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격차와 같은 경제적 문제는 숫자로 드러내기 수월하기 때문에 성차별의 가시적인 지표로도 자주 쓰인다. 하지만 지표로 드러낼 수 없는, 성차별이 원인이 된 심리적 · 정서적 문제에는 보다 섬세한 분석이 필요하다. 가령, 여성은 남성보다 ‘노인이 되었다‘고 자각하고 혹은 사회적으로 구분되는 시기가빠르다. 가정 내 역할은 물론이고 사회에서도 역할의 모호함을 경험하게 되고, 주체적 의사 결정에서 일찌감치 밀려나며 소외되기 쉽다. 여성이 경험하는 가족 구성원의 병치레나 사별 등 특정한 생애 사건에서 요구되는 여성의 성역할 부담도 크다. 여성이 돌봄노동에 내몰려 소득 기회를 상실하고, 가정의 경제적 자원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하는 것도 성차별로 비롯된 결과다. - P119
에이지즘(ageism)은 1969년 노인의학 전문의인 로버트 버틀러(Robert Butler)가 노인에 대한 차별에 주목하고 만든 용어다. 연령주의, 연령 차별주의 혹은 노인 차별이라고도 한다. 나이와 노인, 노화 과정에 대한 전반적인 편견이 결합된 연령주의는 노인에 대한 공공연한 비난과 편견, 과도한 권한 부여와 소외 등을 의식 ·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이는 사회적으로 표면에 드러나기도 하지만 개인의 내면에서 부지불식간에 발생하기도 한다고 버틀러는 지적한다. 앞선 ‘노인편견 실험‘ 결과처럼 대부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고 말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나이에 대한 고정관념을 내면화한다. 차별을 차별로 인지하지 못하고 행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 나이에 위험하다거나, 하면 안 된다거나 하는 나이를 이유로 만류하는 모든 일들 또,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는 말 속에도 연령주의는 깔려 있다. - P127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고, 지금 내가 뭘 할 수 있겠냐고 묻는 조경숙 씨의 눈빛에 허망함이 가득하다. 그런 그에게 유치원 봉사활동을 제안한 제작팀. 조경숙 씨는 제작팀과 함께 한 유치원을 찾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나오셔서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건 어떨까요? 동화책 읽기 봉사를 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원장의 말에 조경숙 씨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복잡한 표정이 된다. 이런 기회를 갖게 된 건 큰 행운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은 복잡해지고 두려움이 커졌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실수는 안 할까. 그러다가 다시 마음을 가다듬는 경숙 씨. ‘난 할 수 있어. 괜찮아. 나는 아이들을 사랑하니까.‘ 며칠 경숙 씨 마음이 이쪽으로 기울었다가 저쪽으로 기울었다가 했다. 그리고 마침내 결심이 섰을 때 경숙 씨는 도서관을 찾아 동화책을 빌렸다. 50~60년 만에 펼쳐보는 동화책이었다. 경숙 씨는 읽기 연습을 시작했다. "번쩍번쩍 금도끼를 가지고 나왔어요." 금도끼를 강조해서 다시 읽어본다. 낭독에 리듬을 넣고 감정도 섞는다. 산신령 목소리는 더 굵게 바꾸고, 동물 울음소리도 연습한다. 그렇게 온종일 책과 씨름하며 경숙씨는 모처럼 즐겁다. "뒷방 늙은이 취급만 받다가 불러주는 곳이 있고 할 일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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