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은 사실상 올더스 레너드 헉슬리Aldous Leonard Huxley가 《멋진 신세계》에서 그려놓은 상像에 가깝다. 곧잘 먹고 잘 입고 성적으로도 만족하지만 자아가 없고 가장 피상적인 접촉을 제외하고는 동료들과 어떠한 접촉도 없는. 그들은 헉슬리가 다음과 같은 말로 간결하게 표현한 슬로건에 의해 지도되고 있다. "개인이 감정을 가질때, 공동체는 비틀거린다." 또는 "오늘 즐길 수 있는 일을 내일로 연기하지 말라." 또는 절정에 달한 선언이지만 "오늘날은 모든 사람이 행복하다."

신경증적 사랑의 또 하나의 형태는 자기 자신의 문제를 회피하고 그 대신에 ‘사랑하는‘ 사람의 결함이나 결점에 관여하려고 ‘투사적 메커니즘‘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개인은 집단, 민족 또는 종교와 매우 흡사한 행동을 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사소한 결점까지도 낱낱이 비판하고 자기 자신의 결점을 천연덕스럽게 무시해버린다. 항상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개조하기에 바쁜 것이다. 두 사람이 모두 이와 같이 하면ㅡ아주 흔히 있는 일이지만―사랑의 관계는 상호 투사의 관계로 변한다. 만일 내가 오만하거나 우유부단하거나 탐욕스럽다면, 나는 상대방의 이러한 점을 비난하고 나의 성격에 따라 그를 고치거나 처벌하려고 한다. 상대방도 이와 같이 한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그들 자신의 문제를 무시하는 데 성공하고 따라서 그들 자신의 발달에 도움이 되는조치를 하는 데 실패한다.
투사의 또 다른 형태는 자기 자신의 문제를 어린아이들에게 투사하는 것이다. 우선 이러한 투사는 흔히 자식에 대한 소망과 관련해서 일어난다.
이러한 경우, 자식들에 대한 소망은 일차적으로는 자기 자신의 실존의 문제를 자식의 문제에 투사함으로써 결정된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생활에 의의가 없다고 느낄 때, 그는 자식들의 생활을 통해 의의를 느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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