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빈치 코드 1
댄 브라운 지음, 양선아 옮김, 이창식 번역 감수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제가 이 소설에 별 다섯개를 못주는 건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이만큼 팔았으니 개정판 좀 내주시라'는 의미에서입니다. 책에서 루브르 박물관의 구조나 로슬린 예배관의 모습, 암굴의 마돈나 그림이나  최후의 만찬 그림은 무척 중요한 배경입니다. 그런데 책에는 어떤 그림이나 사진도 없습니다. 물론 다빈치 코드 공식 싸이트가 있어서 몇몇 사진을 볼 수는 있지만, 아예 몇장의 사진이나 그림을 책앞에 달아놓으면 책도 품위있어지고 독자들도 이해가 잘되어서 좋을 것 같다는 게 제 바램입니다.( [일러스트레이티드 에디션]은 너무 비싸서 대부분의 독자에게는 그림의 떡입니다.) 

개정판을 내야하는 또다른 이유는 몇몇 번역이나 글씨투를 바로잡아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에서 입니다. 경영학과 출신의 양선아 선생의 번역을 다시 경영학과 출신의 이창식 선생이 감수하셨다는데 제대로 감수는 하신것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책의 내용상 당연히 종교학 동네에서 자문을 얻어서 꼼꼼한 번역을 해야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사실 이 책은 주된 전개가 신화학과 기호학을 축으로 전개됩니다. 그렇다면 애초부터 이윤기 선생님처럼 신화학에 밝은 번역자를 택해야 했다고 봅니다. 아시다시피 이윤기 선생님은 훨씬 난해한 소설 [장미의 이름]을 훌륭한 번역으로 선보이시고, 다시 개정판을 내셨습니다. 그런걸 생각해 볼때 이 번역본은 돈냄새만 풀풀나는 아쉬운 책입니다. 이 아쉬움은 2권의 마지막에 나오는 번역자의 말로 완결됩니다. 별로 애정이 없는 책을 이런저런 이유로 번역한 사람이 무성의하게 채운 말로 끝난다는 게 굉장히 서운합니다.

책머리에서 저자인 댄 브라운은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책을 마칠수 있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비해 이 책의 번역이 너무 거칠다는 것은 저만의 생각은 아닐 것입니다. 물론 출판이 성공적일지 아닐지 모르는 단계에서야 그렇게 공을 들이기 힘들지만 제가 보는 책만해도 2004년 처음 책을 찍은지  1년만에 36쇄를 찍고 있으니, 이제는 독자들의 권리도 존중해줘야 될 때 아닌가요?

소설책의 리뷰를 쓴다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줄거리를 요약하기도 그렇고 어쩌다 중요한 결말을 암시한다면 다음에 읽는 독자들께 큰 무례와 폭력을 행사하는 일일 터이니까요.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쓴다는 건 이렇게 즐거운 독서를 마친 저로서는 서운한 일입니다. 제 앞에 있는 여러 리뷰를 보고 저 나름대로 느낀 점을 몇 가지 적어보는 걸로 마치고자 합니다.

우선, 소설책이라는 건 허구이고 상상력 속에서 논다는 게 기본 전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피라미드는 666조각이 아니라는 둥, 최후의 만찬 속의 예수 옆에 있는 사람은 남자라는 둥 호들갑을 떠는 리뷰가 있는데  억장이 무너집니다. 'Just Feel It!  좀 머리를 비우시기 바랍니다. ' 물론 저는 이 책의 90%는 신빙성이 있고 오히려 픽션이 적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반대로 이 책의 99%가 비열한 사기며 1%쯤 봐 줄만 하다고 생각하신다면 그렇다고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기를 바라시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저자인 댄 브라운을 딴지걸기 좋아하는 주일학교 학생정도로 생각하는 건, 거꾸로 자신의 상식이 그 만큼 편협된 건 아닌지 돌이켜 보시라는 메아리로 돌아갑니다. 소설은 픽션이고 이야기니까 그 과정 속의 즐거움을 나눌 여유가 필요합니다. 허구란 경직된 현실에서 나와 자신을 돌이켜 보게하는 힘을 주고 꽉막혔던 숨통을 틔우는 자유를 줍니다. 그런데 그걸 원천 봉쇄하시겠다구요. 늘상 비유나 은유로 사람들을 성찰하게 하셨던 당신들의 선생님을 먼저 유심히 보시기 바랍니다.

생각해보니, 몇 년전 읽은 오쇼 라즈니쉬의 신약성경 해설집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너무 슬픈 얼굴로 그린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예수는 잔치집에 종종 나타난다.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을 행하는 예수는 술꾼인지도 모른다. 아마도 예수는 잔치집에서 술도 마시고 노래도 하고 얼굴이 붉그죽죽해서 춤도 추고 그랬을것이다." 이걸 익살로 받아들여야 할지,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너무 성경을 단편적으로 또 내 자신의 선입견만으로 바라보지는 않았는가?'하는 반성이 일었습니다. 어떤 교인이 예수가 장가갔다고 기독교를 팽개칠것을 고민하신다면, 도대체 그 교인이 무엇을 믿고 있었는지 심각하게 고민 좀 해보시기 바랍니다. 

둘째, 이 소설이 지루하고 이해 안된다는 불평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사실 이 번역본 자체가 독자들의 이해를 도와줄 그림이나 사진을 삭제한 것도 뭔가 밋밋한 지루한 책으로 느끼게 하는 것 같습니다 . 그러나 근본적으로 생각해보면, 유명하다고 해서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는 없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이 무언가 독자를 끄는 힘이 있다면, 기독교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는데 그것이 깨져가는 데서 오는 충격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최초의 지식이 없는 사람은 무척 지루한 여행을 하게 되는 셈입니다. 반면 다빈치나 기독교에 대한 약간의 상식과 교양이 있다면-제가 뭐 그런걸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생각해보면 약간이면 되는거 같습니다.-이 책은 이곳 저곳 여기 저기에서 탄성을 유발시키는 재미있는 장면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무겁지도 않고 경쾌하면서 재미는 있는, 바나나 보트를 탄 듯한 느낌을 주는게 이 소설입니다.  

셋째, 이 소설이 헐리우드 영화같은 속물근성의 작품이라는 리뷰인데, 공감합니다. 이 경우 리뷰의 말씀은 줄거리가 뻔히 짐작이 되고 인물들이 평면적이라는 지적을 하십니다. 그런데 이 경우 독자들은 너무 인물 중심의 사건 전개에 집착하고 계시지는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물 중심으로 볼 경우, 저 자신도 이 소설의 인물이 무척 평면적이라는 생각이 들고 사건도 종종 007시리즈처럼 진부하고 도식적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주요 캐릭터인 소피나 실라, 브쥐 파슈 국장 등등 캐릭터가 들쭉날쭉하고 어느 경우는 색깔이 없습니다. 그냥 사건에 따라 존재할 뿐이죠. 그러고 보면 100년전의 셜록 홈즈가 훨씬 뛰어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그러나 예를 들어, 영화 [트루먼 스토리]를 보면, 우리는 짐 캐리가 결국 자유를 쟁취하리라 저 불쌍한 몰래 카메라에서 벗어날거라 예상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영화제목이 true man이기 때문에 설마 저렇게 살다가 끝나지는 않겠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추측이 맞았다고 해서 뭐 대단한 걸까요? 영화 보기는 그 결말을 향해 문제를 풀어가는 트루먼을 지켜보는 과정이고 그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다빈치 코드]를 '결국 남녀가 결국 사랑하게 될거야'라는 생각으로 보신다면 어떨까요? '결말이 빤하다'라고 리뷰를 쓰신 분들은 너무나 얇게 읽고 계시지 않나 생각됩니다. 이 소설은 인생이란 무언가를 찾아가는 과정이며(무언가는 책으로 확인하십시오) 그렇게 살아가는 고비고비 만나는 모든 것은 영원과 통하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고 봅니다. (제가 대충 얼버무리는 것의 고충을 이해해 주십시오.)  

끝으로, 저도 이 소설을 보다가 '신성한 여성을 강조하는 소설 속의 여주인공 소피가 왜 이렇게 존재감이 빈약한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소설은 소피만 빼고 모두다 남자들로만 채워진 듯 보입니다. 정말 치명적인 약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니, 신성한 여성을 억압해온 교회를 그리는 소설을 쓰면서, 소설자체가 남자가 풀어가는 이야기= history라니! 그런데 꼼꼼히 보면 댄 브라운은 이성적인 남자 로버트 랭던이 마지막 퍼즐을 풀지못할때 소피를 만나 구원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한계에 다다른 남자들의 시대는 신성한 여성을 만나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소피가 마지막 하는 말은 이렇습니다."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은 피렌체에서 당신을 만나는 거예요." 로버트 랭던은 그 일주일동안 일을 안하고 뭐하냐고 묻죠. 이성, 논리, 일, 업적, 성취-이런게 다 남성들의 가치 아닙니까? 그런데 소피가 원하는 것은 그게 아닌거 같습니다. 그때 저자 댄 브라운이 뭐라고 표현하냐면 이러죠." 소피는 몸을 내밀어 랭던에게 다시 키스했다. 이번엔 입술이었다. 처음엔 부드럽게, 그러고는 두사람의 몸이 완전히 포개졌다." 남녀 합일을 통한 존재의 고양을 표현한 거죠. 소피라는 여성의 존재는 이성적이거나 남성적인 존재가 아닌 또 다른 존재이기에 랭던이 문제를 풀어낼수 있게 하는 힘이 있는 거겠죠. 새로운 문제해결의  방식은 "우리가 성배를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성배가 우리를 찾아온다"는 표현으로 절묘하게 나타납니다. 아마도 이 소설의 핵심을 꼽는다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에이, 이런걸 쓴다는게 너무 죄책감이 드는데, 하도 헛다리 짚는 분이 많으시니 이런걸 다 풀어 씁니다.)

저는 몇년만에 모든 걸 잊고 독서에 푹 빠져 보았습니다.  이제 책에 물음표 해둔 부분을 한번 찾아 보아야겠습니다. 우선은 '템플 기사단'이나 '프리 메이슨'이 무언지 부터 찾아 볼 생각입니다. 여하튼 [다빈치 코드]는 정말 재미있는 책이니 일독을 권합니다.

PS. 아참, 책 읽는 내내 자신의 역사와 종교 속의 이미지와 상징으로 책 한권을 만들어실컷 즐기는 서양인들이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빨리 끝나는 게 너무 아쉬웠구요. 영화 [다빈치 코드]의 개봉을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반대한다는 우리나라에서 이젠 [천사와 악마]를 볼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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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란1 2006-05-28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못님 서평이 참 시원스럽군요. 저는 천주교 신자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영화상영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책을 읽어본 분들이라면요. 예수의 신성을 해치거나 기독교를 폄하했다는 느낌이 안 들거든요. 오히려 종교예찬 쪽이아닐까요?

하늘연못 2006-09-09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년이 지난 리뷰를 보니까 제가 좀 뻔뻔했었다는 생각, 편협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언가 사로잡혀서 마구 소리친 느낌인데 이 어색하고 길기만한 글을 읽고 추천까지 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댓글 달아주신 석란1님께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패러디가 꼭 원본에 대한 훼손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오마쥬일수도 있죠. 적어도 관심의 소산이라는 면에서도 애정 비스무리한 무어라고 생각됩니다.'

하늘연못 2007-04-14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진실이 어디까지인가는 궁금해 여기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다빈치 코드 비판서를 몇 권 읽고 있는데요.물론 소설 [다빈치코드]를 까고 기독교를 옹호하려는 생각이 아니라 순수한 호기심 때문입니다. 영화 [달콤한 인생]식으로 말하면 이런거죠. "내가 속는 것은 싫어하지않냐? 속아서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야."
최근에 읽은 [예수는 결혼하지 않았다]가 번역상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좋은 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의 역사에 애정을 가지신 분이라면 일독을 권할만 합니다. 다음엔 유명한 변신론자인 리 스트로벨의 책을 읽어보려구 하고 있습니다.국내에 번역된 [예수는 역사다]가 워낙 좋았기 때문에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또 국내 비판서로는 라은성교수님의 [다빈치 코드의 족보]라는 책을 보고있습니다. 라교수님은 국제신학대학교에서 교회사를 가르치시는데 굳이 책을 안보시려는 분이라면 인터넷상으로는 www.eunra.com으로 들어가시던지 아니면 동영상에서 라은성을 치시면 다빈치 코드를 반박하는 내용을 볼수 있습니다. 적어도 동영상 앞부분에서 [다빈치코드]의 핵심적인 논란거리 성배론과 예수 결혼설을 반박하는 부분은 볼만 했습니다. 후반부는 기독교 변호쪽이라 그리 즐겁진 않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