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어진 이만이 남을 좋아할 수 있고, 남을 미워할 수 있다.
子曰, 唯仁者能好人, 能惡人. <里人>

‘좋아하고 미워함‘은 정서적인 의미에서 말하면, 모든 사람, 일체의 동물들이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이다. 어찌 반드시 어진 사람뿐이겠는가? 공자의 뜻은 바로 이치대로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을 말한 것뿐이다. 仁者는 公心을 세울 수 있다. 이미 사사로운 감정의 얽매임[私累]이 없으니 일체의 외계 사물에 대하여, 이치에 따라 가치판단을 세울 수가 있다. 이것이 이른바 ‘남을 좋아할 수도 미워할 수도 있다‘고 한 것이다. 그러기에 역시 여러 유학자들이 ‘好惡‘를 말한 것은 보편적인 의미에서의 긍정과 부정을 말한 것이지 心理的인 반응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 P74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진실로 仁에 뜻을 가지고 있으면 죄악[惡]이 없다."
子曰, 苟志於仁也, 無惡也. <里仁>

이 惡자는 罪惡의 뜻이다. 好惡의 뜻과는 같지 않다. 앞에서는 正面(긍정적인 면)으로 말했다. 즉, 우리가 仁德을 갖추고 있으면 大公하여 사사로움이 없다. 즉, 이치대로 긍정과 부정을 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反面(부정적인 면)에 대하여 말했다. 우리가 사사로움을 없앨 수 있으면, 일체의 죄악을 초월할 수 있다. 대개 죄악은 사적인 잡념[私念]에 근원을 두고 있으니 사사로움을 없애면, 자연히 악함이 없게 된다.
윗절에서 인용한 義利의 구분은 여기에서 그 실질적 의미가 드러날 수 있다. 私念에 따르면 利를 추구하고, 公心에 따르면 義를 추구한다. 仁은 公心을 가리키니 仁은 義의 근본이 된다. 이론적인 의미에서 볼 때 이 이치는 매우 뚜렷하다. 대개 義란 정당성[올바름]을 가리키며, 우리가 올바름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공심을 세울 수 있는 데에 있다. 公心이 서지 못하면, 반드시 利欲에 빠지게 된다. 公心이 이미 세워지면, 저절로 理分에 따라갈 수 있다. 公心을 세우는 것이 仁이요, 이치에 따르는 것이 義이다. 뒷날 맹자가 ‘仁에 머물고 義를 거친다‘(居仁由義)고 말하고, 또 仁은 ‘인간의 마음‘이요, 義는 ‘인간의 길‘이라고 한 것은 공자의 仁義 관념을 가장 잘 밝힌 것이다. 대개 仁은 자각의 경계이며, 義는 이 자각의 發用이다. 公心을 세울 수 있는 자는 실천 중에서 반드시 올바름[正當]을 구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인은 의의 기초요, 의는 인이 드러난 것이 되는 까닭이다. 의가 인에 의거하는 것은 마치 예가 의에 의거하는 것과 같다.
75 이상은 仁과 義, 두 관념의 관계에 대하여 말한 것이다. 이제 다시 仁과 私의 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 P74

顏淵이 仁을 물었다. 선생님은 대답하였다. "自己[사욕]를 누르고, 禮에 돌아가는 것이 仁이다. 하루만 자기[사욕]를 누르고 예에 돌아가면, 天下 사람들이 仁으로 돌아갈 것이다. 仁을 하는 것은 자기로 말미암은 것이지 남으로 말미암은 것이겠는가?" 안연이 그 세목[자세한 것]을 청하였다. 선생님은 대답하였다.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
顔淵問禮. 子曰, 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仁由己, 而由人乎哉? 顔淵曰, 請問其目. 子曰,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顔淵>

이것은 전적으로 仁과 禮의 관계를 말한 것이다. 어째서 ‘자기(욕심)를 누르고 예에 돌아가는 것이 仁이라‘고 하였는가? 克己는, 즉 사사로움을 제거하는 것이며, 複禮는, 즉 이치에 따르는 것이다. 여기서 義를 말하지 않는 까닭은 義와 禮는 이론적으로는 비록 차원이 다른 관념이지만 실천적인 면에서 말하면, 사욕에 따르지 않고 禮로 돌아갈 수 있을 때만 우리는 이치에 따라서 행동한 것이며, 역시 올바름을 구하려는 의지의 방향대로 활동하게 된다. 이와 같이 실천하면 오히려 仁心을 드러내는 것이 된다. 이 귀절은 원래 실천에 대하여 말한 것이므로 그 다음은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예의를 지킴으로써 實踐하는 과정을 지적하였다.
禮는 義를 그 내용으로 삼고, 義는 또 仁을 기초로 삼는다. 이것은 이론적 순서이다. 인간은 예를 지킴으로써 ‘올바름을 추구하려는‘ 의지를 양성한다. 즉 이러한 의지로 말미암아 公心을 환기시키는데, 이것은 실천과정이다. 이론적 순서로 말하자면, 義의 지위는 지극히 뚜렷하다. 실천순서에서 말하면 禮와 義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따로 나누어서 실천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공자는 실천순서를 말할 떄 仁으로부터 직접 禮를 언급하였던 것이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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