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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오유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2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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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집사람이 날 오해한 게 있어서. 그건 오해라고 설명해도 곧이듣질 않잖나. 결국 화를 내고 말았네.”
“어떻게 오해하셨는데요?” 선생님은 나의 이 질문에 대답을 피하셨다.
“내가 집사람이 생각하고 있는 그런 사람이라면 이렇게 괴롭지는 않을 걸세.”
선생님이 얼마나 괴로워하고 계신지조차 내겐 도통 가늠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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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선생님‘의 처는 ‘선생님‘을 ‘이제 이 세상에서 자기가 기댈‘ 하나뿐인 사람이라고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후반부 ‘선생님과 유서‘편을 보면 자세히 나온다. 선생님은 그런 아내를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선생님‘이 늘 내면의 ‘그와 같은 전쟁‘을 겪었듯, 처라고 자신의 인생에 그런 것이 없었을까? 처는 자신만의 깊은 고민을 드러내지 않은 채 담담하게 선생님 곁에서 살아갔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쩌면 ‘선생님‘은 자신의 내면에 지나치게 빠져 타인을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질 여유조차 없이 살았는지도 모른다. 상처는 어느 정도는 주관적인 성격을 띤다. 어디선가 모든 인생은 한 편의 소설로 쓸 정도가 된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가슴 속에 상처 하나 없는 사람 누가 있을까. 혹시 인간은 타인 혹은 자기 자신 둘 중 하나는 믿지 못할 때에야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극복되지 못한 과거가 결국 ‘선생님‘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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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나는 과거에 다른 사람에게 기만당한 적이 있네. 그것도 피가 섞인 내 친척한테 말이야. 나는 절대 그 일을 잊을 수 없네. 내 아버지 앞에서는 그렇게 선량한 사람처럼 굴던 그들이 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그렇게 파렴치하게 변해버린 거야. 어렸을 때 그들에게 당한 모욕과 기만을 난 이 나이가 될 때까지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네. 아마 죽을 때까지 그 한을 품고 갈 거야. 하지만 난 그들에게 복수하지 않았네. 아니, 생각해보면 나는 한 개인에 대한 복수 이상의 일을 지금 하고 있다고 봐야지. 나는 그들을 증오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들로 대변되는 인간이란 존재를 증오하는 법을 익혔네. 나는 이게 내 식대로의 복수라고 생각하네.”
100 “나는 과거의 한 사건을 계기로 사람을 믿지 않게 되었네. 자네도 예외가 아니었지. 하지만 더 이상 자네만큼은 의심하고 싶지 않네. 자넨 거짓을 말하기에는 너무 단순한 사람이거든. 나는 죽기 전까지 이 세상에 단 한 명이라도 좋으니 마음 놓고 흉금을 터놓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어. 자네가 그 단 한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 되어줄 수 있겠는가? 자네는 스스로 양심에 한 점 거리낄 것 없는 진실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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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그들‘에 대한 증오를 인간에 대한 증오로 돌렸다. 그래서 누구도 믿지 않는다. 그런데 이는 상처를 흘려보내지 못한 고통받는 인간의 모습일 뿐이다. 사람은 사람을 용서하여야 한다. 사람의 불완전함을 인식하고 선량함을 신뢰해야 한다. 그래야만 홀가분해질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선생님은 ‘나’까지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면서 ‘나’는 믿겠다고 말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약한 모습이다. 이는 외로운 인간, 결국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인 인간의 모습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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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하지만 사모님에 대한 모순 정도라면 그렇게 큰 고통을 느끼지 않고 지나칠 수 있었네. 나의 번민은 사모님과 마찬가지로 그녀도 계획적으로 나에게 접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시작된 거야. 모녀가 내 뒤에서 서로 입을 맞춰 지금까지 모든 일을 진행해왔다고 생각하니 나는 갑자기 숨이 막혀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됐지. 불쾌한 정도가 아니라 이젠 더 이상 발을 내딛을 곳이 없는 벼랑 끝에 몰린 기분이었네. 하지만 나는 마음 한구석에선 그녀를 굳게 믿었네. 그렇기 때문에 믿음과 의혹 중간에서 올바르게 행동할 수가 없었지. 나에겐 어느 쪽이나 진실이고, 또 양쪽 모두 허상이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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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하다. 그러나 본래 인간의 마음은 지배할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그의 마음이 멀리 떠나 봤자 언어의 어항 속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니, 아스라이 떠나 버리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자(이렇게 위안하는 것이 좀 비참하긴 하다). 그저 ‘인간’의 마음일 뿐이다. 무시무시한 인공지능도 점점 다가온다는데,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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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 물론 그는 자기가 가고 싶다고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지만 내가 가자고 부추기면 어딜 가든 거칠 것이 없는 자유로운 입장이기도 했네. 나는 왜 선뜻 나서지 않냐고 물었지. 그는 별다른 이유는 없다고 대답했네. 그냥 집에서 책이나 읽는 게 자기는 더 편하다면서 말이야. 내가 좀 시원한 데 가서 공부를 하는 것이 몸에 더 이롭다고 하니까 그렇게 가고 싶으면 나 혼자 가면 되지 않냐고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나는 K를 혼자 그 집에 두고 나만 갈 수는 없었네. 나는 그때도 이미 K와 집 식구들이 점점 더 친밀해져가는 것을 보는 게 썩 편치 않았단 말일세. 그들이 서로 사이 좋게 지내는 게 처음에 목적한 바가 아니었냐고 묻는다면 달리 변명할 말이 없네. 그래, 내가 어리석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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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함께 지내면 필연적으로 어떤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 물론 인간이 떨어져 지내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스마트폰은 거리를 무색케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떨어져 있어도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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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 나는 문득문득 옆에 조용히 있는 그 사람이 K가 아니라 그 집 딸이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네. 헌데 내 생각이 그 정도 바람에서만 그치면 괜찮았을 텐데 때론 K도 지금 이 자리에 앉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의심이 가기 시작한 거야.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난 침착하게 책을 펴놓고 있을 수가 없었네. 벌떡 일어났지. 그리고 성난 사자가 포효하듯 마구 소리를 질러댔네. 잘 짜여진 시나 노래 가사를 한가하게 읊조릴 만큼 마음이 여유롭지 못했거든.
302 세계란 무엇인가? 황인찬
사실 세계는 없다.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은 모두 망상이고 착각이다. 세계는 ‘세계‘라는 총체로 수렴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는 존재한다. 망상이자 착각으로서 존재한다. 망상과 착각이 시인의 개성이며 태도가 되는 것이다. 시인은 자기 멋대로 왜곡하고 망가트린 세계를 통과하여 시를 제출한다. 다시 말하면 세계란 인식의 결과가 아니라 소망의 산출이다.
ㅡ황인찬 외, 《나는 매번 시쓰기가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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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저마다 세상은 이럴 것이라는 망상을 가지고 산다. 누군가는 점잖게 이를 세계관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솔직한 어느 시인은 망상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의심도 하나의 망상이요 세계관이다. 인간은 자기의 세계를 확장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즉, 의심을 현실로 만들지 않곤 배기지 못하는 것이다. 소설의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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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 두 사람은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서 꼼짝하지 않았네. K는 오전과 마찬가지로 조용했지. 나도 생각에 잠겼네. 나는 내 마음을 K에게 털어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네. 하지만 그러기엔 이제 때가 너무 늦었다는 생각도 들었지. 왜 조금 전에 K의 말을 가로막고 내 마음을 밝히지 못했을까? 그것이 큰 실수였다는 생각이 든 거야. 억지로라도 그 자리에서 K의 고백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 생각을 말해버렸더라면 그래도 이만큼 괴롭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됐네. 하지만 K가 자신의 마음을 신중하게 고백한 이 마당에 나도 너와 같은 마음이라고 밝히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우습지 않겠나. 나는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지 판단할 수 없었네. 내 머리는 후회와 안타까움으로 뒤범벅이 되어버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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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소설의 사건들이 이제는 종종 결정론적 관점에서 읽히기도 한다. 그러면 인물들의 감정이 조금은 우습고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그저 어느 생명체의 소통방식 중 하나로서의 언어. 그러고 보면 내가 인간이란 존재를 과대평가해온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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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 나는 식탁 앞에 앉자마자 일이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사모님의 표정을 살피면서 추측하고 있었네. 하지만 사모님이 K에게 그녀가 왜 쑥쓰러워하는지 설명하기 위해 내 앞에서 그날 있었던 일을 전부 꺼내는 건 도저히 듣고 있을 수 없었지. 사모님은 K의 속마음을 모르는 상태였고 또 어차피 알려질 일을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나는 초조해서 식은땀이 다 났네. 다행히도 K는 다시 침묵으로 돌아갔지. 평소 때보다 더 기분이 좋았던 사모님도 내가 걱정하는 부분까지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네. 나는 휴, 하고 한숨을 내쉬고 방으로 돌아왔지. 그러나 내가 그때부터 K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야만 했네. 나는 여러 가지로 내 마음을 변호할 말을 생각해보았네. 하지만 어떤 말로도 K 앞에서 나의 이런 행동을 정당화할 수 없었지. 비겁한 나는 급기야 나 자신을 변명해야 한다는 게 싫어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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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K와의 관계를 제쳐두고 사모님께 딸과 결혼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사회적 관계보다 개인적 욕망이 우선하였고 이것이 비극의 원인이 되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20세기 당시는 공동체주의적 사회가 주류였던 반면 요즘은 점차 파편화되는 개인주의 시대다. 그래서 남 눈치보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말이 인기를 끈다. 그러나 그런 욕망의 대상조차 인간이라면 그 관계 또한 사회적이고, 그러한 관계 또한 또다른 욕망에 의해 무너질 위태위태한 상황에 항상 놓여져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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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 뭐냐고 묻는 사모님에게 나는 턱으로 옆방을 가리키며 먼저 “놀라지 마십시오” 하고 경고했네. 사모님은 얼굴이 창백해졌지. “사모님, K가 자살했습니다” 하고 내가 말하자 사모님은 그 자리에 대리석처럼 뻣뻣이 굳어 아무 말도 못 했네. 그때 난 갑자기 사모님 앞에 손을 내밀고 고개를 조아렸네. “죄송합니다. 제 잘못이에요. 사모님께도 따님께도 죄송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하고 사죄했네. 사모님과 마주서기 전까지 그런 말을 입에 올릴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말일세. 그런데 사모님의 얼굴을 보자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불쑥 튀어나온 거야. K에게 사죄할 수 없었던 나는 이렇게라도 사모님과 딸에게 잘못을 빌 수밖에 없었던 거라 생각해주게. 그때 나의 자연이 평소의 나를 물리치고 되살아나 참회의 입을 열게 한 거야. 사모님이 그런 깊은 의미로 나의 그 사죄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은 내게 있어 다행스런 일이었네.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도 “예상치 못한 일이니 어쩔 수 없잖아요” 하며 오히려 날 위로해주었네. 하지만 그 얼굴은 이미 공포와 경악으로 뻣뻣이 굳어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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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사람이 되기는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우리가 다른 사람이 어떤 행동을 취할 것까지 모두 예상할 만한 능력이 결코 있을 수 없는데 말이다. 비극적인 인간 존재.. ‘나도 모르게‘라는 말이 그야말로 진심인 것이다. 만약 이것이 자유 의지와는 무관한 본성이라면? 그럼 이 본성은 인간적인가, 비인간적인가.
23 하지만 선생님의 나에 대한 태도는 처음 인사한 날이나 친숙해진 이후나 별 차이가 없었다. 선생님은 언제나 조용했다. 어느 때는 너무 조용해서 나 혼자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나는 처음 선생님을 뵈었을 때부터 왠지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운 묘한 분위기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가까워져야겠다는 의지가 내 가슴속 어디선가 강하게 발동했다. 선생님을 상대로 이런 느낌을 갖은 사람은 어쩌면 나 혼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직감이 나중에 사실로 입증됐기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들이 유치하다고 하더라도, 바보 같다고 비웃더라도 그것을 미리 예견한 나의 직감에 대해서는 아무튼 믿음직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사랑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사람, 그러면서도 자신의 품안으로 들어오려는 것을 두 팔 벌려 껴안을 수 없는 사람 ㅡ 그것이 선생님이었다. - P23
27 "나는 외로운 사람입니다" 하고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그래서 당신이 나를 찾아와주는 게 기쁩니다. 그래서 왜 그렇게 자주 오느냐고 물은 겁니다." - P27
114 그리고 나이 드신 두 분만 시골에 계시게 하는 건 어째 맘이 놓이질 않는다는 둥 자식된 도리로 너무 마음이 아프다는 둥 꽤나 감상적인 말까지 동원했다. 사실 그건 다 솔직한 내 심정이었다. 하지만 편지를 다 쓰고 나서 다시 읽어보니 쓸 때의 기분과는 좀 달랐다.
나는 기차를 타고 가면서 이런 인간의 심리에 대해 생각했다. 곰곰이 따져보니 내가 생각해도 내 자신이 생각을 이랬다 저랬다 바꾸는 가벼운 존재로 여겨졌다. 기분이 영 언짢았다. 나는 또 선생님 내외 분을 떠올렸다. 특히 이삼 일 전 저녁식사에 초대 받았을 때 나누었던 대화가 내 귓속에 다시 울렸다.
"어느 쪽이 먼저 저 세상에 갈까?"
나는 그날 저녁 선생님과 사모님 사이에 불거졌던 의문을 혼자서 되뇌어보았다.
그리고 그 의문은 누구도 자신 있게 답할 수 없는 것이라 결론내렸다. 만약 어느 쪽이 먼저 세상을 뜰 거라고 확실히 알고 있다면 선생님은 과연 어떠실까? 사모님은 또 어떻게 행동하실까? 두 분의 행동은 지금과 다름없을 것이다(죽음에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워지고 있는 아버지를 고향에 두고 내가 아무 도움도 되어드리지 못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나는 인간이란 존재가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인간은 거스를 수 없이 타고난 가변적인 존재임을 절감했다. - P114
329 작은아버지에게 배신당했을 때 사람은 믿을 게 못 된다는 점을 절실히 느낀 건 사실이지만, 그건 타인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지, 내 자신에게만큼은 그때까지만 해도 확실한 믿음이 있었네. 세상이 어찌 돌아가든 나 자신은 멋진 인간이라는 신념이 마음속 어딘가에 있었단 말이지. 그 믿음이 K로 인해 무참히 깨져버리고 나 자신도 작은아버지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내 마음은 심하게 흔들리게 됐네. 인간들에게 등을 돌린 나는 결국 나 자신도 저버리고 닫힌 공간에 날 가두게 된 것이지. - P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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