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공이 공자에게 말하였다. 우리 마을에 처신을 정직하게 하는 자가 있었읍니다. 그는 그의 아버지가 양을 훔쳤는데, 아들이 그것을 고발하였읍니다. 공자가 말하기를, "우리 마을의 정직한 자는 이와 다르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숨겨주고,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숨겨 준다. 정직은 그 가운데 있는 것이다."
葉公語孔子曰, 吾黨有直躬者. 其父攘羊, 而子證之. 孔子曰吾黨之直者異於是. 父爲子隱, 子爲父隱, 直在其中矣. <子路>

이 귀절은 말이 너무 간단하여 가장 오해를 일으키기 쉽다. 이제 하나하나 분석하여 논하고자 한다.
원문에 대하여 말하면, 섭공은 父子의 관계를 돌보지 않고도 정직하고 합리적임을 나타낼 수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공자는 정직과 합리는 父子를 길가는 사람으로 보는 데 있지 않고, 그 父子의 理分을 극진히 발휘하는 데 있다고 여겼다. 이것이 바로 ‘고발‘[證]과 ‘숨겨줌‘[隱] 두 가지 태도의 다른 점이다.
우리가 만약 이 대화를 겉으로만 본다면, 지극히 공자를 오해하기 쉽다. 공자가 私的인 것을 제창하였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한층더 깊이 파본다면, 이곳에서 드러난 것은 공자의 가치판단 일반원칙에 대한 특수한 긍정인 것이다.
이러한 긍정은 간략하게 말해 ‘구체적 理分에서의 價値‘의 완성인 것 84 이다. 그 이론적 의미에 대하여 말하면, 이곳에는 사실 뒷날 유학 가치이론의 기본원칙이 들어 있다.
이른바 구체적 理分은, 즉 공자가 名을 말할 때는 곧 정치생활 범위에 대하여 理分[합리적 직분]을 말하였다. 이제 도덕생활에서 理分을 말하는 것은 마침내 하나의 순수한 이론문제로 드러나게 된다.
이 문제는 바로 가치의식의 구체화 문제이다. 예를 들어 말하면 만약 백명이 돌 나르는 일을 한다고 하자. 추상적인 공평한 관념에 따라서 본다면, 우리는 매 사람으로 하여금 똑같은 작업을 시키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백 명 가운데 어떤 이는 늙었고 어던 이는 젊었으며, 어떤 이는 힘이 세고 어떤 이는 약하다. 즉, 제각기 능력의 차이가 난다. 만약에 단지 매 사람마다 돌을 100근 운반케 한다면 실제는 결코 公平하지 못하다. 이 때문에 돌나르는 작업에서 공평을 실현하려면, 반드시 제각기 그 구체적 조건에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 바꾸어 말해 100근을 운반할 수 있는 자는 100근을 운반하고, 10근을 운반할 수 있는 자는 10근을 운반한다. 이와 같이 각기 다른 사람은 제각기 그 힘을 다 발휘한다. 이렇게 구체적인 상황 중에서 공평이 비로소 실현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추상적 공평과 구체적 공평의 차이점이다. 더 미루어 말하자면, 가치의식의 구체화라는 의미이다.
이에 의거하여 본다면, 돌 나르는 예 중에서 가치판단을 할 때에 한 사람이 돌을 나르는 양은 몇 근이 합리적이라고 말할 수 없고, 단지 매번의 구체적인 사례 중에서 그 理分[합리적 직분]의 완성(즉, 자기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는 것)에 대하여 그 合理를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공자가 양을 훔친 예를 논한 상황과 비슷하다. 공자의 뜻은 이와 같다. 즉, 한 사람마다 한 사건마다에는 각기 다른 책임과 의무가 있으므로 ‘양 훔친 것을 고발하는 것‘을 정직한 것으로 삼을 수는 없다. 각자 그의 합리적 직분에 의해 혹 고발하기도 하고, 혹 숨겨주기도 하였을 때 비로소 정직함을 얻을 수 있다. 이 예 중에서 언급한 문제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구체적인 理分의 긍정이니 이것이 공자의 근본 취지이다. 둘째는 父子관계에서 보는 견해인데, 이것은 공자가 살던 사회와 관련이 있다. 전자는 가치판단의 원칙을 나타내고, 후자는 특수사회 중의 특수한 설법이다.
이론적인 의미에서 말하면, 우리가 설령 다른사회 속에서 이 문제를 보아서 父子관계의 중요함을 승인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여전히 우리가 구체적인 理分의 관념을 받아들이는 데 장애가 되지 않는다. 대체로 어떤 사 85 회든지 반드시 구체적인 理分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비유컨대 현대사회를 논한다면, 경찰이 물건 훔친 자를 발견하면 반드시 이 범죄자를 拘禁한다. 이것은 경찰의 합리적 직분[理分]이다. 그런데 만약 국민학교 교사가 아동이 물건 훔치는 것을 발견하면, 훈계로서 그런 행동을 못하도록 가르치는 이치가 국민학교 교사의 합리적 직분이다. 兩者가 다른 까닭은 이 두 가지 理分은 모두 구체적 理分에 속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구체적 조건을 말살해 버리고 단지 추상적인 ‘懲罰‘ 관념만 있게 되면, 국민학교 교사도 역시 훔친 아동을 구금하게 될 것이며 학교에 감옥을 부설하여야 할 것이니 권리와 책임[權責]이 크게 문란해질 것이다. 이것은 현대사회 제도하에서 볼 때 불합리한 것이 될 것이다.
또 미루어서 말하면 謀殺犯은 비록 사형에 처해야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만약 피살자의 친구가 스스로 이 謀殺罪를 범한 자를 죽인다면 오히려 법에 위배된다. ‘사형에 처하는 것‘은 법정의 권한이지, 개인의 권한이 아니다. 이것 역시 구체적 理分문제이다. 개인적 살해[私殺]를 금지하는 것은 결코 謀殺犯을 사형에 처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에 의해서 알 수 있듯이 공자가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숨겨 주고‘라고 말했을 때, 역시 ‘양을 훔친‘ 이 사건은 벌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공자의 마음 속에 있는 父子관계는 路人관계와는 같지 않다.이것은 바로 法官과 犯人의 관계와 원수집안끼리의 彼此관계와는 같지 않은 것이나 비슷하다. 이것이 모두 구체적인 합리적 직분[理分]의 문제이다.
총괄해서 말하면, 공자가 정직[直]을 논한 그 본의는 가치, 즉 구체적 理分의 완성을 말한 것이므로 한 사건이 합리적인가의 여부는 반드시 구체적 理分에 따라서 결정해야 한다. 父子와 路人이 같지 않음을 예로 들은 것은 특수사회에서 자료를 취하여 설명을 한 것이다. 이러한 설명에 대하여 우리는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설명을 통하여 표현된 본의는 바로 중요한 문제이다. 만약 가치이론에 대하여 말한다면, 구체적 理分의 긍정은 실로 부정할 수 없는 이론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하나의 추상적 가치의식은 본래 근본적으로 생활 속에서 실현할 수 없어서 내재적 충돌(예컨대 공평을 주장하여 남녀노소 할 것없이 매 사람마다 100근의 돌을 나르게 한다면, 결과는 바로 불공평을 낳게 되니 내적으로 충돌을 일으키게 된다)을 일으키지 않는다. 독일 철학자 헤겔(Hegel)의 文化價値論이 權分哲學(Philosophy of Right)으로 돌아가는 것은 역시 이 뜻이다. 우리가 이것에 유의한다면, 비로소 진실한 생활의 가치표준 문제를 86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공자의 구체적 理分의 견해는 義 관념의 파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공자는 이미 하나의 사건마다 모두 구체적인 理分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였으므로, 인생 태도를 논할 때 자기가 곳곳에서 자기의 직분을 다 발휘하는 것이 그 理想임을 표시하였다.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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