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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 박완서 작가 10주기 에세이 결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0년 12월
평점 :
저는 잘 몰랐습니다. 박완서 님이 세상을 떠나고 열해가 지났다는 걸. 박완서 님이 세상을 떠났을 때 소식은 들었지만 날짜는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박완서 님이 그때 세상을 떠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는데. 그런 생각 안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지난 열해 동안 세상은 참 많이 바뀌었겠지요. 열해면 강산이 바뀐다잖아요. 이젠 열해는 길지도. 저는 그렇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렇게 느끼는 거고 달라진 거 있을지도. 게으른 건 여전합니다. 이건 정말 바뀌지 않는군요. 요새 덜 게으르게 살아야지 하지만 잘 안 됩니다. 늘 바쁘게 이것저것 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그런 사람도 2020년에는 그러지 못했을 것 같네요.
이 책을 보면서 박완서 님이 소설가가 된 건 어머니 덕분이 아닌가 했습니다. 박완서 님 어머니가 교육열이 높아서 아이들을 서울에서 공부하게 한 건 아니더군요. 박완서 님 아버지가 덧없이 세상을 떠나서 시골을 떠나 도시로 간 거였어요. 박완서 님은 어릴 때 할아버지 할머니 사랑을 받았더군요. 그게 긴 시간은 아니었다 해도 그런 시간이 있어서 좋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박완서 님은 나이를 먹고 그때 일을 선명하게 떠올리기도 했어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박완서 님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그때는 여자아이 이름을 제대로 지어주지 않는 때였더군요. 옛날 초등학생은 4, 5, 6학년 세번이나 수학여행을 했더군요. 서울에서 개성으로 수학여행을 가다니. 지금은 그러지 못하네요. 2020년에는 수학여행 자체가 없었겠습니다.
작가가 되겠다 어릴 때부터 생각하고 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느 날 소설이 쓰고 싶어서 쓰고 작가가 된 사람도 있지요. 박완서 님은 두번째예요. 박완서 님은 1970년 봄에 단골 미장원에서 차례를 기다리다 《여성동아》를 봤어요. 거기에 여성 장편소설을 모집한다는 글이 있었습니다. 박완서 님은 그 글을 보고 소설이 쓰고 싶은 마음이 들고 썼어요. 집안 일하는 틈틈이 식구들 몰래 썼답니다. 그 소설을 보내고 나서 생각하는 게 조금 재미있었습니다. 우체국 직원이 원고를 아무렇게나 다루거나 심사위원이 글씨를 보고 글을 제대로 읽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당선 소식을 들은 박완서 님은 상금 오십만원을 제대로 주려나 하는 걱정도 했어요. 그런 걱정과 다르게 박완서 님은 상금 잘 받았어요. 1970년 오십만원은 지금 돈으로는 얼마쯤 될까요. 별 생각을 다하는군요. 처음으로 쓴 소설이 당선돼서 무척 기뻤을 것 같아요. 한편으로 걱정도 했습니다.
소설을 썼다고 해서 언제나 소설가인 건 아니지요. 소설을 써야 소설가겠습니다. 박완서 님은 소설가였네요. 소설이 당선된 뒤 박완서 님은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 소설을 썼습니다. 열심히 썼답니다. 박완서 님 남편은 박완서 님한테 서재를 마련해줘야겠다고 했답니다. 무슨 소설이냐 하지 않고 서재를 마련해줘야겠다고 하다니, 멋진 남편이 아닌가 싶네요. 박완서 님보다 세상을 일찍 떠났지만. 지금은 저세상에서 만났을까요. 죽은 사람을 생각하면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박완서 님은 몸이 없이 영혼만 있으면 뭐 하나 했지만. 영혼과 영혼은 몸이 있을 때와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지요. 이건 욕심이겠지요. 아직 저세상에 안 가 봐서.
어머니는 밤늦도록 바느질품을 파시고 나는 그 옆 반닫이 위에 오도카니 올라 앉아서 이야기를 졸랐다. 어머니는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을뿐더러 이야기 효능도 무궁무진한 걸로 믿으신 것 같다. 왜냐하면 내가 심심해할 때뿐 아니라 주전부리를 하고 싶어할 때도, 남과 같이 고운 옷을 입고 싶어할 때도, 친구가 그리워 외로움을 탈 때도, 시험 점수를 잘 못 받아 기가 죽었을 때도, 어머니는 잠깐만 어쩔 줄을 모르고 우두망찰을 하셨을 뿐, 곧 달덩이처럼 환하고도 슬픈 얼굴이 되시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로 내 아픔을 달래려 드셨다. (205쪽)
앞에서 박완서 님 어머니 이야기를 잠깐 했지요. 박완서 님 어머니는 박완서 님한테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었답니다. 박완서 님은 어릴 때 성질을 부리거나 남의 말을 많이 했나 봅니다. 어머니는 그런 박완서 님한테 다른 사람이 가진 좋은 점을 찾아보라 했어요. 좋은 말씀이네요. 아는 말이기는 해도. 그 말을 보고 저도 그게 더 좋을 텐데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가진 좋은 점을 잘 보는 사람도 있더군요. 저는 잘 못합니다. 박완서 님은 어머니한테 이야기꾼이 되는 걸 배운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박완서 님은 어머니 이야기 많이 쓰기도 했지요. 예전에 박완서 님 글 많이 보기도 했는데, 거의 잊어버렸습니다. 지금 보면 다르게 다가올 것 같기도 합니다. 언젠가 다시 만날 기회가 올지. 기회를 만들겠다고 하지 않다니. 제가 그러지 않을 것 같아서.
오랜만에 박완서 님 글을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박완서 님은 세상을 떠났지만, 글은 세상에 남았네요. 많은 사람이 오래오래 박완서 님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