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의 몫 - 모더니티총서 10
조르주 바타유 지음, 조한경 옮김 / 문학동네 / 2000년 12월
평점 :
절판


˝인간으로 하여금 동물적 느낌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오히려 금기이다.˝
ㅡ조르주 바타유

작년 가을에 초서해 둔 조르주 바타유의 《저주의 몫》 구절들을 오랜만에 찾아 읽었다. 그러던 중 반갑게도 최근의 고민거리 중 하나인 인간과 동물의 차이에 대한 설득력 있는 주장을 발견했다. 즉 금기가 인간을 동물적 느낌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것이다.

동물은 참지 않는다. 배고프면 곧장 먹고, 울고 싶으면 울고, 자고 싶으면 잔다. 반면 인간에게 금기는 욕구를 지연시키는 기능을 한다. 배고프지만 식사 약속을 위해 기다리고, 약속한 일을 제 때 끝내기 위해 커피를 마시며 졸음을 견딘다. 또한 갈등을 최소화하며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법과 질서를 지킨다. 이처럼 금기는 다분히 사회적인 기능을 한다. 결국 인간을 동물과 구별되도록 하는 것은 금기의 사회적 특성이다.

이러한 금기의 사회적 특성은 그것을 준수하는 구성원으로 하여금 자기 통제감을 준다. 이는 ‘자신이 일을 주도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금기는 또한 인간의 의지주의와 연결된다. 주어진 사회적 금기를 성공적으로 준수하는 경험이 많이 쌓일수록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다고 믿게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사회적 금기에 안정적으로 순응하지 못하고 번번이 걸려 넘어진 이들은 운명론적 사고의 흐름에 몸을 맡길 가능성이 크다.

현대 생물학적 관점에서 인간의 특성은 유전자가 결정한다. 그렇다면 그처럼 일정한 특성을 타고난 인간이 의지주의와 운명결정주의 중 하나의 인생관을 갖도록 하는 요인은 바로 그가 살아가는 시간과 장소에 존재하는 금기일 것이다. 한편, 금기는 시대와 사회에 따라 달라진다는 특징이 있다. 요컨대, 때와 장소를 잘 타고난 인간은 의지주의자가 될 가능성이 높으며, 반대로 그렇지 못한 인간은 운명론자가 되기 쉽다.

69 그러나 일단 생물체는 태양 에너지를 받아들여서 그 에너지를 할 수 있는 한 남은 공간에 축적한다. 그런 다음 생물체는 그 에너지를 발산하거나 낭비한다. 그러나 에너지의 발산에 앞서 생물체는 성장을 위해 그 에너지를 최대한 이용한다. 성장을 지속할 수 없을 때만 낭비에 자리를 내준다. 진정한 잉여는 그러므로 개인이나 집단의 성장이 일단 제한을 받을 때 시작된다. - P69

75 죽음은 세대를 시간 속에 배분하였다. 죽음은 끊임없이 새로 태어날 아이들에게 자리를 마련해준다. 죽음이 없다면 우리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므로 죽음을 저주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일이다.
사실 죽음을 저주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낄 뿐이다. 우리의 엄격한 의지가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 사치의 운동에서 가장 극단적인 형태를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그 운동에서 벗어나기를 꿈꾸며 스스로 거짓말을 한다. 처음에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나중에 더 확실한 죽음을 맞기 위한 것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죽음의 사치는 성의 사치와 같은 방식으로 고찰된다. 둘은 공히 일단 부정되다가 갑작스런 전복 행위를 통해 생명의 가장 심오한 진실로 받아들여진다. - P75

86 안정된 사회에서 떨어져나와 비교적 자유롭게 머무는 사람과 성장의 작업에 얽매인 사람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인간의 삶의 양상은 제멋대로 사느냐 또는 다산성을 보장해주는 기획의 필요에 따라 사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마찬가지로 한 개인의 얼굴도 밤의 세계를 사는 난삽함에서부터 낮의 세계를 사는 진지함에 이르기까지 너무 다르다. 성장을 지향하는 진지한 인간은 부드럽고 예절바르다. 그러나 인류는 부드러움을 격렬한 삶으로, 평온한 삶을 시적 역동성으로 바꾸고 싶어하는 성향이 있다. - P86

236 바타이유에 의하면 소모의 개념은 많은 사회. 정치. 경제 현상들, 미학적인 현상들을 밝혀주는 개념이다. 사치와 도박만이 소모가 아니다. 예술과 문학, 공연, 종교 예식들, 그리고 생식이라는 궁극적 목적을 벗어난 성행위 등은 모두 비생산적인 소모의 양상들인 것이다. - P236

258 인간은 동물의 욕구 충족 방식과는 달리 금기를 통해 욕구를 충족시킨다는 점에서 동물과 다르다. 바타이유에 의하면 "인간으로 하여금 동물적 느낌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오히려 금기이다". -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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