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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4
최명희 지음 / 매안 / 2009년 7월
평점 :
소설이라고 해서 이야기만 따라가야 하는 건 아니겠지만, 《혼불》 4권, 2부 평토제는 이야기가 많이 나아가지 않았다. 혼례를 치르고 얼마 안 되어 남편이 죽은 청암부인은 이씨 종가 며느리로 살았다. 청암부인은 기울어가는 이씨 종가를 일으켜 세우기도 했지만, 일제 강점기가 오고 가뭄이 들고 저수지가 말랐다. 이 일은 창씨개명을 하고 난 뒤였다. 청암부인은 집안을 지키지 못했다 여기고 손자인 강모가 부청 돈을 횡령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쓰러졌다. 지난 《혼불》 3권에서 청암부인은 세상을 떠났다. 그 뒤 이야기는 참 천천히도 흐른다.
강모는 사촌 강태를 따라 만주로 달아난다. 강모가 큰 뜻이 있어서 만주에 가는 건 아니다. 종손이라는 게 부담스러워서 달아나는 거였다. 강모가 일하는 곳에서 횡령한 돈으로 기생집에서 빼낸 오유키가 기차에 있었다. 오유키는 어떻게 그 기차에 탔을까. 강모가 떠난다는 걸 알고 강모를 따라간 건지. 그건 잘 모르겠다. 기차에서 오유키는 강모한테 아무 말하지 않았다. 강모는 오유키가 어딘가에서 내리지 않을까 했는데 내리지 않았다. 기차표 검사할 때 오유키는 차표가 없어서 차장실에 가야 했다. 강모가 그 모습을 보고 함께 갔다가 돈을 낸다.
청암부인은 자신의 장례를 치를 때 음식을 많이 하고 많은 사람과 나눠 먹으라 했다. 그런 건 좋은 거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번 ‘혼불’ 4권 맨 앞부분에는 노비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 게 왜 나오려나 하는 생각을 하고 보았다. 노비 신분 세습이 조선 전기에는 부모에서 하나만 천인이어도 자식은 천인이 되었다. 한때는 종부법(從父法)을 시행하고 아버지 신분에 따라 자식 신분이 정해졌다. 그 일을 양반이 반발해서 종모법(從母法)이 시행되고 어머니가 종이면 아들은 노(奴)가 되고 딸은 비(婢)가 되었다. 이 책 《혼불》 시작은 1930년 후반으로 이제 노비는 없어졌는데, 아주 사라지지 않은 곳이 매안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에 거멍굴 옹구네가 춘복이한테 강실이를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 춘복이가 강실이를 넘보는 건 종모법 때문이겠지. 강실이가 양반이고 강실이가 자기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는 양반이니.
미국에 노예제도가 있지 않았나. 그런 거 보면서 참 너무한다 싶은 생각을 했는데, 한국 아니 조선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뭐가 다르지 않았냐면 양반이 종을 자기 마음대로 하고 아이를 갖게 한 일이다. 그런 건 예전에 드라마에서 보기도 했구나. 백인이 흑인 노예를 성폭행하는 건 끔짝하게 여기면서 양반이 여자 종을 성폭행하는 건 그렇게 끔찍하게 여기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어떻게 그랬는지. 이씨 종가에 사는 우례는 어릴 때 기채 동생 기표한테 성폭행 당하고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는 봉출이로 지금 열다섯이다. 다들 용출이 아버지가 누군지 아는가 보다. 봉출이도 그런 말 들었겠다. 우례는 언젠가 꼭 봉출이가 자기 성을 찾기를 바랐다. 앞으로 봉출이가 나올지. 우례 이야기 하기 전에 어머니가 종이고 아버지가 양반이었던 유자광 이야기가 나왔다. 유자광은 서얼이었지만 잘됐다고 한다. 죽을 때와 죽고 난 뒤는 안 좋았지만.
조선에 노비가 없어졌다 해도 노비였던 사람은 그게 싫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돈을 벌고 신분세탁한 사람도 있을 거다. 춘복이가 그걸 바라는 건 아닌가 싶다. 신분상승인가. 옹구네는 춘복이 마음을 눈치채고 자신을 버리면 춘복이가 강실이를 넘본다는 소문을 내겠다고 한다. 자신을 버리지 않고 죽 산다면 촌복이를 돕겠다고 한다. 옹구네 무섭구나. 그것보다 춘복이가 뭐가 좋다고. 옹구네는 양반인 강실이가 자신이 사는 곳에 오는 걸 보고 싶다 했구나. 강모가 자기 마음을 참았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강모가 강실이한테 한 것도 성폭행 아닌가. 그런데도 강실이는 강모가 와서 자신을 도와주길 바라는 듯하다. 강모는 희망이 없다. 자기만 힘들다고 떠나지 않았나.
종부뿐 아니라 종손도 쉽지 않겠다. 그 뒤에도 조선, 한국은 첫째아들을 더 생각했다. 지금은 아이가 하나거나 아예 없는 사람도 있구나. 이제는 대를 잇는 걸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아이가 살기 좋은 나라여야 사람들이 아이를 낳을 텐데. 그것보다 결혼 안 하는 사람이 더 많겠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