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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헨리 데이빗 소로 지음, 한기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을 읽었다. 난해하다. 미국의 문화와 환경에 대한 배경 지식의 부족과 빈번하게 등장하는 낯선 자연물의 이름들, 그리고 수많은 은유적 표현 등이 이 책을 읽어나가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주었다. 또한 다른 번역본은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으나 내가 읽은 소담출판사의 《월든》의 번역이 매끄럽지 않다는 알라딘 리뷰가 몇 개 보였다.
어쨌든 다 읽었다. 9일이 걸렸다. 보통 하루에 같은 시간을 투자하면 비슷한 분량의 책은 2-3일이면 다 읽는다. 그러니 이 책은 꽤나 진도가 안 나갔던 셈이다. 저자의 주장이 드러난 부분은 의미가 명료하게 파악되어 수월하게 읽혔지만, 월든 호숫가의 정경이나 상황을 묘사하는 부분, 낯선 농경 사회에 대한 저자의 주장이나 설명이 서술된 부분, 그리고 과학적 사실이 기술된 부분 등은 어렵고 지루하여 잘 읽히지 않았다. 그래서 읽다가 덮은 경우에는 다시 펼치는 데 상당히 용기가 필요했다. 읽다가 덮은 이유는 잠 때문인 경우도 많았다. 수면 유도제다. 아마 읽다가 잠든 적이 세 번은 넘을 것이다.
그럼에도 읽는 내내 편안한 느낌을 받았던 책이다. 뭐, 그래서 잠도 왔겠지만... 침착하고 담담한 문체와 자연 묘사에서 풍겨오는 평화롭고 고요한 분위기가 있었다. 또한 《월든》을 읽는 시간은 성찰의 시간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삶에 직면하길 원하는 소로우의 단호한 결심은 삶을 진실하게 대하고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묻게 만든다.
가장 인상깊게 읽은 내용은 소로우가 자선에 대해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부분이었다. 이전에 접해보지 못한 주장이라 좀 낯설었다. 하지만 몇 번을 읽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놀라운 통찰이라고 느꼈다. 내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소로우는 자선이 과대평가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자선은 인간의 존경받고 싶어하는 이기심 때문에 벌어지는 행위라는 것이다. 따라서 자선이 인류에게 축복을 안겨준 다른 모든 이들에 비해 높은 대우를 요구받을 이유가 없다고 본다. 오히려 그는 사람들이 좀더 가치 있는 존재가 되려 들지 말고 현재 있는 위치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대로 시작하라고 말한다. 유복하게 살고 있을 때가 오히려 가장 도움이 필요한 경우라는 그의 말은, 멀쩡히 지내던 사람이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것이 가난한 사람이 계속 가난하게 살아가는 것보다 오히려 더 큰 고통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책을 다 읽고 읽은 도서 목록에 《월든》을 추가하면서, 다른 번역본 중 판매량이 가장 많은 은행나무 출판사의 것을 읽고 싶은 책 목록에 추가해 두었다. 추후 반드시 읽어 볼 생각이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일수록 《월든》이 나에게 주는 지혜 또한 풍부하게 더해질 것으로 믿는다.
14 교리문답식 표현을 이용해서 인간의 궁극적 목적과 진실로 필요한 삶의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보면, 인간은 일부러 평범한 삶을 선택한 듯이 보인다. 그것이 다른 어떤 것보다 더 좋기 때문이라는 듯이 말이다. 그들 대부분은 솔직하게 말해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기민한 정신과 건강한 기질의 소유자들은 선명하게 떠오른 태양의 존재를 기억하고 있다. 편견이라는 것은 언제라도 버릴 수 있는 법이다. 아무리 오래된 것이라 해도 아무 증거도 없이 남의 사상이나 업적을 믿을 수는 없다. 모두들 오늘까지 참된 것으로서 되뇌이거나 묵과하고 있는 것들도 내일이면 한낱 실체 없는 견해에 불과한 것이 될 수도 있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단비를 뿌려 줄 구름이라고 굳게 믿는 것이다. 선인들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한 것도 지금 시도해 보면 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임을 알게 된다. - P14
90 나는 자선에 의당 따라야 할 찬사를 깎아 내리려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바쳐 인류에게 축복을 안겨준 모든 이들을 공정하게 대하기를 요구하는 것뿐이다. 나는 인간에게서 고결한 행위와 자비로운 마음을 가장 높이 평가하지는 않는데, 그것들은 이를테면 인간의 줄기와 잎에 해당한다. 그 풀이 시들면 사람들은 환자를 위한 비천한 용도로, 그것도 주로 돌팔이 의사들이 애용하는 약초로 쓰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인간의 꽃과 열매다. 인간의 향기가 내게 풍겨 오기를, 그 성숙함으로 우리들의 인간 관계에 풍미를 더할 수 있기를 원한다. 인간의 선함이 부분적이거나 일시적인 행위여서는 안 되며, 그것은 늘 남아도는 것, 그 사람에게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않고 의식적이지도 않은 행위여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수많은 죄를 감춰 주는 박애다. 자선가 자신이 헤어난 슬픔에 대한 기억으로 마치 공기처럼 인간을 감싸면서 그것을 연민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우리는 절망이 아니라 용기를, 질병이 아니라 건강과 안정을 함께 나눠야 하며 질병이 전염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 P90
130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한 권의 책을 읽고 자신의 삶에 새로운 기원을 마련했던가! 지금까지의 기적을 설명하고 새로운 기적을 보여줄 책이 우리를 위해 어딘가 분명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지금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도 어딘가에 표현돼 있을 수도 있다. 지금 우리를 혼란케 하고 어리둥절하고 난처하게 만드는 문제들을 과거의 모든 현자들도 직면한 적이 있었다. 어느 한 문제도 빠지지 않고 말이다. 그리고 각각의 현자들은 자신의 능력에 따라 자신의 언어와 자신의 삶으로 그 문제들에 해답을 주었다. 나아가서 우리는 책에서 지혜와 더불어 관대함도 배우게 될 것이다. 콩코드 교외 농장에서 고용살이를 하고 있는 사람은(그는 제2의 탄생과 독특한 종교적 체험을 거쳐 자신의 신앙에 따라 말없는 엄숙함과 배타성을 신조로 삼게 된 사람인데) 그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수천 년 전 조로아스터 역시 그와 같은 길을 걷고 똑같은 체험을 했지만, 그럼에도 현명한 그는 그 일이 보편적인 것임을 깨닫고 그에 따라 이웃을 대하고 하나의 종교를 창시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고용살이를 하는 그로 하여금 겸손하게 조로아스터와 벗삼도록 하면 어떨까? 그리고 모든 위인들의 관대한 감화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 자신과도 알도록 해주면 어떨까? 그래서 ‘우리 교회’라는 말은 아예 떼어 버리도록 하면 어떨까? - P130
354 만약 우리가 자연의 모든 법칙을 알고 있다면, 어느 한 지점에서의 모든 특수한 결과를 추론하기 위해서는 단 한 가지 사실 또는 실제 현상 한 가지에 관련된 기술만 알면 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불과 몇 가지 법칙밖에 알지 못하며, 따라서 우리의 추론 결과는 무효인 셈이다. 그것은 물론 자연의 혼란이나 불규칙성 때문이 아니라 계산에 필요한 인자를 모르기 때문이다. 범칙과 조화에 대한 우리의 개념은 대부분 우리가 밝혀낸 사례에 한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핏 상충되는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일치하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수한 법칙에서 우러나온 조화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경이로운 것이다. 특수한 법칙은 길을 가는 나그네의 눈에 매 걸음마다 산의 윤곽이 다르게 보이는 것처럼 우리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이게 마련인데, 그것은 원래 절대적인 단 하나의 형태를 갖고 있으면서도 무한대의 측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산을 쪼개거나 구멍을 뚫는다 해도 전체가 파악되지 않는 것이다. - P354
400 자신의 삶이 아무리 비천하더라도 그 삶을 정면으로 대하고 살도록 하라. 피하지도 욕하지도 말라. 그 삶은 당신만큼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이 가장 부유할 때 당신의 삶은 가장 가난해 보인다. 남의 흠이나 잡는 사람은 천국에서도 흠잡기에 바쁘리라. 설혹 그 삶이 가난할지라도 당신의 삶을 사랑하라. 설혹 구빈원이라도 유쾌하고 신나며 훌륭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석양의 햇살은 부자의 저택에서나 구빈원의 창문에서나 똑같이 눈부시게 빛난다. 구빈원의 문 앞에서도 봄이 오면 어김없이 눈이 녹는 것이다. 마음이 고요한 사람이라면 구빈원에서도 만족스런 삶을 영위할 수 있고 궁전에서처럼 유쾌한 생각을 할 수 있다. 종종 가난하게 사는 마을 사람이 어느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는 것처럼 보이곤 한다. 어쩌면 아무 의심 없이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이 넉넉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대부분은 자기가 마을의 부양을 받을 대상이 아니라고 여기고 있지만, 그들 중에는 부정한 수단으로 자신을 부양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훨씬 더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 P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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