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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나라 소년 - 네가 어디에 있든 아빠는 너와 가장 가까이 있을게 ㅣ 푸르메 책꽂이 7
이언 브라운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동화일 것 같은 제목인데 동화는 아니다. 여기에는 현실이 그것도 아픈 현실이 담겨 있다. 하지만 늘 아프기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것을 보는 나는 쭉 슬픔을 느꼈다. 내가 슬퍼한다고 무엇이 달라지지는 않겠구나. 워커 아버지인 이언 브라운보다 내가 더 객관성을 잃은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실 이런 일 나와는 거의 상관없기는 하다. 그래도 느낄 수는 있다. 진짜 부모가 느끼는 것과는 많이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나는 슬펐나 보다. 앞에서 나와 상관없다고 했는데 정말 그럴까 싶기도 하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나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무슨 도움을 준다거나 할 수는 없지만 이런 일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괜찮지 않을까. 모르는 것보다는 낫겠지.
아기가 이 세상에 나오는 것은 축복할 일일 것이다. 그런데 그 아이한테 장애가 있다면 어떨까. 내가 왜 이런 아이를 낳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이것은 너무 차가운 마음인가. 장애아를 낳고 이런 생각을 한번도 안 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래도 미안한 마음을 느끼는 부모가 더 많을 것이다. 워커를 낳은 부모 이언 브라운과 요한나는 죄의식을 느꼈다. 이언보다는 요한나가 더 그랬다(본래 엄마가 더 그런 마음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워커는 세상에 나온 지 일곱 달째에야 CFC 진단을 받았다. CFC는 희귀한 유전자 돌연변이로 심장-얼굴-피부증후군(cardiofaciocu-taneous syndrome, CFC)이다. 워커는 발달장애인데다 말도 못한다. CFC 환자는 세계에 그리 많지 않았다.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힘들지 않았을까. 이언과 요한나는 일을 하면서도 오랫동안 워커를 돌봤다.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면서 워커를 돌봐서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게 그렇지 않았다. 워커는 말을 못해서 이언과 요한나는 워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워커는 자기 몸을 때렸다. 그런 것을 막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집안에 누군가 아픈 사람이 있으면 모두가 그 사람을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아프다가 나으면 좋지만, 워커는 낫지 않는다. 언제나 그대로다. 짐처럼 여기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부모이기에 자식을 사랑하겠지만.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도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식이 힘들어 보여서 편하게 해주려고 죽이기도 했다. 이것은 슬픈 일이다. 다른 방법도 있었을 텐데. 이언과 요한나는 워커를 다른 곳에 보내기로 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워커를 받아줄 곳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일곱 해가 걸렸다. 두 사람은 아이를 자신들이 키우지 못하고 다른 곳에 보내야 한다는 데 마음아파하기도 했다. 워커가 떠나고 난 빈 자리가 쓸쓸하지 않았을까. 그 부분을 보는 나도 쓸쓸했는데. 워커를 다른 곳(그룹홈)에 보내기로 한 일에 대해 뭐라 할 수는 없다. 부모가 끝까지 돌봐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부모도 사람이기에 지친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사람도 사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거리두기가 아닌가 싶다. 너무 가까이에 있으면 볼 수 없는 것도 있으니까. 실제 워커가 그룹홈에서 지내게 되면서 조금 달라지기도 했다. 가끔 집으로 돌아왔다. 그룹홈에서 워커를 돌보는 사람은 워커를 자기 아이처럼 여겼다. 그래도 조금 거리를 두었다. 진짜 부모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이언은 다른 CFC 환자들을 찾아다녔다. 어떤 아이는 워커보다 나았다. 말을 할 수 있었던 거다. 이언은 워커가 자기 마음을 알까 하는 생각을 했다. 혀를 차는 게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을 모두 믿지는 않았다. 말을 못한다고 해도 워커는 다른 사람 마음을 느끼지 않았을까. 이언은 다른 사람처럼 워커를 천사라고 하지는 않았다. 장애아를 둔 부모는 그런 말을 할 때가 있다. 아이가 천사라고. 그리고 그 아이 때문에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살아왔다고도 했다. 이언은 워커 같은 사람한테 가치가 있을까를 생각하고 그것을 찾고 싶어했다. 이 세상에 필요없는 사람은 없다는 말도 있는데 정말 그럴까. 이 말은 장애와 상관없이 한 것이다. 워커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좋지 않을까 싶다. 장애를 받아들이지 않고 이것을 하면 정상이 될까, 저것을 하면 정상이 될까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이를 위해서라기보다 부모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가 싶다.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기는 쉽다. 그래서 조금 미안한 마음이다.
장애인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 지역사회가 장애아를 둔 부모를 도와주어야 한다. 그리고 부모도 자신들만으로 할 수 없을 때는 도와달라고 해야 한다. 친척이 쉽게 도와주지는 않겠지만, 일로 하는 사람은 도와줄 것이다. 그게 순수한 도움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도와달라고 못할 거다. 나는 하지도 못할 것을 말하다니. 그런 사람이 많지는 않겠지만, 너무 힘들어서 장애를 가진 아이를 버리거나 죽이는 부모도 있다. 그것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장애인이라고 해서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다. 지적장애인은 비장애인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겠지만. 갑자기 이언이 워커를 보며 생각한 게 무엇인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말로 하기는 어렵지만. 이 말은 해야겠다. 목숨은 소중하다고. 집안에 장애인이 있어서 잃는 것도 있겠지만 얻는 것도 많을 것이다.
*이언이 생각한 게 무엇인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것을 잊어버렸다. 그때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나중에 봤을 때 무슨 말인지 알 수 있게 뚜렷하게 썼다면 좋았을 텐데. 이언은 워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했던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워커가 나름대로 즐겁게 살아가기를 바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을 누군가한테 전할 수 없다 해도 말이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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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의 목표는 소박하다. 때로 워커의 세상으로 발을 디뎌 보는 것. 지적장애인을 알기 위해 거기 가 보는 것(그들이 내 영역 속에서 사는 것을 허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남인 장애인들에 대한 내 두려움을 마주보는 것. 그들을 고치려거나 구제하려 들지 않고 내 속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없어질 때까지 그저 그들과 더 붙어 있는 것. (37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