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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ㅣ D현경 시리즈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3년 5월
평점 :
언젠가 길을 걷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 일본 소설이나 만화에서 동료애를 많이 말하는 것은 사람들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동료를 생각하는 사람이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을지라도 일본에는 개인주의가 더 많지 않을까. 소설, 만화에 실제 있는 일을 쓰기도 하지만 바라는 일을 쓰기도 할 테니까. 일본 사람이 어떤지 잘 모르는데 이런 생각을 하다니. 경찰은 동료애가 있을까. 경찰이라고 해서 모두가 죄를 지은 사람을 잡는 일만 하지는 않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점 잊고 있었던 것 같다. 경찰 하면 나쁜 사람을 잡는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이 책 《64》에는 형사부에서 오랫동안 일하다 D현 경찰본부 경무부 비서과 조사관 ‘홍보담당관’으로 일하게 된 미카미 요시노부가 나온다. 미카미가 형사부에서 경무부로 옮긴 지 몇 달 지났다. 미카미는 한두 해가 지나면 다시 형사부에 돌아가겠지 했다. 중앙에서 일하던 사람이 지방에 가서 일하게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한다. 자신은 이곳에 오래 있지 않을 거다, 곧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거다. 그런데 그곳 사람과 일을 하면서 그곳을 좋아하게 되고 일하는 보람을 느끼는 거다. 미카미도 그랬다.
경찰 홍보담당관이 된 미카미는 본래 홍보실을 바꾸려 했다. 짧은 시간 있는다 해도 경찰 조직에 도움을 주려 했다. 경찰 조직은 바깥과 끊어져 있어서 홍보실을 바깥과 연결하는 창문으로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몇달 전에 미카미 딸 아유미가 집을 나갔다. 그 일 때문에 미카미는 조직에 복종하기로 한다. 딸을 찾는 데 전국 경찰의 도움을 받아야 하니까. 미카미 딸 아유미에 대한 것을 보니, 얼마 전에 본 《신월담》(누쿠이 도쿠로)이 생각났다. 아버지를 닮은 딸, 아주 예쁜 어머니. 이것은 똑같았다. 아버지를 닮아서 아버지를 원망하고 어머니는 예뻐서 싫어한 것도. 그래도 고토 가즈코(사쿠라 레이카)가 조금 나았다. 학교는 끝까지 다니고 집을 나가지도 않았으니까. 딸을 가진 아버지와 겉모습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의 나쁜 면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미카미는 가끔 다른 사람이 자기 얼굴을 보고 웃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이것은 이 소설에서 작은 이야기이지만 《신월담》이 떠올라서 작게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 안에 이적저것 많이도 담겨있구나 했다. 아유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는 것으로 미카미와 아내 미나코는 마음을 조금 놓은 듯하다. 이것은 거의 끝에서.
14년 전, 쇼와 64년(1989년) 1월 5일에 일어난 아마미야 쇼코 유괴 살인사건은 D현경 관내에서 처음 일어난 강력 범죄사건이다. 범인은 잡지 못했다. 도쿄에서 경찰청장이 D현경에 시찰을 오는데 64의 유족을 만나겠다고 했다. 미카미는 쇼코의 아버지인 아미미야 요시오한테 허락을 받아야 했다. 64의 시효는 앞으로 한해 남짓 남았다(지금은 사람을 죽인 일에 시효가 없어졌다). 미카미도 64와 조금 관계가 있었다. 64를 핑계로 청장 아니 도쿄에서는 무슨 일을 꾸미고 있었다. 미카미는 그 일이 무엇인지 밝혀내려 한다. 그리고 64를 맡았던 형사들과 아마미야 사이에 있었던 일도. 그런데 형사부 사람이 미카미나 경무부 사람들을 상대해주지 않았다. 미카미를 형사부뿐 아니라 경무부에서도 안 좋게 생각했다. 같은 경찰인데 하는 일이 다르다는 것 때문에 편을 가르다니. 형사부는 자신들이 더 잘났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이 생각을 미카미도 했다. 하지만 홍보담당관이 되고는 달라졌다. 안이 아닌 바깥에 있어서 볼 수 있는 것도 있었다. 소설은 D현경 안에서 다른 부서의 힘싸움, 그리고 도쿄와 D현경의 힘싸움을 보여준다. 중앙이 지방을 자기 손 안에 넣고 마음대로 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보통 사람은 경찰들이 하는 힘싸움을 봐도 별로 재미없다. 하지만 경찰 조직을 다른 조직으로 생각하면 달라지지 않을까. 경찰은 캐리어와 캐리어가 아닌 사람으로 나뉘기도 한다(이것은 우리나라와는 다를 것이다). 도쿄에 캐리어가 더 많을까.
경찰들끼리 하는 힘싸움도 있지만, 경찰과 기자(언론)의 일도 볼 수 있다. 홍보실과 기자인가. 경찰과 언론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이기도 했다. 홍보실에서 사건에 대한 정보를 기자들한테 알려주었다. 제대로 정보를 주지 않으면 기자들은 화를 냈다. 그렇게 화를 내도 되는 것인가. 그러면서 경찰 쪽이 바라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미카미는 아유미 때문에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려고 했는데 마음을 바꿨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겠지. 미카미는 형사부도 경무부도 아닌 홍보담당관이 맡은 일을 했다.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기다. 사람들은 다 이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조직이 개인보다 아주 크다 해도 결국 조직을 만드는 것은 개인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개인이 조직에 싸움을 거는 것이냐 하면 그렇지 않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런 것이 나오는 것인가 했는데. 아니, 크지는 않더라도 이것도 싸움인가. 누구나 다 미카미처럼 용기를 낼 수는 없겠지. 미카미는 자기 조직이 실수를 숨기고 그 일을 바로 잡으려고 한 사람을 잘라낸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그리고 혼자 책임을 모두 짊어진 듯한 사람을 불쌍하게 생각했다.
이 소설이 아니 작가가 가장 하고 싶어하는 말은 꽤 뒤에 나온다. 어떤 사건에는 피해자가 있다. 기자들은 경찰한테 어떤 교통사고를 일으킨 주부의 진짜 이름을 밝히라고 했다. 경찰은 주부가 배 속에 아이를 갖고 있어서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이름을 밝히지 않은 진짜 까닭은 주부가 경찰과 관계있는 사람 딸이어서였다. 미카미는 교통사고를 일으킨 주부 이름을 기자들한테 말해준 다음에는 피해자 이야기도 해주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또 다른 피해자 식구 아마미야가 있다. 경찰은 온 힘을 다해 사건을 해결한다고는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 사건을 해결하지 못해서 오랫동안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도 있겠지만, 딸을 잃은 아마미야 마음과는 아주 다를 것이다. 아마미야의 시간은 14년 전에 멈추어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썼지만 나도 아마미야 마음을 다 알 수는 없다. 어쨌든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한테 더 마음을 써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언론은 재미가 아닌 진심으로 피해자 식구가 느끼는 아픔을 알고서 사람들한테 전달해야 한다. 사실 64를 따라한 유괴사건이 일어났을 때 잠깐 어떤 생각을 했는데 그게 맞았다(이런 것을 말하다니). 나는 그저 짐작한 것이지만, 그것을 알 수 있도록 미카미의 생각을 보여준다. 작가가 독자한테 ‘한번 추리해봐’ 한 것인지도.
개인은 중요하다. 개인이 없으면 조직도 나라도 없다.
희선
☆―
“윗사람이 누구든 형사는 자기 일을 하지. 아닌가?”
“엄한 아버지든, 형편없는 사람이든 아버지는 아버지야. 피 한 방울 안 섞인데다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캐리어와는 견줄 수 없지.” (424쪽)
“조직이란 개인이 모인 곳이야. 개인의 생각이 조직의 생각이 될 수도 있지 않나?” (444쪽)
익명 발표의 어두운 한 면과 정면으로 맞닥뜨린 기분이었다. 익명이라는 천이 뒤덮은 것은 기쿠니시 하나코의 이름이 아니라 메이카와 료지라는 한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아 있었다는 증거였다. 불행한 결말을 맞이했다고 해도, 평생 단 한번 신문에 이름이 실릴 기회를, 그 기사를 본 누군가 그의 죽음을 애도할 기회를, 익명 문제를 둘러싼 갈등에 빼앗긴 것이다. (461~46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