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아래
이주란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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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어릴 때는 어땠더라. 별로 생각나지 않는데, 그때도 나름대로 슬펐다. 슬펐지만 어려서 잘 몰랐을지도. 아니 그때는 슬픔을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릴 때는 거의 그렇겠지. 큰 일을 겪고 아주 달라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람은 살면서 크고 작은 슬픔을 겪고 산다. 산 사람과 마음이 안 맞아서 헤어지거나 다른 곳으로 가게 되어서 헤어지면 조금 슬퍼도 시간이 가면 새로운 사람을 사귀기도 한다. 헤어짐이 없는 만남은 없다고도 하는데 그럴지도 모르겠다. 물건도 고장 나고 부서지면 버리거나 새로 사야 한다. 고장 나도 고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오래 쓰면 부품이 없어서 못 고친다.


 이주란 소설을 그렇게 많이 보지는 않았다. 젊은작가상과 소설 보다에서 단편 한편씩만 만났다. 단편소설 두편 보고 장편을 보는 거구나. 《수면 아래》는 장편이다. 왜 이런 말을 하느냐면 책이 얇아서다. 꼭 두꺼워야 장편은 아니겠지. 이 소설을 뭐라 하면 좋을까. 별 일이 일어나지 않는 소설. 하루하루 사는 사람 이야기. 별 일 일어나지 않지만, 조금 긴장했다. 이건 나만 그럴지도. 뭔가 일어나면 어쩌나 했다. 예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올까 봐. 나오면 나오는가 보다 하면 될 텐데.


 해인과 우경은 고등학교 동창으로 열일곱살에 만나고 결혼했다가 헤어졌다는 말이 나온다. 왜 해인과 우경은 헤어졌을까. 소설엔 왜 헤어졌는지 나오기도 하는데, 이주란 소설에는 헤어지기까지 일어난 일보다 그 뒤 이야기가 나온다. 힘들고 괴로운 시간을 지나고 헤어진 두 사람이 여전히 가까이 살면서 만난다. 그렇다고 다시 함께 살 마음이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서로를 생각하지만 마음 편한 친구로 지낸다. 해인은 모르겠지만, 우경은 아직도 해인을 좋아했다. 해인이 자꾸 눈에 아른 거려서 눈을 감고 뜨지 않으려 했다니. 이런 말은 우경이 베트남으로 홀로 떠난 다음에 보낸 전자편지에 쓰여 있었다. 소설 앞에서는 두 사람이 가까이 살았지만, 소설 끝에서는 먼 곳에 살게 된다.


 두 사람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이야기가 아주 안 나오는 건 아니지만 자세하게 나오지는 않는다. 베트남에서 아이를 잃었다는 말만 나온다. 아이를 잃은 슬픔은 평생 사라지지 않겠지. 아니 누군가를 잃은 슬픔은 언제까지나 사라지지 않고 마음에 남을 거다. 시간이 흐르고 조금 희미해지겠지만. 해인이 만나는 사람은 다 그런 일을 겪었다. 아버지를 여읜 장미, 할머니가 돌아가신 유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성규. 할머니 할아버지와 사는 환희. 환희가 할머니 할아버지와 사는 까닭은 나오지 않았지만, 부모가 없어서가 아닐까 싶다. 해인뿐 아니라 해인 엄마는 친척이 없었다. 친척이 없는 게 어떤가 싶기도 하지만. 엄마 친척이 없으니 해인도 없구나.


 여기 나온 사람은 다 슬픔이 있구나. 그런 사람이 만나고 이야기하고 함께 밥을 먹기도 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살아가겠지. ‘수면 아래’는 수면 위보다 잔잔할지. 여러 가지 일이 있지만 잘 보이지 않겠다. 사람 삶은 수면 아래처럼 잘 보이지 않는구나. 저마다 마음속에 슬픔이나 아픔이 있어도 그걸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아주 생각하지 않는 건 아니겠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시간이 걸리겠구나. 처음부터 잔잔하게 살지는 않았겠다.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고 신을 원망하거나, 혹시 자기 때문은 아닐까 자책도 했겠다.


 부모가 세상을 떠나는 것도 마음 아프겠지만, 자식이 죽는 건 가슴이 더 아프겠다. 일어나지 않았으면 싶지만, 일어나기도 하는 일. 사람이 죽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걸 자연스럽게 여기기는 무척 어렵겠다. 슬프고 마음 아파도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밥을 먹기도 하면 조금 낫겠지.




희선





☆―


 [해인 씨. 뭐 해요? 내년 4월까지 어떻게 기다리죠?]


 [내년 4월은 왜요?]


 [지난번 치킨집에서 받아온 메리골드 씨앗을 심을 거거든요. 꽃말은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 메리골드는 꽃이 오래 피어 있는대요.]  (1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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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3-07-11 1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면 아래‘라는 제목이 인상적이네요. 사실 사람을 잃거나 헤어지는 일이 별 일이 아닌 것은 아니죠. 하지만 삶이라는 게 결국 사람들과의 헤어짐의 연속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희선 2023-07-12 03:16   좋아요 2 | URL
잘 보이지 않는 수면 아래... 사람과 헤어지는 건 그렇게 큰 일은 아니다 생각하면서도, 막상 그런 일이 일어나면 마음 아프기도 하죠 그런 건 시간이 흐르면 좀 낫겠지만... 가는 사람 오는 사람 다시 가는 사람이겠습니다


희선

반유행열반인 2023-07-11 14: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빌렸다가 제대로 펴지도 못하고 못 읽었는데 희선님이 읽으셨다니 궁금하긴 합니다. 저는 ‘모두 다른 아버지’ 소설집으로 이주란을 처음 읽었었는데 ‘넌 그렇게 말했지만’ 거기서부터는 말씀하신대로 별 일 없는 듯 별 일 있는 속시끄러워보이는 소설이라 읽기 힘들긴 하더라구요…힘들지 말길…하고 빌어주고 싶은 주인공들만 나오드라구요.

희선 2023-07-12 03:21   좋아요 2 | URL
얼마 전에 나온 소설 제목은 《별일은 없고요?》네요 지금 보니 소설집이네요 ‘넌 그렇게 말했지만’ 은 제가 처음으로 봤을 거예요 거기에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뚜렷하게 나오지 않았던 것 같네요 평범한 듯 보이지만 그렇지도 않은 그런 걸 쓰는 작가인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소설 많이 본 것도 아닌데 이런 말을 했네요 언제 기회가 있으면 한번 보셔도 괜찮을 거예요 사람은 상처도 주고 위로도 주는군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