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 짓는 사람
누쿠이 도쿠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사람은 남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하는 줄 알지만 실은 무엇 하나 모르는 건 아닐까. 당신 이웃이 니토와 같은 심성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그 정체를 알아 낼 방법은 없다. 알았을 때는 벌써 일이 터져 버린 뒤다.  (12쪽)

 

 

얼마 전에 일본드라마 <히토리 시즈카>를 보았다. 얼마 뒤에는 혼다 테쓰야의 책 《히토리 시즈카》가 우리나라에 나왔다. 책보다 드라마를 먼저 봤다(책은 아직도 못 읽었다). 이 드라마 조금 어둡다. 드라마 본 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많이 잊어버렸다. 시즈카가 처음 나왔을 때 고등학생이었는지 중학생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중3 아니면 고1이었던 것 같은데. 이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인가. 첫화에서 시즈카는 총에 맞아서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손가락으로 총알을 더 깊숙이 밀어넣었다. 그 사람은 그냥 놔두어도 죽었을지 모르지만, 시즈카가 죽음을 앞당겼다. 왜 시즈카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사람을 죽인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손을 더럽히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른 사람이 누군가를 죽이게 하기도 했다. 거의 끝날 때쯤 시즈카의 어린시절이 나왔다. 시즈카는 어렸을 때 엄마가 사귀는 남자한테 학대를 당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어린시절에 학대당한 일 때문에 시즈카는 자라서 사람을 죽일 수 있게 되었다고. 시즈카가 죽게 한 사람은 거의 나쁜 사람이었다. 나쁜 사람이라고 해서 죽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책은 어땠는지 모르겠는데 드라마에서 시즈카는 차에 치이려는 아이를 구하고 죽는다. 그 아이는 시즈카가 돌봐주었던 여자아이의 아이였다. 아마 시즈카는 그 여자아이가 자기 동생이라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추리 · 범죄소설에 나오는 범인은 거의 어릴 때 무슨 일을 겪은 사람일 때가 많다. 실제로도 그런 경우가 있지 않을까 싶다. 책을 보면서 범인은 왜 사람을 죽이게 된 걸까 하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늘 사람을 죽이게 된 까닭을 확실하게 알 수 있을까. 동기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이 책 《미소 짓는 사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일류 대학을 나오고 엘리트 은행원인 니토 도시미는 집에 책 놓을 곳이 없어서 자기 아내와 딸을 죽였다. 사람들은 동기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보니 집에 방은 세 개로 하나는 부부가 잠자는 곳(아이도 같은 방을 쓴 것 같다), 하나는 니토의 서재, 나머지 하나는 아내 쇼코의 방이었다. 나는 집 안에 책이 꽉 차 있는 것인가 했다. 그저 서재에만 차 있었던 거였다. 니토는 아내와 딸이 없으면 다른 방에 책을 놓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인가보다. 이럴 때 보통 사람은 아내와 이야기를 해볼 텐데, 아니면 다른 곳을 마련하든지 책을 줄이든지 할 텐데. 니토는 보통 사람은 생각할 수 없는 방법을 떠올리고 실제로 했다. 이런 말하면 내 정신을 의심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니토가 책 놓을 곳이 없어서 아내와 딸을 죽였다는 말에 ‘그럴 수도 있지’ 하는 마음도 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겠지만. 니토한테 아내와 딸은 자리만 차지하는 물건 같은 게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치워야 하는데 헤어지는 것은 귀찮고, 차라리 죽이는 게 낫겠다 생각한 것은 아닐까. 사람을 죽이는 게 더 힘든 일인지도.

 

소설가는 니토 도시미한테 관심을 가지고 니토 도시미에 대해 알아본다. 소설가는 니토가 어렸을 때 겪은 일 때문에 아내와 딸을 죽이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먼저 했다. 회사 사람들은 니토가 사람을 죽일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예전에 사라진 은행원 뼈가 타나났다. 그 사람은 니토와 같은 곳에서 일했고 니토보다 먼저 승진할 사람이었다. 그리고 니토가 대학생일 때는 친한 친구가 사고로 죽었다. 그 친구한테는 그때 널리 퍼져있던 게임기가 있었다. 니토가 어렸을 때 살던 이웃집에는 개가 있었는데 니토는 개를 싫어했다. 개가 니토를 싫어한 것은 아닐까. 예전에 읽은 《악의 교전》(기시 유스케)에 나온 하스미 세이지도 개가 아주 싫어했다. 하스미는 사람 감정을 모르고 사람을 많이 죽였다. 어쩌면 개는 위험한 냄새를 잘 맡는지도 모르겠다. 니토가 살던 이웃집 남자가 사고로 죽자 그 집에 사는 사람은 다른 곳으로 떠났다. 사고로 죽은 사람들 정말 니토 때문일까.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니토는 어린시절에 큰일을 겪은 적이 없었다. 소설가는 한번 그럴듯한 이야기를 듣지만, 그것은 거짓말이라고 했다. 읽는 우리도 소설가와 같은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했던가. 이 책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어서 그러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가까이에 있는 사람 마음도 잘 모르면서 범인 마음을 모르면 불안해하나. 이런 말이 있어서. 사실 나는 별로 생각 안 해 본 것 같다. 아마 사건을 가까이에서 본 적이 없어서인지도. 나는 소설에서만 그런 것을 보니까. 아주 많이 본 것도 아니구나. 보통 사람도 어느 한순간 잘못해서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그게 생각난다. 《이방인》(알베르 카뮈). 햇빛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고 했던가. 책 읽지도 않았는데 이런 말을 하다니. 비슷하다고 할 수 없겠구나. 니토 도시미는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없어 보이고 다른 사람한테 좋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이 사람의 진짜 마음속은 알 수 없다. 니토는 사람을 죽이는 일에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사람 같다. 그저 누가 없으면 좀 나을 텐데 하고 생각한 듯하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인가. 목숨의 무게를 모르는 것인가. 그리고 무슨 일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것을 알 수가 없다. 알 수 없다고 해서 불안한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세상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일이 많으니까. 꼭 까닭과 결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니토 도시미가 더 나쁜 사람으로 보였다면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이 말은 앞에서 한 말을 뒤집는 것인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봤다고 해서 둘레에 있는 괜찮아 보이는 사람을 의심하지는 않아야 할 텐데.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으려나. 사람은 겉만 봐서는 모른다, 고. 갑자기 이런 생각도 든다. 니토도 ‘악의 교전’의 하스미처럼 사람 감정을 잘 모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소시오패스인가. 언제가 소시오패스에 대한 글을 본 적이 있는데 비슷한 느낌이 든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마음놓고 싶어하는 것인가. 자꾸 니토는 그럴 거야, 하고 생각하다니.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 그냥 그런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야겠다.

 

 

 

희선

 

 

 

 

☆―

 

“우선 감정 기복이 적은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통상의 뜻의 희로애락이 니토 씨 마음에는 생기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죠. 그래서 마치 벽을 보고 떠드는 듯한 허무함을 느낀 적도 있습니다.”  (75쪽)

 

 

“(……) 보통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까닭으로 남을 죽이는 인간에게 한 해를 기다리는 것보다 살인이 손쉬운 방법이었을 가능성은 없을까. 니토에 대한 취재를 진행하다 보니 이해가 갔는데, 세상에는 살인이라는 금기에 대한 관념이 완전히 빠져 있는 인간도 있다. 그러한 인간에게 살인은 사태를 해결하는 한 가지 수단일 뿐이다. 죄악감이라는 억제 장치가 없으면 인간은 얼마든지 쉽게 결단을 내리는 법이다.”          (154쪽)

 

 

“책을 둘 곳을 마련하려고 그랬다니까요. 처음부터 그렇게 말씀드렸잖습니까. 믿든 안 믿든 그건 받아들이는 사람 마음입니다. 다른 사람 기분을 이해하느냐 마느냐는 자신의 문제라고요.”  (169쪽)

 

 

“이해가 가지 않으면 불안하죠. 책을 둘 공간이 필요해서 아내와 딸을 죽였다던가, 한 해 뒤 승진을 기다리지 못해 사람을 죽였다는 건 도대체 영문을 모를 이야기예요. 그렇게 이상한 사람이라 해도 이해하기 쉬운 트라우마가 있으면 받아들일 수 있어요. 선생님 책을 읽은 사람은 모두 ‘아아, 그랬구나’ 하고 안심하면서 책을 덮지 않을까요?”  (325쪽)

 

 

“마지막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결말이 나는 건 픽션뿐이에요.” 가스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실제로는 다른 사람 마음이 어떤지 모르잖아요. 살인귀는 물론 가까운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실은 모른다고요. 아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남편이 세상에 몇 사람이나 있을까요? 부모는요? 자식은요? 애인이나 친구의 생각을 백 퍼센트 이해할 수 있다면 그건 초능력자죠. 누군가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 왜 살인범의 심리만은 이해하지 못하면 불안해하는 걸까요?”  (326쪽)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니토뿐만이 아니라고 쇼코는 지적했다. 우리는 남을 이해한 척한다는 사실조차 보통은 잊고 있다. 안심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면 바로 불안해지니까. 그 눈속임을 해아래 드러내는 니토한테 우리는 이상한 관심을 보였다. 모두 자신의 불안을 억누르고 싶기 때문이었다.  (3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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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블론드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3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이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번에는 마이클 코넬리의 《콘크리트 블론드》를 읽었습니다. 이것은 해리 보슈 세번째 이야기예요. 여기에서 해리 보슈는 마흔세 살이라고 하더군요. 《로스트 라이트》에 나온 헤어진 아내와는 아직 만나지 않은 때예요(어쩌면 첫번째 책에서 엘리노어를 만났을지도 모르겠네요. 사실은 만났습니다. 거기에서 이름이 E. D. 위시라고 해서 다른 사람인가 했습니다. 그런데 해리 보슈가 남다르게 위시를 바라보는 겁니다. 혹시 이 사람인가 했지요). 해리 보슈는 실비아와 사귀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실비아를 만난 것은 두번째 이야기에 있을 것 같아요. 실비아 남편도 경찰이었는데 죽었습니다. 그 일을 말해준 사람이 해리 보슈라고 하더군요. 이런 일 가끔 일어나기도 하죠. 어디에선가는 자신이 죽인 범인 아내와 결혼하기도 했더군요. 경찰은 결혼할 상대 식구한테 범죄자가 있으면 안 된다고 하던데. 법이라기보다 분위기가 그런 것인가 싶기도 하군요. 하긴 그 사람은 경찰을 그만두려고 했는데 위에 사람이 눈감아준 것 같았어요. 어쩌면 이것은 나라마다 다를지도 모르겠군요. 다른 것보다 이런 이야기를 먼저 하다니. 아주 많이 나온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해리 보슈가 사건만큼이나 실비아를 생각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할 텐데, 하는. 해리 보슈한테 있었던 일이 아주 조금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 일을 말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실비아가 해리 보슈를 좋아하지만 경찰이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뒤로 물러나려고 합니다. 옛날에 한번 겪은 일을 또 겪을까봐 그런 거겠죠.

 

네해 전 해리 보슈는 거리의 여자를 죽이고 화장을 해서 버린 인형사한테 총을 쏘아서 죽게 했습니다. 죽은 남자 아내가 해리 보슈가 과잉 대응을 했다면서 고소했어요. 그런데 콘크리트 속에서 다른 여자 시체를 찾게 됩니다. 인형사가 죽인 방법과 똑같았죠. 범인이 쪽지로 시체가 있는 곳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이 일은 해리 보슈가 엉뚱한 사람을 죽인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하지만 해리 보슈는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어요. 자신이 네해 전에 쏜 남자가 인형사라고 확신했죠. 미국에서는 경찰뿐 아니라 보통 사람, 더우기 범인은 총을 가지고 있을 수 있지요. 그래서 범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이상한 행동을 하면 경찰은 망설이지 않고 총을 쏩니다.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지만 그것이 옳을까 싶기도 합니다. 아주 쉽게 범인을 죽여서요.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군요. 해리 보슈는 예전에 일어났던 사건 서류를 보다가 하나를 깨닫습니다. 그것은 범인이 한사람 더 있다는 거였어요. 모방범이. 해리 보슈는 바로 한사람을 떠올렸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 사람이 아닌 것 같았는데……. 진짜로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이 말한 두번째 사람도 아니었어요. 해리 보슈는 세번째도 아닐까봐 홀로 행동합니다. 실제로도 그렇게 범인을 잘못 짚었다가 진짜 범인을 알게 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책을 보면서 왜 죽임을 당하는 사람은 거리의 여자가 많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소설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죽임을 당하잖아요. 이것은 현실에서도 그런지도 모르죠. 몸을 판다고 해서 죽어도 괜찮다고 할 수 있을지. 어쩌면 범인 눈에 쉽게 띄기 때문인지도 모르겠군요. 해리 보슈 어머니도 매춘부로 해리 보슈가 어렸을 때 누군가한테 죽임 당하고 범인은 아직도 잡히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재판 때 그 이야기를 원고쪽 변호사가 해서 해리 보슈가 어머니의 복수를 하려고 한 걸로 몰고 가려고 했습니다. 해리 보슈가 경찰이 된 것은 자기 어머니를 죽인 사람을 잡기 위해서이기도 했다더군요. 이 말은 첫번째 이야기에 나올지…….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죽임 당하는 게 여자일 때가 많다는 겁니다. 그리고 죽이는 사람은 남자일 때가 많죠. 어떤 책에서 보니 여자를 죽이는 사람을 만들어내는 것은 어머니라는 겁니다. 해리 보슈가 잡은 범인에 대한 이야기도 아주 조금 나왔습니다. 조금이라고 해서 그게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죠. 네, 범인은 바로 자신의 어머니를 몇 번이고 죽인 거였습니다. 범인이 죽인 여자들은 어머니와 많이 닮아 있었어요. 어머니하고만 살았고 어머니가 아주 엄했다더군요. 아버지 때문에 자라서 사람을 죽이게 되는 사람도 있지만, 어머니 때문에 사람을 죽이게 되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런 사람은 ‘나는 사람을 죽였다’고 하는 게 얼굴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여기에 나온 범인도 그랬습니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죠. 사실은 저도 첫번째는 확실히 아니지만, 두번째 사람인가 했습니다. 그런 것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사람 마음은 알 수 없습니다.

 

부모가 아이한테 잘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말 안 해도 알겠지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해리 보슈가 재판 받는 것과 인형사의 모방범을 찾으려고 하는 모습이 길게 이어져요. 그 사이사이에는 해리 보슈와 실비아가 나오기도 하고. 한사람이 나오는 이야기를 오래 쓰면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은 넣어야겠죠(이것은 꼭 오래 쓸 때만 그런 것은 아니군요). 사건이 어떻게 해결될까 하는 생각도 들고, 해리 보슈한테도 조금 관심이 가더군요. 다 읽고 나니 괜찮기는 한데 읽으면서 왜 답답한 느낌이 들었는지 모르겠군요. 어떤 일이 바로 일어날 것 같아서였는지도. 해리 이야기가 아주 안 좋다고 하기는 어렵고 선뜻 보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그래도 조금 더 알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해리 보슈는 한번 보고 좋아할 수 있는 캐릭터는 아닌 것 같아요. 어쩌면 이것은 저만 그런 것인지도. 언젠가 또 만날 수 있을지도.

 

 

 

희선

 

 

 

 

☆―

 

“자네한테 멋진 정보를 주지, 해리. 이 세상에서 속과 겉이 똑같은 사람은 한놈도 없어. 한놈도. 더구나 자기 방에 틀어박혀 문을 잠그고 있을 땐. 그리고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하든 상대방을 다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기껏해야 자기 자신이나 알면 다행이지. 게다가 진정한 자신을 알게 되었을 땐 자신에서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수 없지.”  (433쪽)

 

 

“(……) 우리 모두가 거의 알지. 그래서 사람 속은 아무도 모른다고 하는 것 같아.”  (5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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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연 2013-09-10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제가 너무 늦게 댓글을 다네요, 풋. 해리 보슈 시리즈를 많이 듣기는 들었었는데 제대로 읽은 적은 한번도 없네요.

희선 2013-09-11 03:37   좋아요 0 | URL
저도 안 지 얼마 안 됐습니다 조금 읽어보기는 했는데, 이상하게 잘 안 넘어가요 이것은 그래도 잘 넘어갔는데 다른 것은... 그래서 한동안은 안 볼지도... 나중에 생각나면 다음 편을 봐야겠습니다 생각이 날지 모르겠군요


희선

가연 2013-09-10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덧글이 제대로 써지지 않네요.. 본의아니게 왼쪽의 창에 잔뜩 도배를 한 꼴이 되서... 어떻게 저걸 지워야 할 지 모르겠네요ㅠ

희선 2013-09-11 03:17   좋아요 0 | URL
왼쪽 창에 도배... 잘 모르겠군요 아까는 있었지만 지금은 없는 것인가요
덧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도 있군요 가연 님이 쓸 때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도 모르겠군요 그럴 때도 있는 거죠^^
시간이 잘 갑니다


희선
 
엿보는 고헤이지
교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얇아서 희미해진 고헤이지 씨, 지금도 여전히 헛방에서 바깥 세상을 엿보고 있나요. 고헤이지 씨가 봤던 것은 세상이 아니고 아내인 오쓰카였던가요. 오쓰카는 고헤이지 씨가 자신을 그렇게 보는 것을 싫어했지만 정말 싫어했을까 싶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것을 즐겼을지도 모르죠. 이렇게 말하니 오쓰카가 이상한 사람 같군요. 오쓰카는 고헤이지 씨가 자신을 몰래 엿보기보다 말을 해주기를 바라지 않았을까요. 그곳에 있는데도 없는 사람 같은 고헤이지 씨한테 화가 났던 거죠. 하지만 오쓰카는 나중에 다친 고헤이지 씨가 집에 돌아와서 자신한테 말을 했을 때도 싫어했군요. 오쓰카 마음을 잘 모르겠군요. 고헤이지 씨를 아주 싫어하는데 오쓰카는 왜 고헤이지 씨와 살았을까요. 그냥 같이 살고 있을 뿐이다, 니. 고헤이지 씨가 싫어하기를 바라면서 오쓰카는 다른 남자를 집으로 끌어들였는데, 고헤이지 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때도 엿보기만 했죠. 어쩌면 오쓰카는 자신을 싫어해주기를 바란 것인지도. 그것보다는 고헤이지 씨가 싫다 좋다 무슨 말이든 해주기를 바랐던 것인지도. 고헤이지 씨는 오쓰카를 좋아한다고 했죠. 그저 엿보기만 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나요. 이렇게 말했지만 어쩐지 그 마음 알 것도 같아요. 저한테도 고헤이지 씨와 닮은 면이 있는가봐요. 아주 조금.

 

저는 다른 사람이 저를 싫어하면 아주 슬플 것 같아요. 그런데 고헤이지 씨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더군요. 가장 가까이에 사는 아내부터 고헤이지 씨를 싫어했는데. 그래도 고헤이지 씨는 극단을 따라 떠났을 때는 오쓰카한테 편지를 썼다면서요. 집에서는 아무 말도 안 했으면서 바깥에 나가서는 그렇게 편지를 쓰다니. 오쓰카는 그 편지도 싫어했군요. 고헤이지 씨가 오쓰카한테 편지를 쓴 까닭은 오쓰카가 고헤이지 씨를 내쫓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은 아닌가요. 어쩌면 고헤이지 씨는 자신이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있어도 없는 듯, 없으면서도 있는 듯한 고헤이지 씨지만 자신이 제대로 있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군요. 아니 이것은 아닌가. 자기 스스로 두께가 없다고 말했지만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닌지도. 저는 고헤이지 씨를 싫어하지 않아요. 왜일까요. 아마 멀리에서 지켜봐서인지도 모르죠. 가까이에 있었다면 저도 싫어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누군가를 싫어하는 까닭은, 그냥일 수도 있고 부러운 점이 많기 때문일 수도 있고 자신과 닮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고헤이지 씨가 만난 사람들은 여러가지 까닭으로 고헤이지 씨를 싫어한 것 같군요. 처음에는 그 사람들이 고헤이지 씨를 보고 자기 모습을 봤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인가 했는데. 그것도 있고 부러운 것도 있었을 거예요. 얼뜨기라는 말을 듣는 고헤이지 씨를 부러워하기도 해서 놀랐나요.

 

사람은 자신보다 못나 보이는 사람이 자신보다 잘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면 질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헤이지 씨가 잘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고헤이지 씨 나름대로 살아가고 있었으니까요. 세상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모습. 그리고 누구보다 귀신 역을 잘했잖아요. 가만히 있어도 귀신 같지만. 고헤이지 씨는 오쓰카와 살기도 했죠. 어떤 사람이 그것을 부러워했잖아요. 이 세상에 바라는 게 없는 것 같은 눈빛도 누군가는 갖고 싶어하기도 했죠. 이렇게 말하고 나니 거의 부러워하는 것이군요. 부러움과 질투는 같은 말이기도 합니다(조금 다르지만). 저도 고헤이지 씨가 조금 부럽습니다. 물론 고헤이지 씨는 두께도 없고 살아가는 게 서툴렀을 뿐이지만. 어쩐지 그런 모습이 무엇인가를 깨달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거든요. 사람은 욕심을 갖고 사는 것도 괴로워합니다. 이것은 제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모두가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고헤이지 씨를 만난 사람들은 자신한테도 두께가 없기를 바란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난날을 잊고 싶어한 것 같기도 해요. 고헤이지 씨가 지난날을 잊은 것은 아니지만. 그러고 보니 고헤이지 씨도 단 한번 자신의 이야기를 해서 두께를 갖기도 했군요. 슬플 때는 슬프다, 기쁠 때는 기쁘다고 말하는 것이 바로 자신이 있는 것이다고.

 

이상한 말만 늘어놓았군요. 저도 무슨 말을 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떠오르는 대로 써서. 어쩐지 다들 자신이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알아달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누군가 자신을 인정해주기를 바라고, 자신이 자신을 인정하고 싶어하기도. 고헤이지 씨한테는 오쓰카가 있잖아요. 비록 아주 싫다고 말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우연히 이상한 인연이 됐죠. 그렇게 얽히기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재미있게도 모두 고헤이지 씨와 관계가 있었군요. 재미있는 것은 아닌가요. 고헤이지 씨는 그 사람들을 깊게 생각하지 않았군요. 본래 다른 사람한테는 관심없죠. 이렇게 말하니까 고헤이지 씨가 나쁜 것 같기도 하군요. 그래도 한치 반의 문틈으로 엿보는 오쓰카만은 좋아하죠. 하나라도 좋아하는 게 있어서 다행이네요. 그럼 이만.

 

 

 

희선

 

 

 

 

☆―

 

“무엇이든 이야기해야만 비로소 있게 되네. 이야기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어. 거짓말이든 허풍이든 입 밖에 내면 낸 만큼 있게 되는 거야.”  (233쪽)

 

 

“자네는 슬퍼하는 방법을 몰랐을 뿐이야.”

 

“슬퍼하는 방법.”

 

말이 난 김에 가르쳐 주지, 하고 지헤이는 큰소리를 쳤다.

 

“슬플 때는 슬프다, 슬프다, 하고 바보처럼 말하게. 기쁠 때는 기쁘다, 기쁘다, 하고 말하게. 입 밖에 내지 않아도 돼. 스스로 자신을 속이게. 그것밖에 없어.”

 

“속인다.”

 

이야기하는 거야, 하고 지헤이는 말했다.

.

.

.

 

“믿는다는 것은 속아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일세. 서로 믿는다는 것은 서로 속인다. 서로 속는다는 뜻이야. 이 세상은 모두 거짓일세. 거짓에서 진실이 나오지는 않지. 진실이란 모두 속은 놈이 보는 환상일세. 그러니──.”  (247쪽)

 

 

“진정한 자신이니 진실한 나니, 그런 것에 집착하는 놈은 무엇보다 바보일세. 그런 것은 없어. 자신을 바란다면 자기가 자기를 속여야 해. 속이는 게 서툴다면 서툰 대로──.”

 

그거면 되지 않겠는가, 하고 지헤이는 다시 한번 말했다.

 

“자네는 흐릿하기는 하지만 틀림없이 거기에 있네. 나도 여기에 있고. 서로 그 사실이 싫다고 하더라도 이는 어쩔 수 없지.”

 

지헤이는 자기 자신한테 말하고 있다.  (248쪽)

 

 

“잘 만들어진 우연에 나중에 해석을 갖다붙여서 인연이라고 하는 거지. 시시하잖아. 나와 고헤이지는 덧없는 관계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그저 같이 살고 있을 뿐이야. 그뿐. 나는 녀석을 싫어하고, 그러니까 그 녀석 마음 따윈 헤아릴 수 없어. 그래도 같이 살고 있지.”  (419~4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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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아이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욱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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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을 언제부터 읽었는지 모르겠다. 아주 오래되었다고 할 수는 없는데, 2008년인지 2009년인지. 내가 많이 본 일본추리소설은 미야베 미유키와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것이다. 지금도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처음에는 더 모르고 봤다. 그래서 예전에 본 것은 거의 잊어버렸다. 그때 《모방범》이나 《낙원》을 읽었는데, 좀 더 나중에 봤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시대 이야기는 2010년부터 봤다. 올해 나온 거 빼고는 다 봤다는 것을 얼마 전에 알았다. 2010년부터는 책을 보고 늘 쓰려고 해서 조금 더 오래 기억하기는 했는데, 그것도 시간이 흐르는 것과 함께 잊어가고 있다. 잊지 않을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하다. 잊을 때쯤 다시 읽는 것이다. 하지만 읽고 싶은 책은 자꾸 나오기에 그럴 수가 없구나. 아니 아주 좋아한다면 몇번이고 볼 수 있을지도. 그런 책을 만나는 것은 행복한 일이겠지. 《외딴집》이나 《모방범》은 한번 더 보고 싶기도 하다. 《외딴집》은 재미있기도 슬프기도 하다. 《모방범》은 무섭다. 《낙원》도 그랬던 듯. 그것을 읽으며 ‘세상이 무서워’ 하기도. 나는 세상의 어두운 면을 소설을 보며 알게 되었다. 소설이 아니더라도 알 수 있기는 하다. 바로 뉴스다. 뉴스에서는 사건 사고에 대한 이야기가 넘쳐나니까. 지금은 거의 안 보기는 하지만. 뉴스는 어떤 일이 있었다고만 하지만(자세히 말해주는 곳이나 방송도 있으려나), 소설은 더 자세히 들려준다. 그래서 책을 보는 거겠지. 마음을 알기 위해서.

 

이번에 읽은 《눈의 아이》는 내가 본 미야베 미유키 소설에서 몇번째일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아쉽게도 몇번째인지 잘 모르겠다. 지금까지 본 책을 써보면 알 수 있을 텐데. 이 책을 안 것은 지난해다(더 전인가). 우리나라에서는 《눈의 아이》라는 제목으로 나왔지만 일본에서는 《지요코(チヨコ 치요코)》로 나왔다. 이 책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초코’라고 읽었다. 책 앞에 있는 토끼인형 이름을 초코라고 지은 건가 했다(일본에서 나온 책 앞에는 토끼인형이 있다). 몇 달 전에 우리말로 나왔을 때 지요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글자를 잘 보니 ‘초코 チョコ’가 아닌 ‘지요코 チヨコ’였다. 이 책이 안 나왔으면 나는 언제까지나 ‘초코’라고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읽은 게 아주 틀린 것만은 아니었다. 일본 사람은 지요코(치요코)를 초코라고도 했다. 별명 같은 거다. 이것을 몰랐다면 이 말을 하지 않았을 텐데. 우연히 알게 되는 게 도움이 되기도 하는구나. <지요코>는 인형탈을 쓰고 아르바이트를 하던 사람이 자신이 어릴 때 좋아했던 인형을 떠올리는 이야기이다. 소중하게 여긴 게 없는 사람은 다른 나쁜 것에 씌이는 것이 아닌가 했다. 마음을 잃는 것과 같은 것인지도.

 

여기에서는 어린이라고 할지라도 나쁜 마음을 먹고 행동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책 제목과 같은 <눈의 아이>가 그렇다. 하지만 그 일은 그 사람의 삶을 바꾸어버렸다(이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자신은 다른 사람들처럼 행복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행복해지기 위해 한 일이지만, 더 행복해지지 않았다. 질투는 어린이만 하는 게 아니다. 어른은 더하지 않나 싶다. 지금 생각하니 질투가 바로 마귀(요물) 같은 거구나. 거기에 먹히면 안 된다. 자신이 한 일에 대가는 치러야 하니까. 이것은 꼭 다른 사람이나 사회가 죄를 묻는 것은 아니다. <돌베개>에도 자신이 사람을 죽인 것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했다. 자신이 한 일의 무게에 짓눌린 것인지도. 사회에서 해결해주지 않으면 우연이라도 일어나서 잘못을 한 사람한테 벌을 줘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성흔>에서는 죽어도 마땅한 사람은 없다고도 한다. 아무리 큰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뉘우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이 말이 틀린 말은 아닌데 사람이 쉽게 뉘우치지 않아서 말이지. 그래도 미야베 미유키는 사람이 가진 착한 마음을 믿고 있는 게 아닐까. 나도 그러고 싶다.

 

앞에서 다른 말이 잠깐 생각났는데 그 말을 어떻게 꺼내면 좋을지. 이야기에서는 하나만을 말하지는 않는다. 질투를 한번 더 생각해보면, 이것은 자신만 생각하기 때문에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아니 질투 때문에 하는 행동이 그렇겠다. 자신만 보고 남을 보지 않기 때문에 나쁜 일을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는 말이 있던가. 이런 마음은 아주 착하거나 깨달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보통 사람도 남을 생각할 수 있다. 자기가 마음이 편하기 위해 나쁜 소문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어쩐지 어설픈 말이 된 것 같기도 하다.

 

미야베 미유키가 쓰는 단편은 거의 도시전설 같다. 생각나는 것은 《지하도의 비》와 《홀로 남겨져》뿐이지만. 이것은 에도시대 이야기와도 닿아 있다. 여러권 봤기에 이런 말도 할 수 있구나. 마지막 말도 멋지게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구나. 언젠가는 잘 말할 수 있을까.

 

 

 

희선

 

 

 

 

☆―

 

나는 생각해 보았다. 엄마와 아들 등에 달라붙어 있던 기분 나쁜 검은 손, 세상에 떠돌고 있는 나쁜 손에 대해서. 누구든 그 손에 붙잡힐 위험이 있다. 그 손에 붙잡히면 나쁜 짓을 하게 된다. 물건을 훔치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사람들이 거의 모두 그렇게 되지 않는 건, 몸에 두르고 있는 인형과 장난감이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무언가를 소중히 여겼던 추억.

 

무언가를 좋아했던 추억.

 

사람은 그런 기억들한테 보호받으며 살아간다. 그런 기억이 없는 사람은 서글프리만큼 쉽게 검은 손을 등에 짊어지게 된다.  (74쪽)

 

 

사람은 달라진다. 달라지지 않으려고 결심해도 달라진다. 그래서 삶은 우스꽝스럽고, 슬프고, 이상한 재미가 있다. (……) 나는 가만히 있는데 자꾸만 세상이 바뀌어간다고 생각한다. 그건 착각이다. 움직이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들 자신이다.  (101쪽)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보는 것은 자기 마음속뿐이다. 좋은 것도, 좋지 않은 것도, 아름다운 것도, 못난 것도.  (123쪽)

 

 

―아버지, 아무리 나쁜 놈이라도 죽어 마땅한 사람은 없어요. 내가 한 짓은 잘못된 거예요.  (1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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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27 1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28 0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28 0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29 0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연 2013-08-28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번에 안주를 봤는데, 미야베 미유키를 좋아하는 사람이 왜 많은지 알 것 같았답니다. 단편이 거의 도시전설같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이 비유가 장편에서도 적합할 것 같아요. 다만 괴담이라거나 흉흉한 그런 도시전설이라기보다는 좀 따뜻한 그런 도시전설이랄까

희선 2013-08-28 02:47   좋아요 0 | URL
안 좋은 일어나도 그 안에서 따듯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지 않나 싶습니다 에도 시대 소설이 그런 면이 많은데, 지금 시대 소설 장편도 그런 게 아주 없다고 할 수 없죠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 나오기도 하거든요 그것은 예전에 읽어서 잊어버리기도 했지만...


희선
 

 

 

 

   신호를 기다리다 우연히 보았어

   빗방울이, 고인 빗물에 떨어져 퍼져가는 모습

   이렇게 말로 하니 잘 모를 것 같아

 

   보여주고 싶지만,

   내 마음속에만 담아두었어

 

   빗방울이 그린 예쁜 동그라미

 

   바로 쉽게 사라져버리지만

   내 마음속에는 남아있어

 

   네 마음속에도 새겨지길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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