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차, 영~차!"
지난 가을 어디선가 날아온 봉숭아 씨앗이 싹을 틔우려 하고 있어요. 작은 씨앗이라 '싹을 틔울 수 있을까' 걱정스럽기도 했는데 오랜 겨울잠에서 깨선, 봄엔 계속 물과 흙에 있는 영양분을 먹었어요. 여름이 가까이 온 걸 알았는지 힘을 쓰고 있네요.
"봉숭아 씨앗아, 힘들지?"
"어! 누구세요? 이렇게 어두운 곳에서도 저를 알아보다니……."
"니가 날아오기 전부터 난 이곳에 뿌리 내리고 있었어. 난 앵두나무야."
"네, 반가워요."
그렇게 며칠 '영~차, 영~차' 하더니 봉숭아 씨앗은 작은 싹을 틔웠어요.
"앵두나무 님, 이렇게 밝은 곳에서 만나보게 되니 더 기뻐요."
"이젠 봉숭아 씨앗이 아니구나. 봉숭아라고 할게. 나도 반가워."
"땅속보다 이곳이 훨씬 좋은데요. 앵두나무 님은 처음부터 그런 모습이었나요?"
꽃이 지고 열매도 사람들이 거둬간 뒤에 봉숭아가 나를 봤으니 그런 걸 물어볼 만도 했어요.
"봉숭아야, 지금은 초록잎만 있지만 봄엔 꽃을 피우고 조금 뒤엔 빨간 앵두를 만들어 내. 내 좋은 시절은 봄이야. 봉숭아 너의 좋은 시절은 여름이란다."
내 말을 들은 봉숭아는 다시 힘을 내기 시작했어요. 잎을 크게 만들려고…. 사실 봉숭아는 자신의 좋은 모습이 어떤지 잘 몰라요. 한번밖에 볼 수 없거든요.
여름이 되어갈수록 봉숭아 잎이 많아지고 키도 컸어요. 그러고는 꽃봉오리가 생겼어요. 어느새 봉숭아꽃이 피려고 해요.
"봉숭아야, 너 꽃을 피우려고 하는구나?"
"네, 제가 꽃을 피우다니 정말 마음이 벅차요."
봉숭아는 그렇게 꽃을 많이 피웠어요.
어느 날 아침 마당에 나온 희진이가 꽃이 핀 봉숭아를 봤어요.
"엄마, 봉숭아꽃이 많이 피었어. 나 손톱에 물들여줘."
"그래, 오늘밤에 들이자. 꽃하고 잎 따와."
"응. 아이 좋아라."
이 말을 들은 봉숭아는 놀라서 밤이 될 때까지 울었어요. 그리고 저녁에 희진이가 꽃과 잎을 따가자, 그 아픔에 자꾸 울었어요.
"봉숭아야, 그만울어. 그렇게 슬퍼할 일은 아니란다. 네 몸을 잘 살펴봐. 희진이가 꽃을 다 따가지는 않았어."
"그러면 뭐해요? 저의 좋은 시절도 이젠 끝이어요. 흑~ 흑……."
"본래 좋은 시절은 짧은 거란다. 내가 이 얘길 해주면 너도 기쁠 거야. 사람들이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이는 까닭은 꿈을 이루고 싶어서야. 첫눈이 오는 날까지 손톱 끝에 봉숭아물이 남아 있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어. 그러니까 넌 사람들이 꿈을 꿀 수 있게 해주는 풀이야."
"정말인가요?"
"그래. 이제 울지 않을거지?"
"네."
아침에 희진이가 마당에 나오더니 봉숭아에게 말을 했어요.
"봉숭아야, 내 손톱 봐. 예쁘지? 고마워. 이게 첫눈이 올 때까지 있으면 좋겠어."
봉숭아는 희진이의 손톱에 들여진 것이 오래 가기를 바랐어요.
시간은 흐르고 흘러서 봉숭아는 씨앗주머니를 만들었어요. 곧 지금 봉숭아와는 헤어져야 해요.
"봉숭아야, 우리 이제 곧 헤어지겠구나. 난 네 자손들과 만나겠지?"
"저에게 해준 것처럼 제 자손들한테도 따듯하게 대해주세요."
"그래. 꼭 그럴게."
봉숭아 씨앗은 여물대로 여물었어요. 그것을 희진이가 조심조심 받았어요. 잘못하면 봉숭아 씨앗은 다른 곳으로 날아가거든요. 그렇게 날아온 봉숭아였는데 내년엔 자손을 만날 수 있겠네요.
첫눈이 올 때까지 희진이 손톱에 봉숭아물이 남아 있을까요?
몇해 전에 담은 봉숭아
☆
우연히 다시 읽어봤는데, 조금 재미있어서
그리고 봉숭아가 자란 것을 보기도 했다
앵두나무 바로 옆은 아니지만,
예전에 앵두나무 옆에 봉숭아가 있는 것을 본 것 같기도 한데...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