속에서 조사해 보면, 언제나 그 전에 작용한 외부의 힘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지 결코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 아님이 판명된다.
그 명백한 예는 1789년의 프랑스 혁명이다. 프랑스 혁명은 두 사건의 영향을 받아 일어났는데, 하나는 그 직전에 영국령 아메리카에서 일어난 사건ㅡ실로 자살적인 행위라고 말할 수밖에 없지만, 구체제의 프랑스 정부는 이 사건을 지원했다ㅡ에서, 또 하나는 1세기 전에 영국이 이룩한 업적을 몽테스키외 이래 2세기에 걸친 프랑스의 ‘철학자들‘에 의해 통속화되고 찬미되어 끌어왔다.
지연 또한 마찬가지로 혁명에 본질적 요소이며, 그것에 의해 혁명의 가장 현저한 특징인 폭력적 성격이 설명된다. 혁명이 폭력적이 되는 것은 상당히 끈질긴 구제도가 한동안 새로운 생명의 표현을 방해하고 억누름으로써 낡은 제도의 수명이 끈질기게 연기되었기 때문이며, 낡은 제도에 눌려 있던 새 사회적 세력이 그만큼 강력하게 승리하였기 때문이다. 방해가 오래 계속되면 될 수록 출구가 막혀 있는 외형 압력은 커진다. 그리고 압력이 커짐에 따라 갇혀 있던 힘이 마침내 장해를 돌파할 때의 폭발이 맹렬해진다.
혁명 대신에 나타나는 사회악은 한 사회가 낡은 제도를 새로운 사회적 세력에 조화시켜야 할 모방의 행위를 지연시켰을 뿐 아니라, 좌절시켰을 때 사회가 입어야 하는 형벌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어느 사회에서 기존의 제도적 구조가 새로운 사회적 세력의 도전을 받았을 경우에, 기존 구조의 힘에 조화가 된 새로운 조정, 혁명(즉 지연된 부조화의 조정), 범죄적인 사회악이라는 세 가지 결과의 어느 한 가지가 일어날 것은 명백하다.
또한 세 가지 결과 중 각각 또는 그 모두가 동일한 사회의 다른 부분, 이를테면 그 사회가 민족 국가로 분절되어 있는 경우에 다른 민족 국가로서 실현되는 일이 있다는 것도 또한 명백하다. 조화된 조정이 우세하면 그 사회는 성장을 계속한다. 혁명이 우세하면 그 사회의 성장은 차차 위험해진다. 범죄적 사회악이 우세하면 쇠퇴기로 진단해도 무방하다. 방금 제기한 공식을 입증하는 몇 개의 예를 들어보기로 한다. - P348

352-4 민주주의와 산업주의가 전쟁에 끼친 영향
산업주의의 영향으로 인해 노예 제도의 비참함이 증대된 것과 마찬가지로 전쟁의 참혹성이 증대됐다는 것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전쟁은 노예 제도가 그러했던 것과 거의 같은 정도의 도덕적 이유로 널리 일반적으로 비난받는 또 하나의 오랜 시대착오적인 제도이다. 엄밀히 지적한 이유로 인해 전쟁은 또 다시 노예 제도와 마찬가지로 이익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도 ‘수지 맞지 않는‘ 일이라고 주장하는 견해가 널리 퍼져 있다.
미국 남북 전쟁 직전에 H.R. 헬퍼라는 남부인이 「절박한 남부의 위기」라고 제목을 붙인 저서를 내서 노예 제도는 노예 소유자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했지만, 상식을 벗어난 일인데도 쉽게 설명을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으로 인해 진정한 이익에 눈뜨려고 하는 계급의 비난을 받았다. 그것과 똑같이 1914~1918년까지의 제1차 세계대전 직전에 노먼 엔젤(1933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 「유럽의 낙관적 착각」이라는 책에서 피력한 바로는, 전쟁이란 패자는 말할 것도 없고 승자에게도 전적으로 손해라는 것을 증명했지만, 평화 유지에 열렬했던 이 이단설의 저자는 마찬가지로 열렬한, 많은 독자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의 사회는 노예 제도의 폐지에는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에는 순조로운 성과를 거둘 수가 없는가? 대답은 분명하다. 전쟁의 경우에는 노예 제도의 경우와 다른, 민주주의와 산업주의라는 2개의 추진력이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산업주의와 민주주의가 출현하기 직전의 서유럽 세계 상태를 회고하면, 그것은 18세기 중엽의 일이지만 당시 전쟁은 노예 제도와 거의 같은 상태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전쟁은 분명히 내리막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전쟁의 횟수가 줄었다는 것이 아니라ㅡ통계적으로 증명하려 하면 안 될 것도 없지만ㅡ이전보다 조심성 있는 방법으로 이루어졌다는 의미이다. 18세기 서유럽 합리주의자들은 전쟁이 종교적 파나티시즘(광신주의적 경향)에 쫓겨 무섭고 격렬했던 가까운 과거를 혐오감을 가지고 돌아보았다. 이 종교적 열광이라는 악마는 17세기 후반에 쫓겨났고, 그 직접적 효과로서 전쟁이라는 해악이 서유럽 사회 역사 그 이전, 또는 이후의 어느 시기에도 결코 악에 가까워진 일이 없을 만큼 최소한으로 억제되었다. 비교적 ‘개화된 시대‘도 18세기 말에 끝을 고하고, 전쟁은 민주주의와 산업주의의 영향으로 다시 한 번 가열되어 끝이 나 버렸다.
지난 150년 간에 걸친 격렬한 전쟁 끝에, 두 개의 힘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가 하고 물으면, 아마도 첫쨰로 산업주의 쪽이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이다. 지금 여기서 문제삼고 있는 의미에서, 최초의 근대전쟁은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시작된 일련의 전쟁이었으며 이들 전쟁에 가해진 산업주의의 힘은 보잘것없는 것이며 민주주의의 즉 프랑스 혁명적 민주주의가 가한 힘이 가장 컸다.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던 대륙 제국의 18세기적 구식 방비를 마치 칼로 버터를 자르듯 힘 안 들이고 돌파하여 유럽 전체에 프랑스 군을 진출시킨 것은 혁명적 광포로서, 나폴레옹의 군사적 천재라기 보다는 차라리 새로운 프랑스 군대의 혁명적 열광이었다. 만약에 이 주장을 지지하는 증거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경험이 없는 프랑스 소집 군대가, 나폴레옹 등장 이전의 루이 14세의 직업 군대가 해내지 못한 난사업을 해낸 사실에서 알 수 있다.
또한 로마나 아시리아, 기타 옛날의 고도로 발달한 군국주의적 열강들이 기계화된 장비의 도움을 받지 않고, 소련 병사가 보아도 매우 유치하게 보이는 16세기의 화승총을 써서 문명을 파괴시켰던 일을 생각해도 좋다.
그 전후의 시대에 비해 그 잔학성의 정도가 적었던 근본적 이유는 전쟁이 종교적 광신주의 무기에서 벗어났으나 아직 민족주의적 광신주의에 의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과도기의 전쟁은 단순히 ‘왕들의 유희‘였다. 도덕적으로는 그러한 경박한 목적에 전쟁을 이용하는 것이 한층 더 고약한 일인지도 모르나 전쟁의 물적 참화를 경감하는 효과가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전쟁놀이를 하는 국왕들은 국민이 그들에게 허용하는 한도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한도 내에서 수행하도록 유의하였다. 그들의 군대는 징병 제도에 의해 모아진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종교 전쟁 떄의 군대처럼 점령한 나라를 황폐하게 하지도 않았고, 또한 20세기의 군대처럼 평화 시대에 만들어진 시설을 모조리 말살하는 따위의 일도 없었다. 그들은 군사적 게임의 규율을 지켰고 설정한 목적은 온당했으며, 패배한 적에게 재기 불능의 조건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드물지만 어쩌다 이러한 판례가 깨어진 경우ㅡ이를테면 루이 14세가 1674년과 1686년에 파르쯔 지방을 황폐화시킨 경우ㅡ 그러한 잔학 행위는 피해자 뿐 아니라 중립국의 여론으로부터 맹렬한 비난을 받았다.
에드워드 기번은 이러한 사건을 고전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유럽 제국의 무력이 행사되는 전쟁은, 적절한 승패가 결정적으로 정해지지 않을 때 일어난다. 세력의 균형 상태를 위한 동요는 앞으로도 역시 계속될 것이므로, 영국이나 이웃나라의 번영에 상승과 하강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러한 부분적인 사건은 행복한 상태를 근본적으로 다치게 하지는 못한다. 유럽 인과 그 식민지 개척자들은 다른 종족보다 우수한 존재로 구별하는 예술·법률·풍속의 체계를 본질적으로 해칠 수는 없다."

이 참을 수 없을 만큼 낙천적인 구절을 쓴 기번은 그 만년에 가서 그의 판단을 무색하게 만드는 새로운 전쟁이 연이어 일어남으로써 충격을 받았다.
마치 산업주의의 힘에 의해 노예 제도가 강화됨으로써 노예 제도 폐지 운동이 일어났듯이, 민주주의의 힘ㅡ뒤엔 물론 산업주의의 힘이 가해지지만ㅡ에 의한 전쟁의 격화는 반전 운동을 불러일으켰다. 1914~18년의 제1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뒤 이 운동 최초의 구체적 표현으로서 탄생한 국제연맹도 세계가 다시 1939~45년의 대전을 경험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 거듭된 고난을 치루고 우리는 이제 겨우 단 하나 살아남은 어떤 강국이 완력으로 세계 국가를 수립하는 형태ㅡ그것은 너무 지겹고 또 너무 늦다ㅡ 대신에 협력적인 세계 정치 체제에 의해 전쟁을 폐지한다는 어려운 사업을 시험하는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 우리가 우리의 세계에서 아직껏 다른 어떤 문명도 달성하지 못했던 이 일을 다행히 달성할 수 있을지는 신만이 아는 바이다. - P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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