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은 혼자다 - 결혼한 독신녀 보부아르의 장편 에세이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박정자 옮김 / 꾸리에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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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인용한 세 가지 텍스트는 모두 저자의 것이 아닌 옮긴이의 말이다. 깊은 인상을 받아서 옮겨둔다

사물에 대한 의미나 가치가 나의 밖에서부터 온다면 나는 그것을 충실하게 지키기만 하면 된다. 거기에는 불안이 있을 수 없다. 촘촘한 제도의 틀 속에 얽매여 있던 전통 사회에서 사람들은 불안이라는 것을 별로 느끼지 못했다. 주어진 규칙과 예의범절만 기계적으로 따르면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각자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정립해야만 하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심하게 불안감을 느낀다. 실존적 인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대인이 불안을 느끼는 것은 그가 절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자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는 영역도 있다. 태어난 국가, 부모, 외모, 능력 등은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강제적 조건이다. 이것을 사실성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유와 사실성이 합쳐진 존재이다. 그러나 이 주어진 여건을 어떻게 뛰어넘어 어느 방향으로 가느냐 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주체인 나의 선택과 자유에 달려 있다. 그 누구도 나를 대신해 내 인생을 선택하거나 살아 줄 수 없다.
모든 결정을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은 채 순전히 내 판단으로 내려야 하고, 그 결정이 정당하다고 판결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 결정이 잘못되었을 때 그건 내 책임이 아니라고 변명할 여지가 전혀 없는 것, 이것이 바로 대자적인 삶이다. 이것이 자유다. 그 자유를 분명히 느끼게 될 때 우리는 심한 불안을 느낀다. 자유에 눈 뜨는 것은 인간에게는 언제나 크나큰 고통이다.
실존주의가 우리에게 주는 불안감이다. 그러나 동시에 빛나는 희망이기도 하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고, 나는 뭐든지 내 뜻대로 할 수 있으므로.

인간은 언제나 미래를 향해 초월적 운동을 하는 대자적 존재이지만 이 초월성을 포기하고 과거에만 고착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존재는 대자존재가 아니라 사물과 같은 즉자존재가 되는 것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움직여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이고, 그런 초월적 운동 속에서만 진정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세계를 소유할 수 있는 것은 그 세계에 참여하여 거기에 어떤 흔적을 남겨 놓을 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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