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전략은 직접적 공격이라기보다는 상황, 즉 객관적 조건을 유리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략은 쉬움을 추구한다. 이 점에서 59 도 동양적 사유는 어려움을 칭송하는 서구적 사유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훌륭한 장수의 전략은 병사들이 승리의 이유를 모를 정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따라서 그는 칭찬받지도 않으며 승전식과 같은 이벤트도 없다. "적의 형세에 적절히 다른 조치를 취하여 백성들 앞에서 이겼더라도, 대부분의 백성들은 그 승리의 요인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백성들은 아군이 승리하는 형세이기 때문에 승리한 것이라고만 알 뿐, 그와 같이 승리하도록 제어하는 형세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점이야말로 가장 큰 공적이다. 효율적인 전략은 승리를 쉽게 만들고, 사람들이 칭찬할 생각도 하지 않을 정도로, 점진적인 방식으로 개입함으로써 승리의 방향으로 상황이 진화하도록 이끌어가는 데 있다. - P58

 전쟁의 법칙에 따르면, 적국을 온전히 두고서 굴복시키는 것이 최상책이며, 전쟁을 일으켜 적국을 깨부수고 굴복시키는 것은 차선책이다. 적의 전군을 온전히 두고서 항복시키는 것이 최상책이며, 전투를 벌여서 전군을 깨부수고 항복시키는 것은 차선책이다. ...... 그러므로 싸울 때마다 이기는 것은 최선의 방법이 아니며, 싸우지 않고도 적을 완전히 굴복시키는 전술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 손무, 앞의 책 3편 84~85쪽. - P62

 도덕
상황의 흐름에 의거하는 전쟁 전략, 그리고 인간의 성향을 간파하는 외교 전략의 논리는 역설적으로 유가의 도덕에서 가장 깊은 의미로 드러난다. 물론 맹자는 인을 따르는 도덕을 이익[利]을 추구하는 행위와 견주지 말라고 일갈했다. 그래서 전쟁에 이기는 방법을 제시하는 병법가들을 경멸했다. 그러나 그의 논의 구조를 보면 전략의 구조와 공통점이 있다. 나아가 그는 도덕을 가장 효율적인 것으로 보았다. 상황을 읽고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 흐름을 형성해가는 것이 중국적 효율성의 핵심이라면, 맹자는 "절차의 전개 과정"에 있어서 "가장 뒤로, 혹은 가장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 책의 서문에서 언급한 바 있는 대담집 《바깥(중국)으로부터 사유하기》에서 중국적 전략 개념은 유가의 도덕성과 연결된다.

전략가들은 말한다. 적을 파괴하는 것은 무용하니, 적을 온전하게 두어라. 그러나 너의 쪽으로 그가 기울도록 하라. 혹은 좀 더 정확히 하자면, 거칠게 적과 맞대면하기보다는 부드럽게, 심지어 그가 자각하지 못한 채 방향을 바꾸도록 만들어라. 이 점에서 가장 앞서 결정짓는 것, 즉 가장 효율적인 것은 가장 은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논리를 끝까지 밀어붙여 보자. 맹자는 이렇게 답 70 할 것이다. "가장 미묘한 방향 변화, 결과적으로 그 영향이 가장 폭넓게 전개될 방향 변화는 바로 도덕성에 의한 변화이다."*

* 《Penser d’un dehors (la Chine)바깥(중국)으로부터 사유하기》, Paris: Seuil, 2000, 389쪽.

"어진 사람은 적이 없다仁者無敵"라는 맹자의 말은 도덕의 효율성을 보여준다. 어진 마음과 행동은 모두가 환영하는 태도다. 그렇기 때문에 도덕성은 관습이 되어 확산되고 모든 사람들에게 배어들면서 세계 전체에 영향력을 미친다. 모든 사람들의 선과 이익을 위해 통치하는 군주는 전쟁을 할 필요가 없다. 그는 다른 민족들에게 환영받을 뿐이기 때문에 그의 영향력은 계속 커질 것이다. 맹자가 누누이 강조하듯이, 어진 군주의 국가에는 사람들이 모이게 되어 있다. 폭압적 국가의 백성은 어진 군주의 병사들을 환영할 것이며 그의 국가로 와서 살고 싶어할 것이다. 극단적인 경우 모든 백성이 폭군만 남겨두고 어진 군주가 다스리는 이웃나라로 이주하면 폭군의 국가는 망하게 된다. 실제로 고대 중국에는 이러한 식으로 망하는 국가들이 있었다고 한다.

즉 선하고 어진 군주의 통치는 경쟁자들의 "자연적 71 경향성"에 일치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 저항도 받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도덕성은 만인의 본성에 부합하는 것이므로 그 효율성은 근원적인 것이며 전략가들의 그것보다 포괄적으로 발휘된다. 전략가들은 특정 부분에서의 ‘세’를 통해 효율성을 획득하지만 도덕성을 가진 군자는 세계의 운행 전체와 결합한다.
전략가가 한 국가의 이익[利]을 추구한다면, 현자는 세계 전체[天下]의 이익을 추구한다. 이러한 현자의 덕성은 공자에게서 완벽하게 구현된다. 공자의 효율성 역시 직접적이기보다는 줄리앙이 《운행과 창조》에서 언급한 "자발적 감화"를 유도하는 간접적 영향력이다. 이러한 점은 논쟁을 통해 타인의 견해를 비판하고 직접적으로 설득하는 서양의 방식이 아니다. "항상 설득을 염두에 두는 변론과는 달리, 말없이 이행되는 현자의 가르침은 하늘이 그러하듯 자발적 감화를 가능하게 한다."* 다음의 대화는 유가 도덕의 간접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공자 나는 말을 하지 않으려 한다.
자공 선생님께서 말씀을 안 하시면 저희들은 무엇을 72 기술하겠습니까?

* 프랑수아 줄리앙, 《운행과 창조》, 유병태 옮김, 케이시, 2003, 48쪽.

공자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던가, 네 계절이 돌아가고 만물이 생장하는데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던가?*

공자는 무엇을 하라고 명령하거나 규범을 제시하기보다는 스스로 실천하는 모습을 보인다. 제자들이 스스로 실행할 때까지 기다려줄 뿐이다. 지극히 도덕적인 행동을 몸소 실천하고 일상적으로 모범을 보임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점진적이고 자연스럽게 교화시킨다. 타인들은 부담을 갖지 않은 채 서서히 그를 따르게 되며 자연스럽게 그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된다.
감지할 수 없을 만큼 지극히 미묘하고 점진적인 효율성을 지닌 영향력이 타인에게 간접적이면서도 끝없는 자극으로 작용하니, 타인은 내처 스스로 자신의 행동거지를 고쳐 나아가는 것이다.**

* 《논어論語》, 17편 19장.
** 프랑수아 줄리앙, 앞의 책 129쪽.

공자의 도덕적 가르침은 중국적 세계관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중국에서 세계 또는 자연은 서양의 신과 같은

73 《주역周易》의 ‘팔괘八卦‘
주역은 동아시아 문명의 원형이다. 주역의 괘卦와 효爻는 만물의 점진적인 변화를 상징한다. 음과 양의 끊임없는 교대로 이루어지는 자연의 운행은 천지만물의 원리이자 도덕의 근거로서 작용한다.

74 단일한 원리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다. 자연은 음양의 조화를 구현한다. 음과 양은 대립과 상보, 상관성, 상호작용, 교대 등을 나타낸다. 중국 사상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실재는 운행이다"라는 명제로 표현할 수 있겠다.
하늘[天]과 땅[地]은 낮과 밤, 온기와 냉기의 교대며 사물들의 조정 원리다. 천지는 실재가 유래하는 원리이면서 실재를 발전시키고 상승시키는 원리다. 천지는 세계의 흐름이고 과정이다. 천지는 말없이 행할 뿐이다. 천지는 한결같으며 이탈하지 않는다.
하늘이 이탈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도덕적 차원이 부각되며 이는 중국 사상의 본질적인 실마리다. 즉 실재를 쇄신하는 원리가 또한 선의 원천이다. 천덕天德은 인성人性의 원천이며 이러한 점이 성선설의 근원이다. 이 점에서도 중국 사상은 서양 사상과 갈라진다. 중국은 자연만 생각했기 때문에 자연에 대한 개념이 따로 없었다. 중국에서 자연은 ‘객관화’ 또는 ‘대상화’되지 않는다. 그리스에서는 소크라테스가 자연의 문제에서 도덕과 인성의 문제로 방향을 전환하면서 분리가 시작된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인위적 측면(기술)과 자연을 분리한다. 기독교도 자연과 초자연을 구분한다. 칸트도 도덕의 세계와 자연세계를 구분한다. 데카르트도 역시 정신과 자연을 분리시킨다. 간신히 스피노자 정도가 인간과 자연의 합일을 추구했을 뿐이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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