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지금까지 그 누구도 원시 지구의 기체와 물을 시험관에 함께 넣어 각종 반응을 겪게 한 다음, 거기에서 무엇인가 꼬물거리는 것이 기어나오게 한 적은 한번도 없다. 지금까지 알려진 생물 중에서 가장 작다는 바이로이드만 하더라도, 1만 개 정도의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 P95
97-8 우리의 눈높이를 분자 수준의 화학 반응에 맞춘다면 외계의 생명 현상도 지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외계와 지구 생물의 모습마저 서로 비슷하다고 기대하지는 말자. 지구라는 비교적 제한된 환경이 갖고 있는 동질성과 생명 현상을 지배하는 분자생물학의 유일성에도 불구하고 지구에 사는 생물들은 엄청난 다양성을 자랑한다. 지구라는 행성 하나에서의 상황이 이러할진대, 하물며 태양계를 벗어난 세계의 종과 형태에 따른 다양성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외계 가축과 채소는 우리에게 익숙한 지구의 그것들과는 근본에서부터 큰 차이를 드러낼 것이다. 주어진 환경 조건에 대한 최상의 해결책은 늘 하나밖에 없을 터이므로, 모종의 수렴성은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예를 들어 가시광선 파장 대역의 빛을 이용해 사물을 보는 존재들은 두 방향에서 시야를 확보해야 거리를 측정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의 눈도 두 개일 것이다. 그러나 진화의 긴 역사에서 볼 수 있었던 무작위성의 위력을 감안한다면 외계 생물들은 그 됨됨이로 우리에게 엄청난 충격을 줄 것임에 틀림이 없다. - P97
106-7 만일 누군가가 절대 불변의 행성에 살고 있다면, 그가 할 일은 정말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아예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세계에서는 과학하려는 마음이 일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또 하나 극단인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다. 변화가 지극히 무작위적이거나 지나치게 복잡해서 생각해 봤자 별수 없는 처지라면, 그런 세상 역시 과학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 두 극단의 중간 어디쯤엔가 있다. 사물의 변화가 있되 그 변화는 어떤 패턴이나 규칙을 따른다. 흔히들 만물의 변화는 자연의 법칙을 따른다고 한다. 허공에 집어 던진 막대기는 반드시 땅으로 다시 떨어지고, 서쪽 지평선 아래로 진 해는 반드시 이튿날 아침 동쪽 하늘에 다시 떠오른다. 세상에는 우리가 생각해 보면 알아낼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이 가능하고, 과학이 밝혀낸 지식을 이용하여 우리는 우리의 삶을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세상을 파악할 줄 아는 지혜를 갖고 있다. 애초부터 인간은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의 배후를 의식하며 살아왔다. 인류가 사냥을 하고 불을 피울 수 있었던 것도 무언가를 생각해 보고 알아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류에게는 텔레비전, 영화, 라디오, 하다못해 책마저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인류는 지난날의 거의 대부분을 이런 상태로 보냈다. 우리 조상들은 달 없는 밤, 활활 타오르던 모닥불이 사그라져 깜부기불이 되면 그 주위에 앉아서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 P106
123 마르틴 루터가 코페르니쿠스를 두고 한 이야기는 지금 읽어도 재미가 있다. 그는 코페르니쿠스를 가리켜 "벼락 출세한 점성술사"라고 일컬었다. 한발 더 나아가 그는 코페르니쿠스를 겨냥해서, "이 바보가 천문학이라는 과학을 통째로 뒤엎어 놓으려 한다. 그러나 성서에 분명히 쓰여 있듯이, 여호수아가 멈춰라 하고 명한 것은 태양이지 지구가 아니다."라고까지 했다. - P123
132 로마 가톨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수입의 1할을 벌금으로 물어야 하거나 그라츠에서 추방당해야 했다. 케플러는 추방을 택했다. 그러면서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남겼다. "나는 위선을 행하라고 배운 적이 없다. 나의 신앙은 진지한 것이다. 나의 신앙이 농락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 P132
132-3 케플러의 결혼 생활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부인은 지병이 있는 데다 얼마 전에 두 아이를 잃은 상태였다. 케플러에 따르면 그녀는 "바보 같고 부루퉁하고 외톨이고 침울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남편이 하는 일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리 높은 계급의 출신은 아니었어도 시골의 상류층 집안에서 자란 여자라 남편의 가난한 직업을 몹시 경멸했다. 케플러는 또 케플러 나름대로 그녀를 나무라고는 했다. 그것과 관련해서 케플러는 이런 글을 남겼다. "나는 연구에 몰두하다가 깜빡 잊고 그녀를 또 꾸짖고는 했다. 그러나 과거 경험이 이제는 약이 되어 나는 그녀를 결코 다그치지 않는다. 그녀가 내 말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그 이상 나무라기보다 내 손가락을 깨무는 편이 더 낫다." - P132
133 튀코 브라헤는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황금으로 만든 가짜 코를 달고 멋을 부렸는데, 진짜 코는 학창 시절 누가 수학을 더 잘하는가를 놓고 펜싱으로 결투를 하다가 잃었다고 했다. - P133
134-5 튀코 브라헤는 로젠버그 남작이 베푼 만찬에서 포도주를 너무 많이 마신 뒤, "자신의 건강을 염려하기보다 예의를 차리느라" 남작 앞을 잠시도 뜨지 못하고 급한 용무를 지나치게 오랫동안 참다가 방광염에 걸렸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얻은 방광염은 음식과 음주를 자제하라는 충고를 고집스레 듣지 않는 바람에 더 악화됐다. 그러나 튀코 브라헤는 숨을 거두기 전에 자신의 관측 자료를 케플러에게 물려준다고 유언했다. 그리고 "마지막 밤은 가벼운 혼수상태에서 시를 짓는 사람처럼 다음의 독백을 되풀이했다. ‘내 삶이 헛되지 않게 하소서. 내가 헛된 삶을 살았다고 하지 않게 하소서!‘" - P134
137 기원전 6세기의 피타고라스로부터 플라톤, 프톨레마이오스 그리고 케플러 이전까지 살던 기독교 세계의 천문학자들은 모두 원이 ‘완벽‘한 기하학적 도형이므로, 행성들은 마땅히 원 궤도를 따라 돌아야 한다고 믿었다. 행성들은 하늘 높이 자리 잡고 있어, 이 땅의 ‘부패‘로부터 거리가 먼, 역시 또 다른 의미의 신비와 ‘완벽‘을 겸비한 존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갈릴레오, 튀코 브라헤, 코페르니쿠스도 행성이 운동하는 길은 원이라고 못박아 두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원형이 아닌 궤도는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라고까지 단언했는데, 왜냐하면 "최상의 모습으로 창조된 신의 피조물을 감히 불완전하다고 여길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케플러도 지구와 화성이 태양 주위를 원 궤도를 따라 돈다고 간주하고 튀코 브라헤의 관측 결과를 이해하고자 고심했던 것이다. - P137
138-9 원 궤도와 실제 궤도를 분간하는 일은 우선 측정값이 정확해야 가능했고 비록 자신의 이론과 일치하지 않더라도 그 측정값을 과감하게 수용하는 용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어디나 조화로운 비율이 장식처럼 박혀 빛나는 이 우주이지만, 그러한 조화의 비율도 경험적 사실에 반드시 부합해야 한다." 케플러는 여기서 원 궤도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신성한 기하학에 대한 그의 신앙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는 영혼에 가해진 충격을 감수해야만 했다. 케플러는, 천문학이라는 마구간에서 원형과 나선형을 쓸어 치우자, "손수레 한가득 말똥"만 남았다고 했다. 원을 길게 늘인 달걀의 모습(타원)을 그는 이렇게 말똥에 비유했던 것이다. 결국 케플러는 원에 대한 동경이 하나의 환상이었음을 깨달았다. 지구도 코페르니쿠스가 말한 대로 과연 하나의 행성이었다. 그리고 케플러가 보기에 지구는, 전쟁, 질병, 굶주림과 온갖 불행으로 망가진, 확실히 완벽과는 아주 먼 존재였다. 이런 지구를 완벽하다고 믿었다면 나머지 행성들도 완벽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 그는 다른 행성들에 대해서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케플러는 고대 이래 행성이 지구처럼 불완전한 것들로 구성된 물체라고 이야기한 몇 안 되는 인물들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만일 행성이 ‘불완전‘하다면, 그 궤도 역시 불완전하지 않겠는가? 케플러는 달걀 모양 곡선을 여럿 시험해 보았다. 열심히 계산해 내려가다 산술적 실수를 하기도 하고 (그래서 옳은 답인데 틀린 것으로 여겨 버렸고) 몇 달 뒤에 자포자기 심정으로 타원의 공식을 이용하여 분석을 다시 시도했다. 그 공식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 페르가의 아폴로니우스가 처음 만들어 낸 식이었다. 결과는 튀코 브라헤의 관측값과 완전히 일치했다. "자연의 진리가, 나의 거부로 쫓겨났었지만, 인정을 받고자 겉모습을 바꾸고 슬그머니 뒷문으로 들어왔으니...... 아, 나야말로 참으로 멍청이였구나!" - P138
147 구교도와 신교도 양편 모두 입으로는 성스러운 전쟁이라고 떠들어댔지만, 실은 영토와 권력에 주렸던 이들이 종교의 광신적 측면을 자신들의 목적에 이용했을 뿐이다.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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