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나왔을 때 꽤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마음이 지금은 덜하다. 내 마음이 이렇다니. 어떤 마음이든 시간이 흐르면 시들고 만다. 잠시의 들뜸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런 마음이 아주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많이 애태우고 괴로워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나도 가끔 새로 나오는 책 빨리 보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그것을 사도 빨리 읽지 않을 게 분명하다. 어쩌면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것에서 더 갖고 싶은 마음이 커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볼 수 있으면 보고, 못 보면 할 수 없지 한다. 그게 아니더라도 보고 싶은 책이나 내가 아직 못 본 책은 많으니까. 이런 마음은 여우가 ‘저건 신포도일거야’ 하고 말하는 것과는 다르지 않을까. 나는 ‘새로 나오는 책이 다 재미있지는 않을거야’ 하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니까. 무슨 변명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비블리아 고서당은 헌책방인데 새책에 대한 말을 꺼내다니. 어쩌면 나는 조금 늦게 이 책을 보게 돼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 내용을 알고 있다 해도 내가 읽는 것과 읽지 않는 것은 다를 것이다. 실제 읽어보고 어떤지 알아보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싶다. 마응미 조금 식기는 했지만 아주 관심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기에 나온 책은 고야마 기요시의 《이삭줍기 성 안데르센》, 비노그라도프 쿠즈민 《논리학 입문》 그리고 다자이 오사무의 《만년》이다. 책이 많이 나온 것 같지만 처음과 끝은 끝과 시작이다. 알쏭달쏭한 말을 하다니. 첫번째는 앞에서 이어져 왔고, 마지막은 시작이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한테는 제목이 같다 해도 꼭 그 책이어야 할 때가 있다. 그래서 시다는 도둑맞은 책을 찾으려고 한 거다. 현실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찾기 어려울지도 모를 텐데. 아니다, 현실을 그렇게 나쁘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이 책 속에서 일어난 일은 실제로도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시오리코는 자기도 모르게 다른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게 만들었을까. 모르겠다. 이렇게 생각할 수 없을까. 시오리코가 책 내용을 생각하고 말한 것이 상대방한테 전해졌다고 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그저 바람인 것을 알고 쓰고, 그것을 읽는 것은 좋을까. 그러고 보니 내가 그런 마음으로 이 책을 본 것이구나.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을 거야 하는 마음속에는 실제로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도 들어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앞에서 한 말을 또 한 것 같다.
아무리 오래 함께 살아온 부부라 할지라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없는 일이 있을 것이다. 상대를 깊이 사랑하고 자신이 짐이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더할지도……. 하지만 상대는 자신한테 기대주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부부는 서로 기대로 받쳐주고 살아가는 사이가 아닌가 싶다. 헤어지면 남보다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잘 아는 것도 아닌데 이런 말을 했다. 두번째 이야기는 재미있으면서도 따듯하다. 세상에 이런 사람들만 있다면 쉽게 헤어지는 부부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여기에 나온 두 사람은 평소에도 서로한테 마음을 써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내는 남편한테 일어난 일을 그대로 받아들였겠지. 그러니 평소에 잘해야 한다. 이것은 부부만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평소에 잘하는 게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 마음을 많이 쓴다고 해서 꼭 좋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게 다른 사람한테는 부담이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마음은 논리로 설명할 수 없다. 조금 이상한 말이 나왔다.
어떤 책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갖고 싶기도 할까. 시오리코는 자신이 왜 다치게 된 것인지 고우라한테 말한다. 그것은 다자이 오사무의 《만년》 때문이었다. 시오리코가 가지고 있는 책은 초판으로 책장이 잘려 있지 않고, 다자이 오사무가 누군가한테 쓴 말도 있다. 이 《만년》은 시오리코 할아버지가 얻게 되고 아버지한테 물려주었다. 아버지는 시오리코한테 물려주었다. 값을 매기면 아주 비쌌다. 하지만 시오리코는 그 책이 비싸서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다자이 오사무가 적어놓은 글을 좋아한다. 그런데 시오리코처럼 그것을 좋아해서 그 책을 갖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오오바 요조라는 이름으로 시오리코한테 메일을 쓰고 책을 자신한테 넘겨달라고 했다. 오오바 요조는 다자이 오사무 소설에 나오는 사람 이름이기도 하다. 그 사람이 메일 보낸 것을 보니 스토커가 따로 없었다. 하루는 비블리아 고서당에 와서 큰돈을 내놓고는 《만년》을 팔라고 했다. 이때 그 사람은 헬멧을 쓰고 있어서 시오리코는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날 저녁 시오리코는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빌린 책을 아버지 친구한테 돌려주러 나갔다. 시오리코가 계단을 오르니 그 위에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시오리코를 계단에서 밀었다. 그렇게 해서 시오리코는 다쳤다. 시오리코는 오오바 요조를 끌어내는 일을 고우라한테 도와달라고 한다.
마지막은 조금 무서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무엇인가 가지고 싶어하는 마음은 자기 손에 들어오지 않을 때 더 커지는 것 같다. 오오바 요조는 다른 책도 꽤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하던데.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어떤 책을 지키고 싶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야겠다. 그런 책이 있는 것을 부러워하기도 했으니 말이다(소중하게 여기는 책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마음도 사라질 것이다. 그러면 다른 사람한테 넘어갈까. 여기에서는 그것을 말하고 있기도 하다. 사람 손에서 손으로 넘어가는 책, 그리고 그것은 서로의 마음을 이어주기도 한다. 그런 일만 있다면 좋겠지만 사람이 사는 세상에는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고우라가 시오리코를 잘 도와주겠지.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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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도움이 되지 않아도 우리가 서로 있어주기를 바라는 사이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24~2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