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실재론자는 ‘정신없이 무대를 보는 관객‘과 비슷하다. 그 의식은 무대 위에 전개되는 드라마에 몰입되어 있어, 어떠한 연출적 기교의 효과로 그와 같이 ‘보이게 되어 있는지‘는 우선 의식되지 않는다. 그렇기는커녕 관객은 자진해서 ‘몰입하는 것‘을 바라기조차 하고 있다.
한편 회의론자는 ‘시시해진 관객‘과 비슷하다. 그는 무대 위에 있는 것이 골판지에 그린 배경이며, 배우들이 무대를 내려오면 그냥 보통 사람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조금도 드라마에 몰입하지 못한다.
현상학자는 ‘연출가‘이다. 연출가는 ‘김빠진‘ 눈길로 배우의 연기나 조명이나 음향이나 무대장치를 체크한다. 그것이 꾸민 것이며, 가상일 뿐임을 그는 숙지하고 있다. 하지만 무대를 분석적으로 보는 일에 역으로 너무 ‘몰입‘해버리면, 관객이 무대 위에서 ‘정말로 보는 것‘을 놓쳐버릴 가능성이 있다. 무대 위에는 비판적 눈길이 미처 보지 못하고, 마음을 빼앗긴 관객만이 환시幻視하는 극적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뛰어난 연출가에게는 깨어 있음과 동시에 몰입해 있음이 필요해진다. 현상학자의 일은 이것과 유사하다. - P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