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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할인) 본투리드 엽서 세트 - 모비딕_밤하늘 포함 5매
평점 :
절판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2/0228/pimg_7987151333325492.png)
그림, 아사다 히로유키 <데가미바치(레터 비)>에서 라그
편지
깊은 밤 그대가 생각나
편지를 썼습니다
이른 아침
설레는 마음으로
빨간 우체통에 넣었죠
낮에는 비 오고
바람도 세게 불었어요
그대에게 가기 전에
젖지 않을지
날아가지 않을지
괜한 걱정을 했어요
그대여
제 편지 잘 받으셨어요
내가 쓸게
──편지
시간 많고
바쁘지 않은
내가 써야지
말하고 싶고
쓰고 싶은
내가 써야지
받으면 기쁘고
보내면 더 기쁜
내가 써야지
사나흘 뒤
웃음 지을 네 얼굴 떠올리고
나도 웃음 짓네
편지
네 마음과 내 마음을 이어주는 징검다리
하지만
언제나 그렇지는 않다
누군가한테는 짐이 되기도 한다
짐이라 해도
나 대신 너한테 보낸 내 마음이
덜 쓸쓸하기를
내 욕심,
네 마음보다 내 마음을 더 생각하다니
미, 안, 해,
내 마음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고, 마, 워,
소나무 삼행시
소나기 그치고,
나무 위에 뜬
무지개 바라보네
소리가 사라진 숲에서는
나무조차 말라가고,
무심한 구름만 제 갈길을 간다
소식이 없다 해도
나는 걱정하지 않아
무소식이 희소식이라잖아
덩그러니
당신한테 하고 싶은 말이 무척 많아
한마디도 적지 못하고
하얀 종이만 덩그러니
봉투 속을 채웠다
너에게
너에게 보내는 편지가
아무리 느리게 간다 해도
내 걸음보다는 빨리 갈 거야
좀더 빨리 기쁜 소식을
좀더 천천히 슬픈 소식을
네게 전하고 싶어
아니 슬픈 일은 말하지 않을게
너도 참고 있을 테니까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스한 봄이 오듯
바람 불고 비 오는 날도 지나갈 거야
네가 많이 웃기를
네가 조금 울기를
늘 기도해
언제나 그 자리에
사라지는 우체통이 많다지만
오랫동안 한자리를 지키는 것도 있다
아무리 둘레가 바뀐다 해도
빨간 우체통만은 그 자리를 지킨다
홀로 있어도
누군가 편지를 넣으면
쓸쓸하지 않은 우체통
우체통은 너와 내 마음을 이어준다
고마운 우체통
언제나 그 자리에
편지야 잘 가
우체국 앞을 지나는데 누가 우는 소리가 들렸어요. 둘레를 둘러보니 우체국으로 들어가는 계단 옆 우체통에서 나는 거였어요. 처음에는 우체통이 우는 건가 했습니다. 잘 들어보니 우체통은 아니고 우체통 속에 들어가지 못한 편지였어요. 우체통이 우는 소리를 들어도 놀랐을 테지만, 편지가 우는 소리를 듣다니 제 귀가 이상해졌는지 알았습니다. 혹시나 하고 우는 편지한테 말을 걸어봤어요. 그랬더니 편지는 자신이 우체통 속에 들어가지 못해서 운다고 했습니다. 우체통에서 편지 넣는 곳을 보면 미는 뚜껑 같은 게 있잖아요. 편지는 거기에 걸려있었어요. 편지 보내는 사람이 제대로 넣지 않은 거였어요. 집배원이 편지를 거두러 와도 그 편지를 알아차릴 테지만, 우는 편지를 그냥 둘 수 없어서 제가 우체통 속으로 넣었어요.
편지는 가야 할 곳에 잘 갔을까요.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2/0228/pimg_7987151333325507.png)
제가 편지 쓰기를 오래 해서 편지 이야기 많이 썼습니다. 시라고 쓴 글. 이야기도 조금 있는데, 여기에는 짧은 거 하나만. 다른 건 저기 뒤에. 제목이 <편지>인 것도 여러 편이고 앞에도 여럿이군요. 중간에 조금 다른 게 있는데, 저도 이번에 보고 이건 뭐지 했습니다. 잘 보니 그건 소나무로 쓴 삼행시였어요. 마지막이 편지 이야기여서 앞에 편지와 함께 썼나 봅니다.
여전히 저는 편지를 씁니다. 코로나19에도 편지 배달해주시는 집배원님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사람이 많아져서 편지 써도 될까 하면서도 쓰는군요. 전에 우체국에 가니 코로나 때문에 배달이 어려운 곳이 있다는 말이 쓰여 있었어요. 집배원님뿐 아니라 택배기사님도 고맙지요. 파업 소식이 있기는 하지만. 잘 해결되면 좋겠네요. 지금처럼 택배 이용하는 건 바뀌지 않겠지요.
엽서 다섯 장 그림은 《자기만의 방》 《아라비안 나이트》 《노르웨이 숲》 《모비딕》 《셜록 홈즈》 다섯 권입니다. 여기에서 읽은 건 세권이군요. 셜록 홈즈는 겨우 한권 보고 읽었다고 말하다니. 한권이라도 봤으니. 그거 보고 나중에 또 봐야지 하면서 못 봤습니다.
곧 이월이 가겠습니다. 삼월에는 다른 생각 안 하고 책 보고 싶군요. 그러면 좋을 텐데 어떻게 될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것보다 조금 일찍 자고 조금 일찍 일어나야겠군요. 이런 말 처음이 아니네요. 이월 잘 보내고 삼월 잘 맞이하세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