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 사라지지 않기를

 

  세상의 나무 : 겨울눈에서 스트라디바리까지, 나무의 모든 것

  라인하르트 오스테로트   모이디 크레치만 그림   이수영 옮김

  돌베개  2015년 01월 26일

 

 

 

 

 

 

 

 

 

 

 

 

우리가 생활하는 데 나무는 아주 많이 쓰인다. 나도 처음에는 그런 생각 못했는데 책을 보다보니 그렇구나 했다. 가장 많이 쓰인 건 가구다. 집 안을 한번 둘러보라 나무로 만든 가구가 많이 보일 거다. 책이 된 종이도 나무로 만들었다. 나무로 만든 책장에 나무로 만든 종이책을 꽂는다니 재미있다. 책 제목이 《세상의 나무》여서 조금 기대했는데,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것보다 이 책 볼 때 졸려서 제대로 못 보기도 했다(이런 변명을). 어쩌면 내가 보고 싶은 것은 이게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안 본 것보다 본 게 좀 낫겠지. 집중하지 못한 건 아쉽지만. 책이 두껍지 않아서 많은 게 실리지 않았으리하고 짐작했다. 책을 보기로 한 건 제목에 ‘나무’라는 말이 들어가서다. 평소에 나무를 알고 싶다 생각했지만 책은 거의 못 봤다. 어떤 책을 보아야 하는지도 몰랐다. 앞으로 ‘나무’라는 말이 들어가는 책을 볼까 잠시 생각했는데 정말 볼지, 생각으로만 그칠지. 이것도 기회가 와야 볼 것 같다. 며칠전에 다른 쪽 책을 가끔 봐야겠다 생각해서. 그것도 잘 모르는 거여서 무엇을 먼저 봐야 할지 모르겠다.

 

사람은 언제부터 나무로 집을 지었을까. 불을 피우고 땔감으로 쓴 게 먼저일까 비 바람 동물을 피하기 위해 집을 지은 게 먼저일까. 우리나라는 흙집, 나무집 두가지를 지었을까. 흙집이라고 해도 짚 같은 것을 넣고 기둥은 나무였을 것 같다. 우리나라 옛날에는 나무로만 집을 지었을까. 모든 것을 다 나무로 짓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앞에서도 말했는데). 바닥은 흙, 벽도 흙으로 발랐을지도. 조선시대에 큰불이 난 적이 있는 걸 보면 나무가 많이 쓰인 것 같기도 하다. 알프스에서는 통나무집을 지었다. 이런 집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듯할지도. 나무집은 숨을 쉬어서 곰팡이를 막는다. 젖었다 마를 때는 소리를 낸다고 한다. 그런 소리 밤에 들으면 좀 무서울지도 모르겠다. 장마가 가고 더운 여름이 오자 소리가 났다는 말을 소설에서 봤는데. 그 소설 속 나무집은 겨울에는 춥고 장마철에는 곰팡이도 피었다. 통나무집이 아니어서 그랬을지도. 집을 나무로 지으면 좋겠지만 그런 집 비싸지 않을까. 이런 생각부터 하다니.

 

나무는 집을 짓는 재료로 쓰기도 하고, 의자와 책상 같은 가구, 배, 악기도 만든다. 조각과 판화도 했다.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연료일까. 마루로 연료를 만들려면 거기에 높은 열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무엇으로 얻지. 나무 연료를 얻기 위해 다른 것으로 열을 내다니. 어쩌면 더는 쓰지 않는 나무를 태웠을지도. 자연에서 나는 나무를 써서 가구를 만들기도 하지만, 나무 판을 만들기도 한다. 그것을 파티클보드라고 한다. 버리는 나무 찌꺼기를 쓸 방법을 찾아낸 건 좋은데, 이제는 찌꺼기보다 멀쩡한 나무를 갈아서 만드는 것 같다. 다시 보니 통나무, 톱밥과 대팻밥, 나무 부스러기와 나뭇조각들로 만든다. 나무는 물에 뜬다. 사람은 나무로 배를 만들어서 바다를 건넜다. 나무로 배 만드는 이야기를 보니 <원피스>가 생각났다. 거기에 나오는 배는 거의 나무로 만들었다. 루피와 동료들이 처음 탄 배는 더는 탈 수 없게 되고, 프랑키가 새로운 배를 만들었다. 나무는 전설의 나무 아담이던가. 그러고 보니 혼자 바다에 나가려고(해적이 되기 위해) 배를 만드는 사람도 나왔는데. 배는 바닷가 가까운 곳이 아닌 산에 있었다. 그 배를 만든 사람은 배를 바다에 띄워 루피와 동료들을 도왔다. 그 뒤에 바다에 나가지 못한 것 같지만, 바다에 배를 띄운 것만으로도 멋진 일이다.

 

나무로 만든 악기 가운데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건 바이올린이라고 한다. 악기를 처음 생각해낸 사람은 누굴까. 갑자기 이런 생각을. 처음에는 그저 두드리지 않았을까. 악기라는 것을 만들어낸 사람 대단하다 생각한다. 그게 없었다면 좋은 음악이 많이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바이올린에서 가장 잘 알려지고 비싼 건 스트라디바리다. 첼로와 비올라도 있다. 그것과 같은 것을 만들려고 하고 곰팡이로 더 나은 소리가 나는 것을 만들었다고 한다. 나무로 만든 것 가운데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가진 것은 종이(책)일 듯하다. 컴퓨터를 쓰게 돼서 종이를 별로 쓰지 않으리라고 여겼는데, 어쩌면 더 많이 쓸지도 모르겠다. 종이는 한번만 쓰고 그냥 버릴 게 아니고 다시 살려 써야 한다. 그것을 만드는 데도 열이 많아야겠구나. 지금도 어느 정도는 다시 살려 쓰겠지. 세계 숲은 많이 죽었다. 나무를 베고 그 땅에 동물한테 먹일 것을 키운다. 나무를 베면 다시 그곳에 나무를 심어야 하는데. 나무도 하나가 아닌 여러가지를 심어야 한다. 숲이 없어지면 지구온난화가 더 심해지겠지. 그것 때문에 사라지는 나무도 있다. 아프리카에서 자라는 나무는 불법으로 거래 되기도 한단다. 사람이 살기 위해 숲을 지켜야 한다. 그렇게 하면 사람뿐 아니라 지구에 사는 모든 생물한테 좋을 거다.

 

나무가 어디에 쓰이는지, 나무로 알 수 있는 이야기도 있고, 길에서 주운 오래된 수납장을 고치는 이야기도 있다. 나는 책장 만드는 거 배워보고 싶기도 하다. 고치는 거하고 만드는 건 조금 다르구나. 오래된 가구 버리기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식으로 고치는 것도 괜찮겠다. 오래돼서 분위기가 좋아지는 것도 있고, 오래 쓰면 버려야 하는 것도 있다. 뭐든 시간이 흐르면 좋아지는 게 많으면 좋을 텐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사람과 사는 나무

 

  서울 사는 나무

  장세이

  목수책방  2015년 05월 10일

 

 

 

 

 

 

 

 

 

 

 

 

사람이 많이 살지 않았을 때 나무는 지금보다 훨씬 많았을까. 산에는 사람 발길이 닿지 않아 나무와 동물이 많이 살았겠지. 사람이 늘어나고 산에 사는 동물은 많이 줄어들었다. 이때 나무도 많이 베었겠지. 나무는 사람뿐 아니라 동물한테도 이것저것 준다. 이것저것이라고 했는데, 그게 뭔지 뚜렷하게 말하기 어렵다. 먹이나 살 곳을 주지 않을까. 사람은 나무로 여러가지를 만든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도 있지 않은가. 나무가 잘리고 남은 밑둥은 사람이 쉬게 해주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나무가 어느 정도나 있고 얼마나 사라졌을까. 우리나라 전체를 말하면 다 알기 어려울까. 《한국의 나무》(김진석 · 김태영, 돌베개)도 있던데 그 책을 보면 조금 알 수 있을까. 한번 보고 싶다 생각만 하고 아직도 못 보았다. 알았을 때 봐야 하는데 그러기보다 미뤄서. ‘한국의 나무’에는 훨씬 더 많은 나무가 나올 것 같다. 세상에는 사람도 많지만 나무도 많을 듯하다. 나무가 있어서 사람이 어떻게든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건 좀 지나친 생각일까. 나무가 많으면 공기가 좋고 여름에는 시원하다. 나무가 많은 산은 평지보다 온도가 낮다. 도시에 나무가 많으면 여름에 아주 덥지 않겠지. 도시는 나무 심을 곳이 그리 많지 않을지도. 언제가부터 건물 지붕을 뜰처럼 꾸미기도 했다. 말만 들었지 본 적은 없다. 서울에 그런 곳 많이 있을까.

 

서울 하면 어쩐지 나무와 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겠지. 서울에도 사람이 살고 나무 같은 식물이 살 테니까. 길가나 산, 공원, 궁궐에 말이다. 세 곳에 사는 나무를 이야기한다. 종류는 더 있겠지만 서른두가지를 말한다. 아는 나무도 있고 모르는 나무도 있다. 서울에 산다면 이 책에 나온 나무를 보러 가는 것도 재미있겠다. 칡은 없으려나. 옛날 사람이 칡뿌리를 캐먹기도 해서 보통 나무처럼 생긴 건지 알았는데 칡은 덩굴식물이다. 담을 다 덮은 사진속 칡덩굴은 얼마 뒤 사라졌다. 그렇다고 해도 뿌리까지 없애기는 어렵다고 한다. 산에서는 다른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햇빛을 가린다. 이런 칡 안 좋게 생각해야 할까. 어느 건물에는 벽을 덮은 담쟁이가 있다. 담쟁이는 괜찮은가. 무엇인가를 감고 올라 여름에 햇빛을 막아주는 것도 있다. 그것은 등나무다. 무주에는 등나무로 만든 운동장도 있다. 식물에 따라 보기에 좋은 것도 있고 사람한테 도움을 주기도 하겠지. 칡은 다른 나무가 자라는 것을 어렵게 하지만 사람한테는 여러가지 도움을 주었다. 먹을 게 없던 때 뿌리를 캐먹고 지금은 냉면이나 차와 엿을 만든다. 서울 사람들은 벚꽃을 보러 여의도로 많이 가겠지. 벚꽃은 여의도에만 있는 게 아닐 텐데. 정독도서관에는 멋진 벗나무가 있다. 내가 가 본 것도 아닌데 이런 말을 했구나.

 

나무는 그대로 자라게 하는 게 좋을까 정리해주는 게 좋을까. 이런 말을 했지만 그건 나도 잘 모른다. 자연에서 자라는 나무는 멋대로 자라지만, 사람과 가까이에서 자라는 나무는 가지치기를 하기도 한다. 길가에 심은 나무는 더하다. 자른다고 죽는 건 아니지만 어느 만큼 자라면 자른다. 잘랐을 때 모습을 보면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사는 곳에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가 많았는데 지금은 그게 동백나무로 바뀌었다. 왜 동백이 된 걸까. 언젠가 이것이 시 나무라고 한 말을 본 것 같기도 하다. 그런 건 대체 누가 정하는 걸까. 나는 지금까지 플라타너스라고 생각했는데 양버즘나무라고 한단다. 버즘나무라는 말은 알고 있었구나. 서울에 개나리가 핀 것을 말해주는 건, 서울기상관측소 앞마당에 있는 개나리다. 그런 것도 재미있구나. 다른 곳에 눈이 와도 서울기상관측소에 오지 않으면 첫눈이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은 뭐든 기준, 표준 이런 것을 정해둔다. 그것 때문에 놓치는 것도 많지 않을까 싶다. 아주 오래전 사람은 자연(하늘 바람 같은)을 보고 느낌으로 날씨를 알았을 것 같다(동물은 자연재해를 잘 감지하기도 한다). 그건 과학이 아니다 할지도 모르겠지만, 과학 때문에 기준이 생긴 걸까.

 

서울에 마로니에 공원이 있는데, 마로니에는 가시칠엽수다. 마로니에 공원에는 가시칠엽수보다 일본칠엽수가 더 많다고 한다. 가시칠엽수가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칠엽수가 뭔지 몰랐는데, 이것은 작은 잎 일곱 장이 모여 한 잎이 되는 거다. 본 적 있을까. 산에 나무를 많이 심는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나무마다 어떻게 자라는지 알고 심어야 한다. 안산시와 안산(산 이름)은 다른 곳이겠지. 이런 말을 하다니. 내가 서울에 살지 않고 아는 게 없어서. 예전에 안산에 나무를 많이 심었는데 그게 잘 안 됐다. 다른 건 생각 안 하고 그냥 심었다. 그런 일 다시는 없어야 할 텐데. 《나무를 심은 사람》에서는 나무를 그냥 심은 것 같은데. 나무가 아니고 씨앗이구나. 나무에도 씨앗이 생기는데 씨앗이 싹을 틔우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땅에 떨어진 씨앗은 새나 작은 동물 먹이가 되고 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싹이 하나도 나지 않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어떤 나무는 열두그루가 한그루처럼 자랐다(경희궁 느티나무). 그런 나무를 연리지라고 한다. 그것은 같은 나무여야 한다. 종류가 다른 나무가 한 곳에서 자라는 것은 혼인목이다(창경궁 느티나무와 회화나무). 연리지는 한 나무가 되지만 혼인목은 한 나무가 되지 않는다. 그런 것도 있다니 신기하다.

 

우리나라에는 소나무가 많았다. 지금도 소나무 많겠지만 많이 죽기도 했다. 일본에서 수입한 나무에 있던 재선충이 소나무를 죽였다. 재선충 없애기 어렵다고 한다. 그래도 없애서 우리나라 소나무가 없어지는 걸 막았으면 좋겠다. 구상나무는 제주도 한라산에서 자라는데 지구온난화 때문에 없어질 위기에 놓여있다고 들었다. 지리산에도 있는가보다. 그런 나무가 서울에서 산다니. 나무가 환경에 적응해서 다른 곳에서도 산다면 좋을 텐데(이 생각은 이 책을 쓴 사람도 했다). 구상나무를 개량해서 다른 나라에서는 크리스마스 나무로 쓴다. 그것을 우리는 다시 산다. 그런 일이 나무에 한한 건 아니다. 도시인 서울에서도 이런저런 나무가 사람과 함께 산다. 사람이 나무를 아끼고 살면 좋겠다. 아무 말 안 한다고 함부로 다루지 않기를.

 

 

 

 

☆―

 

내 것만이 옳고 내 것만이 더 낫다고 그것을 내세우는 순간, 상대는 상처를 입습니다. 자신만을 위한 언행은 결국 칼이 되는 법이니까요. 그게 되풀이 되면 어느 날엔가는 텅 빈 옆자리를 보게 될지도 모를 테고도. 부딪히면 비껴가고, 비껴가지 못하면 아예 내 가지를 꺾어야 합니다. 그것이 다른 종 두 사람이 한데서 살아갈 수 있는 길 아닐런지요. 하니 명심하십시오. “내 가지를 꺾어라!”  (333쪽)

 

 

 

 

 

 

 

소설 잘 읽어내고 그 느낌을 쓰고 싶다

 

 

 

 

지난달에 친구님이 쓴 글을 보고 이 소설잡지 <악스트>를 알았어. 나는 한글로 썼지만 책 제목에 쓰인 건 ‘Axt’였어. 이 말은 영어가 아니고 독일말인가봐. 카프카가 쓴 말로 도끼를 나타내. 난 카프카가 한 말 안 지 얼마 안 됐어. 카프카는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는 말을 했더군. 카프카를 잘 알고 소설 많이 본 사람은 이 말 벌써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네. 카프카 학교 다닐 때 잠깐 들어봤지만 소설은 본 적 없어. 몇해 전에 평전을 보고 카프카가 어땠다는 걸 조금 알았어. 그 뒤에도 소설 못 봤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서 선뜻 보지 못한 거야. 이것을 보다보면 언젠가 카프카 소설도 볼 날이 올지. 그건 나도 모르겠어. 카프카 소설뿐 아니라 어려운 소설은 잘 안 보기도 해. 내가 가장 많이 보는 게 소설이지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예전에는 잘 몰라도 보기는 했는데, 책을 보고 뭔가 써야 한다고 생각한 뒤로는 어려운 건 피하게 됐어. 이런 말 처음 하는 건 아니군.

 

‘Axt’라는 말을 처음 봤을 때 어떻게 읽는 걸까 하고, 영어라고 생각한 듯해. 책소개를 보니 책값이 싸고 읽어볼 만한 글도 있는 것 같아서 한번 보기로 했어. 문예지 같은 건 소설책 만한 크기여서 이것도 그렇지 않을까 했는데, 받아보니 크더군. 잡지 크기야. 그러고 보니 이것을 소설잡지라고 하는군. 문예지에는 소설뿐 아니라 여러가지 글이 담겨있지만, 여기에는 오로지 소설과 소설 이야기만 담겨있어. 아니 소설이 아닌 것이 아주 없는 건 아니야. 이렇게 말하는 건 내가 이것을 봤다는 말이군. 내가 읽는 책 목록을 쓰는 수첩에 이것을 쓸까말까 하다가 썼어. 그렇게 쓰니까 처음부터 죽 읽어가더군. 쪽수가 얼마 안 되니 이틀 동안 죽 보면 다 볼 수 있지 않을까 했어. 지금까지 나는 잡지 별로 안 봤는데, 예전에 PAPER만 좀 오래 봤군. PAPER는 그냥 보기만 했지만, 이것은 다 보고 뭔가 남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도 했어. 값에 견주어 잘 만들어진 책이야. 이렇게 싸게 팔아서 남는 게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이러다 시간이 흘러서 비싸지는 거 아닐까. PAPER도 처음에는 그냥 주는 거였다가 값이 붙고 시간이 흘러서 값이 오르기도 했어. 그때 잡지 만드는 거 그렇게 쉽지 않다는 걸 듣기도 했군. 많은 잡지가 나오지만 오래 가는 잡지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도. 이건 다른 건 없고 소설 이야기만 해서 사람들이 더 안 보는 거 아닐지. 이제 첫번째가 나왔는데 이런 말을 했군.

 

우리나라 소설 이야기만 있을까 했는데, 그게 그렇지도 않아. 우리나라 소설과 다른 나라 소설을 읽고 글을 썼더군. 나도 그런 것을 쓰니 작가는 그런 글을 어떻게 쓸까 하는 생각으로 봤어. 그것을 보니 내가 쓰는 걸 글이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하지만 작가가 쓰는 것처럼 쓸 수 없을 듯해. 그것도 뭔가 알아야 그렇게 쓰지. 나는 비평을 어떻게 쓰는지 잘 몰라. 비평 이론이라고 할까. 그런 거 말이야. 그런 것도 책이 있을 텐데 거의 못 봤어. 그런 거 몰라도 내 느낌을 좀더 잘 써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책을 잘 못 봐서 그런지 그렇게 못할 때가 더 많아. 예전에도 생각했지만 책을 잘 읽어내야 뭔가 쓸 수 있겠다 싶어.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보고,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하는 것도 괜찮지. 요즘 시를 많이 보라는 말이 나오기도 하는데, 시뿐 아니라 소설도 좋다고 봐. 이런 말이 아주 없는 건 아니군. 소설도 고전을 보라고 하는군. 여기에도 고전을 보고 쓴 글이 있어. 《클레브 공작부인》(라파예트 부인)이야. 이 책을 보고 글을 쓴 사람은 이 소설을 프랑스말로 보면 더 좋다고 하더군. 영어도 잘 모르는데 프랑스말이라니. 고등학교 다닐 때 제2외국어로 배웠는데, 처음에는 재미있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재미가 떨어졌어. 이건 영어도 마찬가지군. 난 아무래도 꼬부랑말은 잘 익히지 못하는가봐. 아니 자주 들으면 조금 익숙해질지도 모르겠지만. 일본말은 자주 듣지만 다른 나라 말은 자주 못 듣는군. 그다지 관심이 없어서겠지. 알파벳으로 이루어진 말 잘 아는 사람이 우리말로 잘 옮겨주겠지.

 

작가를 만나서 이야기를 듣기도 했어. 첫번째 작가는 천명관이야. 천명관 소설은 《고래》밖에 읽어보지 않았어. 이것을 본 지 오래돼서 거의 잊어버렸어. 재미있게 본 듯한데 다 알았다고 말하기는 어려워. 이 사람이 영화 시나리오를 썼다는 것은 이 글을 보고 알았어. 예전에 그 말 많이 했을 텐데 나는 그런 것을 못 봤네. 어쩌면 그건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닌데. 사람들이 시나리오 많이 썼으니 소설 쓰기 좋겠다는 말을 한다고 하더군. 나도 예전에 알았다면 그런 생각을 했을까.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예전보다 지금 좀더 넓게 보려고 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아직 멀었지만. 나이를 먹어서 좋아진 건 이거 하난가. 아니 늘 그런 것도 아니야. 여전히 마음이 좁아서 말이야. 또 샛길로 빠졌군. 문단이라는 게 썩 좋은 건 아닌 듯해. 그것도 꼭 회사 같아. 소설가는 좀더 자유롭게 자신이 쓰고 싶은 걸 써야 하지 않을까 싶거든. 선생님 눈치를 본다니. 그런 사람만 있는 건 아니겠지. 글만 써서 먹고 살려면 그럴 수밖에 없을까. 나도 잘 모르는데 이런 말을 했군. 그래도 자기 책을 낸 사람은 다 부러워. 내가 그런 걸 부러워하다니. 나는 책 같은 거 내지 못해도 뭔가 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더 많아서 말이야. 쓰지 않고 생각만 하는군.

 

책 이야기하다 내 이야기로 흘렀군. 여기에는 단편소설도 있고 장편소설도 있어. 단편에서 인상 깊은 건 김경욱의 <양들의 역사>야. 살아남은 자의 슬픔. 아니 슬픔이라기보다 미안함일까. 엄청난 일을 겪고 살아남은 사람은 차라리 그때 죽는 게 나았다 생각할지도 모르겠어. 언젠가 장기 이식수술을 받은 사람은 두번째 삶을 받았으니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하면 부담스럽겠다고 여겼는데, 살아남은 사람도 비슷할 듯해. 자기 삶을 사는 게 좋겠지. 바라보는 우리도 그렇게 생각하면 더 좋을 듯해.

 

소설을 재미있게 보기를 바라는 뜻으로 이런 책을 만들었다고 해. 앞으로 소설 재미있게 보도록 해야겠어. 잘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재미있게 보는 게 더 중요하겠어.

 

 

 

 

돌아온 그림자

 

 

 

1

 

내게는 그림자가 없다. 날 때부터 그림자가 없었던 건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내 발밑에서 그림자가 사라졌다. 언제 어디에서 없어진 건지 모르겠다. 아니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다. 그림자가 없다고 해도 사는 데 문제는 없다. 남들은 나한테 그림자가 있는지 없는지 별로 마음 쓰지 않는다. 나는 언제나 그늘에서 그늘로 옮겨다녔다. 그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어떤 만화에서는 누군가한테 그림자를 빼앗긴 사람이 햇빛을 쬐니 몸이 타서 사라졌다. 혹시 나도 그렇게 되는 건 아닐까 하고 시험해봤는데 아무 일 없었다. 그건 만화여서 그랬겠지.

 

 

 

2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그림자가 내게 돌아왔다. 아니 내 발밑에 있는 게 정말 내 그림자인지, 내 그림자처럼 움직이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냥 어쩐지 예전에 내 발밑에 있던 그림자와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하다. 한번은 달이 뜬 밤 밖에 나갔더니 그림자가 멋대로 움직였다. 그림자는 나를 따라와야 하는데 내가 가려는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려고 했다. 거기에 내가 이끌려 갈 뻔했는데 더 밝은 곳으로 가서 그림자가 보이지 않게 했더니 가만히 있었다. 그 뒤로 달이 뜬 밤에는 밖에 나가지 않는다. 나도 남들처럼 햇빛을 쬐고 돌아다니고 싶으니 말이다. 아무리 남이 나한테 그림자가 있는지 없는지 마음 쓰지 않더라도 우연히 그림자 없는 사람을 보면 무서워할 거다. 내 그림자가 아니라 해도 낮에는 멋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 내 그림자가 될지도 모른다. 잘 달래서 내 발밑에 붙어 있게 해야겠다.

 

 

 

3

 

어쩐지 내 진짜 그림자도 다른 사람 그림자가 되었을 것 같다. 아니면 예전에 끌려간 나무밑에 그대로 있을지도.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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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8 1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19 0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인 동주
안소영 지음 / 창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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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그리움)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별 헤는 밤>에서, 윤동주

 

 

 

몇해 전에 이정명 소설 《별을 스치는 바람》을 보았다. 이정명 소설 많이 읽었다고 말하기 어려운데, 이정명은 우리 역사에 남은 사람 이야기에 상상력을 덧붙여서 글을 쓴다. 여러 권이 그런 것이었던 걸로 안다. 그 안에는 시인 윤동주도 있다. 그게 바로 《별을 스치는 바람》이다. 윤동주는 우리나라가 독립을 맞은 해(1945) 2월에 감옥에서 죽었다. 이것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느냐 하면 나도 잘 모르겠다. 그저 일제강점기 때 시를 쓰고 일본으로 공부하러 간 시인으로만 알았던 것 같다. 윤동주가 1945년 2월에 죽음을 맞은 건 이정명 소설을 보고 머릿속에 새겨두었을지도. 그전에 내가 안 건 윤동주가 쓴 시뿐이다. 그때를 산 건 윤동주만이 아니기는 하다. 아주 많은 사람이 일제강점기를 살다 목숨을 잃거나 일본 지배에서 벗어나고는 북으로 간 사람도 있다. 조선이 막을 내리고 우리는 무척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을 보낸 사람이 지금 얼마나 남았을까. 그리 많지 않을 거다. 안 좋은 일은 빨리 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하지만, 세상에는 잊어야 할 일도 있지만 잊지 않아야 할 일도 있다. 잊지 않아야 하는 건 역사다.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는 아주 조금이다. 역사 시간이나 국어 시간에 윤동주 이름 듣고 시도 배웠지만 윤동주가 어땠는지 몰랐다. 학교에서 그런 것을 가르쳐줄 시간은 없겠다. 얼마전에도 말했지만 나도 알려고 찾아보기보다 기회가 오면 역사와 관계있는 책을 볼 뿐이다.

 

여기에는 윤동주와 사촌 송몽규가 스물두 살에 북간도에서 경성으로 와서 연희 전문학교에서 공부를 한 뒤, 일본으로 공부하러 가고 그곳에서 경찰한테 잡혀서 후쿠오카 감옥에서 죽음을 맞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렇게 다 말하다니. 《별을 스치는 바람》은 후쿠오카 감옥에서 일어난 일이 주로 나온다. 시와 책 이야기가 있어선지 가슴 두근거리게 하기도 했다. 끝은 같아도 상상과 사실은 다른 느낌이구나. 아니 이 소설도 사실을 바탕으로 작가가 상상해서 쓴 거다. 윤동주와 송몽규는 사촌이지만 얼굴이 닮았다고 한다. 함께 자라고 공부하고 같은 곳에서 죽기까지 하다니. 이름이 더 알려진 건 윤동주구나. 시를 남겼기 때문이겠지. 윤동주는 중학생 때부터 시를 썼다.  백석 시집을 구하지 못해 아쉬워했는데 도서관에서 시집을 찾고는 공책에 베껴썼다는 이야기도 있다. 나는 보고 싶어서 열심히 찾은 책이 있나 하는 생각을 해봐도 그런 건 없는 듯하다. 볼 수 있으면 보고 못 보면 어쩔 수 없지 한다. 지금은 책이 참 많다. 무엇을 보아야 할지 고르기가 더 어렵다.

 

자기 나라에서 자기 말과 글을 쓸 수 없다면 괴롭겠지. 학교 다닐 때는 일제강점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하다. 일본이 우리 민족을 없애버리려고 우리말 우리 글을 쓰지 못하게 했다는 것만 알고 그런 게 어떤 건지 잘 몰랐다. 어렸을 때 본 시대 드라마에서는 우리말을 했으니까. 드라마니까 우리말로 한 거지 그때 사람들은 자유롭게 우리말을 하고 쓸 수 없었다. 드라마에 실제와 다르게 우리말로 합니다 같은 말이 한마디라도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일본과 중국이 싸움을 한 뒤로는 더했다. 이름까지 일본식으로 바꾸라고 하고 그것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살기 어려웠다. 관공서에서 서류를 떼지 못해 학교에 가기 어렵고 일자리도 구하기 어려웠다. 그런 세상 어떻게 살아갈까. 만약 내가 그때 살았다면 어땠을까. 우리말 못하고, 이건 그렇게 힘들지 않았겠다. 내가 말을 거의 안 해서. 하지만 우리말 책을 읽거나 글을 쓰지 못해서 힘들었을 듯하다. 나는 숨어서라도 하기보다 아예 안 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때하고 지금 내가 같았을지 알 수 없는데 이런 생각을 하다니. 일제말기에 많은 문인이 친일을 했다. 앞으로 좋은 세상이 오지 않으리라 생각해서일지도. 윤동주는 그런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일본에 공부하러 가기 위해 윤동주도 창씨개명을 하지만, 시는 우리말로 썼다. 윤동주가 연희 전문학교를 마칠 때는 시집을 내려고 했는데 시대가 시대여서. 후배 정병욱은 그 시집을 잘 가지고 있었다. 친구 처중은 윤동주가 일본에서 보낸 시를 잘 두었다.

 

지나가고 벌써 일어난 일이지만 윤동주가 일본에 공부하러 가지 않았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면 윤동주는 전쟁에 나갔을까. 전쟁에 나갔다 살아 돌아왔다 해도 살아가기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일본은 중국에 731부대라는 것을 두고 인체실험을 했는데, 그런 곳이 일본에도 있었다. 죄를 지은 사람은 사람도 아닌가. 엄청난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몰래 엿보면서 억지로 죄를 갖다붙였다. 그렇게 감옥에 들어간 사람 많았을 거다. 죄수로 실험하는 사람 꺼림칙하지 않았을까. 아무 감정없이 그런 일한 사람도 있을 거다. 사람은 생각해야 한다. 누가 하라고 한다고 해서 그 일이 다 옳은 건 아니다. 저항하면 자신이 위험해진다 생각한 사람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해야 한다 말했지만 그때 내가 일본 사람이었다면 어땠을지 나도 알 수 없다. 할 수 있으면 그런 처지에 놓이고 싶지 않다. 겁쟁이구나.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겪지 않아서 다행이다고 생각한다. 어지러운 세상에서 자기 자신으로 있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그렇게 한 사람이 있어서 우리가 지금 좋은 세상에서 사는 거다. 우리말과 글을 자유롭게 쓰면서.

 

윤동주가 시인이 된 건 죽고 난 뒤다. 아니 시를 쓸 때 윤동주는 벌써 시인이었구나. 사람들한테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윤동주가 후쿠오카 감옥에 갇혀있기만 했다면 좋았을 텐데. 실험을 당하다니. 이런 일 생각하면 슬프다. 슬퍼하기보다 화내야 할까. 윤동주가 죽지 않고 살았다면 그 뒤로도 시를 썼을 텐데 아쉽다. 윤동주 후배와 친구가 윤동주가 쓴 시를 잘 지켜서 다행이다. 그것을 잃어버렸다면 우리는 윤동주가 쓴 시 못 봤을 테니까. 좋은 것은 어떻게든 남지 않을까 싶다. 그건 우리가 알 수 없는 커다란 힘이 움직인 걸지도 모르겠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하늘

 

 

언제나, 어디서나 볼 수 있기에

당신을 잊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 웃음과 눈물은

당신을 생각하게 합니다

 

내가 잊고 있을 때도

늘 같은 곳에 있어서 고마워요

수줍은 당신 웃음이 보고 싶습니다

 

 

 

 

 

바람

 

 

당신이 고마울 때도 있지만

당신이 미울 때도 있습니다

 

아기처럼 착하고 간지러운 웃음은

나를 설레게 합니다

세상을 다 날려버릴 듯한 울음은

나를 슬프게 합니다

 

…… 어떠한 모습일지라도

당신이 좋습니다

당신이기에,

 

 

 

 

 

 

 

당신 눈 속에 담긴 별을 세어봅니다

 

하나이상은 셀 수 없습니다

 

어디를 보고 있나요?

 

 

 

 

 

 

 

하늘,

바람,

별……

 

 

 

희선

 

 

 

 

☆―

 

“공부? 그래, 책장이나 뒤적뒤적하는 게 공부인 줄 아나? 전차 칸에서 내다보는 광경, 정거장에서 사람들과 부딪치고 느끼는 감정, 기차속에서 보고 듣는 모든 이야기가 바로 생활이요, 진정한 공부라네! 책장만 뒤지고 인생이 어떠하니 사회가 어떠하니 떠들어봐야 고리타분한 소리일 뿐, 정말 무엇을 똑바로 알겠는가? 문안으로 나오게! 사람들 속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생한 모습을 보고 제대로 된 공부를 하게.”  (95~96쪽)

 

 

“어떤 것을 쓰건 혼신의 힘을 다해 참되게 그리면, 그리고 그 진심이 읽는 이에게 전해지면 순정하다, 순수하다 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 내면에 치중하면, 그를 둘러싼 아픈 현실을 그려내건……. 순수는 작가가 먼저 정해 놓은 작품 성격이 아닐까, 읽는 이 가슴에서 비로소 느껴지는 것 아닐까?”  (111쪽)

 

 

전쟁 포로나 죄수들이 생체 실험 중 죽어도 책임지거나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실험을 이어갈 포로와 죄수는 많았다. 독립운동 관련인 조선인 사상범들은 후쿠오카와 구마모토 형무소로 모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시야마 교수는 아무 거리낌 없이 실험을 자꾸 했다. 포로가 된 미군 B29기 조종사와 승무원들도 실험 대상이었는데, 그들은 농도 짙은 식염수 주사를 맞고 생체 해부까지 당하다 결국 죽어 갔다.  (2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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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튜링의 이미테이션 게임
앤드루 호지스 지음, 한지원 외 옮김, 고양우 감수 / 동아시아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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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흘러서 20세기에서 21세기가 되었습니다. 언제 21세기가 되었는데 그런 말을 하느냐구요. 그러게 말입니다. 어쩌다 보니 두 세기를 걸쳐서 사는군요. 이건 저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그렇습니다. 세기가 바뀌고 많이 달라진 게 하나 있지요. 그게 뭐냐구요. 얼마 안 되는 사람을 빼고 많은 사람이 작은 컴퓨터 같은 것을 가지고 다니는 겁니다. 그것만 있는 건 아니지만, 언제나 어디서나 가지고 다니는 건 스마트폰이라고 하는 휴대전화기죠. 작은 기계로 컴퓨터로 할 수 있는 건 거의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써 본 적 없는데 이런 말을 하는군요. 써 본 적 없지만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컴퓨터 쓰는 사람이 얼마 없었을 때는 언젠가 집집마다 컴퓨터를 한대는 갖게 될 거다 하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 말을 누가 했는지 모르겠군요(스티브 잡스 아니면 빌 게이츠인 듯). 그것보다 더 먼저 사람들이 컴퓨터를 쓰게 만든 사람이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수학과 과학에 관심을 가진 앨런 튜링입니다. 앨런은 논리도 좋아했군요. 수학자와 과학자 둘 가운데서 뭐라고 해야 할까요. 컴퓨터와 관계있으면 과학자인지 수학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둘 다 관계있을 듯합니다. 제가 이과와 별로 친하지 않습니다. 이과라고 해서 숫자만 있는 건 아닐 텐데, 이과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수학이고 그다음은 과학이군요. 과학에도 여러가지가 있는데. 아는 게 별로 없네요.

 

휴대전화기는 쓰지 않지만 컴퓨터는 씁니다. 컴퓨터 쓰지만 잘 모릅니다. 아는 거 하나 있네요. 컴퓨터는 이진법을 쓴다는 거. 이진법이라는 말은 알지만 어떤 건지 잘 모르는군요. 들은 적 있을 텐데. 잘 몰라도 컴퓨터 쓸 수 있다니 신기하군요. 이렇게 편하게 쓰게 만든 사람이 빌 게이츠던가요. 그것도 앨런 튜링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앨런이 오래전에 지금과 같은 컴퓨터를 만든 건 아니지만, 생각은 했답니다. 생각하는 기계, 전자 뇌. 이 책을 보기 전에 그런 말을 보고 들었습니다. 컴퓨터 써도 앨런 튜링이라는 이름은 몰랐습니다(듣고 잊어버렸을까요). 올해(2015) 영화가 나와서 이름을 듣고 알았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거. 영화는 전기로 만들었다고 한 것 같기도 한데 소설도 있더군요. 소설보다 전기를 보면 그 사람을 더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이거 봐도 잘 모르겠네요. 영화 이야기 들을 때 전기 어렵다는 말도 들은 것 같네요. 책을 보면서 수학이나 과학 많이 알면 좀더 알아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을 쓴 사람은 영국 수학물리학자네요. 이 책은 예전에 쓴 건데 우리나라에는 이제 나온 걸까요, 다시 나온 걸까요. 제가 이런 것도 모르는군요. 앨런 튜링 아는 사람은 알았을 것 같네요. (2014년에 나온 개정판을 우리말로 옮겼나봅니다.)

 

지금은 그 사람이 가진 개성을 존중하지만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아니 지금도 남과 다르면 안 좋다고 하나요. 관습에서 벗어난 사람은 지금보다 옛날에 사는 게 어려웠을 것 같아요. 앨런 튜링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부모와 함께 살지 않았습니다. 가정의 중요성을 말하게 된 것은 그렇게 오래된 건 아닌가 싶네요. 옛날에는 아이를 엄마가 키우기보다 유모한테 맡겼습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그런 사람이 많았겠지요. 이건 영국 쪽 이야기예요. 서양이라고 해야 할까요. 유모가 있다 해도 부모가 아이한테 사랑을 준 사람도 있었을 거예요. 부모가 함께 살지 않은 일이 앨런 튜링 정서에 영향을 미쳤는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아주 없지 않을지도. 앨런 튜링은 어렸을 때 과학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화학 기본 개념도 공부하고. 그게 어릴 때군요. 저는 화학 같은 거 꽤 나중에 배우고 깊이 알지도 못한 것 같습니다(어쩌면 배운 적 없을지도). 과학을 처음에는 재미있게 여겼을지도 모르겠는데, 갈수록 어려워져서 별로 안 좋아하게 됐네요. 재미있게 여긴 적이 있는지. 앨런도 형 존이 다니는 사립학교에 보내려고 했는데, 존이 그 학교는 앨런한테 맞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때 사립학교는 꽤 엄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앨런은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공부하고 수학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풀었답니다. 지금이라면 이런 거 좋게 여겼을 텐데요.

 

크리스토퍼 모컴은 앨런한테 천문학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열다섯 때 앨런은 자신이 동성한테 관심을 갖는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전에도 그런 것을 조금 느꼈을 텐데, 더 많이 생각한 건 사춘기였군요. 앨런은 사람을 잘 사귀지 않았는데 천문학을 가르쳐준 크리스토퍼 모컴과는 마음이 잘 맞았습니다. 크리스토퍼는 앨런이 처음 좋아한 사람인데 일찍 죽었습니다. 앨런 마음에는 언제나 크리스토퍼가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크리스토퍼가 갑자기 죽지 않고 오래 살았다면 앨런 삶이 많이 다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냥. 앨런은 다른 운동은 잘 못했는데 달리기는 잘했어요. 마라톤도 했답니다. 달리기 했다는 말 보니 무라카미 하루키가 생각났습니다. 앨런이 크리스토퍼한테는 자기 마음을 나타내지 않았지만 대학에 가서는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났을 때 말했습니다. 그 뒤로 가까운 사람한테는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밝힌 듯합니다. 부모와 형한테는 숨겼지만. 이런 건 지금도 그렇게 다르지 않군요. 옛날과 달라졌다 해도 식구가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동성을 좋아한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것도 있고 본래 갖고 태어난 성과 다르다 말할 때도 그렇군요. 몸과 마음이 달라서 힘든 건 당사자일 듯한데. 앨런은 자신이 동성을 좋아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때는 그런 사람이 있어도 거의 숨겼을 텐데. 법으로도 안 된다고 했으니까요.

 

대학을 나오고 대학교수가 되려고 했는데 전쟁이 일어났을 때 앨런은 정부신호암호학교에 가게 됐습니다. 독일 암호해독으로 전쟁에서 연합군이 이기게 했습니다. 암호해독은 독일에서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독일은 자신들이 쓰는 암호를 해독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는군요. 그때부터 정보 싸움은 시작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힘보다 정보로 싸우는군요. 앨런은 전쟁에서 이기기를 바라고 그 일을 했을까요. 어쩐지 그것보다 암호를 해독하는 즐거움에 빠졌을 것 같습니다. 과학자는 거의 그렇겠군요. 그것을 나쁜 데 쓰는 사람은 따로 있네요. 무언가를 연구할 때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생각해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하면 자유롭게 생각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앨런은 자유로운 사람이고 싶었습니다.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성범죄로 잡혔을 때 감옥에 들어갈 것이냐 호르몬 치료를 받을 것이냐 했을 때 앨런은 호르몬 치료를 받기로 했습니다. 자신이 하던 연구를 하기 위해. 동성을 좋아하는 것을 정신질환으로 생각한 때도 있었지요. 호르몬 치료가 시간이 흘러서 성전환 수술하는 사람한테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말은 치료지만 진짜 하는 건 화학 거세라는군요.

 

경찰에 잡히고 재판을 받고 호르몬 치료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앨런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사과에 청산가리를 넣어서. 백설공주에 나오는 독사과 때문에 그런 듯합니다. 앨런이 왜 목숨을 끊기로 했는지 모르겠군요. 그 사람이 말한다 해도 그 사람 마음을 다 알기는 어렵겠지요. 좀더 살았다면 좋은 세상을 봤을 텐데 싶습니다(앨런이 제멋대로인 사람이 아닌 좋은 사람을 만났다면 그렇게 안 됐을 텐데 싶기도 합니다). 사마천은 앨런과 다른 일로 궁형을 받지만 살아서 사기를 써서 그게 지금까지도 이어지는군요. 아니 앨런도 남긴 건 많지 않지만 누구보다 앞선 생각을 하고 시간이 흐른 뒤에 이뤄졌네요. 천재는 시대를 잘못 타고 나면 살기 힘들지요. 짧지만 앨런 나름대로 살다 세상을 떠났다고 봅니다. 지금 앨런 튜링이라는 이름 기억하는 사람 많으니까요. 그 안에 저도 들어가는군요.

 

 

 

희선

 

 

 

 

☆―

 

사람들은 다른 이를 그저 단순하게 불만 없이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자신만의 개성이라는 자유롭고 소중한 선물에 고마워하고, 부끄러움이나 가식 없이 그 선물에 기뻐할 줄 알아야 한다.              (570~5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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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게 휘두르며 24

  히구치 아사

  講談社  2014년 12월 22일

 

 

 

 

 

 

 

 

 

 

 

 

몇권인지 모르겠지만 고교야구 경기를 어떻게 하는지 나왔는데 그때 대충 봐서 잘 모르겠다. 잘 모르는데도 그냥 보고, 경기 하는구나 할 뿐이라니. 여름에는 바로 현대회였던 것 같은데 지역예선도 했을까. 여름에는 바로 현대횐가. 니시우라와 무사시노 제1고교가 한 건 지역예선이고, 지역예선에서 남은 학교가 현대회에 나간다. 이기면 전국대회(고시엔)다. 이 정도만 알고 있어도 괜찮겠지. 우리나라로 치면 지역은 시고 현은 도라고 하면 될까.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사람 많고(거기도 아이를 적게 낳아서 아이 수는 적지만 그래도 우리보다 사람 많겠지). 고교야구를 즐기는 사람이 많아서 지역이나 현대회에 나오는 학교 많을 거다. 학교도 우리나라보다 많은 것 같다. 우리나라 시에는 학교가 얼마나 있고 도에는 얼마나 있을까. 내가 사는 곳에는 고등학교 그렇게 많지 않다. 그렇게 크지 않은 시여서겠다. 큰 도시에는 학교 많겠지. 아이는 적다는데 초등학교는 둘레에 많다. 네다섯 곳쯤 되는 듯하다. 좀 이상한 느낌이다. 중학교 고등학교 수는 늘지 않고 초등학교만 늘다니. 내가 모르는 거고 중학교 고등학교도 생겼을지도.

 

한반에 학생수가 예전보다 많이 줄었겠다. 사람 수가 적으면 선생님이 아이 하나하나한테 마음 쓸 수 있겠지. 학생 수 적어도 학교 괜찮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람이 적어서 안 좋은 거 있겠다. 그것은 아이들 틈에 묻히기 어렵다는 거다. 이런 생각을 하다니. 나는 언제부터 사람 눈에 띄지 않으려고 한 거지. 사람이 적어서 좋은 것도 있으리라고 본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공부할 수 있을 테니까. 나같은 사람은 말을 잘 못해서 안 좋지만(초등학생 때는 좀 달랐을지도). 다시 학교에 다닐 것도 아닌데 이런 생각을 하니 좀 우습다. 야구하고 상관없는 이야기로 흘렀다. 우리나라 아이들은 야구 좋아할까. 야구 하는 아이는 거의 못 봤다. 나중에 프로선수가 되는 사람은 어디에서 야구 하는 걸까. 내가 못 보는 거지 어딘가에는 야구 하는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있겠다. 어딘가에 잘 가지 않으니 내가 어떻게 아나. 나는 좁은 세상밖에 모른다. 그래서 이렇게 책을 보고 이런것도 있구나 하는 거지. 예전에 텔레비전에서 야구 중계하면 거의 안 봤다. 재미없는 거 하는구나 하면서. 만화는 재미있게 보니 신기하다. 만화로 야구를 좀 알았다고 해야겠다. 알았다 해도 야구가 어떤지 제대로 말하기 어렵다. 언젠가 야구 경기를 가까이에서 본다거나 텔레비전 중계라도 볼 날이 올지. 응원하는 곳이 있으면 할 수 있을지도.

 

이번 경기가 어땠는지 잠깐 말해야겠다. 이제 3회말이고 니시우라는 원아웃에 주자는 1루다. 여름대회 1회전 때 토세이와 할 때는 어쩌면 하는 생각도 했는데 이상하게 이번에는 걱정된다. 하루나 학교와도 해서 이겼는데. 토세이하고 경기할 때는 거기 데이터를 보고 생각했다. 토세이는 니시우라가 어떤지 몰랐다. 이제는 니시우라도 어느 정도 알려졌다. 비죠다이사야마는 니시우라를 잘 조사해서 이겼다. 지나간 일을 이렇게 말하다니. 만화 나온 지는 몇해가 지났는데 만화속 시간은 몇달밖에 지나지 않았다. 몇달이 흐르는 동안 아이들은 조금 자라고 미하시와 아베는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다르게 마주이야기도 곧잘한다. 지난번(23권)에 아베는 미하시와 말하기 쉽다고 생각했다. 미하시는 본래부터 자신 없는 성격이 아니었다. 중학교 때 야구부에서 혼자 겉도는 바람에 그랬던 거다. 미하시가 아주 많이 달라진 건 아니지만 야구를 하고 싶고 이기고 싶다는 마음을 더 크게 가지게 되었다. 이 마음은 누구나 그렇겠다. 처음부터 질거다 생각하면 잘될 것도 안 될지도. 운동은 긍정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가보다. 본래 알았는데 처음 안 것처럼 말했다.

 

모모 감독 아버지는 집에 돌아온 모모 감독한테 공 치는 차례 바꿨구나 하면서, 자신은 타지마를 1번 타자로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뒤에서 받쳐줘야 하는데 지금 니시우라 아이들로는 좀 어려웠다. 모모 감독은 하나이를 4번으로 하고 타지마를 5번으로 했다. 타지마는 왜 자신이 5번인지 알았다. 5번은 두번째 1번 타자였다. 센다는 1 2 3 · 4 5 6 · 7 8 9 이런 식으로 짠다고 한다. 점수 넣으려면 공을 치고 루에 나가야 한다. 이번 경기는 어쩐지 조마조마하다. 니시우라는 1회초를 0점으로 막고 1회말에서 2점을 넣었다. 하나이는 4번 타자인데 감독이 스퀴즈를 하라고 해서 조금 아쉬워했다. 니시우라가 점수 넣는 걸 좋아해야 하는데 조금 걱정스럽기도 했다. 감독이나 아베도 그랬다. 센다는 회마다 선수를 바꾸고 2회말에서는 투수를 바꿨다. 니시우라가 2회말에서 1점 넣었는데, 3회초에서 센다가 3점을 넣어서 동점이 되었다. 이렇게 빨리 따라잡히다니. 1점 더 줄 뻔했는데 막았다. 그것만으로 다행이다. 니시우라 아이들은 센다 실력이 좋다고 인정했다. 이번에 타지마는 도루 못했다. 센다는 2회말에서 대타 주자가 두번이나 도루했다.

 

경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으니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니시우라 아이들이 힘내서 이기면 좋을 텐데 센다가 만만치 않다. 하나이와 타지마는 어떤 경기를 할까. 아홉 사람이 한 팀이어도 그 안에서도 서로 경쟁한다. 모모 감독은 타지마와 하나이가 서로 자극받아서 잘 하기를 바란다. 한 팀에서도 경쟁해야 한다니. 그게 나쁜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서로한테 도움이 되는 거니까. 해도해도 안 되면 어쩌지. 나는 안 되는 걸 먼저 생각하다니. 결과가 그리 좋지 않아도 자기 나름대로 잘 하면 괜찮을까. 그렇구나, 이제야 알다니. 타지마가 전에 이런 생각했다. 미하시는 하루나가 될 수 없고 자신은 하나이가 될 수 없다고(지난번에도 말했을 텐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잘 해야 한다는 것을 타지마는 바로 알았구나. 사람은 자신은 왜 누구처럼 못할까 할 때가 많은 듯하다. 나도 그렇다.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이고 자신은 자신이다. 이것도 모르는 게 아니구나. 앞으로 경기가 어떻게 이어질지 기대된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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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이오덕, 권정생

  양철북  2015년 05월 01일

 

 

 

 

 

 

 

 

 

 

 

 

내가 언제부터 쓰는 걸 좋아하게 됐을까. 아니 좋아해서 했다기보다 그냥 썼던 것 같다. 학교 다닐 때 글 써서 내는 거 싫어하고 일기 검사 받는 것도 싫었다. 지금 생각하니 선생님이 짧은 글은 읽어도 일기는 썼는지만 봤을 것 같다. 영화 <내 마음의 풍금>에서는 일기 검사를 꼬박꼬박하고 선생님이 밑에 글까지 썼다. 내가 다닌 학교에도 그런 선생님 있었을 테지만, 거의 시간이 없어서 하나하나 읽지 않았을 거다. 학교 다닐 때는 선생님이 할 일이 많은지 몰랐다. 그런 거 안 지도 얼마 안 되었다. 내가 일기를 검사 받은 건 방학숙제로 했을 때뿐이다. 선생님 가운데는 ‘일기를 써라’ 한 분도 있을 테지만. 하라고 하면 하기 싫어지는 게 어린이 마음이다. 아니 이건 어린이만 그런 건 아니구나. 내가 일기 쓰고 싶어서 쓴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쯤이었는지, 중학교 1학년 때쯤이었는지. 검사 받지 않아도 됐을 때 마음대로 쓰다니. 나는 읽기보다 쓰기를 먼저 했구나. 예전에 쓴 일기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 나는 물건 잘 버리지 않는데 물난리가 나는 바람에. 있었다 해도 안 봤을지도 모르겠지만, 내 뜻과 상관없이 잃어서 아쉽다. 일기라도 쓰자는 마음으로 몇해 동안 날마다 쓰기도 했는데, 그때 할 말이 많았느냐 하면 아니다. 거의 같은 말을 썼다. 그건 지금도 여전하다. 요새는 어쩌다 한번 쓴다.

 

일기를 쓰다가 편지를 쓰게 된 것 같다. 초등학생일 때는 어버이날에나 편지 쓰고, 중학생이 되고는 친구한테 자주 썼다. 중·고등학생 때는 답장 조금 받기도 했는데 나중에는 거의 나만 썼다. 아니 가끔 편지 나눈 친구가 한둘 있었다. 오래 이어지지 않았을 뿐이지. 이런 말 처음이 아니어서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이오덕과 권정생이 가까운 데서 살지 않아서 오랫동안 편지를 나눈 게 아닐까 했는데,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겠지. 왜냐하면 나는 가까이에 살아도 편지 썼으니까. 나는 말을 잘 못해서 그런 거기는 하다. 편지만 써서 그 사이를 이어가는 건 어려울까. 이오덕과 권정생도 만난 다음에 편지를 쓰고 어쩌다 한번 만나고 전화도 했다. 동화를 쓰고 그 동화를 알리려고 했으니 만나지 않고 하기는 조금 어려웠겠지. 처음 만났을 때 오랫동안 소식을 주고받으리라고 생각했을까. 그런 건 처음부터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구나. 편지 자주 쓰는 사람은 그게 별로 어렵지 않지만(나는 어렵지 않다고 하는 것 같은데, 다른 것보다 편하게 쓴다), 잘 안 쓰는 사람은 어렵겠지. 이오덕과 권정생도 편지 쓰는 게 익숙했겠지. 두 사람이 만났을 때는 아직 편지 쓰는 사람이 많았다.

 

친구란 뭘까, 함께 놀고 오래 마음을 나누는 사이일까. 나이 차이는 나지만 이오덕과 권정생은 친구라는 생각이 든다. 좀더 편하게 말해도 됐을 텐데 싶기도 하다. ‘오덕이 형, 정생아’처럼. 두 사람은 서로한테 선생님이라고 했다. 처음부터 그렇게 해서 나중에 바꾸기 어려웠겠다. 이오덕은 학교 선생님으로 글도 써서 바빴을 텐데 편지를 썼다. ‘바쁘다’는 말을 가끔 했지만. 차나 기차 때로는 우체국에서 바로 써서 보냈다. 그만큼 권정생을 생각한 거겠지. 권정생은 자주 아팠다는 말을 했다. 아파도 글을 쓰고 편지를 쓰다니. 자기 시간을 상대한테 기꺼이 내주는 게 친구겠지. 만나서 이야기하고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만이 시간을 내주는 건 아니다. 편지를 쓸 때는 편지 받을 사람만 생각하고 쓴다. 그것 또한 자기 시간을 상대한테 내주는 거다. 이렇게 말하는 건 그리 좋은 게 아닌가. 친구를 생각해도 쉽게 연락하기 어려울 때도 있을 테니까. 나 또한 생각났을 때 바로 편지 쓰는 건 아니다(그럴 때가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책읽기 싫거나 답장을 더 미루면 안 될 때 쓰기도 한다. 편지 받으면 거의 바로 쓰는데 가끔 미루기도 한다. 한번 미루면 자꾸 미루니 편지는 받았을 때 바로 쓰는 게 낫기는 하다. 이건 내가 그런 거지 모두 그래야 한다는 건 아니다. 서로 편지를 받은 다음 바로 쓰면, 쓴 지 얼마 안 돼서 또 써야 해서 힘들거다. 편지 자주 쓰고 받는 것도 재미있지만, 오래 하기는 어렵다.

 

이오덕과 권정생 두 사람을 잘 아는 건 아니다. 이름도 모르는 것보다 나을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어쩌자 한번 마음먹고 동화를 보려고 하는데, 예전에는 자주 보았다. 이오덕이 쓴 건 동화가 아닌 다른 책을 조금 보고, 권정생이 쓴 동화는 조금 봤다. 사람들한테 잘 알려진 건 《강아지 똥》하고 《몽실 언니》려나. 《강아지 똥》은 어딘가에 냈는데 제목 때문에 다른 사람이 잘 안 읽어봤다는 말이 있고, 《몽실 언니》는 시대 때문에 안 좋은 일이 있었던가 보다. 이오덕은 우리나라 아동문학을 위해 애를 많이 쓰고 좋은 책을 내려고 애썼다. 편지를 보고 그런 것을 느꼈다. 무엇보다 아이들 글쓰기를 가르치는 데 애쓰지 않았을까. 권정생은 건강이 안 좋다는 말 예전에 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들은 것하고 이렇게 글을 보는 건 또 다르구나. 사는 게 힘들었겠다. 몸이 안 아파도 사는 건 힘들다. 늘 괜찮다가 잠깐 몸이 아파도 괴로운데, 권정생은 스무살에 걸린 결핵이 평생가다니. 아픔(몸과 마음)과 함께 사는 사람이 세상에 한둘은 아니겠지만. 권정생은 어린이를 생각하고 동화를 썼다. 내가 쓰면 거의 동화 같아서(그것을 아이가 보면 재미있게 여길지) 동화를 쓰자고 생각한 적도 있는데, 몇해 전에 나는 혼자고 어린이를 위해 무엇인가 쓰려는 생각은 없다는 것을 알고 동화 못 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쓴 것도 없고, 앞으로도 못 쓸지도 모르는데 그랬다.

 

어렸을 때 나는 동화(책 자체)를 거의 안 봐서 그때 책을 보는 게 어떤지 잘 모른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보면 훨씬 좋을 거다. 우리나라 어린이가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동화가 많이 나오면 좋겠다. 재미있기만 하면 안 되겠구나. 현실도 잘 알게 해야겠지. 권정생은 자신의 책은 소박하게 만들어서 값도 싸기를 바랐다. 요즘은 일부러 비싸게 팔려는 책도 있다. 그런 거 한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다시 생각하니 싸게 팔려는 책도 있구나. 그런 게 더 많아지면 좋겠다. 누군가 하는 일은 그때 알기보다 시간이 흘러서 아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일 누구한테나 해당하는 건 아니지만. 작가나 예술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죽어도 작품이 남으니 알 수 있다. 보통 사람은 알기 어렵겠다. 그래도 살아야겠지. 사람은 누구나 나고 살다 간다. 이건 아무도 피할 수 없다. 남이 알지 못하는 사람이 아무 가치 없는 건 아닌 거다. 자신이 자기 삶을 사랑하고 산다면 그걸로 괜찮은 거겠지. 이 말은 아무것도 해놓은 거 없는 나한테 하는 거구나. 편지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기보다 쓰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꽤 오랫동안 쓴 편지를 그 시간보다 적게 걸려서 본 게 미안하다(두 사람은 편지 보이고 싶지 않았을지도). 한통 한통 편지를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을까. 특별한 말이 없다 해도 멀리에서 자신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구나 했을 것 같다.

 

오랜 시간 편지 나누는 일은 쉽지 않을 거다. 두 사람은 서로한테 좋은 친구였으리라. 두껍지 않은 한권이지만 이 안에 담긴 시간은 길다. 갈수록 줄어드는 편지는 어쩐지 쓸쓸하게 보인다. 여기에 두 사람이 나눈 편지를 다 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해도 우정은 느낄 수 있다. 내가 두 사람처럼 한 사람과 오랫동안 편지를 나눌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편지 쓸 힘이 있는 한 쓰고 싶다. 나한테 편지는 말이기 때문이지만. 편지로라도 시간을 쌓고 마음을 나누고 싶다.

 

 

저와 편지 나누는 분, 제 편지 받는 분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재미없는 편지일지라도 반겨준다면 좋겠습니다(요새 잘 못 쓰면서 이런 말을, 자주 쓰기보다 가끔 쓰는 게 나을 것 같아서예요. 저만 좋자고 쓸 수 없잖아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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