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식스 센스 DTS
브에나비스타 / 2002년 11월
평점 :
품절
극장에서 본 영화를 다시 보았다. 어느새 8년이 지났다는 것이 놀랍다. 새삼 시간이 빠르다는 것을 느끼면서 이제는 말콤 박사의 입장에서 드라마를 보게된다.
1. 말콤박사(브루스 윌리스)는 아동 심리 전문가로 정신적 위기를 겪고 있는 아동을 돕기 위해 자신의 삶을 송두리채 바친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풀지 못한 케이스가 있어서 책임감을 통감하고 있다.
2. 그러다가 극심한 공포와 자해의 흔적을 안고 살아가는 콜을 만난다. 콜은 말콤박사를 믿지못하고 말콤박사 역시 콜의 진실을 보지 못한다.
3. 아내와의 관계가 파탄지경에 이르고 콜과의 상담도 진전이 없자 포기하려는 말콤박사. 말콤을 다시 시작하게 하는 장면이, 이 영화 최고의 명장면인 동전 장면이다. 콜은 호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말콤에게 돌려준다. 이것은 (말콤 박사를 꺼려하는 콜의 마음을 열기위해) 말콤 박사가 동전 마술을 보여줬던 때를 상기시킨다. 이제는 오히려 콜이 말콤박사의 마음을 열기위해 바로 그 동전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동전 옮기기 마술에 빠져드는 것은 마술사의 몸짓언어를 믿어주기 때문이다. 그의 몸짓언어를 믿지않는 한 우리는 마술의 드라마를 보지못하며 사실의 세계만을 추적할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말콤 박사의 마술이 또는 친구에게 보여주는 콜의 마술이 성공하지 못한 것은 서로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 였다. 즉,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려는-- 그들의 몸짓의 드라마를 보려는-- 마음이 없어서였기 때문이었다.
"당신은 날 믿지도 않는데 어떻게 마술이 일어나겠어요? 세상에는 진정한 마술도 있어요." 울먹이는 콜. 콜의 진심어린 말에 마음을 열기 시작한 말콤박사는, 콜을 정신분열 환자라고 단정한 자신의 판단을 거두고 새로운 눈으로 상황을 해석하기 시작한다. 말콤 박사가 상담가로써 한 단계 비약하는 부분이다. 그렇다! 사람의 삶이 변화하는 것만큼 커다란 신비, 커다란 마술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삶의 변화는 서로를 믿고 마음을 여는 체험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참고로 여기서 상당히 흥미로운 사실을 소개한다. 최근에 읽은 에리히 프롬의 [희망의 혁명]에선 특이하게도 빙의현상을 잠시 다루고 있다. 이 책은 1968년도에 씌여진 책인데 책의 중간쯤에 "진지한 정신분석가들은 대부분 혼령에 의한 빙의현상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해석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라는 내용을 고백하고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 일까?
4. 동전에서 보듯이 영화는 가지가지 단서들이 유기적으로 잘 조화되어 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잘 짜여져 있다. 그리고 상황도 무척 절묘하다.
예를 들어 말콤 박사가 콜이 유령을 본다는 사실을 확인해 보기위해 실패한 자신의 환자의 테이프를 듣게되는 장면도 하나의 단서이다. 결국 듣게 되는 것은 "나는 죽고 싶지 않아"라고 절규하는 목소리이다. 결국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는 것은 사람이나 유령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이 점이 매우 중요한 실마리인데, 테이프 속의 유령이 절규한 "나는 죽고 싶지 않아"라는 말 때문에 말콤 박사는 콜에게 "유령은 너를 해치려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려고 나타나는 거야."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유령이 흉칙하고 폭력적으로 보일지라도 아픈 상처와 억울함을 지니고 있어서 이승을 헤매는 것이고, 그것을 호소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콜이기에 그의 주변을 배회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것이 말콤 박사가 콜에게 들려준 사실이다.
5. 유령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된 콜이 그 동안 두려워 했던 존재인 유령과 대화를 나누게 되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 동안 고통과 고독만을 안겨주었던 유령을 보여주는 눈은 새로운 진실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깊고 투명한 성찰의 근원이 되었다. 이러고 보면, 성경에 나오듯 인간이란 불완전함 속에서 신의 완전함을 드러내는 존재인 것일까?
후반부의 연극에서 콜이 엑스칼리버를 바위에서 뽑는 장면은 그래서 무척 상쾌하다. 그동안 콜을 괴롭히던 친구는 극 중에서 외친다. "아니, 저런 누추한 마굿간지기가 어떻게 저 칼을 뽑을 수 있겠습니까?" 이때 낭낭하게 울려퍼지는 대사가 인상적이다. "오직 투명한 마음을 가진 자만이 저 칼을 뽑을 수 있나니라."
아마도 나라면 이런 대사를 덧붙일 것 같다. "그런데 자신의 고통과 손잡는 사람만이, 자신의 두려움과 대화하는 사람만이 투명할 수 있나니라." 그러고 보면, 이런 사실은 무척 놀라운데, 단지 재미있는 귀신 영화라고 생각했던 이 영화가 자기 성찰을 통한 에고의 극복 드라마로 새로 읽혀지기 때문이다.
6. 물론 이 영화에는 특별한 반전이 있다. 그걸 말하지 않기위해 나는 리뷰를 여기서 마치려 한다. 그런데 그전에 또하나 사소하게 얻은게 있어서 소개한다. 콜이 마지막으로 어머니에게 자신이 유령을 볼 수 있다는 걸 밝히면서 "Do you think I am a freak?"이라고 묻는 부분이 있다.
나는 문득 작년에 읽었던 [괴짜 경제학Freakonomics]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적어도 이 영화 속에서 freak은 '괴짜'랄지 '유별난' 정도의 단어는 아니다. 개성적이라는 뜻보다는 정신이 돌은, 정신 병자에 가까운 말이다.
그렇지만 참다운 freak, 영화 속의 콜이 도달한 freak이란 [미치면 미친다]의 '미친'에 해당한다. 사물의 거죽을 뚫고 진실을 보는 것이야말로 freak이고 참으로 미친 것이 아닐까? 도올 선생님도 언젠가 미치다는 말을 풀면서 You have to arrive there 라고 한 적이 있다. 진실 속으로 핵심으로 도달해야 한다고 하셨다. 아! 그 곳에 도달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