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선은 행복인가또 행복은 우연이 아닌 인간의 기능을 잘 발휘하는 의도적인 학습이나 훈련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인가?


 행복은 객관적인 선 관념에 더해서 주관적인 만족감까지도 동시에 포괄하는 개념이다. 또한 만족감에는 배고픔이나 목마름과 같은 생리적 욕구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욕구에 대한 해소도 포함되어야 한다. 따라서 행복하려면 단순한 자신의 욕구 충족을 넘어서 인식되는 요소들이 기대에 맞게 온전하게 참되며, 선하고 아름다워야 할 것이다. 행복이 외적 조건과 내적 조건이 모두 선하며 완전한 상태를 의미하므로, 행복은 인간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선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의도적으로 행복을 성취할 수 있다. 하지만 행복한 상태를 영원히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인간의 욕구는 끝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의 욕구가 충족되면, 금세 다른 욕구가 생겨나기 마련이다.


 한편, 행복 추구의 수단으로 학습이나 훈련을 지목한다면 이는 외부 요소에 의존한 행복이 아닌 내부 조건을 변화시키는 데서 오는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다. 행복을 추구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향이 있는데, 하나는 외부 환경으로부터 자신의 욕구를 모두 만족시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내적인 욕구를 줄여서 만족의 기대 수준을 낮추는 일이다. 그렇다면 전자에서는 외적 조건을 나의 욕구 충족에 유리하도록 하는 지식을 학습하거나 노하우를 훈련하는 일이 될 것이며, 후자에서는 내면의 욕구를 감소시키는 방법을 익히고 수행하는 일이 해당될 것이다.


 인간의 기능이 무엇인지 안다면 최고의 좋음을 알 수 있고 그것이 곧 행복이라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아이디어다. 마치 의학에서의 좋음과 조각에서의 좋음이 각각 있듯, 인간의 기능이 있다면 그에도 역시 좋음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인간의 기능을 이성과 관련된 영혼의 활동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기능이라는 말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적 용도의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인간의 목적이 행복, 인간의 기능은 이성적 사고라는 말은 타당한 것 같다. 우리가 생각을 해서 상황에 적절한 판단을 했을 때 큰 행복감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인간의 이성적 판단이 항상 현실에서의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지는 못하고 행복을 얻기에도 실패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수학에서야 누구에게나 이성적 사고가 동일한 결론을 낼 지는 모르겠으나, 실제 삶의 맥락 속에서의 인간의 행동은 사람마다 상황에 대한 탁월함이 다르다. 따라서 자신의 조건에서 가장 탁월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훈련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판단의 순간은 훈련 과정이라고 해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고, 이는 예측할 수 없기에 개인적 관점에서 우연적으로 발생한다고 보아야 한다. 만약 훈련의 과정에서 일어난 어떤 사건에 대하여, 훈련이 짧아 품성상태가 아직 완전한 수준에 이르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부적절한 판단을 하게 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은 멈춰 있지 않고 계속 흐르므로 이미 일어난 사건이 치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면 그 결과는 바꿀 수 없다. 요컨대 좋은 경험었다고 받아들이고 넘어가지 못할 만한 나쁜 일도 있으며 그런 일이 훈련 중이었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얻지는 못한다.


 결국 인간의 기능이 이성적 사고이며 목적은 행복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아이디어는 타당하지만, 우연 즉 일어날 줄 몰랐던 사건이 행복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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