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대 유학사상의 특색은 우주론 중심의 철학이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일체를 하나의 ‘천‘으로 돌아가게 하여 이것으로 일체의 존재 및 관계를 설명하고 역시 이것에 근거하여 가치표준을 세워 놓았다. 이것과 선진 공자·맹자의 심성론 중심의 철학과는 차이가 너무 심하게 드러난다. 한대 이후의 유학자는 비록 공맹을 종주로 삼는다는 이름을 내걸면서도 사실은 음양오행 등 원시관념을 잡다하게 취한 한대유학의 이론을 역시 언제나 맹목적으로 받아들였으며 그 방향이 공맹의 본래 의미를 크게 어그러뜨리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한대유학의 ‘우주론 중심의 철학‘은 역사적인 의미에서 공맹과 분리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론적인 의미에 있어서도 역시 퇴화되어 타락하였다. 대개 이른바 덕성 및 가치의 문제는 결코 존재의 영역에다 호소할 수는 없다. 우주론 관념을 기초로 삼아 건립된 어떠한 가치론도 그 자체는 모두 엉성하고 빈약하다. - P3

대개 불교의 가치론과 장단점을 논하려면, 우주론 중심의 철학을 포기하고 심성론 중심의 철학으로 되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론적인 측면으로 말하면 우주론 중심의 철학은 본래 유치한 사상에 속하므로 불교의 심성론과 맞설 수가 없었다. 이것은 객관적인 한계인 것이다. 이 한계가 일단 자각단계로 들어가면 우주론을 버리고 다시 가치문제를 돌아보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 P4

 당대에서 ‘중국불교‘가 성장한 뒤부터 불교의 측면에서는 이미 중국인의 마음에 최대한의 적응을 하였다. 그러나 그 기본정신 방향에서 본다면 불교의 ‘사리정신‘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원칙인 것이다. 이 점에서 불교와 유학은 타협할 방법이 없다. 중국 학자들은 이에 이르러 일대의 정신방향의 선택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만약 ‘사리정신‘을 받아들이면 반드시 세계를 부정하는 태도를 지니고 있어야 하고, 세계에 대하여 긍정하는 바를 가지려 한다면 그리고 세계의 ‘유‘ 자체를 하나의 미혹된 집착으로 보기 원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사리정신‘을 거부해야 한다. 당대에 유학을 제창하고 불교를 배척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세계를 부정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이다. - P4

철학문제 그 자체로 말하면 가치, 덕성 등등의 문제는 모두 본래 ‘유무‘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우주론은 본래 이러한 문제에 진정한 해답을 할 수가 없다. 또 경험을 초월한 ‘실유‘를 긍정하는 형이상학 계통 역시 해결할 수 없다. - P5

육구연은 처음 ‘심‘ 관념을 중히 여기어 ‘존재‘로부터 ‘활동‘에로 돌아왔다. 즉, 객체에 대치되었던 주체를 최고의 주체성으로 이끌어 올려놓았다. 왕양명은 양지설을 주장하여 최고의 주체성은 이로 말미암아 크게 완성되었으며 이에 이르러 송명유학은 최고봉에 이르렀다. 심성론을 다시 세우는 것은, 즉 유학의 가치철학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이러한 건립이 완성되었을 때 중국의 정신은 이미 인도의 사리교의에 제한을 받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또 다른 방면에서 유학의 가치이론의 장·단점이 역시 모두 드러나게 되었다. 그러므로 명대 이후 중국철학사상은 점차로 반송명유학을 시도하는 경향이 생겨나게 되었다. - P6

왕양명의 학문은 송명유학의 높은 봉우리를 대표한다. 그러므로 ‘왕학‘에서 나온 결함은 사실 유학 자체의 내재적인 문제이다. 이 문제는 근원처에서 말하면 ‘도덕심‘ 대 ‘인지심‘의 압축문제인 것이다. 만약 문화생활의 측면에서 말하면, 지성활동이 덕성의식의 부속품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그 독립성을 잃는다는 문제인 것이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되면, 즉 지식기술 발전이 지체되고, 정치제도가 발전되지 못하고, 인류는 객관세계 중에서 통제력이 날로 쇠퇴하여 간다. -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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