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이오덕, 권정생

  양철북  2015년 05월 01일

 

 

 

 

 

 

 

 

 

 

 

 

내가 언제부터 쓰는 걸 좋아하게 됐을까. 아니 좋아해서 했다기보다 그냥 썼던 것 같다. 학교 다닐 때 글 써서 내는 거 싫어하고 일기 검사 받는 것도 싫었다. 지금 생각하니 선생님이 짧은 글은 읽어도 일기는 썼는지만 봤을 것 같다. 영화 <내 마음의 풍금>에서는 일기 검사를 꼬박꼬박하고 선생님이 밑에 글까지 썼다. 내가 다닌 학교에도 그런 선생님 있었을 테지만, 거의 시간이 없어서 하나하나 읽지 않았을 거다. 학교 다닐 때는 선생님이 할 일이 많은지 몰랐다. 그런 거 안 지도 얼마 안 되었다. 내가 일기를 검사 받은 건 방학숙제로 했을 때뿐이다. 선생님 가운데는 ‘일기를 써라’ 한 분도 있을 테지만. 하라고 하면 하기 싫어지는 게 어린이 마음이다. 아니 이건 어린이만 그런 건 아니구나. 내가 일기 쓰고 싶어서 쓴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쯤이었는지, 중학교 1학년 때쯤이었는지. 검사 받지 않아도 됐을 때 마음대로 쓰다니. 나는 읽기보다 쓰기를 먼저 했구나. 예전에 쓴 일기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 나는 물건 잘 버리지 않는데 물난리가 나는 바람에. 있었다 해도 안 봤을지도 모르겠지만, 내 뜻과 상관없이 잃어서 아쉽다. 일기라도 쓰자는 마음으로 몇해 동안 날마다 쓰기도 했는데, 그때 할 말이 많았느냐 하면 아니다. 거의 같은 말을 썼다. 그건 지금도 여전하다. 요새는 어쩌다 한번 쓴다.

 

일기를 쓰다가 편지를 쓰게 된 것 같다. 초등학생일 때는 어버이날에나 편지 쓰고, 중학생이 되고는 친구한테 자주 썼다. 중·고등학생 때는 답장 조금 받기도 했는데 나중에는 거의 나만 썼다. 아니 가끔 편지 나눈 친구가 한둘 있었다. 오래 이어지지 않았을 뿐이지. 이런 말 처음이 아니어서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이오덕과 권정생이 가까운 데서 살지 않아서 오랫동안 편지를 나눈 게 아닐까 했는데,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겠지. 왜냐하면 나는 가까이에 살아도 편지 썼으니까. 나는 말을 잘 못해서 그런 거기는 하다. 편지만 써서 그 사이를 이어가는 건 어려울까. 이오덕과 권정생도 만난 다음에 편지를 쓰고 어쩌다 한번 만나고 전화도 했다. 동화를 쓰고 그 동화를 알리려고 했으니 만나지 않고 하기는 조금 어려웠겠지. 처음 만났을 때 오랫동안 소식을 주고받으리라고 생각했을까. 그런 건 처음부터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구나. 편지 자주 쓰는 사람은 그게 별로 어렵지 않지만(나는 어렵지 않다고 하는 것 같은데, 다른 것보다 편하게 쓴다), 잘 안 쓰는 사람은 어렵겠지. 이오덕과 권정생도 편지 쓰는 게 익숙했겠지. 두 사람이 만났을 때는 아직 편지 쓰는 사람이 많았다.

 

친구란 뭘까, 함께 놀고 오래 마음을 나누는 사이일까. 나이 차이는 나지만 이오덕과 권정생은 친구라는 생각이 든다. 좀더 편하게 말해도 됐을 텐데 싶기도 하다. ‘오덕이 형, 정생아’처럼. 두 사람은 서로한테 선생님이라고 했다. 처음부터 그렇게 해서 나중에 바꾸기 어려웠겠다. 이오덕은 학교 선생님으로 글도 써서 바빴을 텐데 편지를 썼다. ‘바쁘다’는 말을 가끔 했지만. 차나 기차 때로는 우체국에서 바로 써서 보냈다. 그만큼 권정생을 생각한 거겠지. 권정생은 자주 아팠다는 말을 했다. 아파도 글을 쓰고 편지를 쓰다니. 자기 시간을 상대한테 기꺼이 내주는 게 친구겠지. 만나서 이야기하고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만이 시간을 내주는 건 아니다. 편지를 쓸 때는 편지 받을 사람만 생각하고 쓴다. 그것 또한 자기 시간을 상대한테 내주는 거다. 이렇게 말하는 건 그리 좋은 게 아닌가. 친구를 생각해도 쉽게 연락하기 어려울 때도 있을 테니까. 나 또한 생각났을 때 바로 편지 쓰는 건 아니다(그럴 때가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책읽기 싫거나 답장을 더 미루면 안 될 때 쓰기도 한다. 편지 받으면 거의 바로 쓰는데 가끔 미루기도 한다. 한번 미루면 자꾸 미루니 편지는 받았을 때 바로 쓰는 게 낫기는 하다. 이건 내가 그런 거지 모두 그래야 한다는 건 아니다. 서로 편지를 받은 다음 바로 쓰면, 쓴 지 얼마 안 돼서 또 써야 해서 힘들거다. 편지 자주 쓰고 받는 것도 재미있지만, 오래 하기는 어렵다.

 

이오덕과 권정생 두 사람을 잘 아는 건 아니다. 이름도 모르는 것보다 나을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어쩌자 한번 마음먹고 동화를 보려고 하는데, 예전에는 자주 보았다. 이오덕이 쓴 건 동화가 아닌 다른 책을 조금 보고, 권정생이 쓴 동화는 조금 봤다. 사람들한테 잘 알려진 건 《강아지 똥》하고 《몽실 언니》려나. 《강아지 똥》은 어딘가에 냈는데 제목 때문에 다른 사람이 잘 안 읽어봤다는 말이 있고, 《몽실 언니》는 시대 때문에 안 좋은 일이 있었던가 보다. 이오덕은 우리나라 아동문학을 위해 애를 많이 쓰고 좋은 책을 내려고 애썼다. 편지를 보고 그런 것을 느꼈다. 무엇보다 아이들 글쓰기를 가르치는 데 애쓰지 않았을까. 권정생은 건강이 안 좋다는 말 예전에 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들은 것하고 이렇게 글을 보는 건 또 다르구나. 사는 게 힘들었겠다. 몸이 안 아파도 사는 건 힘들다. 늘 괜찮다가 잠깐 몸이 아파도 괴로운데, 권정생은 스무살에 걸린 결핵이 평생가다니. 아픔(몸과 마음)과 함께 사는 사람이 세상에 한둘은 아니겠지만. 권정생은 어린이를 생각하고 동화를 썼다. 내가 쓰면 거의 동화 같아서(그것을 아이가 보면 재미있게 여길지) 동화를 쓰자고 생각한 적도 있는데, 몇해 전에 나는 혼자고 어린이를 위해 무엇인가 쓰려는 생각은 없다는 것을 알고 동화 못 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쓴 것도 없고, 앞으로도 못 쓸지도 모르는데 그랬다.

 

어렸을 때 나는 동화(책 자체)를 거의 안 봐서 그때 책을 보는 게 어떤지 잘 모른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보면 훨씬 좋을 거다. 우리나라 어린이가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동화가 많이 나오면 좋겠다. 재미있기만 하면 안 되겠구나. 현실도 잘 알게 해야겠지. 권정생은 자신의 책은 소박하게 만들어서 값도 싸기를 바랐다. 요즘은 일부러 비싸게 팔려는 책도 있다. 그런 거 한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다시 생각하니 싸게 팔려는 책도 있구나. 그런 게 더 많아지면 좋겠다. 누군가 하는 일은 그때 알기보다 시간이 흘러서 아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일 누구한테나 해당하는 건 아니지만. 작가나 예술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죽어도 작품이 남으니 알 수 있다. 보통 사람은 알기 어렵겠다. 그래도 살아야겠지. 사람은 누구나 나고 살다 간다. 이건 아무도 피할 수 없다. 남이 알지 못하는 사람이 아무 가치 없는 건 아닌 거다. 자신이 자기 삶을 사랑하고 산다면 그걸로 괜찮은 거겠지. 이 말은 아무것도 해놓은 거 없는 나한테 하는 거구나. 편지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기보다 쓰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꽤 오랫동안 쓴 편지를 그 시간보다 적게 걸려서 본 게 미안하다(두 사람은 편지 보이고 싶지 않았을지도). 한통 한통 편지를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을까. 특별한 말이 없다 해도 멀리에서 자신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구나 했을 것 같다.

 

오랜 시간 편지 나누는 일은 쉽지 않을 거다. 두 사람은 서로한테 좋은 친구였으리라. 두껍지 않은 한권이지만 이 안에 담긴 시간은 길다. 갈수록 줄어드는 편지는 어쩐지 쓸쓸하게 보인다. 여기에 두 사람이 나눈 편지를 다 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해도 우정은 느낄 수 있다. 내가 두 사람처럼 한 사람과 오랫동안 편지를 나눌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편지 쓸 힘이 있는 한 쓰고 싶다. 나한테 편지는 말이기 때문이지만. 편지로라도 시간을 쌓고 마음을 나누고 싶다.

 

 

저와 편지 나누는 분, 제 편지 받는 분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재미없는 편지일지라도 반겨준다면 좋겠습니다(요새 잘 못 쓰면서 이런 말을, 자주 쓰기보다 가끔 쓰는 게 나을 것 같아서예요. 저만 좋자고 쓸 수 없잖아요).

 

 

 

희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