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마크: 12장 통합, 지혜를 만드는 유기체적 과정(353~399p)
후안 파스쿠알 리온Juan Pascual-Leone, 요크대 심리학과

언젠가 피아제는 그의 스승 클라파레드Claparede가 다음과 같은 의지의 역설을 제기한 바 있다고 말했다. 나쁜 습관을 극복하고 동기의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의 유혹을 통제하기 위해 의지가 작동한다. 하지만 정작 가장 필요할 때는 의지가 약하고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때는 의지가 강한 경우가 종종 있다. 이 역설은 의지가 적용되는 정신적 혁명의 성격과 그것이 야기하는 학습효과로 설명될 수 있다. 동기의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에서 주체의 고차집행 체계는 잘 발달해 있지 않기 때문에 주체의 의지는 약하게 나타난다. 집행처리 동안(도형 12.1 참조)에는 의지의 결심이 견고했다가도 첫 행위 처리 단계에서, 다시 말해 유혹적인 일상 경험의 냉엄한 현실에 부딪히자마자 의지가 좌절되곤 한다. 이런 상황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피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유혹적인 상황을 벗어나는 것이다. 이럴 때면 죄책감 같은 부정적인 정서가 생기곤 하며 주체는 미래를 예견하는 계획에 몰두하고 자신의 실패에 대한 사후 재조사를 통해 자기 통제를 하려고 한다. 이런 재조사는 주체가 이런 종류의 의지 행동에 적합한 고차집행 체계를 조금씩 획득해갈 수 있는 실제 집행학습 상황이다. 이와 관련된 기법들은 오늘날 인지치료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와 같은 집행학습 수단을 통해 중요한 고차집행 체제와 대처 전략이 발달함에 따라 이 의지 활동은 마침내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 고차집행 체계와 대처 전략이 의지를 필요로 하는 비슷한 다른 상황에까지 확장되어 일단 자동화되면 주체는 매우 강한 의지를 발휘해 원하는 방향으로 행위를 단호하게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제 의지 활동(다시 말해 정신적 에너지와 차단능력을 갖추게 된 역동적 또는 창조적 종합)은 훨씬 덜 필요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새로 자동화된 고차집행체계 전략들이 정신적 에너지나 차단 용량을 많이 소모하지 않고도 유혹적인 상황의 혼란과 방해를 회피하거나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370

의지의 또 다른 역설은 스키너Skinner가 본의 아니게 언급한 것이다. 스키너는 개인의 마음이 그 사람의 학습 경험에 의해 매우 강력하게 조건화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은 자유로울 수 없으며 따라서 의지란 환상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역설인 까닭은 끊임없이 복잡하게 발전하는 문화와 결정되지 않은 인류의 역사, 경험적으로 관찰 가능한 인간의 창조성과 실존적 선택 등에 비추어 볼 때 자유와 의지는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역설은 앞 절에서 간단히 언급한 의지종합 모형 안에서 해결될 수 있다. 이 해결이 가능한 까닭은 스키너의 주장이 상황의 막대한 힘만을, 즉 행위 도식의 선택과 관련된 정신적 처리의 얕은 수준의 힘만을, 다시 말해 스턴버그가 수행 요소라고 부르는 처리과정만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이서Neisser가 전주의 처리preattentive processing라고 부르는 자동적인 정신 처리 수준의 추동력이다. 나는 이것을 자동행위 처리라고 불렀으며 정서 처리, 집행 처리, 노력을 수반하는 행위 처리와 구별하였다(도형 12.1 참조). 이 모형에 따르면 상황(더 정확히 말해 자동행위 단서)은 주체가 노력을 기울여 정신적 에너지와 정신적 차단메커니즘을 이용해 이것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주체의 과거 경험에 부합하는 행동을 유도하는 경향이 있다. 스키너의 의지 역설을 풀 수 있는 열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해결의 열쇠는 주체가 고차집행 체계와 집행 수준의 처리를 이용해 동기의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을 포기하고 주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발달하도록 부추기는 다른 환경으로 옮겨 가기로 결심할 수 있음을 인식하는 데 있다. 이렇게 환경을 바꾸려는, 그래서 주체와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제하려는 주체의 결심은 현대 성격이론들에서도 인정하는 가능성이다. 이런 결심을 설명하기 위해 우리는 주체가 의지의 유기체적 메커니즘을 지니고 있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 P371

이 글은 철학과 심리학 문헌을 바탕으로 지혜에 독특한 발달적 측면들을 분석하려는 시도였다. 그리고 마지막 절에서는 창조성, 지능, 지혜를 비교하였다. 전체적인 결론은 이것들이 마음의 서로 다른 산물이라는 것이다. 지혜는 인지뿐만 아니라 정서와 성격도 포함하는 전체라는 점에서 다른 두 범주와 구별된다. 지혜는 의지의 발달에 힘입어 점점 더 높은 수준의 정서적 자기 통제가 출현함과 함께, 그리고 이것을 통해 성격의 변증법적 통합이 진전됨과 함께 나타난다.
그리고 이런 통합은 다시 자아 중심적 특성들의 약화로 이어지고 이것은 타인, 자기, 세계, 자연에 대해 똑같이 강한 관심을 보이고 더 큰 공감적 이해와 직관을 얻게 되는 기초로 작용한다. 이것은 지혜의 서술적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볼 때 지혜는 인간이 정신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함으로써 그러나 소수만이 도달하는 점근적 상태라 하겠다. - P399

이 과정에서 유기체는 단순히 경험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기계가 아니라 경험을 능동적으로 구성하는 존재다. 인간은 능동적 유기체로서 환경을 해석하고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주고받으면서 경험을 구성하고 또 재구성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아마추어 이론가처럼 작업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주위에 맞게 자신의 이론을 계속 수정하는 반면에, 심리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현실에 대한 기존 이론이 아무리 불만족스럽더라도 그것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사람이란 사회 현실에 대한 특정 가정들을 견지하면서 이것들을 다양한 영역에 효과적으로 적용함으로써 자신의 경험에서 생기는 문제들을 해결하고 타인에게 문제해결을 위한 조언을 주며 사회제도를 가꾸어가고 경험의 의미와 연속성을 찾아가는 아마추어 이론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P401

필자의 해석틀에 따르면 상대주의적 사고는 지식의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성격에 대한 인식을 포함한다. 지식은 관찰자의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모든 관찰자가 정확히 똑같은 관점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모순은 지식에 본질적인 것이다. 게다가 특정 맥락이 다른 맥락보다 더 타당한 지식을 낳는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모순은 화해될 수 없는 것이다. 끊임없이 변하는 맥락에 따라 관점도 바뀌기 때문에 지식은 끊임없는 유동 상태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과거의 맥락과 현재의 맥락 사이에는 필연적인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상대주의적 사고는 짜임새가 엉망이고 예측 불가능한 사태의 본성에 대한 인식을 촉진할 것이다.
상대주의적 사고는 소년기와 청년기에 발달한다는 가설이 있는데, 이것은 페리가 진리의 의미를 묻는 대학생들의 특징으로 제시한 극단적 다양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지혜로운 결정을 내리는 데 상대주의적 사고가 지니는 장점은 개인의 욕구와 우선순위가 서로 충돌할 때조차 이것들을 고려할 수 있게 해주고 문제가 되는 사태의 주변상황을 고려할 수 있게 해준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상대주의적 사고는 다양성을 허용한다. 반면에 상대주의적 사고의 한계는 연속성의 구성이나 선택과 참여를 어렵게 하여 문제의 해결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모순의 통합을 가능케 하는 사고 형태를 발전시키는 것은 적응적 가치를 지닐 것이다. 그리고 변증법적 사고가 바로 이런 해결책을 제공한다. - P415

필자의 해석틀에 따르면 변증법적 사고는 유기체론의 근본 은유에서 비롯하며 모든 지식이 통합되어 있다는 인식을 포함한다. 이것은 발달의 측면에서 상대주의적 사고를 계승한다고 볼 수 있다. 변증법적 ‘아마추어 이론‘에서 지식은 모순과 모순 해결의 상호작용을 통해 점점 더 통합된 형태로 발전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개인의 사고는 모든 사태의 상호 작용적 성격을 변증법적으로 깨달음으로써 가변적인 것들의 상호 의존을 현실의 근본 특성으로 간주하게 될 것이다. 이런 사고양식의 전조는 상대주의에 빠진 것으로 페리가 특징지은 대학생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것은 라보비 비에프가 말하는 자율적 수준의 사고와도 유사한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것이 중년기 무렵에 발달한다는 가설을 제시했으며, 개인차가 있기는 하지만 이런 발달과정에 대한 증거가 존재한다.
상대주의적 사고와 변증법적 사고는 지식이 절대적이고 변하지 않는다는 견해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따라서 이 두 사고는 짜임새가 엉망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합하다. 지혜와 관련된 판단은 일반적으로 짜임새가 엉망인 문제를 다루는 것으로 간주된다. 때문에 미첨은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 것이 지혜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오늘날 대다수 심리학 이론들에서 지혜의 개념은 상대주의적 또는 변증법적 사고의 몇몇 측면들을 포함하고 있다. - P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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