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 짓는 사람
누쿠이 도쿠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사람은 남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하는 줄 알지만 실은 무엇 하나 모르는 건 아닐까. 당신 이웃이 니토와 같은 심성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그 정체를 알아 낼 방법은 없다. 알았을 때는 벌써 일이 터져 버린 뒤다.  (12쪽)

 

 

얼마 전에 일본드라마 <히토리 시즈카>를 보았다. 얼마 뒤에는 혼다 테쓰야의 책 《히토리 시즈카》가 우리나라에 나왔다. 책보다 드라마를 먼저 봤다(책은 아직도 못 읽었다). 이 드라마 조금 어둡다. 드라마 본 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많이 잊어버렸다. 시즈카가 처음 나왔을 때 고등학생이었는지 중학생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중3 아니면 고1이었던 것 같은데. 이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인가. 첫화에서 시즈카는 총에 맞아서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손가락으로 총알을 더 깊숙이 밀어넣었다. 그 사람은 그냥 놔두어도 죽었을지 모르지만, 시즈카가 죽음을 앞당겼다. 왜 시즈카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사람을 죽인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손을 더럽히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른 사람이 누군가를 죽이게 하기도 했다. 거의 끝날 때쯤 시즈카의 어린시절이 나왔다. 시즈카는 어렸을 때 엄마가 사귀는 남자한테 학대를 당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어린시절에 학대당한 일 때문에 시즈카는 자라서 사람을 죽일 수 있게 되었다고. 시즈카가 죽게 한 사람은 거의 나쁜 사람이었다. 나쁜 사람이라고 해서 죽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책은 어땠는지 모르겠는데 드라마에서 시즈카는 차에 치이려는 아이를 구하고 죽는다. 그 아이는 시즈카가 돌봐주었던 여자아이의 아이였다. 아마 시즈카는 그 여자아이가 자기 동생이라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추리 · 범죄소설에 나오는 범인은 거의 어릴 때 무슨 일을 겪은 사람일 때가 많다. 실제로도 그런 경우가 있지 않을까 싶다. 책을 보면서 범인은 왜 사람을 죽이게 된 걸까 하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늘 사람을 죽이게 된 까닭을 확실하게 알 수 있을까. 동기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이 책 《미소 짓는 사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일류 대학을 나오고 엘리트 은행원인 니토 도시미는 집에 책 놓을 곳이 없어서 자기 아내와 딸을 죽였다. 사람들은 동기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보니 집에 방은 세 개로 하나는 부부가 잠자는 곳(아이도 같은 방을 쓴 것 같다), 하나는 니토의 서재, 나머지 하나는 아내 쇼코의 방이었다. 나는 집 안에 책이 꽉 차 있는 것인가 했다. 그저 서재에만 차 있었던 거였다. 니토는 아내와 딸이 없으면 다른 방에 책을 놓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인가보다. 이럴 때 보통 사람은 아내와 이야기를 해볼 텐데, 아니면 다른 곳을 마련하든지 책을 줄이든지 할 텐데. 니토는 보통 사람은 생각할 수 없는 방법을 떠올리고 실제로 했다. 이런 말하면 내 정신을 의심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니토가 책 놓을 곳이 없어서 아내와 딸을 죽였다는 말에 ‘그럴 수도 있지’ 하는 마음도 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겠지만. 니토한테 아내와 딸은 자리만 차지하는 물건 같은 게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치워야 하는데 헤어지는 것은 귀찮고, 차라리 죽이는 게 낫겠다 생각한 것은 아닐까. 사람을 죽이는 게 더 힘든 일인지도.

 

소설가는 니토 도시미한테 관심을 가지고 니토 도시미에 대해 알아본다. 소설가는 니토가 어렸을 때 겪은 일 때문에 아내와 딸을 죽이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먼저 했다. 회사 사람들은 니토가 사람을 죽일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예전에 사라진 은행원 뼈가 타나났다. 그 사람은 니토와 같은 곳에서 일했고 니토보다 먼저 승진할 사람이었다. 그리고 니토가 대학생일 때는 친한 친구가 사고로 죽었다. 그 친구한테는 그때 널리 퍼져있던 게임기가 있었다. 니토가 어렸을 때 살던 이웃집에는 개가 있었는데 니토는 개를 싫어했다. 개가 니토를 싫어한 것은 아닐까. 예전에 읽은 《악의 교전》(기시 유스케)에 나온 하스미 세이지도 개가 아주 싫어했다. 하스미는 사람 감정을 모르고 사람을 많이 죽였다. 어쩌면 개는 위험한 냄새를 잘 맡는지도 모르겠다. 니토가 살던 이웃집 남자가 사고로 죽자 그 집에 사는 사람은 다른 곳으로 떠났다. 사고로 죽은 사람들 정말 니토 때문일까.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니토는 어린시절에 큰일을 겪은 적이 없었다. 소설가는 한번 그럴듯한 이야기를 듣지만, 그것은 거짓말이라고 했다. 읽는 우리도 소설가와 같은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했던가. 이 책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어서 그러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가까이에 있는 사람 마음도 잘 모르면서 범인 마음을 모르면 불안해하나. 이런 말이 있어서. 사실 나는 별로 생각 안 해 본 것 같다. 아마 사건을 가까이에서 본 적이 없어서인지도. 나는 소설에서만 그런 것을 보니까. 아주 많이 본 것도 아니구나. 보통 사람도 어느 한순간 잘못해서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그게 생각난다. 《이방인》(알베르 카뮈). 햇빛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고 했던가. 책 읽지도 않았는데 이런 말을 하다니. 비슷하다고 할 수 없겠구나. 니토 도시미는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없어 보이고 다른 사람한테 좋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이 사람의 진짜 마음속은 알 수 없다. 니토는 사람을 죽이는 일에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사람 같다. 그저 누가 없으면 좀 나을 텐데 하고 생각한 듯하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인가. 목숨의 무게를 모르는 것인가. 그리고 무슨 일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것을 알 수가 없다. 알 수 없다고 해서 불안한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세상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일이 많으니까. 꼭 까닭과 결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니토 도시미가 더 나쁜 사람으로 보였다면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이 말은 앞에서 한 말을 뒤집는 것인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봤다고 해서 둘레에 있는 괜찮아 보이는 사람을 의심하지는 않아야 할 텐데.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으려나. 사람은 겉만 봐서는 모른다, 고. 갑자기 이런 생각도 든다. 니토도 ‘악의 교전’의 하스미처럼 사람 감정을 잘 모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소시오패스인가. 언제가 소시오패스에 대한 글을 본 적이 있는데 비슷한 느낌이 든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마음놓고 싶어하는 것인가. 자꾸 니토는 그럴 거야, 하고 생각하다니.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 그냥 그런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야겠다.

 

 

 

희선

 

 

 

 

☆―

 

“우선 감정 기복이 적은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통상의 뜻의 희로애락이 니토 씨 마음에는 생기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죠. 그래서 마치 벽을 보고 떠드는 듯한 허무함을 느낀 적도 있습니다.”  (75쪽)

 

 

“(……) 보통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까닭으로 남을 죽이는 인간에게 한 해를 기다리는 것보다 살인이 손쉬운 방법이었을 가능성은 없을까. 니토에 대한 취재를 진행하다 보니 이해가 갔는데, 세상에는 살인이라는 금기에 대한 관념이 완전히 빠져 있는 인간도 있다. 그러한 인간에게 살인은 사태를 해결하는 한 가지 수단일 뿐이다. 죄악감이라는 억제 장치가 없으면 인간은 얼마든지 쉽게 결단을 내리는 법이다.”          (154쪽)

 

 

“책을 둘 곳을 마련하려고 그랬다니까요. 처음부터 그렇게 말씀드렸잖습니까. 믿든 안 믿든 그건 받아들이는 사람 마음입니다. 다른 사람 기분을 이해하느냐 마느냐는 자신의 문제라고요.”  (169쪽)

 

 

“이해가 가지 않으면 불안하죠. 책을 둘 공간이 필요해서 아내와 딸을 죽였다던가, 한 해 뒤 승진을 기다리지 못해 사람을 죽였다는 건 도대체 영문을 모를 이야기예요. 그렇게 이상한 사람이라 해도 이해하기 쉬운 트라우마가 있으면 받아들일 수 있어요. 선생님 책을 읽은 사람은 모두 ‘아아, 그랬구나’ 하고 안심하면서 책을 덮지 않을까요?”  (325쪽)

 

 

“마지막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결말이 나는 건 픽션뿐이에요.” 가스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실제로는 다른 사람 마음이 어떤지 모르잖아요. 살인귀는 물론 가까운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실은 모른다고요. 아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남편이 세상에 몇 사람이나 있을까요? 부모는요? 자식은요? 애인이나 친구의 생각을 백 퍼센트 이해할 수 있다면 그건 초능력자죠. 누군가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 왜 살인범의 심리만은 이해하지 못하면 불안해하는 걸까요?”  (326쪽)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니토뿐만이 아니라고 쇼코는 지적했다. 우리는 남을 이해한 척한다는 사실조차 보통은 잊고 있다. 안심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면 바로 불안해지니까. 그 눈속임을 해아래 드러내는 니토한테 우리는 이상한 관심을 보였다. 모두 자신의 불안을 억누르고 싶기 때문이었다.  (3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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