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는 미래를 100% 결정짓지 않는다
ㅡ 사주와 현대 사회

 정확하게 말하면 명리학(혹은 사주학)은 앞선 이들이 오랫동안 관심을 두었던 "인간 길흉화복 예측"이라고 하는 목적에 여전히 도달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섣불리 사주는 없다를 외치며 폐기하는 것도 썩 바람직한 방법은 아닌 것 같다. 어떤 문화를 강제로 소멸시켜서는 안될 뿐더러, 명리학이 인간의 주요 관심사에 대하여 설명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그리 되지도 않을 것이다.

 사주학의 근본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다른 모든 학문과 마찬가지로 자연과 세계의 원리를 탐구하는 데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 중에서 자연의 한 부분인 인간에게 내재된 자연의 원리를 인간의 삶의 궤적을 살펴보면서 탐구한다는 것이다. 여느 학문처럼 연구 방법론과 도구도 존재한다. 근본적으로 천체가 순환한다는 사실로부터, 출생시의 시공간에 주어진 특정한 기가 인간에게 입력된다고 본다. 그것이 각각 네 개의 천간-지지 쌍으로 표현된다. 기본적인 개념으로서 음과 양, 그것이 구체화된 목화토금수의 오행, 천간과 지지, 십성, 십이운성, 오행의 생극제화 등이다. 사주명리학은 이러한 도구를 통해 인간에 내재한 자연의 원리를 탐구하며, 이를 통해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참고 자료로서 사용되고 있다.

 한편, 최근 2-30대가 사주학에 주목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점차 미래가 불확실해지는 사회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불안감을 표상하는군."같은 진부한 촌평(사실상, 미래는 과거에도 확실하지 않았고, 우리는 언제나 불안했다)을 제외한다면, 이러한 현상에서 우리가 눈여겨볼 다른 측면도 있을까.

 20세기 말 선진국 문턱에 진입한 이후의 세계화 국면에서, 현대 기술 문물을 누리며 과학기술 중심 교육을 받고 자라온 소위 말하는 "MZ세대"의 "미신"에 대한 관심이다. 신비주의적 권위로 무장하고 뜻 모를 글자를 적어가며 호통치듯 천기를 누설하던 역술인들의 손에서 벗어나 스스로 사주를 풀이하고 공부하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여느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유튜브나 웹사이트를 통해서 손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다.

 사주는 이미 사업적인 면에서 제법 돈이 되기도 한다. 사주/운세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을 제공하는 "포스텔러"나, 사주 상담 예약 서비스인 "천명"과 같은 제법 성공한 벤처기업이 등장했다. 10만 구독자를 보유한 사주 유튜버도 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사주가 정신과 방문이 꺼려지는 이들에게 상담이나 카운셀링의 방편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사업성은 이미 나타난 사주명리학의 하나의 가능성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주학이 가진 학문적 가능성은 없을까?

 나는 사주 이론이 보다 현대적이고 세련된 모습으로 체계화되어 정립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본다. 다만 역술인의 직감과 예측력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던 기존 사주학과는 달리, 상관관계와 인과관계 파악에 대한 과학적 탐구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고 이를 신진 연구가들이 해낼 수 있는 작업이라고 본다. 가장 큰 요인은 투입량(input)의 증가다. 한 명의 대중 인문 강연자의 성공 뒤에는 이를 받쳐주는 수많은 연구자들이 있는 것처럼, 인풋이 늘어나면 아웃풋도 커지기 마련이다. 직업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두는, 소위 "덕후"기질이 충만한 현대인의 특성상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할 이론적 지식은 무엇이어야 할까? 사주학의 기본 바탕은 천체의 운행, 즉 천문학이다. 음양오행이라는 전통 동양 개념과 현대 과학의 개념 및 용어 사이의 호환성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현대 천문학 지식을 적용하는 일도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작업이다. 가령 태양은 우리 은하의 중심을 공전한다고 알려졌는데, 이에 따르면 태양계 행성들은 동일한 공간을 반복적으로 운행하는 것이 아닌, 우주 공간에서 나선형의 궤도 운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60년마다 동일한 사주를 가진 사람이 태어난다. 태양의 공전 주기는 약 2억 3천만년이므로 같은 시공간의 에너지(혹은 기)를 부여받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지구와 가까워 인력을 크게 미치는 태양계의 천체들도 60년마다 같은 위치에 배열되지 않는다. 이 점이 사주학이 가진 치명적 맹점이 아닐까 한다.

 여전히 과학계에서조차도 인간이 천체 운동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는지에 대해서는 미지의 영역에 가깝다. 추후 다양한 연구가 진행될 여지가 충분한 이유다. 지금까지 공개된 연구 결과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보름달이 식욕 억제 호르몬 분비를 증가시키고 식욕 자극 호르몬은 억제시킨다는 연구(덴마크 코펜하겐 대학, 2015), 보름달이 떴을 때 대동맥 박리 수술을 받은 환자들의 사망률이 삭, 초승달, 그믐달이 뜬 날 수술을 받은 환자들에 비해 21% 낮았다는 연구(미국 로드아일랜드 병원, 2017), 그믐달이 뜬 날의 멜라토닌 분비량이 8pg/ml였던 것에 비해 보름달이 뜬 날은 4pg/ml로 수면에 영향을 주었다는 연구(스위스 바젤대학교, 2013) 정도다.

 현재 세계의 모든 곳은 "인간 창의성 실험장"과 마찬가지다. 기후 위기와 핵전쟁, AI의 위협과 같은 비관적인 미래가 우리를 짓누른다. 인간이 가진 모든 가능성을 시험해야 하는 시기다. 수많은 사람들은 세계의 어느 곳에서 나타날지 모를 놀라운 혁신을 기대하고 있다. 어쩌면 사주학에서 놀라운 혁신의 단초가 탄생할지도 모를 일이다.

 주희는 《격물보전》에서, 격물치지의 누적이 계속될 때 어느 날 홀연히 활연관통의 경지에 다다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현대에 태어났더라면 분명 자연과학자가 되었을 거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비록 주자학이 당시 그러한 과학적 풍토를 조성하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했지만, 주희 자신은 확실히 과학적 탐구정신이 뛰어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어쨌든 주희가 풀 한 포기의 격물을 이야기했으니, 사주가 격물의 대상이 되는 것에 전혀 문제는 없을 것이다. 현대 학문에 다양한 분과 학문이 존재하고, 저마다의 탐구 방법을 사용하는 여러 학파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뜻있는 젊은 명리학 연구자들이 제시할 새로운 패러다임을 기대해본다. "사주," "명리"에 "學"자를 붙이는 것이 어색하지 않을 날이 조만간 찾아오기를 바라며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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