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광쉬즘 - 마광수 아포리즘
마광수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마광수 선생님은 외설 작가로 구속되어 감옥살이를 하셨다.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가 보다 한다. 외설 잡지 [허슬러]의 사장 래리 프린트가 떠오른다. 그는 휠체어에서 소리쳤다. "전 쓰레기같은 사람입니다. 그래도 미국이라면 저를 가두어서는 안됩니다. 저 같은 놈이 대접을 받을 때만이 미국에 있는 어떤 불우한 처지의 인간이라도 자기 말 하면서 떳떳하게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제가 멀쩡하게 잘 사는 것이 미국이 민주주의 국가라는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잘 기억은 안 나는데 대충 그런 의도의 말이었던 것 같다.)

마광수 선생님은 소설인 [즐거운 사라]때문에 감옥엘 갔다. 마 선생님은 래리 프린트보다는 훨씬 윤리적이고 고상한 분인데 말이다. 원조교제를 밥먹듯하는 특권층은 대로를 활보하는데 자신의 욕망과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자는 이야기를 하다가 끌려갔다. 이런게 민주주의일까? 그때가 1992년이니 87년 6월을 지나 진정한 시민사회의 도래를 자축하던 때였다. 문화적 편협성은 정치의 후진성보다 더 단단한 것인가?

그럼 이쯤해서 마광수 선생님을 만났다 치고 물어보자. 선생님, 그 놈의 야한 정신이라는 게 뭡니까?

"나는 계속 '야한 정신'을 주장해왔다. 야한 정신이란, '정신보다는 육체에, 과거보다는 미래에, 국수주의보다는 세계적인 보편성에, 집단보다는 개인에, 질서보다는 자유에, 관념보다는 감성에, 명분보다는 실리에, 획일적 교조주의보다는 자유분망한 다원주의에 가치를 두는 세계관'을 말한다."(13쪽)

"야한 것은 어린아이처럼 솔직한 것이다. '야하다'를 나는 '동물적 본능에 정직하다'로 정의한다."(19쪽)

그러면 야한 정신에 의해 입각한 [즐거운 사라]사태를 본인은 어떻게 보십니까?

"소설 [즐거운 사라](1992)로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외설 작가 구속'이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을 당했다. 권력과 법의 횡포로 인해 금쪽같은 40대를 우울증으로 보내야 했다."(13쪽)

"[즐거운 사라]의 '사라'는 1992년에 혼전 순결의 자진 파괴, 동성애, 카섹스, 오랄섹스, 비디오 섹스(?), 교수와의 정사, 트리플 섹스 등의 이유로 걸렸다.지금 생각해 보면 싱겁디싱거운 것들이다."(22쪽)

"[즐거운 사라] 재판 때 검찰측 감정인으로 나온 서강대 이태동 교수는 [즐거운 사라]의 '사라'가 끝까지 반성(자신의 '프리 섹스'에 대한)을 안 한다고 펄펄 뛰고 있다.....[즐거운 사라]의 '사라'는 마지막 대목에서 전혀 반성하거나 파멸하지 않는다. 그녀의 프리섹스가 계속 '즐겁다'. 그래서 제목이 [즐거운 사라]이다."(18쪽) 

"내가 지금까지 해온 작업의 내용을 한마디로 줄인다면 그것은 '통념'에 대한 저항이 될 것이다. '저항'이란 말이 너무 상투적으로 들린다면, 그것을 '반란'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로 바꿔놓아도 좋다. 하지만 내가 한 '반란'은 쿠데타적 성격을 가진 폭력적 반란이 아니라, 문학을 통한 '즐거운 반란'이었다. 내가 [즐거운 사라]라는 소설 제목을 만들어낸 것도 '즐거운'이란 단어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성이나 진한 사랑 얘기만 나오면 모두 우울하고 비극적인 결말로 끝내며 작가의 '음란성'을 변명하는 게 나는 보기 싫었다. 그래서 나는 '즐겁게' 야하고, '즐겁게' 통념에 반항하는 '즐거운' 여자를 그려보고 싶었던 것이다."(47쪽)

이쯤해서 이렇게 영민하고 합리적이신 마광수 선생님께서 성욕과 섹스를 중시 여기시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성욕이 왜 그렇게 중요한겁니까?

"참된 민주주의가 자유와 다원을 기반으로 삼는다는 것을 떠올려 볼 때, 인권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간주되는 성적 자유는 더 이상 그저 동물적이고 시시한 욕구 충족에 그치지 않는다. 조금 과장해서 얘기하자면 이런 것이다. 그대의 배꼽 아래가 원하는 것을 부정하지 말라. 그것이 곧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촉매제로 발화할 것이니, 그대의 성욕이야말로 참된 정치의 원동력이 되는 게 아니냐!"(27쪽)

"관능적 쾌락을 철저히 배격했던 고대 그리스의 스파르타가 비할 데 없이 잔인하고 비겁한 병영국가, 후세에 아무것도 남겨주지 못한 하잘것 없는 사회였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유의 억압과 개성의 말살은 권위주의적 독재권력에 의해서만 자행되는 것이 아니다. 한 사회의 도덕문화가 억압적일 때도 자유는 질식되고 만다. 정치투쟁이 격화되고 관념 우월주의가 팽배할 때 '인성의 황폐' '인권 경시' '개성 억압'의 풍토가 생겨나는 데, 이럴 때 유미적 쾌락주의는 근본적 해열제 구실을 해줄 수 있다."(29쪽) 

*** 끝으로 이 글의 끝을 장식하는 멋진 글귀를 찾아냈다. 그리고 부탁하건대, 지금까지의 인터뷰에 공감하셨다면 직접 책을 읽어보시길 바란다.  아주 경쾌하고 재미있는 글이다.

"나는 섹스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핥고 빤다."(46쪽)

 


댓글(3)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잘코군 2006-11-13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므핫. 마지막 문구가 정말 압권입니다. 이거 보고 싶군요. 추천.

하늘연못 2006-11-24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문열과 김용옥](강준만 저)을 보니 204쪽에 마광수 선생님의 인터뷰 내용이 나오네요. 그 중 두 가지를 참고로 인용합니다. 질문으로 하면 선생님은 소설을 왜 그렇게 상스럽게 쓰셨습니까? 정도 되겠습니다.
(1) 우리 나라 지식인들은 '가벼움'을 '경박함'으로 그릇 인식하는 경우가 많고, 설사 경박하다고 해도 그것이 '의도된 경박성'이라는 것을 아는 이가 드물다. 소설 문장에 사용되는 단어가 일상어 또는 비속어일 경우 흔히들 그런 인상을 받는 것 같다. 우리 나라는 예전부터 한문을 숭상하고 우리말을 폄하해서 보는 습관이 지식층에 형성돼 있기 때문에 이를테면 '핥았다','빨았다' 등 순 우리말을 구사한 표현은 쉽사리 조악하고 경박한 표현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그래서 성희 묘사의 경우 대체로 빙둘러 변죽을 울리고 한자어를 많이 쓰는 문장이 더 품위있는 문장으로 간주되고, 직설적인 구어체의 문장은 상스럽고 천박한 문장으로 간주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2) "내 경우에는 의도적으로 천박하게 표현했어요. 이유없이 그렇게 썼겠어요. 문학의 품위주의, 양반주의, 훈민주의 이런 것에 대한 반발이지. 우리 나라에선 아무리 야한 소설을 쓴다고 해도 어법이나 전체적 틀은 경건주의를 유지하려 애를 쓰고 꼭 결론에가서 권선징악적으로 맺는다거나 반성을 한다거나 그런 식으로 글을 맺잖아요. 저는 그런 것에 대한 반발로 사라를 부각시키려고 했어요. 우리 나라 소설에 사라 같은 여자가 있나요. 다 자살하거나 반성하거나 그러지."

하늘연못 2006-11-24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 선생님은 언젠가 [교수님들, 학생은 '아랫사람'이 아닙니다]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 글에 부끄럽지 않게 교수 생활을 하신 듯 한데요. 책[이문열과 강준만]210쪽에는 마 선생님을 지켜본 이야기가 쓰여있는데 감동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흔히 교수라고 하면 떠올리는 단아한 학자풍은 아니지만, 열정을 가지고 자신의 일에 치열한 연구자의 모습을 대하는 것이다. 빈수레가 요란하다는 옛말이 여지없이 빗나가는 풍경에 당황하는 것은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길을 다니다가 인사하는 학생에게조차 항상 깍듯하게 허리를 굽히곤 하는 그의 인사에 당황을 넘어선 황송스러움을 경험해야 하기 때문이다.....이 연구실에서는 그의 연구나 집필에 방해되는 시간만 아니면 학생들은 거의 무제한의 자유를 누릴 수 있으며, 그는 연구실을 방문하는 항생 모두에게 항상 친절하다. 손님이 있거나 바쁜 작업이 있어 문 앞에서 돌려보내야 할 때조차도 한결같은 미안함을 최대한 표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