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 星空 The Starry Starry Night (2009)
지미 리아오 김지선 옮김
씨네21북스 2012년 04월 10일
어둠이 내린 뒤 하늘을 올려다 보아도 별은 잘 보이지 않는다. 작지만 내가 사는 곳도 도시다. 지금보다 옛날에는 달이나 별을 보기도 했는데 지금은 별빛이 희미하다. 아주 보이지 않는 건 아니다. 산골이나 사막에서는 별이 쏟아질 것처럼 보인다는데 그런 건 평생 못 몰지도 모르겠다. 밤을 밝히는 빛 때문에 밤에도 이것저것 할 수 있지만, 그 빛 때문에 우리는 밤빛을 잃었다. 아쉬운 일이다. 잘 보이지 않아도 밤이면 여전히 하늘을 보는 사람도 있겠지. 아마추어 천문학자. 자주는 아닐지라도 가끔 도시 불을 끄면 얼마나 좋을까. 어려운 일이겠다. 이 세상에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없을 뿐더러 그런 일이 일어나는 일은 없을 거다. 나도 밤에 하늘을 보는 건 아니구나. 예전에는 가끔 보기도 했는데 지금은 더 안 본다. 밤하늘을 보면 지구와 우주가 가까이 있다는 느낌이 들 것 같다. 넓고 끝없는 우주. 별바다를 헤엄치는 건 무엇일까.
어렸을 때 그림책을 자주 봤다면 좋았을 텐데 싶다. 그림책뿐 아니라 다른 책도 거의 안 봤다. 어린이가 보는 그림책을 나이를 먹고도 즐겨보는 사람 있겠지. 그런 건 더 오래 보아야 할 것 같다, 이야기보다. 아직 난 그렇게 못한다. 한번이 아니고 두세 번 보는 걸로 대신할 수밖에 없다. 책을 보게 됐을 때도 그림책은 별로 못 보았다. 이 책 《별이 빛나는 밤》은 어른이 읽기를 바라고 그린 걸까. 지미 리아오는 그런 책을 그렸나 보다. 이 책에는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찾지 못한 어린이한테 바친다’는 말이 있다. 어린이만 세상과 소통할 방법을 모르는 건 아니기도 하다. 나이를 먹어도 그건 쉽지 않다. 나이를 먹으면 그냥 살지 할 테지만, 어린이는 방법을 알면 그렇게 할지도. 세상을 보고 여러 가지로 생각한다면 세상과 소통하기 어렵지 않겠지. 사람이 아닌 자연이면 어떤가. 곁에 누군가 있어야 덜 쓸쓸한 건 아니다. 혼자여도 세상을 받아들이면 덜 쓸쓸하겠지.
비 오면 비를
눈 오면 눈을
바람 불면 바람을 느끼자.
여기에 나오는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는 초등학생인지 중학생인지 잘 모르겠다. 초등학생 같기도 하고 중학생 같기도 하다. 여자아이는 여섯살까지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았다. 할머니 할아버지 집은 산 속에 있었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여자아이는 엄마 아빠와 살게 된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 때는 엄마 아빠가 그리웠는데, 가까이에 있어도 먼 느낌이다. 엄마 아빠 모두 바빴다. 여자아이는 학교에서 괴롭힘 당하기도 했다. 옆집 할머니 집에 방을 얻고 사는 남자아이는 여자아이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남자아이는 말이 없고 거의 혼자 지냈다. 여자아이는 그런 남자아이를 괜찮게 여겼다. 남자아이가 옆반 남자아이들한테 둘러싸인 모습을 보고 여자아이가 도와준다. 여자아이 머릿속에서 여자아이는 뿔이 나고 커다란 빨간 공룡이 되어 아이들을 혼냈는데, 현실은 그것과 달랐다. 둘 다 크게 다쳤다. 그 뒤 둘은 친하게 지낸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둘 다 쓸쓸하게 보이지만 남자아이는 혼자여도 많이 괜찮아 보인다. 그건 왤까. 혼자여도 자신이 좋아하는 게 있어설지도. 남자아이는 물고기를 좋아하고 고래를 좋아했다. 남자아이가 떠나기 전에, 남자아이는 여자아이와 여자아이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함께 간다. 할아버지도 세상을 떠나서 이젠 빈 집이지만. 둘은 호수에 조각배를 띄워 밤하늘을 보기도 한다. 둘이 도시를 떠나 산 속에 가는 그림이 여러 장 나온다. 그 그림 멋지다. 다른 그림도 그렇구나. 여자아이는 남자아이를 만나기 전에는 쓸쓸하면 공상을 했다. 그게 나쁜 건 아닐 것 같지만, 그건 금세 사라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남자아이가 떠나고 여자아이는 더는 공상하지 않았다. 자신이 만든 세계에서 나와 세상을 마주하게 된 거겠지.
짧을지라도 오래오래 남는 일도 있겠다. 살면서 그런 순간을 만나면 좋을 텐데. 언젠가 그런 순간이 찾아올지도 모르니 놓치지 않게 잘 보아야겠다.
희선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1889
(시간이 흐른 뒤 여자아이가 미술관에서 보는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