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 문학동네 시인선 146
김희준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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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집을 보기 전에 조금 우울한 일이 있었다.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해야겠지만. 엄마 휴대전화기에 온 게 문자피싱이라는 걸 좀 늦게 깨달았다. 그걸 봤을 때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때 그 생각은 바로 못했다. 엄마 전화기가 스마트폰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폴더폰과 스마트폰 중간이라 해야 할까. 세상에는 왜 남의 돈을 쉽게 가지려는 사람이 있는지. 자기 부모가 그런 일을 당해도 괜찮다 생각할까. 그런 사기 치는 사람은 부모 생각하지 않을지도. 아무 일 없었지만 조금 우울해서 잤다. 잠을 잘 못 자도 잠이 오지만 기분이 안 좋아도 잠이 온다.

 

 요새 자꾸 안 좋은 꿈을 꾼다. 잘 때 안 좋은 꿈 꾸지 않기를 바라고 자기도 했는데. 꿈에서 노래를 들었다. 그게 어디에서 나왔느냐 하면 엄마 휴대전화기에서였다. 그건 내가 듣던 거였는데, 그게 꿈과 섞였던 거였다. 그 꿈은 안 좋은 건 아니었지만, 꿈속에서는 기분이 안 좋았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낮에 꾼 개꿈. 다른 꿈도 꾸었을 텐데 잊지 않은 건 그것뿐이었다. 더 자기 그래서 일어나서 이 시집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을 보았다. 어떤 책을 볼까 하다가 시집 보기로 했다. 시집 사두고 몇달 지났으니. 시가 어떨지 몰라서 쉽게 펼치지 못했다. 시를 보기는 하지만 늘 잘 못 본다. 이 말 또 했다.

 

 김희준 시인은 처음 알았는데 벌써 이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 여름에 내가 그걸 알게 된 게 정확하게 언젠지 모르겠다. 2020년 8월이나 9월초쯤일 거다. 새벽이었다. 그날 김희준 시인뿐 아니라 잘 모르는 사람 죽음도 알았다. 그 사람은 음악한 사람이었다. 그때 내 기분이 아주아주 안 좋았다. 그럴 때 그런 걸 알게 되다니. 지난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세상을 떠난 사람도 많다. 그게 아니었다면 더 살 사람도 있었겠지. 이런 생각은 쓸데없을지도. 죽음은 누구의 죽음이든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겠다. 그게 아니었다면, 하는 ‘만약에’를 끝없이 생각할 거다. 갑작스러운 죽음일 때는 더하겠지. 산 사람은 죄책감을 느끼고.

 

 

 

 며칠 째 태양이 발광을 멈췄다 TV에선 인공태양을 만들자 혹은 전구를 달고 태어날 수 있게 유전자조합을 하자 토론이 진행되었다 공약으로 하나같이 태양을 걸었으니 표백된 정오는 서늘했다 쓸모가 없어진 태양은 뒷골목에서 얼마의 값으로 팔렸다 한편에선 고래가 집단 자살을 했다 단속반이 동네를 헤집자 불법으로 키우던 인어를 하수구에 버렸다 비린내 나는 죽음이었다 해돋이를 편집한 영상이 세계 박스오피스를 기록했다 그야말로 발광이었다 인류에게 새로운 진화와 종교가 생겨났다 그것은 ‘검은 태양의 아이’로 명명했다 이들은 캄캄한 피부였지만 성기가 야광이었다 집단 난교를 즐기는 이 무리에서 태어난 다음 세대는 온몸이 빛났다 빛을 두른 자는 모이거나 포옹하거나 특별한 특징을 가졌다 수만 명의 세대는 손을 잡고 원을 돌았다 중력을 밟고 하늘로 올라가는 동그라미, 분리되지 못한 내일이 눈을 깜박이자 원은 한꺼번에 사라졌다

 

 다음 날 지구에 존재하는 나머지 생물이 중얼거였다

 

 아침.

 

-<새벽에 관한 몽상>, 18쪽

 

 

 

 어쩐지 앞에서 말을 끝맺지 못하고 시를 옮긴 것 같다. 김희준 시인은 시쓰기 대회에서 상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그랬겠지. 재능있고 앞으로 쓸 시도 많았을 텐데. 갑자기 세상을 떠났구나. 그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이 안타까워하고 시인 어머니는 무척 마음 아팠겠다. 앞에 옮긴 시 <새벽에 관한 몽상>은 SF 같지 않나. 김희준은 어릴 때 엄마와 함께 별을 보았다고 한다. 별 동화 환상 꿈. 여기 담긴 시는 바로 알기 어렵다. 내가 알아들은 건 별로 없다.

 

 

 

글을 모르는 당신에게서 편지가 왔다

흙이 핥아주는 방향으로 순한 우표가 붙어 있었다

숨소리가 행간을 바꾸어도

정갈한 여백은 맑아서 읽어낼 수 없었다

문장의 쉼표마다 소나기가 쏟아졌다

 

태양은 완연하게 여름의 것이었다

고향으로 가는 길에선 계절을 팔았다

설탕 친 옥수수와 사슴이 남긴 산딸기

오디를 바람 개수대로 담았다

간혹 꾸덕하게 말린 구름을 팔기도 했다

속이 덜 찬 그늘이 늙은 호박 곁에 제 몸을 누이면

나만 두고 가버린 당신이 생각났다

 

찐 옥수수 한 봉지 손에 들었다

입 안으로 고이는 단 바람이 평상에 먼저 가 앉았다

늦여름이 혀로 눌어붙고

해바라기와 숨바꼭질을 하던 나는

당신 등에 기대 달콤한 낮잠을 꾸었다

 

해바라기는 태양을 보지 않고도 키가 자란다

기다리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채

빈 종이에 스며든 그날 체온이 기척 없이 접힌다

일도 높은 당신이 하늘에서 쏟아진다

 

-<오후를 펼치는 태양의 책갈피>, 108쪽~109쪽

 

 

 

 시를 보다 <연필>이나 <우체통>도 마음에 들기는 했는데. 뒤에 실린 발문을 보니 두 시는 시쓰기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단다. 내가 시를 잘은 모르지만, 그걸 보면서 뭔가를 느꼈나 보다. 내가 ‘연필’과 ‘우체통’으로 글을 쓰면 쉬운 이야기가 될 텐데. 그런 거 쓴 적 있구나. 시 제목에 ‘소행성09A87E’라는 게 들어가는데, 난 그걸 봤을 때 윈도우 업데이트가 떠올랐다. 숫자와 알파벳이 비슷해 보인다. 장옥관 시인은 김희준이 그곳으로 돌아갔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게 있어서 좋겠구나. 누군가는 그 소행성을 떠올리고 김희준이 그곳에 있다고 여기겠다. ‘올리브 동산’도 있다. 거기는 김희준이 만나자고 한 곳이다. 언젠가 그 올리브 동산에서 김희준을 만날지도.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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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0-23 10: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글을 모르는 당신에게서 편지가 왔다
흙이 핥아주는 방향으로 순한 우표가 붙어 있었다
숨소리가 행간을 바꾸어도
정갈한 여백은 맑아서 읽어낼 수 없었다
문장의 쉼표마다 소나기가 쏟아졌다]

한자 한자 꾹꾹 눌러 쓴 손글씨에 적혀진 한 편의 시 처럼 읽었습니다

이렇게 좋은시를 남긴 시인이 세상을 떠났다니 너무나도 슬프네요 ㅜ.ㅜ

주말 희선님이 올려주신 시들 천천히 읽으며,,,

주말 햇살 가득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ㅅ^

희선 2021-10-24 00:30   좋아요 1 | URL
지난해 여름이었다고 합니다 시집 한권이라도 남아서 다행일지, 시인을 아는 사람은 더 슬프겠습니다 오래 살고 시를 더 많이 썼다면 좋았을 텐데... 시를 다 알기 어렵지만 느낌이 좋네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