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현실감은 현상이 있다는 사실과 사물이 은폐된 존재의 어둠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는 공론 영역이 있다는 사실에 의존한다. 그래서 사적이고 친밀한 삶을 비추는 희미한 빛도 결국 그 광력을 공론 영역의 보다 강한 빛에서 얻는다. 그러나 공적인 무대에 있는 타인의 지속적인 현존에서 오는 강력한 빛을 견뎌내지 못하는 것도 많다. 공론 영역에서는 보고 듣기에 적절하고 그럴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만이 공적인 빛을 견딜 수 있다. 따라서 그렇지 못한 것들은 자동적으로 사적인 문제가 된다. 사적인 관심이 일반적으로 부적절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반대로 우리는 매우 중요한 문제들이 오직 사적 영역에서만 살아남을 수 있음을 안다. 예컨대 사랑은 우정과는 달리 공적으로 드러나는 한, 끝나거나 없어진다. ("사랑한다는 말을 결코 하지 마세요. / 사랑은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에 내재하는 무세계성 때문에 사랑을 통해 세계를 변화시키고 구원하려는 모든 정치적 시도는 우리에게 거짓되고 왜곡된 것으로 비친다. - P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