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학십도 - 개정판
이황 지음, 이광호 옮김 / 홍익 / 201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법학(法學)이 법을 배우고 연구하는 학문이라면, 성학(聖學)은 성인이 되는 방법을 배우고 연구하는 학문이다. 대학에 들어와서 나름대로 강의와 책을 통해 여러 학문을 접해보았으나, 성인(聖人)이 되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학문이 있다는 것은 몇 년 전에야 알게 되었다(이전까지 유학(儒學)은 그저 착하게 살라는 가르침 정도로만 생각했다). 심리학자 매슬로우의 5단계 욕구이론에서도 드러나듯이, 궁극적으로 자아 실현의 일종인 인격적 완성을 꿈꾸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성학을 논하는 유학이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이황의 저서 『성학십도』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글에서는 자기계발서 및 위인의 명언집 등과 비교해 성학과 『성학십도』가 가진 가치들을 짚어보고, 그 한계 또한 지적해 보려고 한다.


 성학의 가치는 첫째로 체계의 완결성에 있다. 이는 자기계발서나 위인의 명언집이나 전기와는 구별되는 특징이다. 자기계발서는 저자의 유명세나 전문성에, 명언은 위인의 훌륭한 삶에 근거하여 해당 가르침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그러나 유명하고 경력이 긴 자기계발 강사의 가르침이 반드시 성공적인 삶을 보장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후자에서는 위인의 빛나는 성취가 특정 삶의 방식 덕택이라는 믿음을 전제하는데, 그의 삶의 방식이 성취에 약간의 도움을 줄 수는 있을지라도 체계적 실현 가능성을 반드시 제공한다고 보기에는 미흡하다. 반면 성학은 인간의 본성과 자연의 원리를 잇는 우주론-심성론-수양론의 완결된 체계에 기초해 인격의 변화 가능성을 보다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자 한다.


 둘째로, 성학 인격의 완성이라는 내적 목표를 추구한다. 구체적으로는 인격적 완성을 이루어 자연과 합일된 성인이 되는 것이다. 반면 자기계발서의 목적은 성공, 특히 세속적인 성공이다. 그 내용은 주로 물질적 성취·나와 가족의 안녕·처세를 위한 방법들이며, 행복한 삶을 사는 데 그 목적을 둔다. 한편 위인의 명언이나 전기는 해당 위인이 가졌던 것과 같은 능력을 얻고자 하는 이가 읽는다. 나는 자기 완성이라는 목적 하나로 오랫동안 전승 및 발전되어 왔다는 점에서 특히 성학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인간 스스로 품격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는 것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성학에서는 내면 수양법이 상세히 제시된다. 자기계발서는 '남의 의견을 경청하라'·'남을 칭찬하라'와 같은 외적인 테크닉을 전달할 뿐인 경우가 많다. 반면 본서는 이론적 가르침뿐 아니라 마음의 자세 및 외적 태도 확립에도 관심을 둔다. 가령 제8도인 <심학도>에서는 마음을 다스리는 '경(敬)'의 방법을 제시하는데, 이를 '한결같이 굳게 잡음'·'흩어진 마음을 찾음'등 여러 표현으로 설명하고 있다. 독자는 이런 시각화된 표현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태를 조정할 수 있다. 나 역시 마음가짐이나 몸의 자세가 가지런하고 단정할 때 머리가 맑아지고 일이 잘 처리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이처럼 성학은 실제 현실에서 적시에 도덕 실천이 가능하도록 몸과 마음을 다듬는 경험적 지혜를 제시하였다.


 하지만 오늘날 성학이 속한 유교(성학은 유교의 목표인 수기안인 중 수기와 관련된다)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많은 이들은 유교 사상이 한국의 권위주의적 문화 형성에 일조했다고 비판한다. 가부장적이고, 국가주의를 중시해 복종을 강요하며, 이는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현대 민주주의 사상과 배치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민본주의와 역성혁명까지 주장하면서 군주보다 백성의 삶을 중시한 맹자의 사상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비판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아무튼 이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이제까지 이황이 저술한 『성학십도』를 통해 성학의 가치와 한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자기 완성을 위한 학문으로서의 성학의 가치로 체계의 완결성과 인격 완성이라는 목적의 윤리성, 상세한 수양법 제시를 꼽았다. 하지만 권위주의의 뿌리로 지목된다는 한계 또한 있음을 짚어보았다. 이럴 때일수록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공자의 본뜻은 죽어서가 아닌 '바로 지금'의 삶에서 잘 먹고 잘 살아 보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점을 생각해볼 때, 현대에 여전히 살릴 수 있는 본질은 보존하되 맞지 않는 부분은 과감히 쳐낸 후 장점 위주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한다면, 인격적 성장을 이루고자 하는 이들에게 여전히 성학은 유용한 가르침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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