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게 너무 많아도 좋아 - 성덕의 자족충만 생활기
조영주 지음 / Lik-it(라이킷)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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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무척 게으르다. 이 말부터 시작하다니. 무언가를 좋아하려면 부지런해야 하지 않을까. 게으른 내가 그나마 하는 건 읽고 쓰기다. 책을 읽었을 때부터 쓰기도 했다면 읽기를 조금 더 잘 했을까. 모르겠다. 내가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아무것도 안 쓴 건 아니다(이 말 몇번째일지). 그때 난 일기와 편지를 썼다. 책을 보다가 나도 재미있는 이야기 쓰고 싶다 생각했다. 어쩌다 한번 짧게라도 이야기를 쓰는 건 예전에 그런 생각을 해선가. 난 어떤 생각을 하고 그걸 잘 알려고 열심히 하지 않는다. 만화를 보면 무언가를 잘하려고 하루 내내 그것만 하다가 어느 날 잘하기도 하던데, 현실은 만화와는 조금 다른 듯하다. 하나만 파고드는 게 안 좋다는 건 아니다. 만화보다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는 거다.

 

 만날 사람이 없기도 하지만, 난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이건 언제부터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어쩌면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부터가 아닐까. 내가 엄마 배 속에 있었을 때 일을 기억하는 것도 아닌데 이런 말을 했구나. 어릴 때 난 친척집 가는 게 무척 싫었다. 왜 싫었느냐 하면 자주 만나지 않아서였다. 학교도 새학년으로 올라가면 아주 싫었다. 그래도 학교 쉬지 않고 갔다. 학교 다닐 때는 가끔 친구를 밖에서 만나기도 했다. 친구하고 만나기로 하면 그때부터 무척 걱정했다. 친구를 만나면 대체 무슨 말을 하지 같은. 아무 말 안 해도 괜찮다고 여긴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말 안 해도 편한 사람이 없었던 게 아니고 아직 만나지 못한 건가. 사람을 만나봐야 그런 사람을 만나겠지. 이젠 그런 바람 없다. 말하지 않아도 편한 사람은 나 자신이구나. 이젠 억지로 친척집에 가지 않아도 된다. 이건 오래됐구나. 가까운 데 사는 친구도 없다. 가까운 데 친구가 있어서 만난다는 사람 조금 부럽지만, 내가 그런 성격이 아닌 걸 어쩌나.

 

 읽은 책보다 내 이야기를 하다니. 그렇게 많이 하지도 않았구나. 그것도 다른 것을. 하나 더 말해볼까. 지금까지 난 해 본게 별로 없다. 이건 게으른 것과 낯가림이 심한 것 때문이구나. 글을 쓰려면 여러 경험을 해 봐야 한다잖은가. 예전에 나도 그런 말을 봤지만, 왜 꼭 그래야 하는데 했다. 난 청개구린가 보다. 책이라도 잘 많이 읽었다면 좋겠지만 그렇게 많이 못 봤다. 내가 살았을 때 만권 채울 수 있을지. 이건 잊을 만하면 생각나는구나. 책 만권 보기. 나한테는 오래 걸리는 목표가 하나 있구나. 책 만권 읽기는 시간을 들이면 언젠가 이룰 수 있다. 난 이런 걸 좋아한다. 그렇게 힘을 많이 들이지 않아도 언젠가 이루는 것. 책 만권 보기도 나와 다르게 빨리 이루려는 사람이 있겠지. 난 이걸 생각했다가 잊어버렸다 다시 떠올린다. 책 만권을 읽는다 해도 난 그리 달라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더 든다. 아니 조금은 달라질까. 그러면 좋을 텐데. 내가 달라지기를 바라고 책을 읽는 건 아니지만. 어떤 깨달음을 얻고 싶은 걸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그냥 읽고 싶은 거다. 자신이 무언가를 좋아할 때 그게 왜 좋은지 말하기 어려운 것과 같다.

 

 여기에서 말한 《사라진 데쳄버 이야기》(악셀 하케)를 말하는 글 작가 블로그에서 몇번 봤다. 나도 이 책을 읽어서 같은 책 보기도 했구나 했다. 사실 예전에 책을 봤지만 거기에서 말하는 게 뭔지 몰랐다. 그저 있을 때 잘해야 하지 않을까 정도만 생각했다. 이번에 그 이야기를 보다가 문득 어떤 말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건 박완서가 썼다는 글에 나온 죽음이라는 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도 그 말을 봤지만 그때는 몰랐다. 《사라진 데쳄버 이야기》가 대체 무슨 이야긴지. 제목에 ‘사라진’이 나오는데, 그걸 죽음과 잇지 못하다니. 이제야 할 수 있게 됐구나. 그 책이 어떤 내용인지 다 생각나지는 않고 데쳄버가 조금씩 줄어들다 아주 사라지는 것만 생각난다. 데쳄버가 사라지는 건 그저 보이지 않는다기보다 죽음을 나타내는 건가 보다. 그건 데쳄버한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지금은 이런 생각이 드는데 아닐지도 모르겠다(자신 없는 말을). 데쳄버는 독일말로 12월일 거다. 12월은 한해 마지막 달이다.

 

 죽음. 사실 난 죽음을 그렇게 가깝게 생각하지 않았다. 소설에서 누가 죽으면 슬프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 잊었다. 2019년에 죽음은 나와 가까이 있었다. 아니 그건 2017년부터였구나. 그때 아닌 척했지만 죽음을 생각한 건 그래서였다. 내가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다. 내 마음도 잘 모르다니. 슬프다, 마음 아프다, 덧없다. 책을 보고는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지 하면서도 그게 쉽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내 죽음은 그렇지 않다. 자신이 죽는 게 무섭다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난 그렇게 무섭지는 않다. 누군가 나를 죽이려 한다면 무섭겠지만. 그게 아니고 다른 거로 죽는다면 그냥 받아들일 듯하다. 난 내가 죽을 날을 조금 알지 갑자기 죽을지. 자신은 남고 다른 사람이 죽는 건 좀 힘들 것 같다. 힘들다. 나도 데쳄버처럼 줄어들다 아주 사라지면 좋을 텐데. 그렇게 사라지고 내가 있었다는 흔적도 사라지면 좋겠다.

 

 무언가를 좋아하고 그걸 잘 알고 잘하려면 시간을 들여야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건 누가 하지 마라 해도 하겠지만. 사실 난 하기 싫은 건 거의 안 하고 산다. 어떤 건 해야 할 텐데 하는 생각 아주 잠깐 하고 만다. 하기 싫은 정리, 버리기, 청소(다 같은 말이구나)는 어떻게 하면 할까. 내 바람은 물건이 얼마 없는 방에서 지내긴데. 그건 죽을 때까지 이루지 못하려나. 이 말하려고 한 게 아닌데. 누구나 좋아하는 걸로 잘되지는 않는다. 그러면 또 어떤가 싶다. 좋아하는 거 하면서 사는 것만으로도 괜찮지 않을까. 난 꿈이 크지 않구나. 좋아하는 걸 하다가 잘된 사람을 보고 나도 할 수 있을지 몰라 하는 꿈을 꾸기에는 내가 긍정스럽지 않다. 난 없는대로 없는 것 안에서 하려는 사람이다. 절실함이 모자란 것일지도. 그래도 언젠가 괜찮은 글 쓰고 싶다. 그러려면 책 읽고 써야겠구나.

 

 이 책을 읽고 싶게 썼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어쩐지 작가한테 미안하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게 써야 했는데. 재미없는 내 말만 하다니. 이 책을 보면 ‘나랑 비슷하다’거나 ‘나하고는 좀 다르네’ 생각할 거다. 이건 어떤 책에서든 느낄까. 책을 보면서 자신을 돌아보기도 괜찮지 않나. 내가 책을 보고 쓰는 건 나를 알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를 좋아하려고인가. 아직도 난 나를 좋아하지 못한다. 가끔 내가 나를 괜찮다 생각하다가도 바로 별로야 한다. 다음에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생각에 빠진다. 그러지 않아야 할 텐데. 괜찮은 주문 같은 말을 생각하면 좋을 텐데. 좋아하는 게 아주 많아도 좋아 같은 말.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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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12-31 2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희선님, 새해를 앞두고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2020년 새해에도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소원하시는 것을 이루는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희선 2020-01-01 00:57   좋아요 1 | URL
몇 분 사이로 해가 바뀌었습니다 아직 해는 못 보지만... 새해 첫날은 어쩐지 기분이 좋아요 지난해와 다르지 않을 듯하지만... 이번 해도 다른 해와 비슷하게 지낼 듯합니다 다른 것보다 좀 더 마음이 자라기를 바라야겠습니다

서니데이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짓기도 하고 늘 건강하게 지내세요


희선

페크pek0501 2020-01-03 14: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게으르고 느린 편입니다. 그래서 좋은 점은 꼼꼼하다는 거죠. 느린 대신 꼼꼼하죠.
이것도 어떤 것이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 같아요. 어떤 것은 나도 모르게 속도를 내거든요.
저의 장점이라면 꾸준함, 일 것 같아요. 한번 시작하면 중단하지 않는 끈기, 지구력은 있어요.
희선 님이 책 만 권 읽기, 를 말하시니 님도 꾸준함이라는 강점이 있을 듯합니다.
저어겐 만 권은 너무 많고 3분의 1로 줄여 꾸준한 독서를 할까 합니다.
꾸준함을 무기 삼아 사는 걸로...

마음을 듬뿍 담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희선 2020-01-04 01:29   좋아요 1 | URL
천천히 하는 게 많다 해도 속도를 내야 하는 건 하기도 하죠 저는 그런 게 그렇게 많지 않지만... 저도 꾸준히 하고 싶어요 책읽고 쓰기는 그게 되기는 했네요 무엇이든 조금이라도 꾸준히 하면 좋을 듯해요 그게 자신이 좋아하는 거면 더 좋겠지요 좋아하는 건 그렇게 되기는 하는데, 좋아해도 하기 싫을 때 있어요 그럴 때는 잠깐 쉬면 다시 하겠지요

만권, 다 볼지... 몇해 전에 그런 생각을 했는데 그걸 꼭 해야지 하는 마음이 없는 것 같기도 해요 그래도 언젠가 이룬다면 좋을 듯합니다 만권은 덜 생각하고 천천히라도 죽 책을 읽을까 합니다

몇 권 보느냐보다 어떻게 보느냐가 더 중요하기는 하죠 페크 님은 책을 깊이 있게 꾸준히 보시겠군요 그러면서 글도 쓰시고...

페크 님 고맙습니다 새해가 오고 사흘이 갔습니다 아직 2020년이 익숙하지 않네요 설이 가고 이월쯤이 가면 좀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희선