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화성의 하늘이 우리에게 익숙한 푸른색이 아니라 연분홍색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 P23
25 과학을 이해하느냐 못하느냐가 우리의 생존 여부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과학은 본질적으로 재미있는 것이다. 인류가 자연에 대한 이해에서 기쁨을 얻을 수 있도록 진화해 왔기 때문이다. 자연을 좀 더 잘 이해한 자들이 생존에 그만큼 더 유리하다. 그런 의미에서 ‘코스모스‘의 텔레비전 시리즈와 이 책은 하나의 실험인 셈이다. - P25
27 과학도 인간의 여타 문화 활동과 마찬가지로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총체적 관점에서 조명하고 논의해야 한다. 과학과 과학 이외의 문화 활동이 서로 격리돼서 성립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학의 발달 경로가 어떤 시기에는 다른 분야의 발달 경로와 살짝 스치기도 하고, 떄로는 정면 충돌하기도 한다.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그리고 철학적 문제와의 관계가 특히 그러했다. - P27
39-40 지구는 우주에서 결코 유일무이한 장소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우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아주 전형적인 곳은 더더욱 아니다. 행성이나 별이나 은하를 전형적인 곳이라 할 수 없는 까닭은 코스모스의 대부분이 텅 빈 공간이기 때문이다. 코스모스에서 일반적인 곳이라 할 만한 곳은 저 광대하고 냉랭하고 어디로 가나 텅 비어 있으며 끝없는 밤으로 채워진 은하 사이의 공간이다. 그 공간은 참으로 괴이하고 외로운 곳이라서 그곳에 있는 행성과 별과 은하들이 가슴 시리도록 귀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코스모스의 어느 한구석을 무작위로 찍는다고 했을 때 그곳이 운 좋게 행성 바로 위나 근처일 확률은 10^-33이다. 우리가 살면서 일어날 확률이 그렇게 낮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본다면 우리는 그 일에 매혹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람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참으로 고귀한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 P39
66 지구가 생명의 발생과 서식에 있어 완벽한 조건을 갖추게 된 것이 얼마나 놀라운 우연이며 지구인들에게 얼마나 큰 행운이냐고 감탄하는 소리를 우리는 주위에서 종종 듣게 된다. 적절하게 유지되는 온도, 액체 상태를 유지하는 물의 존재, 산소를 충분히 포함한 대기권 등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조건들이 지구에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러한 감탄성 주장이 부분적으로는 원인과 결과를 혼동한 데서 비롯된 것임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지구의 자연 환경이 인류에게 훌륭한 조건을 제공하는 것같이 느껴지는 이유는 모든 생물들이 지상에서 태어나서 바로 그곳에서 오랫동안 성장해 왔기 때문이다. 초기 생물들 중에서 지구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한 종들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우리는 다행히 잘 적응할 수 있었던 유기물의 후손이다. 우리와 다른 세상에서 진화하고 적응해서 살아남은 물질들은 또한 자기네 환경을 극찬할 것임에 틀림이 없다. - P66
73-4 자연 도태가 진화의 기작이라는 사실은 찰스 다윈과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가 우리에게 가져다 준 위대한 발견이다. 100년도 더 전에 그들은 대자연이 생존에 더 적합한 종들을 선택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다산성이야말로 자연 생물계의 특성이다. 자연은 살아남을 수 있는 개체 수보다 훨씬 더 많은 후손을 낳게 만든다. 그 많은 후손들 중에서 우연히 자연에 더 적합한 형질을 가진 개체들만 살아남게 되므로, 결국 그러한 형질을 갖고 태어난 종이 선택적으로 번성하게 된다. 유전 형질의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는 돌연변이는 순종을 낳는다. 그러므로 돌연변이가 진화의 동인이 된다. 수많은 돌연변이들 중에서 생존율을 증대시킬 수 있는 소수만이 선택되므로, 오랜 기간에 걸쳐 생물은 하나의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서서히 변화하게 된다. 그 결과 우리는 새로운 종의 탄생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종의 기원이요 진화의 실현이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 P73
75-7 많은 사람들은 진화론과 자연 선택 이론을 들었을 때 심히 분개했다. 아직도 분개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조상들은 지구 생물들의 ‘우아함‘에 감탄했다. 즉 생물이 자기 기능 수행에 얼마나 적합한 구조를 하고 있는지 이해한 다음, 이것을 ‘위대한 설계자The Great Designer‘에 대한 증거로 삼았던 것이다. 아주 단순한 단세포 생물마저 가장 정교하다는 회중시계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그뿐만 아니라 회중시계는 자기 조립이 불가능하다. 회중시계는 진자로 작동하는 벽시계에서 전자시계로 서서히 여러 단계를 거쳐 저절로 진화한 것이 결코 아니다. 시계가 있으면 그 시계를 만든 자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온 세상을 아름다움으로 가득 채우는 생명 현상의 다양성 그리고 그 생명 현상들 배후에 숨겨진 복잡미묘함을 마주할 때마다 사람들은 깊은 외경의 감정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원자와 분자가 우연히 함께 들러붙어 미묘한 기능을 가진 생물로 변신한다니! 이 주장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터무니없는 것으로만 들렸을 것이다. 생물마다 고유의 설계대로 만들어졌다는 생각, 하나의 종이 다른 종으로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제한된 역사 기록만 접할 수 있었던 우리 조상들에게는 그들이 알고 있던 생명 현상과 완전히 일치하는 견해였던 것이다. 위대한 설계자가 모든 생물을 정성 들여 만들었다는 생각은 모든 자연 현상에 의미와 질서를 부여했고 인간 존재의 의미를 찾아 주었다. 인간은 여전히 그러한 삶의 의미를 갈망하며 현대를 살아간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마음에 들어 하는, 설계자가 존재한다는 생각은 생물 세계에 대한 전적으로 인간적인 해석인 것이다. 그러나 다윈과 월리스는 설계자가 존재한다는 생각만큼 우리 마음에 들고 또 그만큼 인간적이지만, 설계자의 존재보다 훨씬 더 설득력 있게 생명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또 다른 해석을 제시했다. 그것이 바로 자연 선택이 진화의 원동력이라는 설명이었다. 자연 선택은 영겁의 세월 속에서 생명의 소리를 더 아름다운 음악 작품으로 조탁해 왔다. 화석 기록이 "위대한 설계자의 존재를 증명한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설계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 종을 버리고 새로 설계해서 또다른 종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면 화석 기록과 설계자의 존재 사이에 생긴 모순을 화해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견해는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식물과 동물이 모두 그 나름대로 완벽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졌다면, 이렇게 대단한 능력의 설계자가 처음부터 완전하게 의도된 다양성을 실현할 수 없어서야 어디 말이나 되겠는가? 오히려 화석 기록들은 위대한 설계자가 저지른 시행착오의 과거와 그의 미래 예측 능력에 숨어 있던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것이다. 이러한 한계는 위대한 설계자에게 결코 어울리는 속성이 아니다.(냉정하고 변덕스러운 기질의 설계자라면 괜찮겠지만 말이다.) - P75
82-3 성性은 대략 20억 년 전부터 생긴 듯하다. 그 전에는 새로운 종의 출현이 무작위적 돌연변이의 축적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유전 설계도의 글자를 한 글자씩 바꾸어 돌연변이를 만들고 그것을 또 시험해야 했으므로, 진화는 고통스러우리만큼 느리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성의 출현과 함께 두 개의 생물은 자신들이 가진 유전 설계도를 문단씩, 혹은 여러 쪽씩, 심지어는 몇 권씩 통째로 서로 교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은 이렇게 해서 생긴 새로운 종을 선택이라는 체로 다시 걸러냈다. 결국 성적 결합에 관여할 줄 아는 생물들은 선택되었고 반면에 성에 무관십한 것들은 빠르게 사라졌다. 이것은 20억 년 전 미생물들에게만 주어졌던 선택 사항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 인간들도 DNA 조각들을 서로 교환하는 일에 온 정성을 쏟으며 살아간다. - P82
84 그러나 생물은 30억 년이나 되는 긴긴 세월을 녹조류 수준에 그대로 머물러 있어야만 했다. 지구 생명이 특화된 기관들을 갖추고 체구가 큰 유기체로 진화하기가 생명의 출현 그 자체보다 훨씬 더 어려웠던 모양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외계 행성들을 탐사하다 보면 동물이나 식물이 서식하는 곳보다 미생물의 세상을 더 흔하게 발견하게 될 것이다. - P84
88 지구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생명 현상의 뿌리에는 세포의 화학 반응을 조절하는 단백질 분자와 유전 설계도를 간직한 핵산이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본질적으로 같은 단백질 분자와 핵산 분자가 모든 동물과 식물에 공통적으로 관여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생명 기능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참나무와 나는 동일한 재료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무리가 없다. 좀 더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동물인 나와 식물인 참나무의 조상은 같다. - P88
90-1 우리같이 복잡한 생물의 경우에도 유용한 핵산 분자는 극히 제한되어 있다. 그렇지만 유용한 핵산을 조합하는 방법의 수는 우주에 존재하는 전자와 양성자의 수를 전부 합한 것보다 훨씬 더 많다. 그 결과로 나타날 가능한 인간 개체의 총수는 지금까지 살았던 사람들의 수를 훨씬 능가한다. 핵산의 가능한 조합들 중에서 지금까지 지상에 살았던 그 어떤 인간을 통해서도 구현되지 않은 조합들이 아직 무수히 많이 남아 있다니! 우리는 여기에서 인간이라는 종이 가진 잠재력이 어마어마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지금까지 지상에 살았던 그 어떤 인간보다 뛰어난 인간을 설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뛰어나다는 것은 어떤 기준을 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뉴클레오티드의 순서를 어떻게 바꾸어야 새로운 인류를 만들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른다. 그렇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바람직한 특성을 인간에게 부여하기 위해서 뉴클레오티드를 우리 맘대로 조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정신이 번쩍 들게 하면서 동시에 불안에 떨게 하는 우리 미래의 한 단면이다.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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