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은둔자
캐럴라인 냅 지음, 김명남 옮김 / 바다출판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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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제목 《명랑한 은둔자》는 어떤 걸까. 캐럴라인 냅이 명랑한 은둔자라면 난 우울한 은둔자다. 명랑한 구석은 하나도 없다. 처음부터 어두운 말을 하다니. 내 우울이 어디에서 오는 건지 나도 잘 모른다. 여러 가지겠지. 거기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하지만, 잘 안 된다. 그냥 살아야지 어쩌겠나. 나도 꽤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다. 어릴 때 학교에는 어떻게 다녔는지 모르겠다. 지금 같은 때 학교를 다녀야 했다면 무척 괴로웠을 것 같다. 사람은 뭔가에 적응하기는 하지만, 그때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 난 그게 참 싫었다.


 캐럴라인 냅은 아버지가 정신 분석가고 어머니는 화가였다. 캐럴라인 냅은 쌍둥이고 동생이었다. 캐럴라인이 알코올의존증이 되거나 거식증에 걸린 건 쌍둥이 동생이어서였을까. 어린시절이 그렇게 안 좋았던 건 아닌 것 같은데. 어린시절 이야기는 그리 많지 않다. 자신이 이십대에 거식증에 걸린 것과 수줍음이나 여러 가지를 술을 마시고 없애려 한 이야기가 실렸다. 어릴 때 겪은 일보다 그저 살다 보니 술을 가까이 하게 된 걸지도. 대학생 때 캐럴라인이 잘 안 먹었더니 살이 빠졌는데 그걸 친구가 예뻐졌다고 말해서 거기에 집착하게 된 건 아닐까 싶다. 자신이 살이 찌면 자신을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여겼으려나. 그것보다 잘 먹지 않고 캐럴라인은 자신이 안 좋다는 걸 드러내고 싶어한 것 같기도 하다. 마른 자신을 보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별 말을 하지 않자, 캐럴라인은 부모한테 자신이 잘 먹지 않는다는 걸 말한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무 말도 못했다. 나중에 어머니가 캐럴라인한테 ‘먹어’ 했을 뿐이다.


 수줍음에서 벗어나려고 술을 마시는 사람이 나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린 왕자》. 그 사람은 부끄러워서 술을 마시고 술을 마시는 자신이 부끄러워서 술을 마셨던가. 술을 마시면 생각이 마비되는 걸까. 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지만, 수줍음을 잊으려고 술을 마시지는 않는다. 그렇게 맛없는 걸 왜 마시나 하는 생각을 한다. 나 자신이 아주 싫거나 바보 같을 때는 그 생각을 덜 하려고 하던가. 아니 오래 그 생각에 빠지고 난 왜 그럴까 하면서 우울함에 빠진다. 그뿐이구나. 캐럴라인은 어머니가 보내는 신호 같은 걸 잘 알아차렸다. 자신이 그런 걸 알아서 다른 사람도 잘 알겠지 생각한 것 같다. 사람은 다 같지 않은데. 다른 사람을 잘 살펴보고 마음을 알아채는 사람도 있지만, 잘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캐럴라인은 남이 자신과 달라서 실망 많이 했을 것 같다.


 난 아주 친한 친구도 없고 전화로 오래 이야기한 친구도 없었다. 캐럴라인은 그러지 않았다. 캐럴라인은 전화로 오래 이야기한 친구가 있었다. 그건 캐럴라인이 명랑해선가 보다. 난 우울하니. 캐럴라인은 친구도 애인과 비슷하게 사귀어야 한다고 느꼈단다. 그런 친구 사귀기 어려울 것 같은데, 아주 없지 않았나 보다. 캐럴라인은 친구뿐 아니라 남자친구한테도 바라는 게 많았다. 그건 바라는 것보다 깊은 애정인가. 아주 가까운 사람이 있는 것도 좋을 것 같지만, 그런 거 좀 답답할 것 같기도 한데. 난 이 책을 보면서 캐럴라인과 비슷한 것보다 다른 걸 생각했구나. 비슷한 건 수줍음 많은 거 하나뿐인 듯하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다 고아가 된다(부모보다 먼저 떠나는 사람도 있겠구나). 이런 생각 지금보다 어릴 때는 못한 것 같다. 캐럴라인은 좀 일찍 그런 생각을 하고 한 해 사이에 부모를 여의었다. 아버지는 뇌종양으로 어머니는 암으로. 캐럴라인은 아버지가 아플 때 술을 늘 마셨다. 그때 일을 제대로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그랬으려나. 술이 그걸 좀 낫게 해줄까. 술은 기분을 낫게 해주기보다 생각을 마비시키지 않나 싶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짧은 시간 차이로 차례로 여의면 마음이 참 아플 것 같다. 난 캐럴라인이 쌍둥이여서 좋았을 것 같은데. 바로 가까기에 가장 친한 친구가 있다고 해서 마음이 괜찮은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나도 내 마음이 왜 그런가 하면서 우울함에 빠질 때 많으니 말이다.


 지금은 많은 사람이 반려동물과 산다. 캐럴라인은 개 루실을 아주 좋아했다. 캐럴라인은 사람이든 동물이든 애정을 많이 쏟고 상대도 그러기를 바란 게 아닐까 싶다. 사람은 그런 걸 부담스러워해도 개는 다르겠다. 캐럴라인이 아낌 없이 마음을 준 개가 있어서 다행이구나. 개를 산책시키면서 알게 된 친구도 있었다. 캐럴라인은 나보다 사람 잘 사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걸 생각하다니. 요새 난 아주 가까운 사이보다 거리를 두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까워지면 기대하니까. 기대하지 않으려면 좀 먼 사이가 낫다. 거리가 가까운 사람은 없다. 난 더 가까워지고 싶기도 한데 잘 안 된다. 캐럴라인은 사람하고 문제가 일어나면 자신 탓을 했는데, 이건 또 나랑 비슷하다. 나도 다르지 않다. 나한테 문제가 있어서 친구 잘 사귀지 못하는 거겠지 한다.


 자신을 은둔자다 한 건 왤까. 나야말로 정말 은둔자인데. 재미없는 내 이야기를 하다니.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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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5-01-14 08: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보다 희선님의 이야기가 왠지 더 슬프네요..누구나 우울감은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적당한 거리두기가 좋은거 같긴 한데 그게 쉽지만은 않더라구요~!

희선 2025-01-15 00:08   좋아요 1 | URL
캐럴라인 냅은 명랑하니까요 저는 그 반대군요 본래 그런 걸 어떻게 하겠어요 아닌 척하면 그게 더 안 좋을 듯합니다 어두워서 멀어지나...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