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변주곡

  황경신

  소담출판사  2014년 07월 28일

 

 

 

 

 

 

 

 

 

 

 

   글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 지금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아무 생각도 안 하고 그냥 쓰다니. 그것보다 별로 생각나는 게 없어. 이번에 만난 책에 실린 글 제목은 ㄱ에서 ㅎ까지야. 차례가 사전과 같아. 나도 따라서 ㄱ에서 ㅎ까지에 맞는 제목으로 글을 써볼까 하다가 어려울 것 같아서 그만뒀어. 대신 첫소리 ㄱ이 들어가는 말부터 시작하기로 했어. 어쩌면 중간에 쓸데없는 말을 할지도 모르지. 이렇게라도 ㅎ까지 쓴다면 좋겠지만 끝까지 못 쓸지도 몰라. 처음부터 이런 말을 하다니.

 

 

 

 

 

   내가 황경신이라는 이름을 알게 된 건 언제일까. 잘 생각나지 않아. 다른 데서 먼저 알고 페이퍼(PAPER)를 본 건지, 페이퍼를 보고 나서 안 건지. 황경신 하면 페이퍼와 뗄 수 없는 이름이기는 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페이퍼를 만든 김원 아저씨일지도 모르겠지만. 페이퍼는 잡지 이름이야. 몇해 전까지 보았는데 지금은 안 봐. 사도 다 볼 때가 별로 없어서 그만 보기로 했어(어쩐지 김원 아저씨한테 미안하군). 그때 ‘책을 다 못 보는 것은 책이 크기 때문이야’ 하는 핑계를 댔어, 나한테. 페이퍼에는 멋진 사진과 글이 실려있어. 그 책을 보고 나도 사진을 잘 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어. 물론 글도 잘 써 보고 싶었지. 지금은 사진 잘 안 보게 되었어. 맞다, 달마다 주제가 있었어. 책 속에는 그 주제에 맞는 글과 사진 그리고 그림이 있었어. 그것을 보면서 이런 것은 대체 어떻게 쓸까 했는데, 아직도 글 쓰는 건 어려워. 페이퍼 안에는 황경신 글도 있었어. 시간이 흐르면 그 글이 모여서 책이 되기도 했어. 황경신은 신화, 그림도 이야기했어.

 

 

 

                
                
                
                

                      지금이 11월이라면 더 좋았을 테지만, 네권 모두 2007년 페이퍼다

                    올해 페이퍼는 열아홉살을 맞이했다고 한다 다음해에는 스무살이다

 

 

 

 

 

   다락방이 있었어. 내가 어렸을 때 살던 집에, 그리고 인터넷 속 페이퍼에도. 다락방이 있는 집은 그렇게 크지 않아. 아니 내가 모르는 거고 큰 집에도 다락방 만들겠다. 내가 살았던 곳은 방 한 칸에 작은 다락이 있었어. 천장이 낮아서 일어설 수 없지만 앉으면 괜찮았어. 혼자 있기에 딱 좋은 곳이지. 난 그곳에서 라디오를 듣고 편지를 썼어. 편지쓰기보다 숙제를 했던가. 책은 안 읽었어. 또 생각하니 아쉽다. 책 읽기에 좋은 곳이었는데. 그렇게 멋진 일은 없었지만 다락방이 있던 곳에 살아본 것은 괜찮은 일 같아. 다락방은 집집마다 달랐을 것 같기도 해. 자신이 기억하는 다락방과 다른 사람이 기억하는 다락방 다를지도 모르겠어. 이것도 조금 재미있지.

 

 

 

 

 

   라디오는 내 친구

      (책도 내 친구)

      언제나 내 곁에 있지

      “고마워”

 

 

 

 

 

   마지막 남은 이야기에서 ‘밀리언 달러 초콜릿’을 말했는데, 나는 ‘초콜릿 우체국’을 생각하고 그것을 꺼내 보았어. 책 제목을 보고 이것은 그냥 ‘초콜릿 우체국’이네 했지. 곧 ‘밀리언 달러 초콜릿’은 더 나중에 나온 책으로 봤다는 게 생각났어. ‘초콜릿 우체국’은 어느 날 초콜릿 우체국을 본 ‘나’가 그곳에 들어가서 지난날 자신이 지난날 그 사람한테 초콜릿을 보내는 이야기야. 본래는 초콜릿을 주지 않았는데. 주소 몰라도 찾을 수 있다고 하더군. 신기한 이야기지. 2월 14일이 지나자 초콜릿 우체국은 연기처럼 사라졌어. ‘나’는 집에서 지난날 그 사람한테서 받은 편지, 물건을 보다가 시집 속에서 ‘초콜릿 잘 받았어’ 하는 말이 적힌 종이를 봐. 지난날이 조금 바뀌어도 지금은 그대로인 듯해. 그래도 추억이 하나 늘어난 거니 괜찮은가.

 

 

 

 

 

   밤, 좋아해. 낮도 좋아해. 밤은 밤대로 낮은 낮대로 좋은 거구나. 아니 사실 밤을 조금 더 좋아해. 어두운 것보다 조용해서 좋아하는 것 같아. 별은 낮보다 밤에 더 잘 보이잖아. 밤하늘을 자주 올려다보는 것도 아닌데. 우리가 지금 보는 별빛은 아주 오래전 별빛이구나(언젠가도 한 말). 어쩐지 밤에는 낮보다 신비한 일이 더 많이 일어날 것 같아. 무서운 일도 일어나지만. 좋은 것만 생각하고 싶지만 늘 반대도 생각해. 빛과 어둠은 바로 가까이 있기 때문이겠지. 살아가는 일도 그렇구나. 기쁜 일 반, 괴로운 일 반.

 

 

 

 

 

   시간은 흘러간다

      사람도 흘러간다

      마음도 흘러간다

 

      흘러가는 것에

      아쉬워하지 않기

 

 

 

 

 

   어느새 ㅇ이라고 하고 싶은데 아직 여섯이나 남았어. 무엇을 쓸지 정하지 않고 그냥 떠오르는대로 쓰니 이야기가 뒤죽박죽이야. 황경신 책을 읽고 느낌을 써 본 적은 겨우 한번이야. 그것은 느낌이 아니었군. 마음에 드는 제목과 내가 쓰고 싶은 제목으로 짧게 썼지. 얼마전에도 한번 그렇게 해 보았는데 좋은 게 생각나지 않아서 유치한 것만 썼어. 그때 제대로 쓰지 못하는 나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았어. 어떤 글을 보면 나도 써 보고 싶다고 생각할 때도 있는데 막상 쓰려면 ‘어떻게 써야 하지’ 하는 거야. 황경신은 어떻게 이런 글을 썼을까. 부러워. 멋진 이야기, 감동을 주는 이야기 쓰는 사람은 다 부러워.

 

 

 

 

 

   지난날도 다가올 날도 아닌 바로 지금

 

 

 

 

 

   천마디 마음 없는 말보다

      한마디 마음 담긴 말이 듣고 싶어

      아니, 아니,

      네가 하는 말은 뭐든 좋아

      내가 다 들을 테니 말해봐

 

 

 

 

 

   코코아, 커피 뭐가 좋아. 쌀쌀할 때는 따듯한 게 좋지. 나는 더울 때도 따듯한 걸로 마셔. 물은 차가운 거. 이건 언제나 그렇구나. 날이 차고 건조할 때는 따듯한 물 많이 마시면 좋대. 내가 이런 말할 처지는 아니구나. 알아도 그렇게 안 하거든. 사람 체질에 따라 물이 좋기도 하고 안 좋기도 하겠지. 어쩌다가 이렇게 흐른 거지. 코코아든 커피든 반가운(좋은) 사람과 함께 하길.

 

 

 

 

 

   텅 빈 내 마음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따듯한 시,

      따듯한 노래,

      따듯한 마음,

 

      따듯한……

 

 

 

 

 

   피아노는 기다렸다. 뚜껑을 열고 자신을 쳐줄 사람을. 한때 피아노 둘레에는 여러 사람이 모여서 피아노 소리에 맞춰 노래했다. 시간이 흐르는 것과 함께 사람들은 하나 둘 떠나갔다. 피아노가 하는 일은 그저 자리를 차지하는 것뿐. 피아노는 차라리 누군가 자신을 부수어 추운 밤을 따스하게 보내길 바랐다. 피아노한테는 그런 기회도 오지 않았다. 그러고도 오랫동안 피아노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한자리에 머물렀다. 피아노 자신이 무엇을 기다렸는지 잊어갈 무렵 여자아이가 찾아와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

 

 

 

 

 

   한적한 시골 버스 정류장

 

 

해철이는 학교가 끝나면 어김없이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가끔 아이들과 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참았다.

 

해철이는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엄마와 살았다. 어느 날 해철이 엄마는 어디론가 떠나게 되었다. “해철아, 할아버지 할머니 말씀 잘 들어야 한다. 엄마가 나중에 해철이 데리러 올게.”  “엄마, 어디가, 언제 올 건데?”  “미안하다, 해철아. 어머님 아버님 죄송합니다.”  “해철이 걱정은 말고 잘 살아.” 하늘이 할머니가 말했다. “엄마, 엄마!” 해철이 울음소리에도 해철이 엄마는 밖으로 나갔다. 엄마를 따라 나가려는 해철이를 할머니가 잡았다. 다음날부터 해철이 해바라기가 시작되었다. 정류장에 버스는 자주 오지 않았고 어디론가 가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가끔 버스가 서면, 해철이는 기대하는 마음으로 반대쪽을 바라보았다. 세 해가 지나도록 해철이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해철이는 엄마를 믿고 정류장에서 기다렸다.

 

해철이가 정류장에 가자 버스가 왔다. 누가 내리는지 버스는 잠시 멈추었다. 버스에 가려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버스가 떠난 그 자리에 해철이 엄마가 서 있었다.

 

 

(본래는 다른 이름이었는데 바꿨습니다. 이런 글에 이름을 써서 미안하군요.)

 

 

 

희선

 

 

 

 

☆―

 

이상한 일이다. 사랑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은 창밖으로 흘러나오는 불빛을 바라보며 단단하고 부서지지 않는 사랑과 평화를 집 안에 가둬두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창 밖을 바라보면서, 바람 불고 햇살이 비치는 거리를 그리워한다.  (17쪽)

 

 

이제 아셨군요. 내가 왜 볼펜이 되고 싶어하는지. 나는 내 삶에 욕심을 내지 않아도 좋을 거예요.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멋진 사람을 만나고 더 큰 행복을 누리겠다는 욕심 같은 건 지나가는 개한테나 던져주면 그만이죠. 누군가한테 지나친 기대를 하지 않아도 좋을 거예요. 좀 더 사랑받고 싶다거나, 좀 더 사랑하고 싶다거나 하면서, 자만과 자학을 오가는 정상이 아닌 정신 상태로 밤마다 쓸데없는 감성에 빠지지 않을 수 있어요. 나는 위대한 예술가가 되지 않아도 좋고, 세상을 구원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나는 다른 누군가의 마음으로 들어가고 싶어 안달하지 않고도 살 수 있어요. 내가 아닌 누군가 되지 않고도 죽을 수 있어요.  (38~39쪽)

 

 

우리는 서로 이해한다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소중한 것을 공유한다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쉽게 헤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같은 시간 속에 살며, 같은 생각을 하며, 같은 곳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우리가 사랑한 것은 저마다 만들어 낸 허상.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던 게 아니라, 점점 멀어지고 있던 거였다.  (2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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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4-12-11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같기도 하고, 수필 같기도 한 글이군요. 이 글을 읽으니 지나간 몇 가지 것들이 저도 추억이 됩니다. (자꾸만 옛날을 추억하는 것은, 단지 나이가 들어간다는 증거일 뿐일까요) 페이퍼 잡지 같은 것 말이죠. 예전에 누군가가 `페이퍼`라는 잡지가 좋다고 해서 저도 몇 번 사본 적 있어요. 예전에는 잡지 한 권만 사서 들고와도 뭔가 마음이 들뜨고 그랬는데, 이제는 별로 그런 감흥이 없어요. 학교 앞에 있는 작은 서점에 잡지가 나오는 날을 미리 물어봤다가 나왔다고 하면 연락받고 가서 사고 그랬는데. 이제는 그런 일이 없을 뿐더러, 그런 잡지도 거의 사라지고 없군요. 핫뮤직이나 키노나 서브나 같은 잡지들 말입니다. 이제 집으로 잡지를 가져다주는 좋은 시스템(?)에서 살고 있는데, 왜 그런 감흥은 사라져버렸는지 참으로 모를 일입니다.

시간도 흘러가고, 사람도 흘러가고, 결국 마음도 흘러가니, 말씀하신대로 흘러가는 것에 아쉬워하지 않는 것이 맞는 걸까요...


희선 2014-12-12 01:37   좋아요 0 | URL
지금은 책이 나오는 날을 물어보고, 그날 사서 왔을 때 감흥은 없어도, 책을 산 다음 그게 오기를 기다리는 즐거움이 있잖아요 오면 책이 왔구나 하는 기쁨을 느끼고... 아쉽게도 그러고 나면 기쁨이 줄어드는군요 책을 보는 기쁨보다 책을 사는 기쁨이 더 크다니, 이상한 일이네요 저는 인터넷으로 책을 사면서도 페이퍼는 책방에 가서 사왔어요(한달에 한번 나와서 그런 건지도) 집에서 좀 먼 곳인데, 그게 나오는 날쯤 가죠 그날 있을 때도 있지만 없을 때도 있어서 다음에 다시 가야 했어요 그걸 사서 올 때는 기뻤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본 적은 얼마 안 되지만... 그래도 그것은 차례대로 안 봐도 괜찮았군요 지나간 일을 떠올리고 그땐 그랬지(노래가 생각나는군요) 하는 것도 좋다고 봅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여전히 아쉬워요 시간이 더 흐르면 ‘그렇구나’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지나가면 늘 아쉽기 때문에 그때 잘하고 싶지만, 그게 쉽지 않군요 그리고 지나가지 않으면 아쉬운지 아쉽지 않은지 모르는 것도 있어요 지금 아는 건 뭐지, 싶기도 하네요

흘러가고 바뀌어가는 것도 있지만 그대로인 것도 있겠죠 뭔가 하나쯤......

며칠은 덜 추웠는데, 다시 추워지고 다음주에는 더 추워진다고 하네요 감기 조심하세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