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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동주
안소영 지음 / 창비 / 2015년 3월
평점 :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그리움)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별 헤는 밤>에서, 윤동주
몇해 전에 이정명 소설 《별을 스치는 바람》을 보았다. 이정명 소설 많이 읽었다고 말하기 어려운데, 이정명은 우리 역사에 남은 사람 이야기에 상상력을 덧붙여서 글을 쓴다. 여러 권이 그런 것이었던 걸로 안다. 그 안에는 시인 윤동주도 있다. 그게 바로 《별을 스치는 바람》이다. 윤동주는 우리나라가 독립을 맞은 해(1945) 2월에 감옥에서 죽었다. 이것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느냐 하면 나도 잘 모르겠다. 그저 일제강점기 때 시를 쓰고 일본으로 공부하러 간 시인으로만 알았던 것 같다. 윤동주가 1945년 2월에 죽음을 맞은 건 이정명 소설을 보고 머릿속에 새겨두었을지도. 그전에 내가 안 건 윤동주가 쓴 시뿐이다. 그때를 산 건 윤동주만이 아니기는 하다. 아주 많은 사람이 일제강점기를 살다 목숨을 잃거나 일본 지배에서 벗어나고는 북으로 간 사람도 있다. 조선이 막을 내리고 우리는 무척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을 보낸 사람이 지금 얼마나 남았을까. 그리 많지 않을 거다. 안 좋은 일은 빨리 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하지만, 세상에는 잊어야 할 일도 있지만 잊지 않아야 할 일도 있다. 잊지 않아야 하는 건 역사다.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는 아주 조금이다. 역사 시간이나 국어 시간에 윤동주 이름 듣고 시도 배웠지만 윤동주가 어땠는지 몰랐다. 학교에서 그런 것을 가르쳐줄 시간은 없겠다. 얼마전에도 말했지만 나도 알려고 찾아보기보다 기회가 오면 역사와 관계있는 책을 볼 뿐이다.
여기에는 윤동주와 사촌 송몽규가 스물두 살에 북간도에서 경성으로 와서 연희 전문학교에서 공부를 한 뒤, 일본으로 공부하러 가고 그곳에서 경찰한테 잡혀서 후쿠오카 감옥에서 죽음을 맞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렇게 다 말하다니. 《별을 스치는 바람》은 후쿠오카 감옥에서 일어난 일이 주로 나온다. 시와 책 이야기가 있어선지 가슴 두근거리게 하기도 했다. 끝은 같아도 상상과 사실은 다른 느낌이구나. 아니 이 소설도 사실을 바탕으로 작가가 상상해서 쓴 거다. 윤동주와 송몽규는 사촌이지만 얼굴이 닮았다고 한다. 함께 자라고 공부하고 같은 곳에서 죽기까지 하다니. 이름이 더 알려진 건 윤동주구나. 시를 남겼기 때문이겠지. 윤동주는 중학생 때부터 시를 썼다. 백석 시집을 구하지 못해 아쉬워했는데 도서관에서 시집을 찾고는 공책에 베껴썼다는 이야기도 있다. 나는 보고 싶어서 열심히 찾은 책이 있나 하는 생각을 해봐도 그런 건 없는 듯하다. 볼 수 있으면 보고 못 보면 어쩔 수 없지 한다. 지금은 책이 참 많다. 무엇을 보아야 할지 고르기가 더 어렵다.
자기 나라에서 자기 말과 글을 쓸 수 없다면 괴롭겠지. 학교 다닐 때는 일제강점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하다. 일본이 우리 민족을 없애버리려고 우리말 우리 글을 쓰지 못하게 했다는 것만 알고 그런 게 어떤 건지 잘 몰랐다. 어렸을 때 본 시대 드라마에서는 우리말을 했으니까. 드라마니까 우리말로 한 거지 그때 사람들은 자유롭게 우리말을 하고 쓸 수 없었다. 드라마에 실제와 다르게 우리말로 합니다 같은 말이 한마디라도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일본과 중국이 싸움을 한 뒤로는 더했다. 이름까지 일본식으로 바꾸라고 하고 그것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살기 어려웠다. 관공서에서 서류를 떼지 못해 학교에 가기 어렵고 일자리도 구하기 어려웠다. 그런 세상 어떻게 살아갈까. 만약 내가 그때 살았다면 어땠을까. 우리말 못하고, 이건 그렇게 힘들지 않았겠다. 내가 말을 거의 안 해서. 하지만 우리말 책을 읽거나 글을 쓰지 못해서 힘들었을 듯하다. 나는 숨어서라도 하기보다 아예 안 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때하고 지금 내가 같았을지 알 수 없는데 이런 생각을 하다니. 일제말기에 많은 문인이 친일을 했다. 앞으로 좋은 세상이 오지 않으리라 생각해서일지도. 윤동주는 그런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일본에 공부하러 가기 위해 윤동주도 창씨개명을 하지만, 시는 우리말로 썼다. 윤동주가 연희 전문학교를 마칠 때는 시집을 내려고 했는데 시대가 시대여서. 후배 정병욱은 그 시집을 잘 가지고 있었다. 친구 처중은 윤동주가 일본에서 보낸 시를 잘 두었다.
지나가고 벌써 일어난 일이지만 윤동주가 일본에 공부하러 가지 않았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면 윤동주는 전쟁에 나갔을까. 전쟁에 나갔다 살아 돌아왔다 해도 살아가기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일본은 중국에 731부대라는 것을 두고 인체실험을 했는데, 그런 곳이 일본에도 있었다. 죄를 지은 사람은 사람도 아닌가. 엄청난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몰래 엿보면서 억지로 죄를 갖다붙였다. 그렇게 감옥에 들어간 사람 많았을 거다. 죄수로 실험하는 사람 꺼림칙하지 않았을까. 아무 감정없이 그런 일한 사람도 있을 거다. 사람은 생각해야 한다. 누가 하라고 한다고 해서 그 일이 다 옳은 건 아니다. 저항하면 자신이 위험해진다 생각한 사람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해야 한다 말했지만 그때 내가 일본 사람이었다면 어땠을지 나도 알 수 없다. 할 수 있으면 그런 처지에 놓이고 싶지 않다. 겁쟁이구나.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겪지 않아서 다행이다고 생각한다. 어지러운 세상에서 자기 자신으로 있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그렇게 한 사람이 있어서 우리가 지금 좋은 세상에서 사는 거다. 우리말과 글을 자유롭게 쓰면서.
윤동주가 시인이 된 건 죽고 난 뒤다. 아니 시를 쓸 때 윤동주는 벌써 시인이었구나. 사람들한테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윤동주가 후쿠오카 감옥에 갇혀있기만 했다면 좋았을 텐데. 실험을 당하다니. 이런 일 생각하면 슬프다. 슬퍼하기보다 화내야 할까. 윤동주가 죽지 않고 살았다면 그 뒤로도 시를 썼을 텐데 아쉽다. 윤동주 후배와 친구가 윤동주가 쓴 시를 잘 지켜서 다행이다. 그것을 잃어버렸다면 우리는 윤동주가 쓴 시 못 봤을 테니까. 좋은 것은 어떻게든 남지 않을까 싶다. 그건 우리가 알 수 없는 커다란 힘이 움직인 걸지도 모르겠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하늘
언제나, 어디서나 볼 수 있기에
당신을 잊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 웃음과 눈물은
당신을 생각하게 합니다
내가 잊고 있을 때도
늘 같은 곳에 있어서 고마워요
수줍은 당신 웃음이 보고 싶습니다
바람
당신이 고마울 때도 있지만
당신이 미울 때도 있습니다
아기처럼 착하고 간지러운 웃음은
나를 설레게 합니다
세상을 다 날려버릴 듯한 울음은
나를 슬프게 합니다
…… 어떠한 모습일지라도
당신이 좋습니다
당신이기에,
별
당신 눈 속에 담긴 별을 세어봅니다
하나이상은 셀 수 없습니다
어디를 보고 있나요?
시
하늘,
바람,
별……
희선
☆―
“공부? 그래, 책장이나 뒤적뒤적하는 게 공부인 줄 아나? 전차 칸에서 내다보는 광경, 정거장에서 사람들과 부딪치고 느끼는 감정, 기차속에서 보고 듣는 모든 이야기가 바로 생활이요, 진정한 공부라네! 책장만 뒤지고 인생이 어떠하니 사회가 어떠하니 떠들어봐야 고리타분한 소리일 뿐, 정말 무엇을 똑바로 알겠는가? 문안으로 나오게! 사람들 속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생한 모습을 보고 제대로 된 공부를 하게.” (95~96쪽)
“어떤 것을 쓰건 혼신의 힘을 다해 참되게 그리면, 그리고 그 진심이 읽는 이에게 전해지면 순정하다, 순수하다 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 내면에 치중하면, 그를 둘러싼 아픈 현실을 그려내건……. 순수는 작가가 먼저 정해 놓은 작품 성격이 아닐까, 읽는 이 가슴에서 비로소 느껴지는 것 아닐까?” (111쪽)
전쟁 포로나 죄수들이 생체 실험 중 죽어도 책임지거나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실험을 이어갈 포로와 죄수는 많았다. 독립운동 관련인 조선인 사상범들은 후쿠오카와 구마모토 형무소로 모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시야마 교수는 아무 거리낌 없이 실험을 자꾸 했다. 포로가 된 미군 B29기 조종사와 승무원들도 실험 대상이었는데, 그들은 농도 짙은 식염수 주사를 맞고 생체 해부까지 당하다 결국 죽어 갔다. (29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