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도의 수수께끼 - 제3회 창비청소년도서상 교양 기획 부문 대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고 9
안소정 지음 / 창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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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가 그린 <세한도>에는 먼저 우정이 담겨있습니다. 솔직히 이것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제주도에 유배 가 있던 김정희가 누군가한테 그려준 그림이라는 것밖에는요. 그림을 그린 배경을 제대로 알고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언젠가 다른 책에서 읽어본 적 있을 텐데 말입니다. 이제는 잊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김정희는 올곧은 성격 탓에 적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제주도에서 아홉해 가까이 귀양살이를 했습니다. 그때 추사체를 완성했다고도 하죠. 섬이고 집 바깥에 나갈 수 없었던 김정희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얼마 없었겠군요. 글씨를 쓰거나 책을 읽는 것밖에는. 하지만 그곳에 책이 많지는 않았겠죠. 김정희 제자 이상적은 중국에서 어렵게 구한 책을 보내주었습니다. 어느 해에는 백이십 권이었다는군요. 김정희는 그런 이상적한테 감격하여, 이상적의 마음을 한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소나무와 잣나무에 비유해서 그림을 그렸다고 하더군요. 추운 한겨울을 그렸지만 그림은 따듯하게 보인다고 하는군요. 그저 제자한테 그려준 그림인데 지금은 이게 우리나라 보물이군요. 김정희는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할지. 한사람한테 그려준 것이라 할지라도 지금까지 남아서 우리가 볼 수 있다는 게 다행인지도 모르겠군요. 일본사람이 가지고 있었던 때도 있었는데.

 

이 책 《세한도의 수수께끼》는 중학교 2학년 여자아이 은진주와 수학 선생 나윤기가 <세한도>를 둘러싸고 일어난 일을 해결해 가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 아니 조선시대에 썼던 도량형을 비롯해 동양 수학에 대해 말합니다. 제가 수학을 잘 모르는데 수학이라니……. 세종대왕은 과학뿐 아니라 수학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하더군요. 과학과 수학은 뗄 수 없는 것이군요. 그러면 수학과 미술은 어떨까요. 서양에는 황금비가 있다고. 이게 여기저기에 많이 쓰이고 있다고 하더군요. 책도 황금비라고. 우리나라는 금강비를 많이 썼다고 하더군요. 금강비라는 이름은 다이아몬드를 말하는 금강석에서 따왔는데, 황금비에 견주어 최고라는 뜻으로 붙였을 거다고 합니다. A4 종이가 금강비를 쓰고 있다는군요. <세한도>에는 수학이 들어있고, 금강비도 있다고 합니다. 그림뿐 아니라 우리나라 문화유산에도 금강비가 많이 쓰였답니다. 하긴 건축에도 수학이 쓰이죠. 수학 하면 저는 여전히 숫자만 생각하는데, 수학을 잘 아는 사람은 건물이나 물건을 보면 무엇이 쓰였는지 알 것 같기도 하군요.

 

피타고라스의 정리보다 먼저 쓰인 구가현의 정리도 있더군요. 동양에서 먼저 쓰인 게 있지만, 지금은 피타고라스의 정리라는 이름으로 널리 쓰이고 있죠. 수학을 이용한 암호도 나옵니다. 이것은 수학을 알아야 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오는 사람이 수학 선생이군요. 진주는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잘 그리기도 합니다. 나윤기와 진주가 <세한도>를 그려서 주고받은 김정희와 이상적과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군요. 나윤기와 진주가 아주 친하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는 같으니까요. <세한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다가 우리나라 유물(진짜 <세한도>도)을 일본으로 빼돌리려는 것이 나옵니다. <세한도>에는 보물의 비밀이 있다는 말 때문에. 한사람이 죽기는 했는데 뜻밖에 일은 쉽게 빨리 해결됩니다. 그 부분은 빨리 끝내는 게 낫다고 생각한 것인지도 모르죠.

 

수학을 공부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아닐지라도 동양 수학을 조금 아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양 것이 모두 다 좋은 것은 아니죠.

 

 

 

희선

 

 

 

 

☆―

 

“자는 도량형의 가장 기본이야. 그리고 도량형이 올발라야 나라가 바로 서고 사회가 안정되었거든. 자를 내렸던 데는 올바른 도량형으로 사회를 안정되게 하려는 뜻이 숨어 있는 셈이야.”  (45쪽)

 

 

“피리는 미세한 길이 차이에도 소리가 달라지는 아주 예민한 악기거든. 정밀하게 만든 피리를 이용하면 그만큼 자도 정밀해지는 거야. 이렇게 세종 때 만들어진 도량형은 1900년대에 새로운 도량형이 나올 때까지 거의 오백 년 동안이나 쓰이게 됐어.”

 

“정밀하게 만든 자를 온 나라에서 똑같이 써야 나라가 안정된다는 거죠. 그래서 지방 관료들이 부임할 때 자를 내린 거고요.”

 

“그렇지. 암행어사한테 자를 준 것도 마찬가지야. 백성들이 소작료나 세금을 낼 때 또는 장사를 할 때 억울한 일이 없게끔 올바른 잣대로 잘 살피라는 뜻이지.”  (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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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월담
누쿠이 도쿠로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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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초하룻날이었구나. 머리 위에서 별이 몇 개쯤 반짝일 뿐 밤하늘을 비추는 달은 그 모습이 온데간데없었다. 분명 제자리에 있을 텐데도 보이지 않는 달.

 

달은 바로 나였다. 사쿠라 레이카는 큰 상 후보에 올라 쏟아지는 주목을 받지만 그 실체인 고토 가즈코는 어느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다. 미녀 작가라는 가짜 옷을 뒤집어쓴 나. 기노우치와도 남몰래 만나야 하는 나. 고토 가즈코를 똑바로 봐주는 이는 이 세상에 기노우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악착같이 기노우치한테 매달렸다. 결코 놓지 않고.

 

달이 없는 새로운 달, 신월(新月)밤을 홀로 걷기 시작했다. 외롭지 않았다. 이 길은 내가 정한 길이니까.  (597쪽)

 

 

당신 마음을 조금은 알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안타깝군요. 어쩌면 조금 부러운지도. 저한테는 이런 말할 자격이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누구나 자신이 가진 못난 점은 아주 크게 보입니다. 그것을 바꾸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거의 모두 그대로 살아갑니다. 바꾸는 게 쉽지 않으니까요. 아니, 본래 자기 모습에 익숙하고 바꾼다고 달라질까 싶기 때문이기도 하겠죠. 그래도 아주 조금 용기를 내는 사람도 있죠. 그 안에 사쿠라 레이카 씨도 들어가는군요. 그런데 처음에만 좋았던 것 같고 다시 안 좋아진 것 같기도 합니다. 바뀌어서 자신을 가지면 좋겠지만, 레이카 씨는 바뀐 자기 모습을 어색해하기도 했죠. 스스로 ‘나는 가면을 쓰고 있구나’ 했잖아요. 본래 사람은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살아가지만, 레이카 씨는 인공 가면을 쓰게 되었군요. 그래서 하게 된 것이 소설쓰기였는데. 아주 예쁜 얼굴 때문에 안 좋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군요. 왜 세상 사람들은 어떤 일에 맞는 얼굴이 있다고 생각할까요. 눈에 띄지 않는 사람만이 글을 써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저도 별로 눈에 띄지는 않는군요. 못생겼다기보다 그냥 보통이라서. 그리고 그것은 제가 바라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기. 그러면서도 마음 한쪽에서는 저를 봐주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이것은 저 자신이 아닌 그 어떤 것인 것 같군요. 레이카 씨도 그랬겠죠. 한사람이 자신을 봐준다면. 레이카 씨는 많은 사람보다 단 한사람이 자신을 봐주기를 바란 거죠. 가장 처음 자신을 인정해준 사람. 하지만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또 안타깝군요. 좀 더 좋은 사람을 만났더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다시 생각하니, 레이카 씨는 자신이 자신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레이카 씨는 기노우치도 얼굴이 예쁜 사람을 좋아할거다 생각하기도 했잖아요. 아니 많은 사람이 그럴거다 여겼죠. 그런 사람이 많기는 해도 모두 그렇지는 않을 텐데. 그리고 기노우치가 결혼한 사람도 얼굴이 아주 예쁘지는 않았죠. 기노우치가 아닌 다른 사람이 레이카 씨를 인정해줬다면 좋았을 텐데요. 기노우치가 사람을 한쪽으로 치우쳐서 보지 않고 그 사람이 가진 좋은 점을 잘 찾아내기는 합니다. 그런 사람이 기노우치만은 아닐 텐데. 소설가가 되고 레이카 씨는 같은 소설가인 고토이케 료를 만났습니다. 잠시 레이카 씨는 기노우치가 아닌 다른 사람과 소설쓰기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것을 즐거워했죠. 고토이케는 소설을 자신이 쓰기보다 소설신이 내려주는 것이다는 말을 했습니다. 자신은 그 이야기를 내 보내는 수도꼭지고. 저도 이런 말 들은 적 있습니다. 소설가 자신이 글을 쓰는 게 아니고 누군가 불러줘서 받아적는다고. 그런 거 정말 부럽습니다. 레이카 씨도 그랬죠. 자신이 가진 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던 때였잖아요. 그래도 레이카 씨는 그 틀을 깼죠. 비록 자신은 정념(감정에 따라 일어나는, 억누르기 어려운 생각)을 쏟아내는 수도꼭지라고 했지만. 어쩐지 저는 그것도 부럽군요. 사람은 쉽게 바뀌기 어려운데. 아니, 그때 레이카 씨한테는 레이카 씨를 바뀌게 하는 일이 일어났군요. 기노우치의 결혼. 그런데도 레이카 씨는 기노우치한테 버림받지 않기 위해 글을 써야 한다고 했죠. 이런 말 부끄럽지만 저도 비슷한 생각한 적 있어요. 제가 한 생각은 ‘내가 글을 잘 쓰지 못해서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인가’ 입니다. 이것은 바보 같은 생각이겠죠. 그래도 친구가 되고 싶었는데 이상하게 잘 안 됐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제가 잘 못해서 그런 것 같네요. 저만 생각했던 것인지도. 그런데 지금도 생각하는 게 있습니다. ‘내가 아는 게 별로 없어서 나를 싫어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이런 생각에서 자유로워질 수는 없겠지만,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과 멀어지는 것은 아닐 겁니다. 결국 자기 마음에 달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은 잘나고 못나고를 떠나서 어떤 사람이 그냥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군요. 기노우치는 레이카 씨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기보다 자신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 것 같아요. 그러니까 레이카 씨를 놔주지 않았죠. 그것을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요.

 

레이카 씨 자신이 기노우치 같은 사람을 왜 좋아할까 했죠. 레이카 씨는 고토 가즈코일 때를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기노우치는 레이카 씨가 가즈코일 때도 알고 있었습니다. 레이카 씨가 다른 사람을 좋아할 수 없었던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이것은 레이카 씨 자신이 자신(가즈코)을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군요. 그렇다 해도 레이카 씨 마음속에는 가즈코도 인정해주는 사람이 있기를 바랐던 거죠. 부모님하고는 다른 남이. 그래서 레이카 씨는 기노우치를 모두 이해한다고 자신을 속였습니다. 기노우치 아내도 모르고 있으면 그 사람도 이 세상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고. 레이카 씨는 기노우치 아내가 레이카 씨를 모를 거다 생각했는데, 저는 알고 있을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도 알고 있었죠. 기노우치 아내는 자기 남편이 돌아올 곳은 자신이라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예전의 가즈코였던 레이카 씨처럼. 아이가 생기고는 기노우치는 아이를 첫번째로 생각했죠.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레이카 씨가 기노우치한테 인정받고 싶어서 글을 쓴 게 아니고 자신을 찾기 위해서 쓴 거였다면 더 좋았을 텐데요. 사람은 거의 처음에는 누군가한테 인정받고 싶어서 무엇인가를 시작해도 시간이 갈수록 바뀌기도 하는데 레이카 씨는 그러지 않았군요. 그래서 붓을 꺾었죠.

 

저는 레이카 씨 이야기를 보기 전부터, ‘나는 왜 글을 잘 쓰고 싶은 걸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쩌면 다른 사람이 저를 잘 봐주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인지도 모르죠. 이런 마음도 있겠지만 그저 제가 만족하고 싶기도 합니다. 레이카 씨도 이런 말을 했군요. 갑자기 떠오른 게 있습니다. 자신이 쓴 글을 많은 사람보다 한사람이라도 마음에 들어한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자꾸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군요. 저는 다른 무엇보다 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나는 정말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일까, 좋아하는 척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사실 저도 아직 답을 모르겠습니다.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까지는 아니기 때문에. 그래도 무엇인가 쓰고 싶은 마음은 있습니다. 그게 잘 떠오르지 않지만. 레이카 씨도 꼭 기노우치 때문에 소설을 쓴 것은 아닐 겁니다. 그렇죠. 글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을 위해 쓰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는 저도 저를 좀 더 좋아하도록 애쓰겠습니다. 자신을 좋아하면 좋은 일이 많다고도 하더군요.

 

레이카 씨, 아니 가즈코 씨가 다른 세상에서라도 자신을 위한 글을 쓴다면 좋겠습니다.

 

 

(쓸 때는 괜찮았는데, 다시 보니 부끄럽다)

 

 

 

희선

 

 

 

 

☆―

 

“좋은 소설은 어떻게 해야 쓸 수 있을까? 물론 작가가 아는 세계가 좁으면 그만큼 좋은 소설이 나오기 힘들지. 그렇다고 견문을 넓힌다고 반드시 좋은 소설이 나온다는 얘기는 아니야. 그런 논리대로라면 살아가면서 산전수전 다 겪어 본 노인들만 좋은 소설을 쓸 수 있다는 소리잖아. 뭐야, 그럼 우리처럼 젊은 소설가는 필요도 없게? 그러니까 그건 틀린 얘기야. 소설의 정수에 다가가려면 경험만이 아닌 다른 뭔가가 필요한 것 같아. 그 ‘뭔가’의 정체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어쩌면 그걸 찾아가는 시간속에서 좋은 소설이 태어나는지도 모르지. 나는 그렇게 생각해.”  (470쪽)

 

 

“응. 나는 내가 소설을 써 내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 소설이란, 본래 사람 머리로는 생각할 수 없는 영역에 있으니까. 그냥 이야기가 잠시 소설가한테 내려올 뿐이지. 소설신이 소설가한테 이야기를 내려준다고 말하면 좀 알기 쉬울까? 나는 내 머릿속에서 이야기를 주무르지 않아. 그저 신이 주신 이야기를 착실히 문자로 나타내고자 애쓸 뿐이지. 한마디로 말하면 수도꼭지 같다고나 할까?”  (486쪽)

 

 

역시 내게는 기노우치밖에 없다. 현실을 깨닫자마자 가슴 깊은 곳을 도려내는 것처럼 날카로운 통증이 들이닥쳤다. 내 모든 것을 아는 사람. 못생겼던 옛날 얼굴도, 겉모습만 그럴 듯하게 꾸며 낸 거짓투성이 모습도 모두 받아준 남자. 심지어는 나조차 확신이 없는 내 재능을 덮어놓고 믿어주는 기노우치는 평생에 단 하나뿐인 남자였다. 나는 앞으로 만날 남자들한테 내 모든 것을 내보일 마음이 조금도 없었으니까.    (5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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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 클럽 단비청소년 문학 3
존 레키치 지음, 서은경 옮김 / 단비청소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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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루저’가 들어가 있다니.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도 학교폭력, 괴롭힘 문제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게 나오는 이야기는 조금 어둡기도 한데, 이 책은 밝은 편이다. 고등학생이라고 하는데 어쩐지 중학생 같기도 하다. 열다섯 살이라고. 이 책이 그렇게 어둡지 않은 것은 많은 아이들이 루저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루저인 아이, 루저인데 제리 위트먼을 따르는 아이, 루저도 제리 패거리도 아닌 아이. 이렇게 셋으로 나뉜다. 거의 한사람을 여럿이 괴롭히는데 여기에서는 제리 위트먼이 많은 아이들을 괴롭히고 돈을 뜯어낸다. 그런데 제리는 왜 그렇게 된 것일까. 꼭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된다. 제리가 한사람 뇌성마비 때문에 목발을 짚고 다니는 알렉스 쉐어우드만은 괴롭히지 않았다.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지만 제리는 알렉스를 업신여기고 얕보는 듯했다. 알렉스는 루저들을 도와준다. 돈이 없는 아이한테 돈을 빌려주고, 윈스턴이 사물함에 갇히면 꺼내주었다. 그리고 뚱뚱한 매니와 함께 있어주기도 한다. 알렉스가 함께 있으면 제리가 괴롭히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윈스턴은 몸집이 작다. 세 아이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알렉스, 윈스턴, 매니한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가정에 조금 문제가 있는 것이다. 알렉스 엄마는 이 세상에 없고 아버지는 발명가다. 한때는 발명으로 돈을 많이 벌기도 했지만, 문제가 생겨서 빚을 지고 지금은 어딘가로 몸을 숨겼다. 윈스턴 아버지는 사업가로 홍콩에 있었다. 윈스턴을 돌봐주는 네빌 형도 지금은 집에 없다. 집은 부자지만 좀 외로운 아이다. 이것은 알렉스나 매니도 마찬가지구나. 매니는 알코올 의존증 엄마와 살고 있다. 세 사람을 도와줄 어른이 없다. 알렉스가 윈스턴 집에서 함께 살게 되면서, 알렉스는 윈스턴 옆집에 사는 해리를 훔쳐본다. 윈스턴은 해리를 괴물이라고 했는데, 알렉스는 해리가 자기와 같은 루저라고 여겼다(실제 그랬다). 해리가 달라지면 알렉스 자신의 앞날도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매니 엄마가 알코올 의존증 치료를 받으러 갔을 때 매니도 윈스턴 집에서 지내게 된다. 해리는 세 아이의 보호자가 된다. 보호자라기보다 거의 친구다. 해리한테도 뇌성마비 아들이 있어서 해리는 알렉스를 남다르게 보았다. 알렉스 아버지를 찾아서 다시 돌아오게도 해주었다. 윈스턴 집은 루저 클럽의 모임을 갖는 곳이 되기도 한다. 세 아이와 다른 루저들은 제리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모여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분위기는 다르지만 우리나라 단편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문열)이 떠오르기도 했다.

 

제리는 한사람이고 루저는 아주 많은데. 알렉스는 제리 패거리와 크리스마스 전구 장식으로 싸우기로 한다. 크리스마스트리 꾸미기인 듯. 알렉스와 다른 아이들이 이기면 제리는 루저들을 괴롭히지 않겠다고 했다. 얼핏 보면 평화로운 싸움인 것 같지만, 제리는 알렉스와 루저들이 꾸민 것을 한번 부수었다. 알렉스와 아이들은 제리한테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시 힘을 낸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알렉스, 윈스터, 매니 그리고 루저들이 이겼다. 이것은 당연한 것인가. 겁쟁이에 끈기없는 루저일지라도 여럿이 힘을 합치면 큰 힘이 되니까. 두렵고 무서운 일에서 달아나지 않아야 한다. 혼자서는 이길 수 없겠지만, 여럿이 모이면 이길 수 있다. 하지만 이 일을 쉽게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은 왜일까. 여기에서 아이들이 힘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거의 모두가 루저였기 때문이다. 같은 형편이 아닐지라도 힘있는 쪽보다는 힘없는 족을 도와야 하지 않을까.

 

학교폭력이나 집단 따돌림을 없애기 위해 학교와 가정에서 마음을 써야 하지만, 그 한가운데 있는 아이들도 애써야 한다. 나는 이렇게 쓰는 것밖에는 못하지만.

 

 

 

희선

 

 

 

 

☆―

 

“우리가 위트먼한테 복수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어. 제리 위트먼이 그려진 다트 판이 있어서 제리 이마 한가운데 정확히 주먹을 날렸으면 좋겠어.”  (89쪽)

 

 

“우리는 녀석을 이길 수 있어. 크리스마스 전구든 구슬이든 뭐가 문제야? 우리는 녀석을 이길 수 있어”  (1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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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책을 읽는가 -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독서를 위하여
샤를 단치 지음, 임명주 옮김 / 이루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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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제목처럼 나도 ‘왜 책을 읽는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런데 바로 떠오른 것은 없었다. ‘그냥 책읽는 게 좋으니까’다. 그건 그렇고, 이 책 이야기는 잘 못하겠다. 왜 그럴까를 생각해보니 책읽기가 아주 좋은 것이다고만 말하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을 쓴 샤를 단치는 책읽기를 좋아하고, 책읽기는 걷기와도 같다고 했다. 나는 숨쉬는 것과 같지 않을까 했는데, 뒤에 이 말도 나온다. 책읽기가 누구한테나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나도 아주 어렸을 때부터 책을 읽은 것은 아니다. 그게 조금 아쉽지만, 지금은 책과 가까이 지내니 괜찮은 거 아닌가 싶다. 주로 읽는 게 소설일지라도 말이다. ‘우리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27쪽) 세상과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서 읽기에 좋은 것은 소설이다. 다른 사람을 알기 위한 것도 있기는 한데. 그리고 지식을 넓힐 수도 있을 것이다. 생각을 깊고 넓게 할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책을 읽으며 현실을 잊는다는 것도 맞는 말이다. 책을 읽는 까닭은 자신을 위해서지만 책을 읽는 사람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다. 다시 책읽기는 좋은 것이다가 되려나.

 

책을 읽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물질보다는 정신에 대한 게 더 클 것이다. 샤를 단치는 문학이 기분을 바꿔주기는 하지만 위안을 주지는 않는다는 말을 했다. 정말 그럴까. 책읽기가 사람을 바꾸지는 않다는 말은 맞지만 위안을 주지 않는다는 말은 맞지 않는 것 같다. 책을 읽고 위안 받을 때도 있으니까(샤를 단치는 그런 경험이 없다는 말인가). 이것도 사람마다 다른 것은 아닌가 싶다. 책 종류는 많으니까. 다른 책은 읽지 않아도 자기계발책을 읽는 사람은 뜻밖에 많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것을 꼭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자신한테 도움이 되는 책을 읽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요즘 자기계발책에는 여러가지가 나오기도 하니까. 본 적도 없는데 이런 말을 하다니. 어쩐지 그럴 것 같은 느낌이다. 그것을 보다가 더 알고 싶어져서 다른 책을 찾아서 읽는 사람도 있을 거다. 이렇게 썼지만 나는 다른 책을 찾아서 읽지는 않는다. 가끔 책 속에 나온 다른 것에 관심을 갖지만 그 책을 볼 때뿐이다. 그 관심을 오래 끌고 갈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오랫동안 나는 책을 읽기만 했다. 아니 가끔 읽은 책에 대해 쓴 적도 있다. 그때 읽고 썼던 것은 거의 동화였다. 소설도 많이 읽었는데 쓸 수 없었다. 지금 그렇게 잘 쓴다고 할 수 없지만, 그때 쓰지 않은 게 조금 아쉽기도 하다. 기억은 언젠가는 사라지기에 그것을 조금이라도 붙잡아두려면 쓰는 게 좋으니까. 예전에 읽었던 책에 대해서는 거의 잊어버렸다. 써도 잊어버리지만. 그래도 쓰지 않는 것보다는 쓰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다. 몇해 동안은 대충 썼는데 지금은 잘 쓰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면 할 말이 거의 없다(비슷한 말을 또 쓰다). 그래도 쓴다. 어쩌면 이것은 그렇게 좋은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늘 생각하는 것은 내가 책을 잘 못 읽어서인가 보다 다. 다음에는 잘 봐야지 하지만 잘 안 된다. 그런데 왜 이렇게 흐르는 거지. 처음에 쓰려고 한 것은 이런 말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다시 돌아가서, 내가 책을 읽게 된 것은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 어떤 작가는 한동안 책을 읽고 소설을 썼다고 말했다. 이런 말을 한 사람은 한두 사람이 아니다. 책을 읽는 게 재미있기도 했지만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읽은 책에 대해서도 쓰기로 한 거다. 이게 도움이 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게라도 쓰는 버릇을 들이려고 했는데 버릇이 쉽게 들지는 않는다.

 

여전히 책을 읽는 것은 즐겁다. 하지만 다음은 덜 즐겁다. 다른 사람한테는 책읽기뿐 아니라 쓰는 것도 즐겁게 하라는 말을 했는데, 나는 그러지 않고 있다니 했다. 그래서 이제는 잘 쓰지 못해도 즐겁게 쓰기로 했다. 글을 쓰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고 늘 생각해야겠다. 실제 그렇기도 하다. 내가 아주 싫어했다면 지금까지 썼겠는가. 잠깐 쓰다가 그만뒀겠지. 책을 많이 읽는다고 글을 잘 쓰는 것 같지는 않다. 하나 더 책을 많이 읽는다고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글쓰는 것도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도 끊임없이 애써야 한다. 무엇이든 저절로 되지는 않는다.

 

책을 읽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 문제는 없다. 하지만 책을 읽지 않는 것보다는 읽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저기 산이 있기에 오른다, 처럼 여기 책이 있기에 읽는다.

 

 

 

희선

 

 

 

 

☆―

 

우리는 책에 도움말을 부탁하는 대신 책 속 보물을 훔쳐내야 한다.  (147쪽)

 

 

우리는 작가가 말하지 않은 것을 찾아내기 위해 책을 읽기도 한다. 흔히 책을 읽다가 몽상에 빠지는 순간이 있다. 문득 고개를 들고 입술에 집게손가락을 문 채 먼 곳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라? 

(1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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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연 2013-08-28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기 산이 있기 때문에 오른다, 라는 말이 에베레스트 등정때 나온 말로 알고 있어요. 그러고보면 책을 읽는 것은 에베레스트의 등정에 비유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다 읽고 난 뒤의 허무함까지.. ㅎㅎㅎ 뭐랄까, 저는 다 읽고 나면 허무함을 느끼는 경향이.

희선 2013-08-28 03:09   좋아요 0 | URL
다 끝났구나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기도 하죠
그래서 다시 다른 책을 읽는 거죠 꼭 한권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책을 만난 사람은 행복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쩌면 그런 것을 찾기 위해 자꾸 책을 보는 것은 아닌지... 하지만 그것을 찾게 되면 그만 보게 될까요 자기 마음을 다 채워줄 수 있는 그런 책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희선

희선 2013-08-29 00:28   좋아요 0 | URL
왜 위와 같이 말했을까요 사람을 찾는 것처럼... 책은 하나만 좋아할 수 없을 듯해요 그것만 있어도 괜찮겠다 하는 게 있기를 바라는 제 마음이군요 그런 게 있어도 다른 이야기 보고 싶어할 듯합니다 책보다는 책 속에서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것인지도...

확실하게 뭐라 하기 어렵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고 못 찾을 수도 있겠죠


희선
 
ビブリア古書堂の事件手帖(1) (アフタヌ-ンKC) (コミック)
交田 稜 지음 / 講談社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우리나라에도 이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이 소설로 2권까지 나왔다. 나는 소설이 아닌 만화로 먼저 만났다. 일본에서는 소설을 만화로, 만화를 소설로 내기도 한다. 이것은 드라마로도 만들었다. 우연히 만화로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니 만화로 나온 것은 이게 처음이 아니기는 하다. 다른 곳(카도카와)에서 먼저 나왔다. 나는 나온 지 얼마 안 된 것이 보고 싶었다. 앞에 내용은 이 책을 보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알고 있다 해도 재미가 덜한 것은 아니다. 언제나 그다음이 문제다. 책을 본 다음 말이다. 책을 보고 나면 할 말이 많으면 좋을 텐데 언제나 거의 없다. 얼마 전에 음식에 대한 추억이 없다고 했는데, 책에 대한 추억도 없다. 그게 있으면 그거라도 쓸 텐데 아쉽다. 내가 본 것은 만화지만 이 책을 소설로 본 사람이 많을 테니 쓰기가 더 어렵다. 어떻게 써나갈 것인가 생각하지 않고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좋은 생각이 바로 떠오르지는 않는구나.

 

소설에서는 공간 배경이나 나오는 사람에 대한 게 글로 나올 텐데 만화는 그것을 보여준다(글도 보여주는 것이나 마찬가지구나). 내가 만화를 아주 많이 본 것이 아니어서 그림만 보고 바로 그런 것을 알지는 못한다. 그러면 어떻게 알았을까. 그것은 그냥 내버려두기로 하고. 오래된 책(헌책)을 다루는 비블리아 고서당은 가마쿠라에 있다. 가마쿠라가 어떤 곳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눈여겨보아야 할 사람은 비블리아 고서당 주인 시노카와 시오리코, 또 다른 사람은 시오리코한테 돌아가신 할머니 책을 봐달라고 한 고우라 다이스케다. 맨 처음에 나오는 게 고우라 다이스케니 안 볼래야 안 볼 수 없겠구나. 아주 처음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책에 얽힌 수수께끼를 가져오는 첫 손님은 고우라다. 책을 보고 그 책에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는지를 알아내는 사람은 시오리코다. 시오리코는 책을 보면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막힘없이 한다. 반대로 고우라는 어렸을 때 할머니한테 크게 혼나고는 책을 읽을 수 없는 체질이 되어버렸다. 얼핏 보면 두 사람이 달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고우라는 책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학교 다닐 때는 도서위원으로 책 정리를 하면서 어떤 내용일지 상상하기도 했다. 시오리코는 책 이야기를 즐겁게 하고, 고우라는 그 이야기를 즐겁게 듣는 것이다. 시오리코는 고우라를 만난 지 얼마 안 됐지만, 고우라는 시오리코를 여섯 해 전에 본 적이 있다. 이런 만남도 재미있게 보인다. 그리고 고우라는 비블리아 고서당에서 일하게 된다.

 

고우라 할머니 일을 고우라가 어렸을 때나 고우라가 태어나기 전에 다른 사람이 알았다면 어땠을까. 지금,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고우라가 알게 된 게 더 나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때 충격을 받은 것은 안됐지만. 어떻게 보면 그것 때문에 시오리코를 만나게 된 거나 마찬가지니 나쁘지 않은 거 아닌가 싶다. 예전에 할머니는 고우라한테 책을 좋아하는 아가씨와 결혼하면 되겠다는 말을 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시오리코 같은 사람 좋아하려나. 이런 생각을 하다니. 나도 책을 좋아하지만 그것에 대해 말하지는 못한다(다른 말도 못하지만). 말을 잘할 수 있을 정도로 빠지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지금부터라도 책을 잘 읽고 말도 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지만 잘 안 될 것 같다. 말은 못해도 쓰기라도 잘 하면 좋겠다. 내 말은 이거니까. 고우라 할머니 이야기에는 나쓰메 소세키 소설 《그 뒤》(이 소설은 남자가 남편이 있는 여자를 좋아하는 이야기이다)가 나온다. 책 안에 또 다른 책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런 점이 또 좋은 것이다. 우리나라 소설가 책은 아니지만.

 

책을 보기 전에 이런 생각도 했다. 앞으로 나한테 책에 대한 추억이 생기면 좋겠다는. 하지만 이게 생각한다고 되는 게 아니어서. 그냥 지내다 나중에, 언젠가 그런 일(책)이 있었지가 된다면 좋겠다. 요즘은 책방이 별로 없다. 헌책방은 더 없지 않나 싶다. 책은 누군가 읽어야 비로소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 책을 읽는 사람 이야기도. 또 그 책이 다른 사람한테 넘어가면 또 다른 이야기가 더해지겠지. 우리는 그 이야기를 다 알 수는 없을 것이다. 책만이 알 것이다. 책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래도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으로 우리도 조금은 알 수 있다.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은 옛날 일을 떠올려볼지도 모르겠다. 새 것도 좋지만 오래되고 낡은 것도 좋지 않나 싶다. 그런 것을 여기에서는 만날 수 있다.

 

 

 

희선

 

 

 

 

☆―

 

古書が大好なんです

人の手から手へ渡った本そのものに

物語があると思うんです  (52~53쪽)

 

 

오래된 책을 아주 좋아해요

사람 손과 손을 거친 책 자체에

이야기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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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연 2013-08-28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오리코는 역시 긴 생머리가 어울리는 것 같아요, 이미지..가 말이죠, 풋. 저도 책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책 자체보다는 역시 내용을 더 좋아하네요, 쿡.

희선 2013-08-28 03:04   좋아요 0 | URL
소설에 그려져 있는 시오리코가 좀 더 나아 보여요
비슷하기는 한데 느낌이...^^
내용이 좋으면 그 책도 좋아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책은 손에 잡히는 것이지만, 이야기는 그렇지 않죠
어쩌면 이야기를 오래 남기고 싶은 마음이 책을 만들어 낸 것인지도 모르죠
당연한 말이군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