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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달이 뜨는 밤, 죽기로 했다
조영주 지음 / 마티스블루 / 2024년 10월
평점 :
소설에 나오는 사람 이름이 처음부터 나오는 건 아니기도 하지. 조금 뒤에 나오기도 하고 끝까지 안 나오기도 하고, 끝나기 전에 나오기도 한다. 《은달이 뜨는 밤, 죽기로 했다》에 나온 여자 이름은 거의 끝날 때가 되어서 나온다. 자신도 잊어버린 이름이 말이다. 자기 이름을 듣고 그는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더 들었을 것 같다. 이 말을 이렇게 앞에서 하다니. 그는 죽으려고 한 날 죽지 못했다. 그가 죽지 못한 게 다행이겠지.
지금까지 살면서 알게 된 건데,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더 힘들다는 거다. 죽고 싶은 사람한테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을 생각해 봐 하면 그 말이 제대로 와 닿을까. 그 말에 별로 귀 기울지 않을 것 같다. 즐거운 일이 있어야 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사람은 여러 가지 일 때문에 죽고 싶기도 하겠지. 누군가는 별거 아니다 생각할 만한 게 있을지도. 나도 죽고 싶을 때가 있기도 한데, 죽고 싶어하는 사람 마음을 다 알지는 못한다. 난 다른 사람이 왜 죽고 싶은지 말하면, 어떤 까닭이든 나보다 낫네 할 것 같다. 내가 이렇구나. 내가 죽고 싶어하는 사람 말을 듣는 건 거의 책에서다.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나지 못할 일도 있겠다. 누군가 죽으려 할 때 소설에 나온 것처럼 카페 은달이 나타나면 좋을 텐데, 어렵겠지.
다른 날과 다르게 은달이 뜬 밤 그는 죽으려고 했다. 목을 매달았는데 그는 죽지 않고 시간이 멈추고 카페 은달이 나타났다. 카페 은달은 은달이 뜬 날에만 문을 열었다. 카페 은달에는 할머니가 있었다. 할머니라고 하기보다 이름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걸. 할머니가 하트 여왕이라는 말을 해서, 혹시 앨리스인가 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그는 카페 은달에서 할머니와 지내다 할머니가 만들어준 초콜릿을 먹고 혼자가 된다. 다시 할머니가 돌아오기를 바라고 그는 할머니가 만들어준 초콜릿을 만들어 먹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빵을 만들면 카페 은달이 하늘로 뜨고 다른 시간으로 간다.
집이 회오리 바람에 날아가 오즈로 가는 이야기가 생각나기도 하지. 그는 도로시인 듯한 아이를 스쳐지나기도 한다. 카페 은달은 일제 강점기도 가고 달의 뒷면에도 간다. 거기에서는 닐 암스트롱을 구했다. 이건 실제 닐 암스트롱이 겪은 ‘공백의 48분’을 상상한 게 아닐까 싶다. 난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는구나(내가 못 찾아서 그런지 몰라도 안 나오는구나. 닐 암스트롱은 달의 뒷면에 갔을까). 사람은 어딘가에 가고 누군가를 만나면 조금 바뀌겠지. 그때 좋은 일만 일어나지는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도 다르지 않구나.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고 좋은 일이 있기도 하고 안 좋은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아주 힘든 일이 일어나면 좌절하고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기도 하겠다. 소설 속 그도 다르지 않았구나.
어떤 때 사람은 살고 싶다 할까. 어두운 밤이 가고 밝은 아침이 오는 때. 목이 아주 말라서 시원한 물 한잔 마셨을 때. 읽고 싶은 책을 읽을 때. 쓰고 싶은 글을 쓸 때. 누군가 자신을 생각하고 보내준 편지를 받았을 때. 좀 더 생각나면 좋을 텐데 떠오르지 않는구나. 한국 작가가 처음으로 노벨문학상 받은 걸 알았을 때. 살다 보니 이런 때를 맞기도 하는구나 할지도. 다른 사람이 상 받는 게 뭐가 그리 기쁠까 싶지만, 노벨문학상은 다른 듯하다. 여기 나오는 사람은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했다. 여자도 한국 작가가 노벨문학상 받은 걸 알고 기뻐했을 것 같다. 현실과 소설은 다른 세계겠지만 같은 일도 있겠지. 그러기를 바란다.
떠나면 다시 돌아와야 한다. 그러고 보니 이야기에서도 이건 다르지 않구나. 아주 다른 곳에 머무는 사람이 없지는 않지만. 그건 그곳을 그 사람이 있을 곳이다 여겨서가 아닐까. 카페 은달은 그가 죽으려던 때로 돌아오고 멈췄던 시간이 흘러간다. 그는 죽지 않는다. 앞으로 살아간다고 해야겠다. 죽으려고 했을 때보다 따듯하게 느낀 세상에서 이연정으로. 여기 나온 사람은 이연정이다. 연정이 앞으로 즐겁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