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문화에 대한 태도는 간단히 말해 ‘인간의 주재성에 관한 긍정‘이다. 이것이 인문지학이 되는 까닭이다. 그러나 인간의 ‘주재성‘을 긍정할 때는 반드시 正·反 두 면의 문제에서 언급해야 된다. 정면에서 말하면, 인간의 주재성을 긍정하려면 반드시 이 주재성 자체에 대하여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반면에서 말하면, 인간의 주재성을 긍정할 때 일체의 객관적 제한과 주재성의 충돌에 대하여, 역시 명확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공자는 앞 부분에 대하여서는 仁, 義 두 관념을 통하여 해답하였다. 바꾸어 말해, 인간의 주재성은 인간이 공심을 세우고 올바름을 추구할 수 있는 데에서 나타난다. 이 점에 관하여는 앞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둘째 부분의 문제에 관하여 말하면, 인간이 비록 이 주재성을 가지고 있으나 구체적인 인생의 과정 중에서는 인간이 자각적으로 제어할 수 없는 어떤 제한이 있음이 분명하다. 이러한 제한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는 또 다른 문제이다. 공자의 이 문제에 대한 견해는 그의 ‘義命分立設‘에 나타난다.
《논어》 중 공자가 命을 논한 자료는 공자의 명에 대한 견해와 의명분립의 기본 관점에 대하여 표명하고도 남음이 있다.

伯牛가 병에 걸렸다. 공자는 병문안을 가서 창너머로 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말했다. "가망이 없는가 보다. 운명인가 보다. 이런 [훌륭한]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 이런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

伯牛有疾, 子問之自牅執其手曰, 亡之, 命矣夫. 斯人也, 而有斯疾也, 斯人也, 而有斯疾也. <雍也>

공자는 염백우의 병이 위급하다고 여기고 그의 조우를 운명[命]에다 돌 93 렸다. 공자의 뜻은 염백우가 이러한 조우를 당하지 않았어야 하는데 마침내 이러한 질병을 얻은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였음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이 命은 뚜렷이 義와 분립된다. 명은 객관적인 제한이니 義가 자각적인 주재성을 나타내는 것과는 다르다. - P9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