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시간을 내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는 걸 보면 이 부유한 청년 실업가는 나쁜 사람은 아닌 모양이다. - P106

레온의 인생에는, 아니 자신의 인생에 대한 그의 이야기 속에는 비열한 사람도 없었고, 음모를 꾸미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배신을 하는 사람도 없었다. 모든 사람이 적어도 한 가지씩은 좋은 면을 가지고 있다는 레온의 말을 듣고 있으면 마치 그것이 모든 인간이 존재한다는 경이로운 사실의 이유라도 되는 것 같았다. 그는 친구들이 했던 재미있는 농담을 기억해내어 들려주곤 했다. 레온이 하는 말을 들으면 언제나 인간에 대해서, 그리고 인간의 나약함에 대해서 너그러워지곤 했다. 레온에게는 모든 사람이 적어도 ‘좋은 사람‘이거나 ‘괜찮은 친구‘였고, 겉과 속이 다르다고 비판받는 사람은 없었따. 어느 한 친구가 속을 알 수 없는 행동을 하거나 말과 행동이 다르다고 느껴지면 레온은 시간을 두고 그 친구를 지켜보며 오래 생각한 끝에 그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마땅한 이유를 찾아내곤 했다. 문학과 정치, 과학과 종교가 지루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세계에는 이런 것들이 차지할 자리가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심각하게 논쟁을 벌이는 주제라 해도 그의 세계에는 발을 붙이지 못했다. 그는 법학을 전공했지만 그 학문에 대해 완전히 잊어버릴 수 있었던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외롭거나 지루해하거나 풀이 죽어 있는 그의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의 침착함은 욕심 없는 마음과 더불어 그 끝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였고, 그는 사람들이 다 자기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의 온화함은 용인할 수 있는 정도일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을 위로해주기까지 했다. - P155

바로 이거야. 기쁨에 가까운 느낌을 갖게 된 건 자기 내면의 힘 덕분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만큼 나약하지 않았다. 결국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자기 자신을 판단하는 것이다. 그 밖에 다른 방법은 없었다. 때때로 다른 사람들이 무심코 하는 말과 행동이 우리 자신에 대해 무언가를 가르쳐 주기도 한다. - P170

심지어 계속해서 거짓말을 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 역시 관심이 있어야 가능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게 오랜 기간 치밀하게 거짓말을 했다면, 그는 그녀에게 상당히 신경을 쓰고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의 거짓말은 그들의 결혼생활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증거였다. - P214

푸대접받던 아이는 이제 푸대접받는 아내가 되었다. 그러나 에밀리는 그렇게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린 시절의 경험을 통해 내성이 생긴 덕분이다. - P214

그녀는 가족들과 의절했다고 했다. 부모님과 오빠, 여동생과는 다시는 만나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 P289

레온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아무하고나 어울리는 줏대없는 바보였어. - P296

브리오니는 그의 무죄 입증을 도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비쳐왔다. 그러나 그것은 그를 위한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는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으니까. 그것은 그애 자신을 위한 것이었으며, 양심상 도저히 견디기 어려워지자 자신의 범죄에 대해 면죄부를 얻으려는 것이었다. 그가 고마워해야 할까? - P322

그러나 그가 눈치채지 못한 어떤 신호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브리오니는 삼 년 동안 그에 대한 연모의 감정을 비밀스레 키워오면서 환상이라는 자양분을 주고, 상상을 통해 아름답게 꾸며온 것이 분명했다. 자기 생각 속에 빠져 사는 애였으니까. 그러므로 그때 강가에서의 그 한 장면이 삼 년이라는 세월 동안 그애를 지탱해준 것이 분명했다. - P328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 편지는 그녀의 아픈 곳을 찌르고 있었다. 소녀는 그들 사이에 끼어들어 그들에게 끔찍한 불행을 가져다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 정말로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그녀는 보잘것없는 글재주로 하찮은 소설 하나 써냄으로써 그 사실을 감출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 소설을 잡지사에 보냄으로써 허영심을 만족시키려 했던 것 아닐까? 빛과 돌과 물에 대한 장황한 묘사, 세 명의 관점으로 나뉜 서술방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끝없이 계속되는 고요, 그 어떤 것도 그녀의 비겁함을 숨길 수는 없다. 그녀는 정말로 남을 모방한 소위 현대적 글쓰기 양식 뒤에 숨어서 의식의 흐름ㅡ그것도 세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의식의 흐름ㅡ속에 죄책감을 익사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녀의 소설에 없는 것은 그녀의 삶에도 없었다. 그녀가 삶에서 정면으로 부딪치기 싫어했던 것은 소설에서도 빠져 있었다. 진정한 소설이 되기 위해 빠져서는 안 될 것이 바로 그것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녀에게 부족한 것은 소설의 척추가 아니었다. 그녀 자신의 척추, 인생의 척추였다. - P448

사람들은 그가 사회에 좋은 일을 얼마나 많이 했느냐며 그의 공적을 칭찬해주었다. 그러나 어쩌면 그는 평생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온 건지도 모른다. 별다른 생각 없이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왔을지도 모르지만. - P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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