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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브레스트 ㅣ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3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3년 3월
평점 :
어느 나라에든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역사가 있는 것은 아닐까. 나라 이름 노르웨이는 알았지만 이곳이 어떤 곳인지 잘 몰랐다. 지금도 잘 안다고 할 수는 없다. 요 네스뵈 소설은 두번째다. 처음으로 봤던 《스노우맨》하고는 조금 다른 듯도 하다. 해리 홀레가 나오는 것은 같지만. ‘스노우맨’에 나오는 해리 홀레보다 여기에 나온 해리 홀레가 조금 어리다. 덜 망가졌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비슷한 면도 있었다. 같은 사람이니 당연한 것인가. 책을 끝까지 읽고 나니 앞에서 무엇인가를 말해주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은 ‘스노우맨’에서도 그랬던 것 같다. 그냥 스쳐지나가듯 한 말인데 그게 중요한 말이었다. 책을 읽으면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 소설 계산을 잘해서 썼겠다’는. 아니, 꼭 그런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쓰다가 본래 생각과는 다르게 흐른 것도 조금은 있을 것이다. 그게 어디인지 알 수 없지만. ‘스노우맨’에서 헤어진 아내였던 사람은 여기 ‘레드브레스트’에서 만났다. 사람은 다르지만 비슷한 말을 얼마 전에도 쓴 것 같다.
제2차 세계전쟁은 온 세계 사람을 힘들게 한 게 아닌가 싶다. ‘세계’라는 말이 있는데도 얼마 전까지는 그런 생각을 못했던 것 같다. 올해 이 책뿐 아니라 다른 책도 봐서 조금 알게 되었다. 역사책은 아닐지라도 역사를 조금 알 수 있게 해주는 책도 좋지 않을까. 관심을 더 가지고 역사책까지 보면 더 좋겠지만. 제2차 세계전쟁일 때 노르웨이 사람들은 소련보다는 독일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독일군에 자원 입대한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그것은 아마 나라를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그 사람들은 안 좋은 말을 듣고 벌까지 받았다. 노르웨이 사람들이 힘들 때 왕은 안전한 곳으로 피했다고. 전쟁이 일어나면 왕한테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왕이 살아 있으면 다시 나라를 세울 수 있으니 살아야 한다고. 이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 잘 모르겠다. 나라는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되는 게 아닌가 싶은데 말이다. 백성을 버리고 도망치는 왕한테 왕의 자격이 있을까. 왕이 다시 돌아와서는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을 모르는 척했다. 배신감이 들 법도하다. 안 좋은 것은 숨기기도 했다.
우리나라에 대한 일도 생각을 안 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노르웨이와는 조금 다르지 않았을까 싶다. 아니, 어쩌면 아주 조금은 억지로가 아니고 스스로 전쟁에 나간 사람이 있을지도. 전쟁에 끌려간 사람은 남자만이 아니었다. 위안부도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무기를 만드는 데 끌려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아니고 다른 나라에 끌려가서 다시 돌아오지 못한 사람도 많다. 전쟁이 끝나고 위안부로 끌려갔다 고향에 돌아온 사람들은 안 좋은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전쟁에 끌려간 사람도 처벌받지 않았던가. 이런 사람들이 있었는데 잊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내가 그때 살지 않았다 해도.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더 형편이 안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일제시대의 찌꺼기를 다 해결도 못했는데 또 전쟁이 일어났으니 말이다. 우습게도 그 전쟁은 일본한테는 좋은 일이었다. 다른 나라에 전쟁이 일어나서 좋아하는 나라도 있을 것이다. 자기 나라에 이익이 되는 일이 있을 테니까. 하지만 자기 나라만 잘되기를 바라면 안 된다. 조금 다른 곳으로 흘러갔다.
이 책은 요 네스뵈 아버지 이야기이기도 하단다. 어떻게 보면 부끄러운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요 네스뵈는 했다. 아마 있었던 일을 덮어버릴 수 없고 잘못한 일은 반성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인지도. 앞부분에서 해리 홀레는 잘못을 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 일을 다른 사람한테는 숨겼다. 해리 홀레는 그게 양심에 찔리지 않았을까. 그래서 앞으로 더 나빠지는 것인지도. 조직과 개인이 생각나기도 했다. 개인이 조직에 따르는 것 말이다. 아니, 해리 홀레는 덮어놓고 따르지는 않았던가. 아직은 조직에 거스르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였을까. 세상에는 모두 드러나는 일도 있지만, 일부러 드러나지 않게 하는 일도 있다. 그게 어떤 일이냐에 따라서겠고, 검정과 하양으로 나눌 수 없는 일이 세상에는 많은 거겠지. 정의는 사람 수에 따라 있다는 말도 있던데.
책 속에서는 시원한 결말이 나지 않았다(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지도, 마지막에 범인을 잡기는 했다). 그것을 해야 하는 것은 바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이 책을 보고 옛날 일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니, 노르웨이 사람만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2차 세계전쟁을 겪지 않은 나라는 없으니까. 시간이 흘러도 그때 일을 재료로 글을 쓰는 것은 그 일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아닐까 싶다. 전쟁이 사람을 어떻게 만드는지. 그리고 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게 하려고. 하지만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어떻게 해야 없어질까.
희선
☆―
“많은 사람들이 옳고 그름은 절대 움직이지 않는 개념이라고 생각하지. 하지만 그건 틀린 생각이오. 옳고 그름의 개념은 시간이 흐르면서 바뀐다오.” (276쪽)
“이제와서 그 옛일을 들춰봐야 얻을 게 뭐가 있나? 피살자 친족들의 옛 상처를 쑤시는 것밖에 안 돼. 누군가 그 일을 캐고 다니다가 사건 모두를 알아낼 위험도 있고. 그 사건은 끝났네.” (67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